[interview] 이현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이현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무엇보다 일관된 과학기술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학기술 정책이 정치적 논리와 연계돼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 이 원장은 또 현행제도를 개선해 사범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이공계 석·박사 출신들도 교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 과학교육의 품질 향상과 과학영재 발굴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담=정구영 편집장



Q.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 잠재력은?

A. 계량화된 지표로만 보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 잠재력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가 되는 이공계 인재들의 우수성도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죠. 다만 우리나 라가 얼마나 많은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다소 우려가 됩니다. 특히 반도체처럼 신속한 기술변화가 요구되는 분야와 달리 기계, 조선, 금속, 철강, 석유화학, 정유 등 장치산업 분야에서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해도 원천기술 사용료 명목으로 막대한 로열티가 국외로 유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Q.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A. 기초과학 연구에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연구개발비 지원에 있어서도 선택과 집중에 더해 장기적 관점에서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지속적 투자가 요구됩니다. 지난해 정부가 전체 연구개발예산 중 기초·원천기술 분 야의 투자 비중을 오는 2012년까지 50% 수준으로 높이기로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결정입니다. 사실 대학의 연구 인력을 활용하면 투자 대비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보다 많은 연구 인력이 있기 때문입니 다. 일본에서 시행 중인 강좌제도를 모델로 삼아 이들에게 최소한의 연구비를 지원, 창의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면 기초과학 발전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벨상 또한 이 같은 저변속 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Q. 아직도 과학기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A. 과학기술의 대중화가 이뤄져야만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이 부분이 취약합니다. 이는 잘못된 과학교육의 결과로서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초등교육 시기부터 과학기술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형태의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시험에 대비한 암기식 교육이 아 닌 과학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교육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것이죠. 우리 생활과 과학기술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인식시켜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Q. 과학기술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또 다른 해법은? A. 현행제도를 개선해 사범대를 졸업하지 않은 이공계 석·박사 출신들에 대한 교육계 진출 통로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공계 전문가들이 교육계에 진출하면 과학교육의 품질 향상은 물론 잠재적인 과학영재 발굴에도 도움이 됩니다. 현재 국내 영재교육은 상위 1%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잠재력을 가진 학생은 전체의 10% 정도에 이른다고 봅니다. 이공계 석·박사들이라면 이들을 발굴해 육성할 수 있으며, 그 효과는 국가 적으로 지대할 것입니다. 과학중점 고등학교 등 몇몇 특성화 고교에서 이 같은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일반 고등학교에도 이를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Q. 가정에서의 교육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A.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학생의 지도에 부모의 영향이 지대합니다. 아이들이 가정에서부터 자율성을 갖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틀을 잡 아줘야 합니다. 학교에서 창의성 향상을 위해 내준 과제를 부모들이 대신 처리해주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일관된 교육정책과 우수한 교사 및 커리큘럼이 구축돼도 무용지물입 니다. 사고력, 창의력, 발표력의 시작은 가정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Q.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도 중요하겠죠?

A. 물론입니다.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강국으로도 약하려면 과학기술 정책이 정치적 논리와 분리돼야 합니다. 외부 환경 변 화에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죠. 과학기술 강국은 내실 있는 과학교육에서 시작 돼 안정적인 연구개발로 완성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정권 변화 시기마다 교육 및 과학기술 정책이 부침을 거듭해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Q.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비는 어떻습니까?

A.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는 우리 나라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있는 것이죠. 지금껏 국내의 과학기술 투자는 정부가 기본 틀을 짜고 연구자들에게 배분 하는 하향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도 과거에 비해 많이 성숙돼 있는 만큼 일선 연구자들이 정부에 제안해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상향식 시스템을 확대해보는 것 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정부가 각종 정책을 수립할 때 과학기술계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 울여주었으면 합니다. 이번 정부의 핵심 정책인 저탄소 녹색성장만 해도 이의 성공을 좌우할 모든 기 반이 과학기술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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