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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거진 맞춤아기 논란

최근 아기의 성별은 물론 눈 색깔까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미국 의사의 발언으로 맞춤아기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물론 과거에도 희귀 유전질환이나 혈액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치료하기 위해 유전형질이 같은 맞춤아기를 만들어낸 적이 있다.

하지만 유전형질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이 의사의 발언을 확대 해석해보면 아인슈타인의 두뇌와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근육, 그리고 장동건의 얼굴을 가진 슈퍼 베이비의 출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가능한 얘기일까

지난 3월 3일. 미국의 인공수정 전문의 제프리 스타인버그 박사는 “내년이 되면 태어나는 아기의 성별을 100% 결정 할 수 있으며, 눈 색깔은 80%의 정확성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정한 의미의 맞춤아기가 가능하다는 것.

사실 맞춤아기란 학술용어가 아니다. 이는 대중과학 및 생명윤리 관련 문건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로 생식이나 유전자 기술을 사용, 원하는 대로 선택 및 재조합된 유전형질을 지닌 아기를 말한다. 맞춤아기라는 어감 때문에 지금 당장 원하는 그 어떤 형질이라도 갖춘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의 연구실적을 감안하면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질병 치료 목적에서 출발한 맞춤아기

이번 스타인버그 박사의 언급으로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최초의 맞춤아기로 볼 수 있는 아기가 태어난 것은 의외로 오래 전 일이 다. 지난 2000년 미국에서 태어난 남자아기 ‘아담’이 효시다. 미국 콜로라도 주 잉글우드에 사는 내쉬 부부는 지난 1999년 딸 몰리가 선천성 골수결핍증인 팬코니 빈혈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질환을 치료하려면 유전형질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골수를 이식받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8~9세가 되면 죽게 된다. 내쉬 부부는 자신들의 골수나 줄기세포를 이식하려고 했지만 유전형질이 맞지 않았다. 딸의 치료를 위한 아기를 얻기 위해 일반적인 출산을 하려고 해도 같은 질병을 가진 아기를 출산할 확률이 25%나 됐다.

결국 이들은 이 질환에 걸리지 않고 딸의 조직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골수 유형질을 지닌 배아를 선택, 출산하기로 결심했다. 이 부부는 아내, 즉 몰리 어머니의 난자 12개를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다음 여기서 얻은 10개의 배아 가운데 딸과 동일한 골수 유전형질을 가진 건강한 배아를 골라 임신, 2000년 8월 29일 아담을 출산했다. 그리고 아담의 탯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몰리의 순환계에 주입했다.

아담의 탯줄 줄기세 포는 몰리의 골수에 이식된 지 3주일 만에 혈소판과 백혈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몰리의 생명을 구하게 된 것. 지난 2003년 영국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맞춤아기가 태어났다. 희귀 질환인 다이아몬드 블랙팬 빈혈증에 걸린 형 찰리를 치료하기 위해 맞춤아기 제이미 휘테커가 태어난 것이다. 이처럼 맞춤아기는 원래 희귀 유전질환이나 혈액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치료하는 것이 목표였다. 즉 자녀의 세포조직과 완전히 일치하지만 질병 유전자가 없는 정상적인 배아를 골라 줄기세포를 제공할 질병 없는 아기를 낳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타인버그 박사는 단순히 질병 없는 아기뿐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성별, 더 나아가서 이런저런 외모적 특성을 가진 아기까지 골라 낳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아인슈타인의 두 뇌와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근육, 그리고 장동건의 얼굴을 가진 슈퍼 베이비를 낳을 수 도 있다는 뜻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기에 적 지 않은 파문을 몰고 왔다.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의 용도

맞춤아기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것을 알려면 맞춤아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지난 2000년과 2003년에 맞춤아기를 만든 핵심 기술은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 (PGD)이었다.

스타인버그 박사도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을 기반으로 아기의 눈 색깔 까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이란 부부의 난자 와 정자를 체외 수정시켜 얻은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키기 전에 유전자 정보를 검사하는 기술이다.

수정란을 3일정도 배양해 배아세포가 6~10개에 이르렀을 때 1~2개를 떼어내 유전자 정보를 검사하고, 이를 통해 수정란이 난치성 유전질환이 있는지 알아 낸 후 건강한 수정란만 착상시키는 것이다.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은 지난 1990년대 초반 미국 세인트존스 대학 출신의 생물학자 이자 화학자인 마크 휴즈 박사 가 개발, 연구한 것이다. 낭포성 섬유증, 뒤센 근위축증, 선 종성 폴립증 등의 난치성 유전 질환의 전이를 막기 위한 것.

이에 따라 주로 염색체 이상이 있는 부부, 유전질환이 있는 가계, 습관성 유산 여성 등에게 선택적으로 시행됐다. 염색체 이상이 있는 부부가 자연임신을 하게 되면 임신초기 유산 확률이 높아 습관성 유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임신이 진행돼도 기형아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유전질환 부부 역시 자연임신을 할 경우 태아가 유전질환을 가질 가능성이 25.50%나 돼 임신중기에 유산을 시켜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을 통해 정상아를 임신하면 유산율을 낮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산모의 심리적 불안감도 줄일 수 있다. 다만 착상 전 배아 상태 및 질환 유무를 진단하려면 반드시 체외수정 을 해야 한다. 또한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 유무만 검사하기 때문에 유전자 이외의 환경요인이나 원인불명으로 발생하는 기형아는 예방할 수 없다.

맞춤아기를 낳기 위한 대전제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을 사용해 성별과 눈 색깔, 심지어는 지능이나 외모까지 부모 마음대로 선택한 맞춤아기를 낳으려면 다음 과 같은 대전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인간 유전자에 대한 완벽한 분석과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즉 어떤 유전자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형질을 발현시키는지 완벽히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2000년 클린턴 미 대통령은 인간게놈 해독이 거의 완료됐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염기의 서열만 알게 된 것으로 유전자의 위치와 기능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여러 가지 유전질환의 경우에도 원인 유전자가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유전성이 30~50%로 알려진 고혈압 유전자도 아직 연구단계일 뿐이다. 더욱이 피부색이나 눈 색깔 등의 유전형 질, 더 나아가 지능이나 외모 등 복합적인 형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는 더더욱 밝혀져 있지 않다.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이 난치성 유전질환을 막는데 유효한 것도 일부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가 어떤 것인지 밝혀졌기 때문이지 유전자와의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질환이라면 막아낼 수 없다.

또한 여러 수정란 중에 원하는 유전형질을 모두 갖춘 수정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난자의 수는 매우 적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수정란의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는 한 까다로운 주문에 걸 맞는 수정란이 나올 확률은 낮아진다.

여기에 낮은 임신 성공률까지 더해지면 원하는 아기를 태어나게 할 확률은 더욱 줄어든다. 당장 맞춤아기가 아닌,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은 일반적인 시험관 아기의 경우만 하더라도 임신 성공률은 40% 정도에 불과하다. 이 같은 상태에서 스타인버그 박사가 80%의 확률로 아기의 눈 색깔까지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 것, 즉 질환이 없을 뿐 아니라 특정한 외모를 갖춘 맞춤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유전자 연구현황을 감안할 때 시기상조일 뿐 아니라 연구현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난자 세포핵 이식 요법의 함정

맞춤아기를 낳을 수 있는 기술은 또 있다. 바로 미토콘드리아 DNA 돌연변이로 인한 유전질환을 막기 위한 난자 세포핵 이식 요법. 일반적으로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호흡과 에너지 생산에 관여하는 세포 소기관이며, 인간의 경우 난자 세포질을 통해 모계로 만 유전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에 이상이 있는 여 성의 난자 세포핵을 떼어내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갖춘 여성의 난자 세포질에 이식해 수정시키면 이론상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갖춘 수정란을 얻게 된다.

최근 미토콘드리아의 상태가 세포의 사멸, 암이나 알츠하이머병 같은 각종 질환의 유무를 나타내는 신호임이 밝혀졌다. 즉 미토콘드리아 DNA가 노화관련 질병, 당뇨병, 파킨슨병, 생식력, 심지어는 지능 등에 연관 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난자 세포핵 이식 요법을 이용해 지능과 수 명이 극대화되고 질환 발병 위험이 최소화 된 슈퍼 베이비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실현되려면 난관이 많다. 그동안의 미토콘드리아 연구에 따르면 반드시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나쁘다. 즉 열대지방 사람들의 미토콘드리아는 기후에 맞게 열을 덜 발산하지만 당뇨병 발병 위험이 높다. 또한 높은 지능에 관련된 미토콘드리아는 심장마비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

모든 형질이 다 뛰어난 미토콘드리아는 존재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이식된 난자 세포핵 DNA 암호와 세포질의 미토콘드리아 DNA 암호가 호환 되지 않을 경우 미토콘드리아 DNA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은 오히려 20배나 높아진다. 미토콘드리아 DNA 돌연변이가 일어날 경우 배아는 최악의 경우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버린다. 또한 태어난다고 해도 각종 질환으로 고통당하게 된다. 이것이 난자 세포핵 이식을 통한 맞춤아기 시도의 함정이다.

도구적 인간에 대한 윤리적 논란

마치 양복점에서 원하는 디자인의 옷을 주문해 입듯이 원하는 유전형질을 모두 갖춘 맞춤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언젠가는 이 같은 기술적 제약들도 제거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주도적으로 아기들이 가져야할 바람직한 유전형질을 결정하고, 그런 유전형질을 가진 맞춤아기를 만들어내려고 할까. 생명공학 연구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 과 시간을 감안하면 국가나 기업, 그리고 몇 몇 부유층이 될 공산이 크다.

이들은 당연히 기존의 이익을 지키고 확장해 나갈 도구적 인간을 만들어내려고 할 것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최초의 맞춤아기부터가 먼저 태어난 형제의 유전질환을 고치기 위해 도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희귀 질환을 고치고 생명을 구한다는 목적은 어느 정도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른 인간을 위한 도구로서 최적화된 인간을 ‘생산’한다는 것이 윤리적으로 용납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인간의 수단화와 도구화가 이미 수정란 단계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현실은 인간생명과 존재가치에 커다란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리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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