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고 스피드에 대한 도전

모터스포츠에는 레이스, 랠리, 속도기록 등이 있다.

레이스는 동일 코스를 동시에 출발해 정해진 거리의 소요시간을 다투는 경기고, 랠리는 상용차를 대상으로 신뢰성과 내구성을 판단할 수 있는 코스·기후·도로조건 등 각종 조건 아래서 경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속도기록은 정해진 거리의 주행시간, 즉 최고 스피드를 가리는 것.

지금까지의 지상 최고 속도기록은 시속 1,228km. 이 기록을 작성한 영국의 사업가 리처드 노블은 내년 시속 1,287km로 자신의 기록을 갱신한 이후 2011년에는 시속 1,609km, 즉 시속 1,000마일에도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은퇴한 IBM의 프로젝트 관리자인 애드 새들 역시 내년 7월 시속 1,287km를 먼저 돌파해 노블의 야망을 꺾는다는 계획이다. 바야흐로 지상 최고의 스피드 대결이 펼쳐지는 셈이다.



네바다 주 블랙 록 사막의 아침 태양에 떠오른다는 표현은 너무나 빈약해 보인다. 점화된다고 해야 제대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일출 때 처음 나온 오렌지빛 햇살이 1분 동안 비추는 사이 선사시대부터 있었던 마른 호수바닥의 색조는 수없이 변한다. 태양의 '출력'은 그 이후 최고조에 달한다. 오전 6시 30분. 이미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고 온도는 계속 올라간다.

아음속을 내는 차량으로 개조된 록히드 F-104 초음속 전투기를 하루 종일 사막 한가운데서 주행하도록 하려면 모든 사전작업은 해가 뜨기 전에 이루어지는 게 좋다. 그런데 7월의 수요일 아침 7시가 되었는데도 노스 아메리칸 이글 팀의 팀원 가운데 일어나 움직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전 8시가 돼서야 급조된 격납고 옆에 주차돼 있는 레저용 차량 RV에서 팀원들이 하나 둘씩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글 팀의 팀원은 전원 지원자로서 미국과 캐나다 출신의 항공기 기술자, 공학자, 과학자, 기계공, 그리고 드라이버 등으로 구성돼 있다. 분명 지난 밤 북쪽으로 19km 떨어진 온천에서 파티를 벌였을 것이다.

오전 10시경 이글 팀이 차량을 급조된 5.6km 길이의 도로에 끌고 나올 때쯤 바람이 플라야를 때리고 있었다. 플라야란 건조지대의 내륙분지 중앙에 폭우가 내린 후 일시적으로 고이는 염호(鹽湖)를 말한다.

팀원들은 이제 긴장한 모습으로 체크리스트를 점검했다. 데이터 수집 엔지니어인 스티브 월러스는 사다리에 올라가 아음속 차량인 이글의 내부에 복잡하게 얽힌 전선, 단자, 커넥터 등을 살펴보았다.

초음속 영역에서는 약간만 공기역학적으로 불안정해도 차량이 분해돼 그 파편이 부서진 크래커 조각처럼 사막 위에 뿌려질 수 있다. 그래서 이글 팀은 이번 주 데이터 수집 작업에 성공해야 한다. 이들은 이 차량을 몰고 시속 640km까지는 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예정대로 2010년 7월 4일 시속 1,287km를 돌파하려면 그 이전에 충분한 데이터를 습득해 차량의 디자인을 완성해야 한다.

한 팀원이 픽업트럭으로 이 차량을 정해진 위치까지 견인해 갔다. 팀장이자 드라이버인 애드 새들은 차량의 운전석에 탑승한 다음 헬멧과 산소마스크를 착용했다. 새들은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한 팀원이 이동식 제트엔진 시동기를 끌고 왔다. 이 시동기의 작은 터빈이 소리 내어 돌아간 후 시동기에서 전달된 동력으로 차량의 제너럴 일렉트릭 J79 제트엔진이 시동됐다. 엔진이 공기를 흡입하면서 모래먼지가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갑자기 누군가 엔진을 정지하라고 소리쳤다. 고속 제동용 낙하산의 수납창 한 곳이 열렸기 때문이다. 새들은 엔진 시동을 중지했다. 연소실에는 연소되지 못한 연료가 약간 남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팀원 한 명이 배기구 내에서 작은 오렌지색 화염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문제가 해결되자 새들은 엔진 재시동 신호를 보내고 엔진은 이 작은 화염을 뒤로 뿜어버리려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그 순간 배기구에서 엄청난 불길이 뿜어져 나왔고 팀원들은 모두 숨을 곳을 찾아 엎드 렸다.


속도기록용 제트엔진과 로켓엔진의 차이

이런 이글 팀은 퇴역한 초음속 전투기를 개조해 사막에서 폭주를 즐기는 아마추어 무리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정직하게 말하면 실제로도 그렇다. 속도기록 경주에서 이런 아마추어 팀은 충분한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의 돌파구는 중고 군용장비 경매에 새로운 엔진이 나왔을 때뿐이다.

일반적으로 모터스포츠에는 레이스, 랠리, 속도기록 등이 있다. 레이스는 동일 코스를 동시에 출발해 정해진 거리의 소요시간을 다투는 경기고, 랠리는 상용차를 대상으로 신뢰성과 내구성을 판단할 수 있는 코스·기후·도로조건 등 각종 조건 아래서 경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속도기록은 정해진 거리의 주행시간, 즉 최고 스피드를 가리는 것이다.

지난 1890년 이런 종류의 경주가 처음 개최되었을 때 프랑스 귀족과 벨기에의 경주용 자동차 드라이버가 전기자동차로 속도 대결을 펼쳤고, 그 결과 벨기에 사람이 시속 105.8km를 기록하며 이겼다.

가솔린 엔진이 전기모터를 대체하자 속도기록은 빠르게 갱신됐다. 지난 1927년에는 영국 팀이 세계 최초로 시속 200마일, 즉 시속 320km를 넘었다. 하지만 1960년대 군에서 방출한 중고 제트엔진이 민간에 풀리면서 이런 속도기록 경주는 또 한번의 부흥기를 맞았다.

이번에는 미국 사람인 크레이그 브리드러브와 역시 미국 사람들인 아폰스 형제 사이에 경쟁이 벌어졌다. 아트 아폰스와 월트 아폰스는 배다른 형제지간이다. 속도기록은 시속 480km에서부터 점점 올라가 불과 10년 만에 시속 965km를 넘었다.

지난 1970년 전직 배달 운전수이던 미국인 게리 게이블리치는 로켓 엔진을 장착한 블루 플레임을 타고 유타 주에 있는 보네빌 소금평야에서 시속 1,001km를 기록했다.

1983년에는 영국인 사업가 리처드 노블이 10년간의 노력 끝에 제트 엔진 차량 트러스트Ⅱ를 타고 시속 1,019km의 속도를 내 게이블리치의 기록을 깼다. 이로서 세계 최고의 지상 속도기록은 다시 영국의 손으로 돌아왔다.

속도기록용 차량에 장착되는 제트엔진과 로켓엔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연소실에서 폭발적으로 연료를 연소시키고, 이를 후방으로 내뿜어 그 반동력으로 전진한다는 원리는 같다. 하지만 제트엔진은 연료의 연소에 필요한 산소를 공기 중에서 얻지만 로켓엔진은 연료 연소에 필요한 산소를 자체 내에 별도로 가지고 있다.

제트엔진은 연소를 위해 계속적으로 공기를 빨아들이고 압축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필요한 기계장치가 따라붙게 되며, 이로 인해 산소가 풍부한 대기권 내에서도 일정한 속도 이상을 내기가 힘들다.

공기가 음속을 넘어 초음속으로 유입되면 충격파가 발생해 기압이 낮아지고, 이는 곧바로 엔진의 추력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로서는 공기 흡입 및 압축을 위한 별도의 기계장치가 필요 없는 로켓엔진이 더욱 빠른 속도를 내기에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련한 사업가 VS 아마추어 폭주족

1990년대에 부동산 중개업자이던 브리드러브는 본업을 중단하고 스 피릿 오브 아메리카Ⅱ를 만들어 노블이 세운 기록을 깨고자 했다. 하지만 노블은 아직도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로 남아 있다. 1997년 10월 15일 노블이 만들고 앤디 그린이 운전한 쌍발 제트엔진 트러스트 SSC가 처음으로 음속을 돌파한 것이다.

트러스트 SSC는 속도기록용 차량의 최고 속도를 측정하고 인증하는 국제자동차연맹이 정한 규칙에 따라 1시간 내에 1.6km 코스를 두 번 달리면서 시속 1,228km의 평균속도를 냈다. 현재 63세인 노블은 내년 가을 시속 1,287km를 내 3번째로 세계 속도 신기록을 세운 후 시속 1,000마일(1,609km)을 낼 때까지 계속해서 도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반면 새들과 그가 이끄는 노스 아메리칸 이글 팀은 내년 7월 4일 먼저 시속 1,287km를 돌파해 노블의 야망을 꺾는다는 계획이다. 냉전시대 영국의 주요 지대공 미사일 브리스톨 블러드하운드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노블의 블러드하운드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공학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영국 정부에서 예산 일부를 지원하는 준(準) 국가적 프로젝트다. 노블 역시 이 엄청난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돈을 마련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이글 팀에는 이렇다 할 후원자가 없고 아직까지 눈에 띄는 속도 기록도 없다. 이 팀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장비를 지원하는 기술 스폰서들과 휴일에 시간을 내 작열하는 사막의 태양 아래서 공학, 전자, 소방 등의 전문적 재능을 투자하는 자원 봉사자들뿐이다. 이들은 낙하산을 접고, 보급품을 나르며, 변덕스러운 엔진을 수리하는 일을 한다.

현재 차량의 속도기록은 너무 높이 올라가 누구도 그 기록을 깨는 방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철저한 공학적 계산으로 접근해야 할지, 아니면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부품으로 만든 차량을 써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물체에 적용되는 물리적 법칙을 들여다보면 차량을 빨리 달리게 하면 할수록 더욱 큰 노력이 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기 저항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시속 1,287km를 넘으려면 기존의 속도기록을 깨기 위해 썼던 엔진보다도 더욱 강한 엔진을 써야 한다. 시속 1,600km를 내려면 말할 것도 없다.

새들은 자신의 팀이 제트엔진을 장착한 F-104 초음속 전투기를 제대로 개조했다면 원래 공중에서 내던 속도의 절반 정도는 거뜬히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반면 노블은 제트엔진과 로켓엔진을 동시에 사용하는 완전히 새로운 차량을 만들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블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속도기록용 차량의 추력을 극대화하면서도 조작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우선 제트엔진을 사용해 차량을 시속 480km까지 달리게 한 이후 로켓엔진을 점화시켜 최고 시속 1,600km까지 가속시킨다는 발상인 것이다.

얼핏 로켓엔진 1~2개만 장착하면 더 간단하고 좋을 것 같지만 로켓엔진은 일단 점화되면 추력의 통제가 어렵다. 이 때문에 속도의 통제가 용이한 제트엔진을 보조엔진으로 사용하면 제어성은 물론 안정성도 얻을 수 있다. 특히 시운전을 할 때 점차 속도를 높여가면서 원하는 스피드에 근접하는 방식의 운영도 가능하다.

새들이나 노블 같은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이들의 기술은 결코 휘티즈 박스 표지를 장식하는 운동선수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 휘티즈는 미국의 시리얼인데, 유명한 운동선수들을 박스 앞면에 내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새들은 이렇게 말한다. "레이니어 산이나 에베레스트 산 등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입니 다. 북미 대륙에 사는 사람들도 영국 사람들만큼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애국적인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만년 2등에 만족하고 있어야 하나요?"


공기흐름과 압력파가 미치는 영향

노블의 트러스트 SSC 팀은 지난 1997년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 전에 아무도 그 답을 알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내려야 했다. 급격한 공기흐름이 차량의 제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초음속 전진 때 생기는 압력파가 차량을 분해시켜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바로 그것. 노블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을 가리켜 아주 돈을 많이 들인 살인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노블의 팀은 지상에서 초음속 질주를 한다고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님을 입증해 보였다. 하지만 브리스톨에 있는 노블의 공학센터를 방문한 파퓰러사이언스 객원기자 마이크 스피넬리에게 노블이 한 말에 따르면 위험요소는 분명히 상존하고 있다.

차량이 아음속에서 시속 1,126~1,206km의 초음속으로 넘어갈 때 차량은 마하 1의 속도로 달리지만 차량 주변의 공기는 마하 1의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마하란 유체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속력을 나타내는 단위로 유체가 정지해 있을 때의 물체 속력과 유체 속에서의 음속 사이의 비를 말한다.

만일 부실하게 설계된 차량이 이만한 속도를 낸다면 변화무쌍한 공기흐름이 균형을 깨고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공기의 흐름이 빠를수록 압력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격파도 있다. 아음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는 음파를 앞으로 보낸다. 즉 물체가 나가는 방향으로 공기 분자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가 초음속에 점점 가까워지면 물체의 속도가 음파의 속도를 따라잡는다.

그렇게 되면 전방에 압력파가 형성된다. 이를 소리의 벽이라고 한다. 이 소리의 벽을 깨고 앞으로 나가면 기압이 순식간에 변하면서 충격파에서 기압이 풀려나 귀가 멀 정도로 큰 소닉 붐을 일으키게 된다. 노블의 표현을 빌면 차량은 서류분쇄기에 갈린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지 않고 이 소리의 벽을 통과해야 한다.

풍동실험은 초음속 차량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풍동에서 부는 바람은 별로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블도 지적하듯이 초음속 충격파가 지면 및 차량 하면과 상호작용하는 방식도 풀어야 할 과제다.

경주용 자동차 실험용 풍동에 있는 기존의 이동식 바닥은 시속 1,300km가 넘는 속도로 움직이는 차량이 받는 힘을 재현하기에 역부족이다. 그래서 노블의 블러드하운드 SCC 팀은 트러스트 SSC를 굴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도록 발전한 컴퓨터 유체역학을 통해 필요한 계산을 해내고 있다.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차체와 차량 주변, 그리고 차량 하면을 흐르는 공기 간의 상호작용을 재현하는 것이다. 웨일즈에 있는 스완시 대학 내의 팀 분실에서 이루어진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블러드하운드 SSC의 알루미늄 차체가 시속 1,609km의 속도를 낼 때 받는 공기의 압력은 ㎠당 1.86톤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러드하운드 SSC 전시 차량, 즉 실물 크기의 모형은 브리스톨에 있는 노블의 사무실 한 층 아래 차고에 있었다. 실제 차량과 동일한 크기의 이 전시 차량은 그저 껍데기만 재현된 것이다.

하지만 차체 길이가 무려 12.6m나 되기 때문에 차고 내에 대각선으로 주차해야 할 정도다. 전시 차량 옆에는 경차만 한 원통형 케이스가 있었다. 그 케이스 속에 든 물건은 블러드하운드 SSC의 보조엔진인 유로제트 EJ200 터보 팬 엔진이었다. 이 엔진은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공군에서 채택한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의 엔진으로 유명하다.

실물 크기의 블러드하운드 SSC 모형 내부에는 애스턴 마틴의 경주용 자동차에 쓰이는 V12 엔진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 차량에서 V12 엔진은 직접 추진력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대신 운전석 뒤에 위치한 알루미늄 탱크에서 과산화물 산화제 953kg을 빼내 블러드하운드 SSC의 주 엔진인 로켓엔진에 공급하는 연료펌프 역할을 한다.

로켓엔진은 제트엔진 위쪽에 장착될 수도 있지만 아래쪽에 장착될 수도 있다. 어디에 장착하는 것이 더 좋은지는 현재 논의 중이다. 어쨌든 이 로켓엔진 안에 들어간 산화제는 낱알 모양의 고체-액체연료를 점화시켜 1만2,485kg의 추력을 발생시킬 것이다. 이는 애스턴 마틴의 경주용 자동차 252대의 추력과 맞먹는 것이다.

로켓엔진을 고체-액체연료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만든 것은 안전성을 추구한 결과다. 고체연료만을 사용하는 로켓엔진은 비상시 정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체-액체연료 하이브리드 방식은 산화제 펌프를 끄기만 하면 된다.

경주용 자동차의 최고급 엔진을 고작 연료펌프로 사용할 만큼 호화로운 설비를 자랑하는 블러드하운드 SSC를 만들려면 1,700만 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노블은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기술적 지원은 물론 재정적 지원을 얻는 데도 막대한 시간을 들이고 있다.

트러스트Ⅱ로 속도기록 주행을 한 노블의 이야기를 다룬 책 '세계 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의 저자 데이비드 트리메인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 최고의 속도기록은 뭐든지 된다는 순수한 열정에 철저한 비즈니스 감각이 결합된 산물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꿈만 꿀 뿐이지요. 하지만 노블은 그 꿈을 실현할 능력도 갖추었고, 비즈니스 세계의 생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그는 모래바닥에 파묻힌 고무공과도 같습니다. 누르면 누를수록 튀어 오르는 사람입니다."


노스 아메리칸 이글 팀이 가진 장점

노블이 이 일에 관련된 비즈니스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미국인 라이벌들도 노블에 없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갖추고 있다. 우선 이들에게는 실제로 달릴 수 있는 차량이 있다. 그리고 이들 열정적인 미국인 아마추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하고 놀라운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실제 노스 아메리칸 이글 팀의 공동 창립자이자 현재 보잉사의 부장인 키스 잔기와 은퇴한 IBM 프로젝트 관리자 애드 새들은 오랫동안 직선 레이싱 코스와 보네빌 소금 평야를 달려왔다.

잔기가 속도기록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지난 1966년. 그 해에 아버지는 그를 시애틀 시보레 특약점에 데려가 스피릿 오브 아메리카Ⅰ을 보여주었다. 그 차량은 크레이그 브리드러브가 1년 전 시속 965km를 돌파하는 데 쓴 속도기록용 차량이었다.

새들은 어린 시절 장난감 자동차 경주에 심취했고, 더욱 빨리 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을 구하는 재주를 키워나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웃 중에는 돈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최신 장비라면 뭐든지 가지고 있었지요. 내 자동차를 갖기 1년 전부터 그 사람의 자동차를 빌려서 탔는데 얼마나 흥분됐는지 모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잔기와 새들이 이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그들이 개조할 항공기는 낙서로 도배가 된 폐군용품에 불과했고, 원래의 군용기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1998년 메인의 잉여 군용기 상점에서 2만8,000달러를 주고 이 군용기를 사온 다음 미 전국을 횡단해가며 워싱턴 주의 스팬어웨이 격납고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 군용기를 속도기록용 자동차로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냉전시대에 등장한 F-104 초음속 전투기는 당시 음속의 2배가 넘는 속도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제일 빠른 전투기였다. 10여 년 전 군용기 개조작업을 시작하던 잔기와 새들은 두텁게 칠해진 페인트 속에서 행운의 징조를 발견했다.

잔기의 말이다. "기체 번호를 보니 이 군용기가 에드워즈 공군기지에서 X-15나 SR-71 등 고속 항공기 시제품이 비행할 때 추적기로 쓰였음을 알 수 있었어요." 항공기로 최초의 음속을 돌파한 사람인 처크 예거도 이 기체의 조종사였다고 한다.

잔기의 말은 계속된다. "이 군용기 기체 번호의 끝 3자리는 763이었어요. 이는 노블과 그린의 트러스트 SSC가 낸 속도기록인 시속 763마일(1,228km)과 일치하는 숫자였지요." 그러면서 그는 윙크를 보냈다. "우리는 이 군용기가 우리에게 온 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어요."

이 군용기를 속도기록용 차량으로 개조하는 데는 10년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기체 외피의 40%, 리벳 5,000개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초음속을 내려면 그에 걸맞는 기술적 후원을 받아야 했으며, 이는 동네 카센터에서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희토류 자석을 사용한 제동시스템은 워싱턴 주의 LEVX사에서 설계한 것인데, 시속 640km의 속도에서도 3.2km의 제동거리로 정지할 수 있었다.

스티브 월러스는 주행코스에 정밀 Wi-Fi 텔레마틱스 시스템을 이용한 안테나 탑을 설치했다. 이 안테나 탑은 주행 중인 차량의 센서가 수집한 기압, 가속도, 서스펜션 압축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는다. 월러스는 무선 라우터와 무수한 안테나, 그리고 랩톱을 탑재한 스바루의 바자 차량에서 이 데이터를 분석한다. 한마디로 스바루의 바자 차량은 이동지휘센터인 셈이다.

그는 시험주행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사용해 이글 차량의 디지털 모델을 개량한다. 블러드하운드 SSC팀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유체역학 소프트웨어에 자료를 입력하는 것이다. 이글 팀은 현재 데이터 공유 조건으로 오크리지 국립 컴퓨터과학센터의 슈퍼컴퓨터를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숨 막히는 영국과 미국의 속도 대결

양 팀 간의 대결은 내년이지만 그 일정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 지난 6월 노블은 블러드하운드 SSC 설계 제작에 필요한 공학적 작업을 수행하는 데만도 한 달에 약 17만 달러가 들어가며, 공기역학 팀이 차량의 후미 부분을 아직 설계 중이라는 글을 올렸다. 또한 모하비 사막의 거대한 시설에서 실시될 실물 추진용 로켓엔진의 시험작동도 예정보다 늦어진 상태다.

노블은 이렇게 말했다. "최고 속도기록을 깨려면 짜증날 만큼 더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무엇인가 해놓았다가 잘 안 되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매달려야 합니다. 엄청난 인내력이 필요하죠. 가장 빠른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느린 작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글 팀도 일정 지연에 애를 먹고 있다. 이 팀은 고속 시험주행을 캘리포니아의 에드워즈 공군기지에서 실시하기로 계획했었다. 이 공군기지 인근의 로저스 건호는 우주왕복선 착륙장으로 유명한 곳이며, 넓고 평탄해 블랙 록 사막보다도 주행에 적합한 조건이다.

하지만 이글 팀에는 미 공군에서 요구한 로저스 건호 사용료 2만 5,000달러를 낼 여력이 없었고, 결국 블랙 록 사막에서 시험주행을 하기로 했다.

이들은 미국 토지관리국의 허가를 받아 4일간의 시험주행을 했다. 목요일 오후에도 그들은 거기 있었다. 장비를 챙겨 워싱턴 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시험주행을 준비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이글 팀은 완전히 지쳤지만 아직 사기는 높았다. 초기 시험주행에서 발생한 화염방사 현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시험주행에 적합한 길고 부드러운 땅을 찾아야 했다.

수요일 오후 두어 시간 동안 차량이 달리기 적합한 장소를 찾아본 결과 플라야의 동북쪽 끝에 6.83km 정도의 구간이 있는 것을 찾아냈다. 이글 팀은 그곳으로 가기 위해 사막 한 가운데로 차량을 한 시간 반이나 끌고 갔다.

다시 한 번 팀원들이 차량 앞으로 몰려가 마지막 시험주행을 준비 했다. 모두가 이번 시험주행에서 이번 주의 목표인 시속 800km를 돌파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 팀원이 제트엔진 시동기를 작동시켜 제너럴 일렉트릭의 J79 제 트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새들의 아들인 카메론이 신호탄을 쏘았다. 새들이 스로틀을 앞으로 밀자 이글은 황갈색 모래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새들은 출발점으로부터 1.6km 지점에 이르자 스로틀을 100% 위치로 밀었다. 차량에 가속이 붙고, 터빈소리가 높아지며, 질주하는 차량의 뒤로 엄청난 모래구름이 피워 올랐다.

이글의 속도가 시속 320km, 480km, 560km로 계속 높아지면서 웅장한 굉음이 플라야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하고 나서 시험주행은 끝났다. 이글이 종착점을 통과하자 새들은 제동용 낙하산을 전개했다. 소방장비를 실은 팀 소속의 안전차량 2대, 그리고 월러스가 탄 스바루의 바자 차량이 아직 여력이 남아 달리는 이글을 쫓아갔다.

그 날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팀원들은 또다시 이글의 정비점검에 매달렸고, 불과 40분 만에 다음 시험주행을 실시할 채비를 갖추었다. 실제로 세계 기록에 도전하려면 1시간 내로 다음 주행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시험주행에서 문제가 드러났다. 배선이 불량해 J79 제트엔진의 애프터버너 작동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지 못했던 것. 애프 터버너는 엔진 배기가스를 점화시켜 더 큰 추력을 얻는 장치다. 애프터 버너를 쓰지 않으면 이글의 속도는 시속 560km 이상 나오지 않는다.

새들은 캠프로 돌아와서 모래먼지로 범벅이 된 팀의 장비를 챙겼다. 그는 이날의 결과에 만족했다. 이글의 고속 제동용 낙하산은 아무 결함 없이 작동됐다. 그리고 팀이 다음 시험주행을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은 국제자동차연맹의 규정보다 빨랐다.

실전에서라면 20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 목표의 80%는 달성했으며, 올해가 가기 전에 나머지 20%, 즉 시속 800km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예정대로 내년에는 세계 최고의 속도기록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밤이 되자 18륜 트럭 2대, RV 차량 6대, 스바루의 바자 차량, 그리고 트레일러에 실린 이글로 이루어진 팀의 행렬이 워싱턴 주를 향해 출발했다. 이들은 본업에 복귀해서도 배선문제, 다음 시험주행에 필요한 보급문제를 신경 쓸 것이다.

그리고 경쟁자에 비하면 명예도 금전도 없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손으로 세상에서 제일 빠른 차량을 탄생시키겠다는 꿈을 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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