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안전 위협하는 조류충돌

인간은 하늘을 정복하기 위해 항공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태고 때부터 하늘의 지배자였던 새는 인간의 침입을 용인하지 않고 인간의 '기계 새'에 육탄공격을 벌이고 있다. 바로 조류충돌이다.

조류충돌은 조류가 항공기 유리창에 부딪히거나 엔진 속에 빨려 들어가 사고를 일으키는 현상.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항공기에 새가 부딪히면 동체가 찌그러지고, 엔진 속에 빨려 들어가면 부품이 파손돼 안전운항에 큰 차질이 생긴다.

심할 경우에는 유리창이 깨지거나 폭발이 일어나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간의 하늘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새의 진노 역시 거세지고 있는 셈이다. 조류충돌로 인한 항공사고의 원인은 무엇이고, 해결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난 1월 15일.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한 US 에어웨이 1549편 에어버스 A320 항공기가 이륙 90초 만에 캐나다기러기 떼에 충돌, 엔진이 모두 정지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충돌 당시 항공기는 고도 및 속도가 낮아 곧바로 회항, 라과디아 공항 활주로에 활공착륙을 시도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온통 빌딩뿐이었다.

체슬리 설런버거 기장은 가까스로 항공기를 허드슨 강 위에 불시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탑승자 155명 전원은 항공기에서 안전하게 탈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조류충돌로 인한 항공사고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됐다.

만일 조종사가 항공기를 강 위에 안착시키지 못했거나 빌딩을 들이받기라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처럼 운항중인 항공기에 조류가 충돌해 안전사고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을 가리켜 조류충돌(Bird Strike)이라고 한다.

조류충돌은 기체 파손뿐 아니라 승무원과 승객의 인명손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항공업계는 조류충돌 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더구나 조류충돌로 인한 항공사고 건수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상태다.


조류충돌의 양상과 현황

기록상 남아있는 최초의 조류충돌 사건은 지난 1905년 오빌 라이트가 직접 만든 항공기로 비행하던 중 일어났다. 오빌 라이트는 라이트 형제 가운데 동생. 그만큼 인류의 항공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악연을 가진 게 바로 조류 충돌이다.

일반적으로 조류충돌은 이착륙할 때, 저공비행할 때 많이 일어나지만 드물게 6,000m 이상의 고공에서도 발생한다. 히말라야 산맥보다 높은 1만175m 상공을 날아가는 인도기러기(bar-headed goose)가 목격된 적이 있으니 말이다.

인도기러기는 겨울을 나기 위해 V자 모양의 무리를 이루어 따뜻한 지역으로 떠나는 철새. 호수나 늪에 서식하며, 섬 등 고립된 지역을 더 좋아한다. 러시아 남동부·중국 서부 등에서 사는데, 겨울 동안에는 주로 인도 북부와 미얀마 북부에서 지낸다. 몸길이는 72㎝, 몸무게는 1.8~2.9㎏이다. 깃털의 빛깔은 회색과 흰색이고, 머리와 등 쪽에는 편자 모양의 흑갈색 줄무늬가 있다.

아프리카 서부의 코트디부아르 1만 1,300m 상공에서도 항공기가 독수리와 충돌한 사고가 있었는데, 이는 사상 최대의 고도에서 일어난 조류충돌 사고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류충돌은 공항 상공, 또는 공항 근처에서 이착륙할 때 많이 일어난다.

실제 미 연방항공국 야생동물위험관리 편람에 따르면 900m 이상 상공에서 발생하는 조류충돌 건수는 전체의 8% 이하다. 반면 61m 이하 상공에서 벌어지는 조류충돌 건수는 전체의 61%에 달한다.

조류충돌은 항공기의 조종석, 날개, 엔진 등 주로 앞부분에서 발생한다. 이 가운데 엔진의 공기흡입구에 조류가 빨려 들어갈 경우 US 에어웨이 항공기 사고에서 보듯 엔진이 정지하는 등 극도로 위험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현대의 항공기 엔진은 거의 모두 제트엔진이다. 그런데 제트엔진은 작동을 위해 대량의 공기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조류를 빨아들이는 힘이 다른 부위에 비해 월등하다.

이렇게 빨아들여진 조류가 고속으로 회전하는 제트엔진의 팬 블레이드에 충돌할 경우 팬 블레이드가 잘려 나가면서 다른 팬 블레이드와 충돌한다. 이어 팬 블레이드를 포함한 엔진 내부를 연쇄적으로 파괴해 결국 엔진 정지를 일으키고 만다.

특히 이륙할 때 엔진은 최대한의 속도로 돌아가는 데 반해 고도는 낮기 때문에 조류충돌의 위험 및 충돌여파가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항공기에 조류가 충돌할 경우 가해지는 물리적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고속으로 비행하는 항공기의 특성 및 운동에너지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물리법칙을 감안해 본다면 아무리 작은 조류가 충돌한다고 해도 항공기에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한다. 사람 죽이는 총알도 의외로 작고 가볍다는 점을 생각하면 된다.

대부분 항공기의 이륙 속도인 시속 275km로 떠오르는 항공기에 5kg 정도의 조류가 충돌할 경우 항공기에 가해지는 충격은 15m 위에서 떨어진 100kg의 물체가 가하는 충격과 맞먹는다. 다만 항공기는 원래 어느 정도의 중력가속도(G)를 버티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전체 조류충돌 가운데 항공기 기체 파손이 일어나는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우주에는 핵력, 전자기력, 약력, 중력 등 4 가지 기본 힘이 존재한다. 이들은 하나의 물체에 한 가지 종류의 힘만 작용하거나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해 물체에 힘을 가함으로써 속도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특히 지표면에 낙하하는 물체의 경우와 같이 중력의 영향 아래서 생성되는 운동 가속도를 중력가속도라고 한다.

전체 조류충돌 가운데 항공기 기체 파손이 일어나는 비율은 낮지만 파손의 정도에 따라 탑승자가 부상 또는 사망할 수도 있다. 또한 엔진이 정지되거나 조종사가 사망하는 피해를 입을 경우에는 항공기가 추락, 더욱 큰 손실로 연결될 수 있다.



증가하는 조류충돌과 주요 사례

조류충돌 이후 기체에 붙어있는 조류 시체는 전문 인력에 의해 꼼꼼히 수거·분석돼 사고 예방을 위한 연구에 활용된다. 물론 항공기가 무사히 귀환해서 조류 시체를 수거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지만.

이 같은 조사를 통해 조류충돌이 발생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일으키는 것은 기러기, 갈매기 등 떼를 지어 사는 대형 조류라는 점이 밝혀졌다.

미국 내에서의 충돌빈도 순위는 물새(32%), 갈매기(28%), 맹금(17%) 순이다. 또한 가장 파괴력이 큰 조류는 캐나다기러기, 흰 펠리컨, 칠면조수리 순이다. 철새의 이동이 많은 봄과 가을, 특히 야간에는 조류충돌의 위험성이 낮보다 7배나 더 커진다.

조류충돌로 인한 사망사고 사례도 만만치 않다. 첫 사망자는 1912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조류에 충돌, 추락사한 칼 로저스다. 또한 최대의 인명피해를 낸 사고는 1960년 10월 4일 이스턴 항공 소속 L-188 엘렉트라 항공기가 이륙 도중 찌르레기 떼와 충돌해 엔진 4개가 모두 정지한 것. 이 사고로 항공기가 추락해 탑승자 72명 중 62명이 사망했다.

찌르레기는 몸길이 24cm의 조류로 눈 주위가 희고, 머리와 가슴은 짙은 회색이다. 도시공원·정원·농경지·구릉·산기슭 등 도처에 번식하며, 떼를 지어 다닌다.

지난 1995년 9월 22일에도 미 공군의 E-3 항공기가 알래스카 기지를 이륙한 직후 캐나다기러기 떼와 충돌, 엔진 정지 후 추락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24명 전원이 사망했다.

2005년 7월 26일에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발사 도중 독수리와 충돌했다. 그리고 1964년 10월 31일에는 우주비행사 테오도어 프리먼이 T-38 항공기로 훈련비행을 하던 중 기러기가 조종석과 엔진에 충돌하면서 추락,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

문제는 이 같은 조류충돌 사고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는 점. 미 연방항공국의 집계에 따르면 미국 내 조류충돌 사고 건수는 1990년 1,759건이었지만 2007년에는 무려 7,666건으로 늘어났다. 하루에만 20건이 넘는 조류충돌 사건이 일어난다는 계산이다.

또한 지난 1990년 비행 1만회 당 평균 조류충돌 건수는 0.53건이었지만 2007년에는 1.75건으로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류 충돌 건수는 지난 2005년 51건에서 2008년 71건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이렇게 조류충돌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항공여행이 과거보다 훨씬 빈번해진 탓이다. 하지만 공항 활주로 주변에 풀밭과 습지대 등을 조성함에 따라 조류가 서식하기에 적절한 환경이 갖춰진 탓도 있다.

그렇다면 활주로 주변을 아스팔트로 메워 버리면 간단하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활주로 주변에 설치된 풀밭과 습지대 역시 항공안전을 위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풀밭과 습지대는 항공기가 불시착했을 때 충격을 완화해 주고, 홍수가 발생할 경우 활주로가 물에 잠기는 것을 막아 준다. 조류충돌이 늘어나는 또 다른 이유는 갈매기, 칠면조수리 등 항공기 충돌 때 많은 피해를 입히는 대형 조류의 개체 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인간들의 3가지 대응전략

이 같은 조류충돌에 인간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대처방법은 크게 3가지인데, 첫 번째는 항공기를 조류충돌에 견딜 수 있도록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류에 가장 취약한 부분 가운데 하나인 엔진의 경우 조류가 빨려 들어간 상태에서는 정상 작동시킬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조류를 흡입하게 될 경우 안전하게 정지되는 장치를 갖추게 된다. 대부분의 대형 제트엔진은 최대 1.8kg까지의 조류를 흡입하고도 안전하게 정지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또한 항공기 동체는 1.8kg, 꼬리날개는 3.6kg 무게의 조류충돌에 견뎌야 한다. 조종석 캐노피 역시 1.8kg의 조류에 충돌하고도 변형 또는 파열돼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이 같은 강도 측정에 산 닭이 이용됐다고 한다. 산 닭을 마취시킨 후 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압공기로 고속 발사한 것.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닭보다 구하기 쉬운 젤라틴 덩어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체됐다.

이 같은 물리적 방법 외에도 조류에게 항공기 접근을 경고, 미리 피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으로 프로펠러 스피너나 제트엔진의 팬 블레이드 축에 나선 모양을 그려 넣는 것이 있다. 항공기 비행등의 점등 역시 조류에게 비행경로를 알리는 데 유용하다.

조류는 비행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시각이 크게 발달돼 있다. 조류충돌을 피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으로는 항공기 항로상의 조류를 내쫓거나 없애는 것이 있다. 특히 많은 사고가 일어나는 공항 주변을 중심으로 새들이 싫어하는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우선 새들이 좋아하는 열매나 씨앗을 생산하거나 새들이 둥지로 쓸 수 있는 크기의 식물을 공항 주변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전기매트를 사용해 활주로 주변에 사는 곤충을 제거, 새들이 덜 오게끔 하고 있다.

또한 조류가 싫어하는 소리, 불빛, 불꽃, 레이저, 허수아비 등을 공항 주변에 배치하기 도 한다. 맨체스터 공항이나 존 F. 케네디 공항처럼 조류를 쫓기 위해 사냥매를 도입한 공항도 있다. 또한 공항 주변의 새를 잡아 다른 곳에 방사하는 방법도 쓰이고 있다.

세 번째로는 항공기의 항로에 끼어드는 조류를 미리 감지하거나 조류의 서식 위치를 미리 파악해 대처하는 방법이다. 현재 이 방법은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 미 공군에서 특히 활발하게 연구 및 사용하고 있다.

미군의 항공위험자문체계는 스미스소니언 연구소로부터 조류충돌 사건기록과 차세대 기상 레이더에 의한 조류탐지 결과를 얻어 내 조류 회피 모델을 만들었다.

차세대 기상 레이더는 미국 기상청이 일기 예보를 위해 사용하는 도플러 레이더 네트워크로 강수량과 공기의 움직임까지 잡아낼 정도로 정밀하다.

지역별로 다른 조류충돌 가능성을 알려주는 이 모델을 사용해 조종사는 이륙 전에 비행계획 상의 저공비행 경로나 폭격경로의 조류충돌 위험성을 미리 알 수 있다. 또한 조류 충돌 위험이 높으면 다른 곳으로 비행경로를 옮길 수도 있다. 비행 전에 조류 회피 모델을 사용한 결과 1년 만에 공중전 사령부 작전용 항공기의 조류충돌 건수가 70%나 줄었다고 한다.

또한 네덜란드의 기업인 TNO는 네덜란드 공군을 위해 레이더 조류밀도 감시체계(ROBIN)라는 것을 개발했다. 이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레이더를 이용해 조류의 이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체계다.

레이더 조류밀도 감시체계는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위협이 되는 조류 무리를 발견하면 해당 공역에 경보를 발령한다. 수년간의 운용 결과 조류의 이동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돼 네덜란드 공군기지 인근의 조류충돌 건수는 50% 이상 감소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이 같은 군의 조류감시체계에 버금가는 민간의 체계나 표준이 없다. 일부 공항에 조류감시용 레이더가 설치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조류 회피 모델이나 레이더 조류 밀도 감시체계 같은 체계들의 기본 원리를 응용하기에 따라 민간항공을 위한 조류감시 체계도 등장할 것이다.

미국이 현재 구축하고 있는 차세대 항공교통 통제체계인 넥스트젠에서는 레이더뿐 아니라 인공위성까지 사용해 각 항공기의 위치와 간격, 속도와 방향, 목적지, 그리고 예상되는 비행시간 등의 정보를 조종사 및 관제사에 게 알려준다.

과거보다 훨씬 하늘이 붐비게 되더라도 이 같은 정보를 이용하면 현재보다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인 항공교통의 관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정밀한 관제시스템을 통해 조류감시라는 변수까지 추적해 충돌을 예방하게 된다면 항공기에 조류가 충돌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게 될 것이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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