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점에서 최근 우리에게 던져진 시대적 화두가 하나 있다. 바로 창의인재의 육성이다. 미래사회는 과학적 창의성을 통해 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창의인재에 의해 주도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교육의 초점을 창의성 증진에 맞추고, 그 도구가 되는 창의리소스의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경제파퓰러사이언스는 한국과학창의재단과 공동으로 3회에 걸쳐 국내외 창의교육 및 창의 리소스의 운용 현황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효율적 창의인재 육성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과학적 창의인재가 나라의 미래를 바꾼다
"세계는 지식기반경제에서 창의성기반경제(Creativity-based economy)로 나가고 있다" 이는 얼마 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지식포럼에서 런던 비즈니스 스쿨(LBS)의 개리 하멜 교수가 국내 기업들에게 던진 화두다.
미래 사회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지식이 아닌 창의성에 의해 주도될 것이며, 이에 맞춰 기업들도 창의성을 배양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가 말하는 핵심 요지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해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학자로 선정한 하멜 교수의 이 말은 비단 기업들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와 사회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인재상, 즉 교육계가 길러내야 할 인재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특정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춘 이른바 프로페셔널리스트나 스페셜리스트를 인재라고 불렀다. 그리고 국내 교육계는 이 요구에 부응하는 우수한 전문가들을 양성해왔다. 우리가 지구촌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만큼 신속한 경제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던 근저에는 이 같은 전문 인재들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창의성기반경제에서는 인재가 지녀야 할 기본소양도 달라진다. 전문지식에 더해 반드시 창의성이 수반돼야 한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지고 산업간, 학문간 융합이 가속화됨에 따라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도 창의성 없이는 리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김왕동 박사는 "기존의 선진국 추격 형태 체제에서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이 중요했지만 이것으로는 1등을 할 수 없다"며 "롤 모델이 없는 1등에게는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창조적 혁신을 추동하는 역량 확보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결국 창의인재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국가 발전을 지속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건인 것이다. 국내외의 많은 석학들이 수 년 전부터 창의교육과 창의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피력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21세기에는 창의인재가 곧 국가의 경쟁력이며, 창의 인재 없이는 국가의 미래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일관된 판단이다.
창의인재 육성은 시대적 사명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이 같은 사실을 직시하고 과학, 수학을 중심으로 교육의 기본 초점을 창의성에 맞추고 있다. 합리성·논리성·실용성을 특징으로 하는 과학, 수학은 모든 창의성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 싱가포르,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도 이미 글로벌 국가로의 부상을 목표로 창의교육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상태다.
이들 선진국에 비해서는 다소 늦었지만 우리나라 역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창의인재대국의 실현을 목표로 다각적인 교육 패러다임 변혁을 꾀하고 있다.
올해 말 확정 예정인 미래형 교육과정(2009 개정 교육과정)도 그 일환이다. 몇몇 사안에서 교육단체들의 반발이 제기되고 있지만 미래형 교육과정의 대전제인 창의인재 육성에 대한 이견은 없다.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라는데 모든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과연 창의인재란 무엇일까. 전문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창의성 연구의 대가로 불리는 미국 J.P. 길포드 박사의 '창의적 사고 5요소'를 보면 창의성과 창의인재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바로 민감성, 유창성, 유연성, 독창성, 정교성이 그것이다.
여기서 민감성은 새로운 문제를 감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 유창성은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생각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유연성은 정형화된 사고의 틀을 깨는 능력, 독창성은 참신하고 독특한 발상 능력, 그리고 정교성은 이렇게 얻어진 추상적 아이디어를 체계화·구체화하는 능력이다.
쉽게 말해 창의인재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고 그에 대한 독창적 해결책을 제시, 가치 있는 결과물을 창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교육계에서는 이에 더해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창의인재의 필수 덕목으로 지목한다. 창의성은 영재성처럼 개인의 특출한 능력보다는 타인과의 상호관계와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더욱 잘 발현되고 향상된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창의력교육협회의 황욱 회장은 "지식의 양에 따라 인재를 구분했던 과거에는 혼자만 잘해도 인재의 칭호를 얻었다"며 "하지만 창의성은 독불장군이 아닌 집단의 창의와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가시화된 교육 경쟁력 악화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현행 국내 교육 시스템은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창의성을 말살(?)하는 주입식 교육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의 대화와 토론이 사라진 채 교사의 지식이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은 이를 암기해 시험에서 정답을 찾는 것에 주력한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이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이미 교육 경쟁력의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과학·수학 과목의 2007년 국제 학업 성취도 비교연구(TIMSS)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성취도는 각각 세계 4위와 2위에 오른 반면 자신감은 과학이 29개국 중 27위, 수학이 49개국 중 43위로 조사된 것. 흥미도 역시 29위와 43위에 머물렀다. 과학과 수학 점수는 높지만 능동적·창의적 학습수준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얘기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올해 발표는 더욱 충격적이다. 국내 대학 교육의 경제사회적 요구 부합도가 조사대상 57개국 중 51위에 머문 것. STEPI의 김왕동 박사는 "기업과 사회는 창의인재를 요구하는데 우리 교육은 정답 찾기에 능한 전문가의 배출에 맞춰져 있다"며 "이 같은 인재상 불일치는 곧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동안 창의교육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재교육과 맞물려 각 시·도 교육청 및 대학교 부설 영재교육원 등 을 중심으로 수학·과학 기반의 창의성 증진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영재교육의 수혜자가 전체 학생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
이에 대해 교육계 전문가들은 창의교육은 소수의 영재교육과는 별도로 다수의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사회문화 전체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성숙함을 가져야 진정한 창의인재가 키워질 수 있다는 것.
창의공학연구원의 백윤수 원장(연세대 공과대학 교수)은 "스티븐 호킹, 아인슈타인과 같은 영재는 인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창의성의 근간은 평범한 일반인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며 "획일화된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창의인재 육성도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창의교육의 밑거름, 창의리소스
그렇다면 창의인재 육성을 위한 창의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과학, 수학 교육시간을 늘리고 토론식 수업을 도입하면 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창의교육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에 맞춰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창의리소스의 개발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창의리소스란 한마디로 창의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자원이다. 과학·수학 도서, 실험키트 등은 물론 동영상, 사진, 온라인 콘텐츠 등 창의성 자극의 재료가 되는 것은 모두 창의리 소스가 될 수 있다. 창의리소스가 일선 교육 현장에서 창의교육의 도구가 되는 만큼 우수한 창의 리소스의 개발과 확보는 창의인재 육성의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창의리소스가 많다고 창의교육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창의리소스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적절한 교수법의 개발이 병행돼야 한다. 양질의 창의리소스라도 사용방법에 따라 주입식 교육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하나의 원리를 다양한 실험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과학키트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교사가 교육 편의를 위해 실험방법을 특정하고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결과를 요구한다면 창의성과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백윤수 원장은 "창의교육은 무엇을 가르칠지보다는 어떻게 가르칠지가 더 중요하다" 며 "새로운 창의리소스 확보와 함께 교사들이 최적의 교수법을 만들고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 창의교육리소스, 허브가 없다
"창의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도, 배울 곳도 없습니다." 서울 동작구 소재 대림 초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한 교사가 내뱉은 이 말은 국내 창의교육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 교사는 "교육계 종사자라면 초·중·고교와 대학교를 막론하고 모두가 창의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구체적인 창의교육 방법을 물으면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인천 G중학교의 생물담당 P교사도 "창의 교육에 대한 사항은 상급기관에 문의해도 속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다"며 "막연히 인터넷을 뒤지거나 주변 교사들에 대한 탐문, 창의성 관련 서적의 탐독 정도가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설명했다.
창의교육을 하려고 해도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다시 말해 교육에 활용할 창의리소스와 교수법을 확보할 수 없어 교과서 중심의 일방적인 지식전달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창의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교육을 주관해야 할 일선 교사들의 이 같은 발언은 상황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일부 교사만 겪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가 접촉한 전국의 초·중·고교 교사 30여명 대부분이 이 같은 현실적 한계를 피력했다.
이들의 과반수가 수석교사, 과학부장, 교육연구부장 등 창의교육의 일선에 있거나 발명 동아리 등을 이끌며 창의 교육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 교사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단순히 소수 교사들의 볼멘소리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상태다.
한국창의공학연구원이 국내 5,199개 중·고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와 동일한 결과가 나타났다. 창의교육의 필요성은 유효 응답자 923개교 중 94.7%가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 교육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로 52.2%가 '구체적인 교육방법을 알지 못해서'라고 응답한 것이다.
창의리소스 확산의 구조적 한계
일선 교사들이 느끼는 이 같은 어려움은 기본적으로 창의리소스의 양적 부족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심각한 구조적 맹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현존하는 창의리소스들에 대한 통합적 정보의 부재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창의인재 육성이 글로벌 이슈로 부각되면서 국내에도 이미 상당량의 창의리소스들이 개발돼 있다. 창의교육에 관심이 많은 초·중·고 교사, 대학 교수 및 연구소, 사설 교육기관 등에 의해서다. 이들이 발품을 팔아 확보한 해외 창의리소스도 상당한 수준으로 추정된다.
또한 각 시·도 교육청과 교수학습지원센터, 교육과학연구원, 각급 영재교육기관들도 창의성 교수 및 학습 자료를 꾸준히 개발해내고 있다. 여기에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자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온라인 콘텐츠 등까지 포함하면 부족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창의리소스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교육행정 담당자들이 개별적으로 정보 수집을 하고 있을 뿐 국내 창의리소스의 현황을 체계적으로 수집, 자료화하는 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것.
이로 인해 국내 창의리소스들은 개발자나 보유자의 주변에서만 맴돌기 일쑤다. 설령 세계적 수준의 창의리소스가 개발되더라도 당사자 외에는 그 존재를 확인하기조차 힘들다는 얘기다.
대전 동문초등학교의 이상우 교사는 "새로운 창의리소스 개발과 더불어 기존 창의리소스에 대한 정보를 수집, 데이터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일선 교사 입장에선 이것이 더 시급하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나라에서 창의교육을 실천하려면 교사들이 직접 나서야만 하는 형편이다. 스스로 창의리소스를 개발하거나 해외로 나가서 구해와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도 대개 교사 개인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발명 및 창의교육에 기여한 공로로 2년 전 녹조근정훈장을 받은 서울 아주중학교의 박인수 교사도 "국내 자료에는 한계가 있어 틈틈이 외국을 다니며 필요한 창의리소스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교사들이 창의교육을 '나보다 뛰어난 특별한 교사'들이나 하는 일로 여기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창의리소스의 허브 구축해야
이 같은 창의리소스의 정보 부재와 그에 따른 공유 루트의 차단은 국내에서 운용되고 있는 창의리소스의 신뢰성을 저하시킨다는 문제까지 유발하고 있다.
창의리소스는 가급적 많은 교육현장에 적용돼 다각적인 평가와 검증을 거쳐야만 효용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데, 국내 환경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창의교육을 펼치려고 노력하는 많은 선도적 교사들과 교수들이 국내가 아닌 해외의 창의리소스를 선호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서울 보성고등학교의 창의력 계발교실 지도교사로 각종 창의력대회와 발명대회를 휩쓸며 보성고를 창의과학교육의 명문으로 부상시킨 정호근 교사도 그 중 한 사람. 정 교사는 "검증되지 않은 창의리소스로는 제대로 된 창의교육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며 "적용 사례도 적고 개발자의 말 외에는 객관적 데이터도 없는 국내 창의리소스에 신뢰를 갖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교육계에서는 새로운 창의리소스의 개발과 더불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창의리소스의 허브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 허브를 통해 창의리소스의 정보를 제공, 활발한 공유와 확산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의 창의교육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같은 허브를 설립, 운영해 오고 있는 상태다. 지난 1985년 문을 연 미국 국립과학 리소스센터(NSRC)와 2005년 개관한 영국의 국가과학교육센터(NSLC)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
이들은 각각 과학·수학 관련 창의리소스의 개발과 보급을 필두로 교수법, 교사연수 프로그램, 교육 커리큘럼 등을 제공하며 국가 창의교육 전반을 주도하는 창의인재의 인큐베이터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창의성 교육을 펼침으로써 사회문화 전체를 창의적으로 바꿔놓으며 창의성 기반 경제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창의교육 목표와 방향 설정 중요
창의리소스의 허브 구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메리트는 지대하다. 먼저 소수 영재 중심의 창의교육이 다수 일반학생들로 확대되는 단초가 마련된다. 그동안 적절한 창의리소스와 교수법을 구하지 못해 자포자기(?)했던 많은 교사들이 창의교육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창의리소스의 보급 확대로 자연스럽게 다양한 지역과 환경에서 검증이 진행되면서 저급한 것은 도태되고 양질의 리소스만 선별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별 교사들에 의한 첨삭과 변형, 진화가 이뤄져 창의리소스의 다양성이 창출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창의리소스 개발을 위한 불필요한 중복투자와 과잉투자가 최소화돼 사회적 비용 절감을 꾀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창의리소스의 접촉기회가 적은 중소 도시 및 도서·산간지역의 창의교육 품질을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 거주 지역에 따른 학생들의 기회 박탈을 방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올해 6월 설립된 한국과학창의 재단의 창의리소스센터(CRC)는 국내 창의교육이 한 단계 도약할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직은 NSRC나 NSLC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대한민국 창의리소스의 허브를 표방하고 있어 향후 행보에 교사들과 창의교육 전문가들이 거는 기대감이 크다.
한국창의력교육협회의 황욱 회장은 "CRC가 궁극적으로 창의리소스 확산의 허브이자 창의교육의 커뮤니티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의 선결과제로서 창의성의 개념 정립과 창의교육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추구하고자 하는 창의교육의 목표와 방향이 결정돼야 그에 맞는 창의리소스와 교수법도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공학연구원의 백윤수 원장(연세대 공과대학 교수) 역시 "우리의 시간적, 공간적 상황에 맞는 창의성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창의 교육의 시발점"이라며 "이후 교육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 분야별·영역별 목표와 세부적인 방법론을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3] 현실성 갖춘 창의교육시스템과 리소스 개발해야
21세기 창의성기반경제 시대에는 창의 인재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이에 따라 국내에도 수 년 전부터 창의인재 육성과 발굴을 위한 다양한 제도 마련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과학과목에 자유탐구 과정이 신규 도입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한 2009 개정 교육 과정, 입학사정관제, 과학중점학교, 자율형 사립고 도입도 같은 범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들은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하고 선진국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교육계와 창의교육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력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국내 교육체계에 대한 진지하고 냉철한 통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 학교, 학부모, 기업, 사회 등의 요인들이 신경망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주입식 교육의 뿌리가 너무 깊어 단순히 선진국형 창의교육시스템의 도입을 밀어붙이는 것으로는 진정한 창의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고 설명한다.
우리 스스로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동안 이의 타파를 위해 다양한 교육개혁을 시도했지만 지금껏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 모든 교육계 인사들이 창의교육과 창의인재 육성의 최대 장벽으로 꼽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5지선다형 객관식 문제 중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대입제도가 창의교육의 최대 장벽
1개의 정답을 찾아야 하는 수능의 객관식 문항은 지식의 양과 암기력의 측정에 최적화된 평가방법이다. 반대로 이해력, 사고력, 독창성 등 창의력의 판별에는 큰 한계가 있다. 정답을 특정하지 않는 것이 창의성의 출발점이기 때 문이다.
하지만 초·중·고교 교육의 기본적 지향점이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려운 국내 환경에서는 창의교육보다는 주입식 교육이 오히려 목표달성에 훨씬 효과적인 것 또한 사실이다.
일선 교사들을 대상으로 창의교육의 중요성 전파에 앞장서고 있는 전국수석교사연합회 이원춘 회장(경기 화광중학교 물리교사)도 이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 회장은 "아직도 우리는 학력을 사회적 성공의 보증수표로 인식한다"며 "대입제도의 수술 없이 교사들에게 창의교육을 하라는 것은 일정 부분 어불성설에 가깝다"고 말했다.
최근 '창의적 인재육성의 근본적 한계와 당면과제'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김왕동 박사도 같은 생각이다. 특히 김 박사는 객관식 5지선다형 대학입시와 맞물려 있는 현행 학교 및 교사의 평가기준도 창의교육 실현의 핵심 저해요인으 로 지목하고 있다.
고등학교는 물론 초·중등학교 또한 명문대 진학의 엘리트코스로 불리는 특성화 중학교와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진학률을 가지고 학교와 교사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상황에서 창의리소스의 개발이나 창의교육은 뒷전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
김 박사는 "초·중·고교를 막론하고 명문 상급학교로의 진학률로 줄 세우기를 당하고 있는 게 교육계의 현실"이라며 "이에 따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 당국과 교사 모두 문제풀이를 통한 정답 찾기 실력 향상에 주력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강의의 질과 교육 능력이 아닌 과학기술 논문인용색인(SCI)급 학술지에 대한 논문 발표 숫자 등으로 순위가 매겨지기 일쑤다.
김 박사는 "대학교수 역시 현실적으로 창의교육을 위한 강의준비보다 논문 집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압박을 받고 있는 셈"이라며 "창의인재 육성은 대입제도와 함께 교원과 학교의 사회적 평가기준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제 역할 하지 못하는 영재교육
이 같은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은 교육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선례는 하나 둘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학입시에서의 내신 성적 비중 강화다.
당초 이 정책은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됐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평상시 학교 성적이 중요해지면서 전 과목에서 사교육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것.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사교육 시장 규모는 무려 20.9조원으로 2003년의 13 원 대비 약 8조원이나 늘었다.
논술시험도 마찬가지다. 대학의 인재 변별력을 높인다는 도입 취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연간 1조원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창출되며 또 다른 주입식 교육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창의교육도 이들과 유사한 전철을 밟게 될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개연성이 다분해 보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내 창의교육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재교육만 봐도 그렇다. 기존 입시제도의 굴레를 탈피하지 못하면서 창의인재 육성에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
실제 일선 교사 등 교육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영재교육이 우수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선행학습에 불과하며, 창의성 배양 효과가 미미하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이제는 학생과 학부모마저 영재교육을 선행학습과 진학의 도구로 여기고 있다.
지난해 국제과학올림피아드 수상자의 50%가 이공계가 아닌 의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각종 경시대회 수상 실적이 영재교육원과 과학(영재)고 입시에서 창의성 평가 자료로 인정받으면서 학생들의 대회 출전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 또한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을 위한 도구일 뿐임이 확인된 것이다.
지난달 서울과학고등학교 영재교육원을 수료한 서울 장평중학교의 한 학생도 "학교 교육과 별도로 영재교육원의 교과 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지만 선행학습 차원에서 특목고 진학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수료의 변을 밝혔다.
지난 2년간 중학생 자녀를 영재교육원에 보냈다는 한 학부모 또한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는 영재고, 과학고 진학에 도움을 받기 위해 영재교육원을 선택하는 것으로 안다"며 "창의교육은 하나의 옵션일 뿐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를 보면 '아인슈타인이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면 수학과 물리학 외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서울대 문용린 교수의 비유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현실과 이상의 접점 찾아야
이처럼 명확한 문제 인식과는 달리 해결책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게 문제다. 입시제도를 바꾼다는 게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탓이다.
이 때문에 창의교육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고 우리 교육환경에 맞춤화된 창의교육시스템과 창의리소스를 개발, 점진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주입식 교육과 창의교육, 즉 현실과 이상의 접점을 찾는 첨병으로 입학사정관제도를 꼽는다.
입학사정관제는 성적 위주의 선발 방식을 벗어나 별도의 입학사정관이 구술면접 등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파악해 선발하는 제도다.
지난해 16개 대학에서 시범 도입된 뒤 이번 2010학년도 전형에서는 47개 대학에서 360명의 입학사정관이 총 2만695명의 학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과학고에도 영재교육원 수료자 및 올림피아드수상자 전형, 영재교육원 수료자 가산점이 사라지고 입학사정관 전형이 도입될 예정이다.
전국수석교사연합회 이원춘 회장은 "입학사정관제를 잘 활용하면 진정한 창의인재들이 우수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이렇게 되면 초·중·고교에서도 획일적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교육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물론 높은 기대에 반해 아직은 우려의 시각도 큰 편이다. 창의성 자체가 계량화되기 힘든 가치여서 객관적 평가기준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듯 자칫 제2의 성적우수자 선발 경쟁으로 치닫거나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창출될 개연성도 배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도 학교 생활기록부 충실화, 입학사정관 양성·훈련 프로그램 가동 등 입학사정관의 전문성과 신뢰성 향상을 위한 다각적 내실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김왕동 박사는 "창의인재 선별과 초·중·고에서의 창의교육 촉진은 입학사정관제의 실효성 제고가 관건"이라며 "이에 더해 초중등학교와 교대·사범대에 대한 창의적 사고기법 훈련과정 신설, 대학 내 영재교육 프로그램 다변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