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이라는 개념은 지난 1993년 미국의 수학자이자 과학소설 작가인 버너 빈지로부터 나왔다. '다가오는 기술적 특이점-포스트 휴먼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논문에서 비롯된 것.
그리고 지난 2005년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이 나오면서 특이점은 미래를 바라보는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에는 기계가 인간만큼 똑똑해지며, 그 단계가 지나면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인간이 살아남으려면 기계와 합치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기계 하이브리드다.
지난해 9월 여름학기를 시작으로 문을 연 특이점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은 미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일종의 미래학 전문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총장 역시 커즈와일이 맡고 있다.
하지만 특이점 대학은 현존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10년 내 10억 명의 인류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 및 사업화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교육기관의 성격이 더 짙어 보인다.
다시 말해 특이점 대학은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에 대한 이해와 이의 긍정적 활용에 앞장설 미래의 지도자를 육성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파퓰러사이언스의 객원기자인 조시 딘이 9주 과정의 이 대학을 방문, 40명의 천재 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손가락 괜찮습니까?"
브루스 클라인은 반창고를 붙인 파퓰러사이언스의 객원기자 조시 딘의 손가락을 보더니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딘이 요리를 하다가 다쳤다고 대답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나노로봇을 투입해 고쳐드리겠습니다." 그는 그런 말을 하고 나서 웃었다. 물론 농담이다.
클라인은 특이점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의 행정실에 취직하기 전에 영화 '생명연장의 탐구'를 제작했고, '죽음의 과학적 정복'이라는 책을 공동으로 편집했다. 이 영화와 책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설명이 된다.
그는 갈대처럼 날씬했다. 생명연장을 위한 섭생법을 철저히 지킨 덕분일 것이다. 실제 그는 칼로리 섭취를 최소화하고, 건강식 위주의 식단을 지키며, 건강보조제를 많이 먹는다고 한다. 금주는 기본. 특히 미국에서 가장 특이한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대학을 창립하는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한몫한 것 같다.
지난 2009년 여름 문을 연 특이점 대학은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 뷰에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 에임스 연구센터 내에 있다. 혹시 자신의 의식을 컴퓨터에 옮기겠다는 계획을 말했을 때 친구들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신에서 얻은 DNA를 이용해 아버지를 부활시켜 보이겠다는 말과 똑같군!'이라는 말을 들은 학생이라면 특이점 대학의 문을 두드려 볼 만하다.
이곳에서는 죽은 사람의 DNA로 그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을 포함, 그 어떤 아이디어도 환영받는다. 이 대학의 총장인 레이 커즈와일 역시 그 어떤 아이디어라도 환영할 것이고, 또한 그런 아이디어를 낼 것이다.
커즈와일은 컴퓨터 과학자이자 지난 50년간 등장한 인물 가운데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발명가다. 그가 만든 발명품 중에는 평상형 스캐너, 광학문자인식 소프트웨어, 글자를 음성으로 전환시키는 리더, 그리고 그랜드 피아노의 소리를 거의 정확히 따라할 수 있는 전자 키보드 등이 있다.
평상형 스캐너는 사진과 같은 촬영된 이미지를 컴퓨터 인식이 가능한 디지털 이미지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또한 광학문자인식 소프트웨어는 사람이 쓰거나 기계로 인쇄한 문자의 영상을 이미지 스캐너로 획득해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문자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 같은 놀라운 발명에도 불구하고 61살 먹은 이 발명가는 지난 10년 동안 논쟁의 여지가 많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더욱 명성을 날렸다. 이런 활동 덕에 그는 트랜스휴먼 운동가, 사이보그 팬, 나노기술 전도사, 기타 극단적인 미래주의자들에게 거의 메시아적인 인물로 비춰졌다.
그는 지난 2005년 출판한 베스트셀러 '특이점이 온다-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기하급수적인 기술발전을 이룩해 또 한번의 혁명적인 도약을 이루는 시기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2029년이 되면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갖춘 컴퓨터가 등장할 것이며, 2045년경에는 인간의 의식을 기계에 옮겨 영생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특이점(Singularity)이다. 물론 그때까지 인류는 고도의 지능을 갖춘 로봇을 만들고, 나노기술을 통해 모든 질병을 정복하며, 맞춤형 인공장기와 사지를 만들어 장애를 극복하는 등 상상도 할 수 없는 신기술과 도구로 세계를 바꾼다고 한다.
그렇다면 특이점 대학에서 무슨 교육이 이루어지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딘이 지금 당장 매트릭스 속에 뛰어들지 못해 안달이 난 학생들을 만날 것을 기대하며 총 9주의 수업기간 중 4주째에 이 캠퍼스에 온 목적도 알게 될 것이다.
혹시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두개골에 이식한 블루투스를 통해 강의계획을 전달하지는 않을까? 특정한 장소에 학생들이 모여 수업을 받는 것도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나 하던 전근대적인 유물로 여기지는 않을까?
하지만 딘은 강의를 받으러 온 학생들의 면면을 뜯어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이점 대학 최초의 교육을 받으러 13개국에서 온 40명의 남녀 학생들은 1인당 2만5,000달러의 등록금을 내거나 20여개 장학금 중 한 가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2045년 인간과 기계가 하나 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고 있는 공상과학 팬들이라기보다는 실용주의적 사고를 가진 예비사업가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이룩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뽑아보면 이렇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출신의 루크 허친슨. 컴퓨터와 소형가전기기를 수리하며 자랐으며, MIT에서 컴퓨터공학 및 컴퓨터생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또한 박사과정과 병행해 지난 2년간 취미 삼아 강도 높은 중국어 교육을 받았다.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으며, 스카이다이빙과 일반 여행객들이 잘 가지 않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것을 즐긴다. 열성적인 안드로이드 해커며, 첨단기술 전반에 대한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분명 커즈와일의 사고방식은 이 대학 캠퍼스 곳곳에 스며 있다. 하지만 이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이념은 실용적이고 독창적이다. 다시 말해 뛰어난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기술을 발전시킬 방법을 모색,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캠퍼스에서의 첫날 오후는 멜라니 스완 강사의 미래 연구 및 예측 워크숍을 들으며 보냈다. 스완은 실리콘밸리의 헤지펀드 매니저였지만 그도 이 대학의 교수진 사이에서는 이름이 덜 알려진 사람에 속한다.
이곳의 교수진에는 인터넷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빈트 커프, '더 심즈' 게임을 개발한 윌 라이트 같은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날 스완은 10명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팀 앞에서 예측 모델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을 시범 보였다.
이 학생들은 아침에 제펠린비행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 만 상공을 날아다니며 구름 모양을 관측하고, 작은 항공우주회사 운영에 필요한 세부계획을 체험해 보았다. 제펠린 비행선이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한, 기다란 형태의 비행선을 말한다. 이 학교의 모든 교육과정은 이처럼 기업가적인 관점에 맞춰 짜여있다.
스완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클릭하며 미래의 전망을 설명했다. "장래에는 기존의 전자공학과 분자전자공학은 물론 유기소재와 비(非)유기소재 간의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완은 커즈와일이 좋아하는 스타일, 즉 명확한 설명을 했다. "2018년이 되면 인간의 뇌신경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완벽히 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인간정신을 파일 형태로 만들어 백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놀라운 말을 듣고도 강의실 안에 모여 앉은 학생들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갖고 있는 랩톱의 키를 두들길 뿐이었다.
특이점 대학이 창설된 배경
사실 특이점 대학은 커즈와일의 작품이 아니다. 커즈와일이 특이점 대학의 창설을 주도한 것이 아니며, 이 대학을 세우자는 의견을 낸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이 대학의 창설을 주창한 사람은 이미 대학원생 시절에 국제우주대학을 설립하고 X프라이즈 재단을 만들어 민간우주여행을 촉진하는 등 미국 과학기술계에 큰 영향력을 미친 피터 디아맨디스다.
지난 1987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세워진 국제우주대학은 우주시대에 대비한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우주 프로그램과 관련된 규범을 비롯해 우주 과학, 우주 엔지니어링, 시스템 엔지니어링, 우주 정책과 법, 비즈니스와 경영, 그리고 우주와 사회 등을 망라하는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분교를 두고 있으며, 두 달의 여름학기와 1년 코스의 석사 프로그램으로 운용되고 있다.
X프라이즈 재단은 지난 1996년 미국 IT업계의 거물들이 모여 순수 민간자본으로 우주 개발을 해보자는 취지로 설립된 비영리 후원 단체다. 이 재단의 이사회에는 아마존닷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소프트웨어 업체 컴퓨서치의 창업자 짐 벤슨 등이 포진해 있어 일명 벤처부자 클럽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2006년 디아맨디스는 여름휴가 중 '특이점이 온다-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머지않아 혁명적 변화의 시기가 온다. 인류는 지금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국제우주대학을 함께 설립한 그의 동료 밥 리처드도 같은 생각을 했다.
리처드의 말이다. "피터는 생활습관을 바꾸고, 식단도 바꾸었으며, 건강보조제를 먹기 시작했어요. 그는 쿨 에이드라는 음료도 마셨습니다. 저도 그 음료를 먹지만 그 사람만큼 철저히 생활습관을 바꾸지는 못했어요."
당초 그들은 커즈와일의 주장을 국제우주 대학에서 가르치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리처드는 생각을 바꿨다. "커즈와일의 생각은 별도의 대학을 따로 만들어줘야 할 만큼 광범위했습니다."
디아맨디스가 커즈와일을 만난 것은 지난 2007년 하반기. 그는 첨단 과학기술이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연구하는 전문 교육기관, 즉 특이점 대학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커즈와일은 그의 제안을 바로 승낙했다.
두 사람의 만남을 계기로 세계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래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 설립의 꿈이 현실화된 것이다. 구글과 글로벌 벤처 투자 회사인 이플래닛 등이 거액의 장학금을 냈고, 개인 자격의 후원도 있었다. NASA는 에임스 연구센터의 건물 2동을 무상으로 빌려주었다.
지난 2008년 중반 디아맨디스와 커즈와일은 학교설립을 도울 인물 2명을 고용했다. 이들은 디아맨디스와 함께 일하면서 그해 9월 에임스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학교 설립을 위한 기틀을 잡아나간 것이다.
특이점 대학의 학생 선발 기준은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첫 입학생 40명은 300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특출한 인재들이다. 이들은 평범한 대학생에서 명문대 교수, 벤처기업가, 그리고 대기업 임원에 이르기까지 출신성분이 다양하다. 연령도 22세에서 47세에 걸쳐 있고, 여학생이 3분의 1을 차지 한다.
9주로 이루어진 여름학기 동안 학생들은 에임스 연구센터 내 캠퍼스에서 생활하면서 일반 대학과 마찬가지로 수업에 출석해야 한다. 여름학기는 크게 3개 섹션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 섹션은 인공지능이나 나노기술 등 급격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하루에 10시간씩 강의한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특화된 여러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 수업을 받는다. 예를 들면 스완이 강의한 미래 연구 및 예측 같은 코스가 그것이다.
그리고 4개 팀으로 나뉘어져 마지막 섹션을 준비한다. 마지막 섹션에서 이들 팀은 앞으로 10년 내 10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지금 즉시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10의 9승이다. 즉 10억이라는 뜻이다. 특이점 대학은 시험도 없고, 논문이나 보고서도 받지 않는다. 이곳은 일반적인 학교라기보다는 지식인들의 예비 창업학교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풍긴다.
참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 추구
커즈와일이 특이점 대학의 개교를 선언한 것은 2009년 TED 컨퍼런스에서였다. TED 컨퍼런스는 기술,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권위자들의 모임으로 1년에 한 번씩 열린다.
디아맨디스는 브릭하우스의 전 사장이었던 살림 이스마일을 영입해 학장에 임명했다. 브릭하우스는 야후의 사내 벤처기업으로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을 담당한다. 이스마일은 커즈와일의 생활방침을 거의 따르지 않는 사람이다.
딘이 특이점 대학에서 보낸 첫날 오후 그는 빨간 지붕을 가진 특이점 대학의 건물 밖으로 프리스비 장난감 원반을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사람 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요. 심지어는 그 사람 책도 안 읽어 봤다고요."
디아맨디스와 함께 국제우주대학을 설립한 동료 리처드는 특이점 대학의 창립자들을 찬성하는 사람은 물론 반대하는 사람도 모두 특이점이라는 이름 아래 끌어안아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달리 말하면 커즈와일이라는 구심점 아래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학교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가장 심하게 공격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하지만 리처드는 이렇게 말한다. "특이점 대학은 커즈와일을 교주로 하는 종교집단이 결코 아닙니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교육기관입니다."
이 대학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이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경쟁하려고 세운 곳이 아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극도로 특화된 주제에 다년간 몰입시켜 그 분야의 전문가로 양성시키는 일반적인 대학원 대학도 아니다.
디아맨디스는 눈을 굴리며 이런 말을 했다. "그런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은 인간의 특정 뉴런에 있는 이온 채널 하나를 배우는 데만 몇 년씩 소비하지요." 리처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학교의 이념은 각 분야의 대가들을 모아 다방면의 실력을 갖춘 사람으로 육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가 이들 대가들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얻어 바로 사업에 응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이스마일의 말로는 4주차가 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과거 어떤 세션에서 교수들과 학생들이 지구 공학적으로 지구온난화에 대처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었다.
교수들은 공기 중에 바닷물을 분출해 구름을 형성, 햇빛을 굴절시키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공해(公海)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특히 이 계획을 실현하는 데 드는 돈은 누가 낼지도 정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컨설팅 회사인 엑센추어에서 전자 비즈니스를 총괄했던 경력이 있는 학생이 손을 들어 기가 막힌 의견을 말했다. "구름의 모양을 나이키 로고나 BMW 자동차 모양으로 만들면 됩니다. 아니면 여객기에서 볼 수 있도록 구름을 통해 다른 광고를 하면 됩니다."
이스마일은 여름학기가 시작된 이후 첫 달에만 4개의 회사가 창립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더 많은 회사가 창립됐을 것이다. 사실 이스마일과 딘이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나무 아래에서 또 다른 회사가 설립되고 있었다.
이스마일은 이젤에 화이트보드를 설치 중인 한 젊은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의 이름은 요나단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대통령인 시몬 페레스의 자문관입니다." 요나단의 왼쪽에 있는 사람은 캐나다에서 온 기업인으로 인공지능 관련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은 캐나다 수상의 자문관이라고 한다.
이 팀은 겟어라운드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자동차 공유 프로젝트를 논의 중이었다. 이는 집카(Zipcar)와도 비슷한 개념이다. 이미 상용화된 집카는 아이폰을 통해 자신이 사용할 자동차를 찾을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차종이 발견되면 곧바로 예약할 수 있다. 그런 후 자동차에 가서 접촉식 카드키로 차문을 열고 타면 된다. 기름은 아무 주유소에 가서 넣으면 회사로 청구되기 때문에 따로 기름값을 낼 필요가 없다. 기름값은 요금에 포함돼 있다.
집카는 가입할 때 75달러를 내고, 한 시간당 9.25달러 또는 하루당 73달러의 비용을 낸다. 하루에 180마일이 기본으로 제공되고, 보험료가 모두 포함돼 있어 따로 보험료를 낼 필요가 없다. 집카는 매일 자동차를 타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이용하는 금액이 차량 가격과 맞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두어 시간씩만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편리한 서비스다.
겟어라운드는 집카와 조금 다르다. 가입한 회원이 놀고 있는 자기 자동차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줌으로써 대부분의 차량이 수명의 90%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어느 주말 이 팀은 아이폰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는 사용 가능한 차량의 위치와 사용 가능 시기를 알려주고, 원격으로 자동차의 문을 열어 시동을 걸 수 있도록 하는 응용프로그램이다.
이 팀이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단순히 자동차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10의 9승이라는 원대한 이름에 걸맞지 않는, 시시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팀은 그 같은 관점에 신속하게 대응했다. 미시건 대학의 의대생이자 이 프로젝트에서 일하고 있는 사라 스크라식은 교통 문제야말로 현존하는 기술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암이나 인간면역 결핍바이러스(HIV), 기아는 해결하기 어려운 막연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겟어라운드는 논리의 함정에서 사람들을 구해내고, 자동차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꿀 것입니다. 자동차를 더 이상 개인의 소유대상이 아니라 대중에게 속한 수송수단으로 여기게끔 하는 거죠.
장래에는 무인으로 통제되는 차량이 역시 무인 통제되는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지금 만든 아이폰 응용프로그램의 미래형 버전에 의해 호출을 받고 달려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형 버전은 두개골 내에 설치돼 눈을 깜박이거나 생각만으로도 통제가 가능한 응용프로그램이 될지도 모릅니다."
기술 친화적 유토피아 꿈꾸는 사람
흔히 메시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역동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하루에 건강보조제를 150가지나 먹는 사람이라면 건강한 머릿결과 빛나는 피부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커즈와일은 덩치가 좀 작고 조용한 사람이다. 그의 옷차림은 시대에 뒤처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유행의 최첨단을 걷거나 유행을 선도하지도 않는다. 그의 안색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태도를 보이지만 결코 정도를 지나치지 않는다.
특이점 대학 여름학기의 마지막 주. 커즈와일은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캠퍼스로 왔다. 특이점 대학 본부 회의실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딘은 그가 결코 메시아처럼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대신 그는 세상이 매우 빨리 돌아가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했다. 커즈와일의 눈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구름 속을 나는 로켓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똑바로 갈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생각하고, 똑바로 그어진 길이 있는데도 이리저리 비틀대며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런 양상을 그의 책 곳곳에 있는 지수그래프를 통해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커즈와일은 특이점 대학을 통해 핵심 업계의 유력 인사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 "특이점은 정보기술이 급격히 성장한 결과물입니다. 현재도 정보기술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성장 속도는 너무나도 빠릅니다.
전화기가 세계 인구 4분의 1에 보급되는 데는 50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제가 학교 다닐 때 MIT에 있던 컴퓨터보다 성능이 100배는 우수한 컴퓨터가 휴대폰마다 하나씩 들어있습니다. 단위비용 대 컴퓨팅 성능이 무려 10억 배나 향상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커즈와일은 어느 정도 유토피아적인 희망을 품고 있다. 그는 인간들이 이 같은 급격한 성장을 통해 자신을 모든 면에서 특이점을 이룬 존재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많은 건강보조제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기계에 옮겨 실을 때까지 살 수 없다면 그는 자신의 시신을 냉동 보존해 그런 기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대학의 홍보 담당자가 이미 3개나 잡힌 약속 때문에 커즈와일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귀띔해 주었다. 하지만 커즈와일은 딘이 다음과 같이 뼈 있는 질문을 던졌을 때 살짝 신경이 곤두선 듯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특이점은 얼마만큼 중요한지요?" 커즈와일은 딘에게 자신의 책을 읽어 보았느냐고 반문했다. 딘은 '특이점이 온다-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을 읽어보았다고 대답했다.
사실 딘의 말은 절반만 진실이었다. 672페이지나 되는 그 책을 절반만 읽고 관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어나서 자신의 책이 꽂힌 책꽂이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특이점이 온다-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은 2045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미래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말인즉슨 미래는 이미 통제를 벗어난 로봇 자동차처럼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로봇 자동차가 우리를 받아버리기 전에 그것을 통제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최근 발간한 자신의 책 '초월: 영생을 위한 9단계'를 집어 들고 거기에 사인을 해서 딘에게 주었다. "조시 독자님에게. 초월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사업성까지 겸비한 프로젝트
여름학기의 최종 발표일 아침. 한 학생이 로비에서 첼로를 연주하고 있는 사이에 사람들은 랩톱과 노트카드를 들고 여기저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해 재해에 대처하는 법을 연구 중인 지다팀의 팀원 한 명이 대학의 홍보 담당자에게 가서 전자화돼 있지 않은 보도자료를 받아볼 수 있는지 물었다. 이 대학 사람들의 분위기에 비추어 봤을 때 그 요청은 좀 기묘해 보였다.
국제우주대학과 특이점 대학의 창립자인 피터 디아맨디스의 이름을 따서 지은 피터 디아맨디스 홀에는 카페테리아와 대형 볼룸이 있다. 이 홀에서는 자메이카 출신의 가수 지기 말리가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부른 '미래 남자 미래 여자'가 울려 퍼졌다.
2개의 스크린과 지구본 위에는 학교의 로고가 영사되고 있었고, 그 앞에 디아맨디스가 서 있었다. 디아맨디스는 실리콘밸리의 명사들 앞에서 팀 프로젝트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10의 9승은 10억 명의 사람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추가설명 없이 첫 팀의 경과보고로 넘어가겠습니다." 아카사팀의 팀원이자 하버드 대학 과학사 박사과정 학생인 마고 립트신의 발표가 이어졌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우리 주변의 물건 대부분이 자동화된 생산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외인 것도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있는 이 건물입니다. 건물은 여전히 속도가 느린 노동집약적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낙후된 건축기법을 개선, 전 세계에 보급하는 것이 아카사팀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간단한 조립식 가옥이라도 그것을 짓기 위해서는 인력에 의존해야 하며, 비용이 비싼 것은 물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것.
"하지만 또 다른 건축기법이 있다면? 건축 과정에 드는 에너지를 70% 줄이고, 폐기물은 완전히 없앤다면 어떨까요?" 그녀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래의 건물은 프린터로 뽑아낼 수 있게 됩니다." 아카사팀의 계획은 3D 프린터로 건물을 짓는 혁신적인 기술을 상용화한다는 것이다. 3D 프린터란 3차원으로 출력물이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샘플을 제작할 때는 손으로 직접 다듬어 만들거나 기계로 깎아 만드는 것이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프린터에 3D파일만 입력시켜 주면 곧바로 3차원의 출력물을 만들어준다. 컴퓨터가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한 치의 오차가 없으며, 색상까지도 표현이 가능하다.
건설현장에서 대형 3D 프린터로 건물을 짓는 혁신적 기술이 상용화되면 이틀 만에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게 마고의 설명이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는 절대 이론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미 오늘날 건물의 벽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핵심이었다. 특이점 대학에 서는 수 주 동안 각종 급진적 개념을 엄청난 시간을 들여 심사숙고한다. 그런 다음 기존 기술을 사용해 앞으로 10년 내 10억 명에게 혜택을 줄 수 있으면서 사업성까지 겸비한 프로젝트를 내놓아야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다. "나일 학우께서 이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다." 마고는 이 같은 말로 나일에게 바통을 넘겼다.
나일의 풀 네임은 나일 톰슨이다. 그는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 중인 굽슬굽슬한 금발머리의 키 큰 캐나다인이다. 그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다. 그 중에서도 뇌-기계 인터페이스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프로젝트의 문제점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했다. 예를 들면 이 기술은 지금 당장 건물의 토대나 지붕을 만들 때는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 캘리포니아 대학의 베록 코슈네비스 교수가 아카사팀에 합류해 이 아이디어를 개량하는 데 힘쓰고 있다.
코슈네비스 교수는 3D 프린터와 같은 방식으로 집을 짓는 이른바 콘투어 크래프팅 기법의 창안자다. 로보 빌더라고 부르는 대형 3D 프린터로 건물의 벽체를 원하는 모양으로 신속히 제작, 건축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는 게 핵심이다.
톰슨은 가까운 미래에 지붕이나 토대는 물론 건물의 실내장식도 3D 프린터를 통해 뽑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급격한 기술발전에 힘입어 건축 장소의 현지 실정에 맞는 재료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이 기술을 달 기지를 건설할 때 적용하면 필요한 건축자재를 월석을 녹여 조달, 우주비행사가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하는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3D 프린터로 건물을 짓는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는 그리 많은 힘이 들지 않는다. 1,000만 달러의 돈과 16개월의 시간만 있으면 개념 정립이 가능하다. 또한 시제품 건축물도 지을 수 있고, 법적 승인도 받을 수 있다는 게 아카사팀의 설명이다.
나일은 아카사팀이 제작한 비디오를 상영했다. 비디오에는 팀이 직접 제작한 음악과 감동적인 영상이 나오는 광고도 있었다. 이 광고는 큰 회사에서 수백만 달러나 들여 만든 광고만큼이나 멋있었다. 팀원들은 이 광고를 제작하기 위해 이틀을 투자했다.
특이점 대학의 최종 발표 장소에 모인 벤처 투자가들은 이 광고를 보고 감명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여러 사람들이 일어나서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빈민가에 건축할 경우 이런 반영구 주택이 갑자기 늘어나는 데 따른 상하수도 시설을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어떤 사람은 이 아이디어에 매우 놀라기는 했지만 1,000만 달러와 16개월이라는 시간을 지적했다.
열린 마음과 호기심, 그리고 열정
일부에서는 커즈와일과 특이점 대학의 공조는 세간의 이목, 특히 우수한 교수진의 이목을 끌기 위한 마케팅 도구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하지만 특이점 대학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열린 마음과 호기심, 그리고 급진적인 기술을 주류 기술로 만들려는 열정이 있다는 게 곳곳에서 확인된다.
실제 학생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고 기뻐한다. 특이점 대학의 입학생 중 한 명은 이 학교의 프로그램이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것이라고 답했다. 물론 특이점 대학의 학생들이 세운 계획들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겟어라운드는 대학 캠퍼스를 무대로 자동차 공유 개념을 시험해 볼 예정이지만 엔젤펀드로 모은 자금이 25만 달러에 불과하다.
아카사팀은 사업계획을 토대로 팀원들을 배치했다. 필요한 기술을 가진 발명가를 이사회에 앉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늦가을까지도 벤처자본을 모으고 있는 상태다.
다른 두 팀의 경우는 어떤가. PDA 기반의 재난 대처 시스템을 만든 지다팀과 2G 무선 네트워크상에서 응용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던 원 글로벌 보이스팀 역시 자본과 제휴사를 찾으러 다니고 있다.
특이점 대학의 영향력은 졸업생들의 동문회를 통해 이어질 것이다. 올해 이 학교는 120명의 학생을 받아들일 정도로 교세를 키울 것이다. 그리고 기업 중역들을 위한 단기 프로그램도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했다.
시몬 페레스 대통령의 자문관인 요나단 아디리가 동문회를 총괄하는 자리에 임명됐다. 페레스 대통령이 그를 이 대학에 입학시킬 때까지 그는 커즈와일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졸업식 직전 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생활의 모든 부분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바꾸는 기술을 붙들어 만인에게 유용하게 전파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세상을 이끌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특이점 대학의 모든 졸업생들은 앞으로 3~5년 이내에 강력한 특이점, 즉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시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혹자는 그때야말로 과학이 공상을 초월하는 시기라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표현이 특이점을 정의하는 데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