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 PC는 지난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의해 처음 선을 보였지만 하드웨어의 완성도가 떨어지는데다 당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가 키보드와 마우스에 최적화돼 있었기 때문에 시장에 정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후 태블릿 PC는 애플의 아이패드가 선보이면서 재차 각광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태블릿 PC가 디지털 생태계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태블릿 PC는 키보드와 마우스 없이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조작하는 PC를 말한다. 태블릿은 평판 위에 있는 임의의 위치를 스타일러스 펜으로 접촉해 컴퓨터에 입력하는 장치다. 키보드나 마우스보다 정교한 입력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미지 작업이나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 많이 사용됐다. 이런 태블릿에 터치스크린을 채용하고 PC의 기능을 넣은 게 바로 태블릿 PC다.
태블릿 PC가 처음 선보인 것은 지난 2001년.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세계 최대 규모의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전시회인 컴덱스에서 태블릿 PC를 시연해 보였다. 그가 선보인 태블릿 PC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고 스타일러스 펜을 이용해 입력하는 것이었다.
그는 향후 5년 내 대부분의 PC가 태블릿 PC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그의 예견과 달리 태블릿 PC가 전체 PC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되지 않았다.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것이다.
태블릿 PC가 재조명받는 이유
2001년 등장했던 태블릿 PC가 실패한 것은 사용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당시에 나왔던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역시 키보드와 마우스에 최적화돼 있었던 것. 이 때문에 시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산업현장에 쓰이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태블릿 PC가 재조명받고 있다. 왜일까. 이는 수많은 콘텐츠의 양산과 관련이 있다. 인터넷의 발달은 수많은 콘텐츠를 양산하게 만들었다. 음악, 사진, 동영상, 문서 등 전통적인 의미의 콘텐츠는 물론 카페, 미니홈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인터넷상에 넘쳐나고 있다.
특히 예전과 달리 개인도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 같이 수많은 콘텐츠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PC는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현존하는 콘텐츠 대부분을 소화할 수 있지만 사용법이 어려운 편이다. 또한 개방적인 만큼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많다.
한참 각광받고 있는 휴대폰과 스마트폰은 휴대성이 뛰어나고 항상 무선망에 접속해 있다는 점에서는 훌륭하다. 하지만 휴대용 디지털기기이기 때문에 화면의 크기와 성능에 한계가 있다. 바로 이 같은 틈새를 태블릿 PC가 메울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태블릿 PC는 구조상 화면이 중심에 있고, 크기 또한 휴대폰이 나 스마트폰에 비해 크기 때문에 콘텐츠를 보는데 좋다. 키보드와 마우스가 없지만 뭔가 입력한다기보다는 주로 보기 위한 제품이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다. 특히 성능 측면에서는 PC보다 못하지만 대부분의 콘텐츠를 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이는 태블릿 PC의 일반적인 장점이다. 애플의 아이패드는 이 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아이패드는 콘텐츠의 종류가 다양하다.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를 통해 동영상과 음악을 즐길 수 있고, 사파리 브라우저로 웹 서핑도 가능하다. 웹스토어에서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도 공급받을 수 있다.
특히 스마트폰인 아이폰의 앱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아이폰과 다른 점은 이들을 훨씬 큰 화면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 이에 더해 아이패드는 아이북스토어를 통해 기존 전자잉크 기반의 전자책보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콘텐츠 활용도 가능하다. 이들은 모두 쉽게 검색하고, 구입할 수 있으며, 더구나 합법적인 콘텐츠다.
한 마디로 아이패드는 다양한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찾아 즐길 수 있는 태블릿 PC다. 지금처럼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절에 각광받을 요소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태블릿 PC의 핵심, 터치스크린
최근 태블릿 PC가 각광받고 있는 배경에는 급격한 발전을 이룬 터치스크린 기술도 한 몫 하고 있다. 예전에도 터치스크린은 존재했지만 사용 편의성이 높지 못했던 반면 최근의 터치스크린은 이 같은 문제가 해소되면서 휴대용 디지털기기의 입력장치로서 최적의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터치스크린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여 년 전인 1980년이다. 키보드나 마우스 등 입력장치가 없어도 각종 작업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출시 당시에는 획기적 기술로 인식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소비자들의 평가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이용자들은 터치스크린을 사용하는 내내 스타일러스 펜을 들고 있어야 하는데, 이는 큰 불편함을 초래했다. 또한 펜의 마찰에 의해 화면이 쉽게 손상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얼마 쓰지 않았음에도 화면의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게 되는 등 수명이 짧았던 것.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지금은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나 의료장비, 그리고 민원 안내기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되고 있다. 특히 휴대폰, PMP, MP3플레이어, 노트북 같은 휴대형 디지털기기를 중심으로 활용도가 대폭 늘어나고 있다. 터치스크린을 적용 하면 키보드 등이 차지했던 공간까지 스크린으로 만들 수 있어 대형 LCD의 장착이 한결 수월하기 때문이다.
태블릿의 입력방식이 터치스크린의 형태로 나오기까지는 센서의 역할이 컸다. 이 센서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화면에 가해지는 입력을 인식하는 감압 방식과 인체에 흐르는 미세한 전류를 통해 입력 여부를 판단하는 정전용량 방식, 그리고 적외선으로 입력좌표를 설정하는 적외선 방식이 그것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감압 방식은 여려 겹으로 이루어진 압력 감지 필름을 통해 입력을 인지한다. 이 가운데 전도 필름은 압력이 가해진 좌표를 파악, 입력 신호를 처리하는 중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손가락으로 화면을 누르면 그곳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입력 범위가 작으면 작을수록 정확한 좌표 파악이 가능하다. 스타일러스 펜을 이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른 방식과 달리 필기 입력이 가능해 활용도가 높다. 다만 반응 속도가 느린 것이 단점이다.
정전용량 방식은 LCD 표면에 전하를 흘리는 센서로 이루어진 강화유리가 부착된다. 센서는 네 모서리에 위치한다. 이곳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표면의 전하가 줄어드는데, 센서가 그 정도를 감지해 입력 여부를 파악한다. 필름을 덧씌우는 감압 방식보다 빛 투과율이 높아서 더욱 선명하고 또렷한 화면 출력이 가능하다. 빠른 반응속도와 부드러운 움직임, 손가락 2개 이상을 이용한 멀티터치가 가능한 게 장점이다.
하지만 인체 전류의 전달이 불가능한 볼펜이나 손톱 끝으로 누르면 동작이 되지 않는 것은 단점이다.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 해 입력 감지 폭을 1mm까지 정밀화한 정전용량 센서가 개발됐다. 이 센서가 적용된 휴대용 디지털기기는 스타일러스 펜 뿐 아니라 볼펜, 연필을 사용해도 동작한다. 글씨가 비교적 복잡한 아랍어나 한문 등도 손쉽게 쓸 수 있고, 먼지가 많은 사막지역, 날씨가 추운 곳에서도 무리 없이 사용이 가능하다.
적외선 방식은 LCD 표면 둘레에 적외선 발생기를 설치해 빛이 가로막히는 위치로 입력 여부를 알아낸다. 감압 방식과 정전 용량 방식보다 입력 정확도가 높으며, 직접 압력을 가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표면 오염이 적다. 다만 적외선 발생기의 크기가 커서 휴대용 디지털기기에는 접목할 수 없는 게 단점이다.
전운이 감도는 태블릿 PC 시장
최근 부상하고 있는 태블릿 PC 시장에 먼저 출사표를 던진 곳은 HP와 마이크로소프트 연합이다. 올해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에서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가 HP의 태블릿 PC인 슬레이트를 들고 나온 것.
슬레이트는 화면 크기가 10인치로 터치스크린을 입혀 멀티터치가 가능한 게 특징이다. 이를 활용하면 화면의 확대 및 축소, 페이지 넘김, 파일 삭제 같은 작업이 간편해진다. 여기에 운영체제는 윈도7을 얹어 확장성과 범용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메라를 곁들여 사진 촬영과 저장, 전송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인터넷 연결 방식은 무선 랜만 지원하며, 장치 간 연결은 블루투스를 이용한다. 중앙처리장치(CPU)나 저장장치에 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올해 내로 500~600달러에 출시될 예정이다.
애플도 HP와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 아이패드를 공개했다. 선제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더욱 쉬운 사용방법과 빠른 속도를 아이패드에 접목해 오히려 HP·마이크로소프트 연합에 한방 날릴 기세다.
아이패드의 하드웨어 사양 중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LCD다. 크기는 약 9.7인치로 슬레이트보다 작지만 시야각이 넓고 화질이 우수하다. 이는 패널로 IPS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IPS는 LCD의 핵심 부품인 패널의 한 종류로 시야각이 178˚에 이른다. 이 때문에 화면을 왼쪽이나 오른쪽에서 봐도 화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LCD의 크기만 놓고 보면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인 킨들 DX와도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다. 킨들 DX 는 9.7인치 크기의 전자잉크 디스플레이를 사용하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아마존과 애플이 전자책 시장에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일 것인지 아니면 기존 시장을 나눠 먹을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그리고 기존 시장을 나눠 먹을 경우 애플이 전자책 시장을 집어삼킬 수 있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콘텐츠 개발업체들에게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나눠 줄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자책 시장의 칼자루는 하드웨어 제조업체가 아닌 소프트웨어 제조업체가 쥐고 있다는 얘기다.
구글도 태블릿 PC 시장에 발을 담갔다. 이를 위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담을 하드웨어까지 준비한 상태다. 안드로이드는 구글이 스마트폰 같은 휴대용 디지털기기를 위해 개발한 모바일 운영체제.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으며, 관련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툴도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이는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를 모두 내부에서 기획했다는 점에서 애플의 행보와 닮았다.
안드로이드가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만큼 다른 제조업체들도 안드로이드를 채택한 태블릿 PC를 속속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는 미국 업체인 델의 미니5, 아코스의 아코스7 안드로이드, 노션잉크의 아담이 구글 사단에 편입될 준비를 마쳤다. 이 밖에 웹서핑 단말기인 주주와 리눅스로 발걸음을 돌린 레노버 U1 도 눈여겨 볼만하다.
삼성전자도 태블릿 PC 경쟁에 뛰어든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이동통신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0에서 신종균 무선사업부 사장은 "아이패드가 PC 시장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며 "삼성전자도 태블릿 PC 시장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품은 5월경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파나소닉은 일반 용도가 아닌 전쟁터나 공사현장 등 극한 환경에서도 사용 가능한 태블릿 PCH1을 출시했다. 무게가 가볍고 충격에 강한 소재인 마그네슘 합금을 채택해 내구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태블릿 PC의 승부처는 콘텐츠
아직까지는 태블릿 PC 시장의 판도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최후 승부는 콘텐츠의 양과 질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한상옥 델코리아 과장은 "태블릿 PC가 일반 PC에 비해 장점이 아무리 많아도 이를 제대로 사용할만 한 콘텐츠가 부족하면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어느 진영에 어떤, 그리고 얼마만큼의 콘텐츠 제작업체가 따라 붙느냐에 따라 활용 가능성이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전자책 시장까지 공략할 계획을 세운 애플은 전자책 제작업체나 기존 오프라인 출판사 설득이라는 큰 과제가 남아 있다. 현재는 아마존이 가장 많은 출판사와 제휴를 맺고 있다. 하지만 애플이 아마존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나눠 준다면 얘기는 달라 질 것이다. 애플의 충성도 높은 기존 고객도 출판사의 마음을 흔드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애플리케이션 확보가 손쉬운 HP·마이크로소프트 연합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편이다. 기존 윈도 운영체제에 맞춰 나온 것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슬레이트를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궁합 맞추기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운영체제 개발과 애플리케이션 제작 툴을 모두 공개한 구글은 검색시장 장악에 사용했던 물량 공세를 태블릿 PC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서영진 기자 artjuc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