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우주실험실'서 신소재 연구한다

작년 4월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10일간 다양한 과학실험을 수행했다. 그런데 우주 과학실험은 꼭 ISS에서만 해야 할까. 지구에서 우주와 동일한 환경을 구현하는 우주실험실(space lab)의 개발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 시작됐다. 최근 우리나라도 우주실험실 개발에 뛰어들며 우주강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신소재 개발 원천, 공중부양장치

최근 원자력, 우주항공, 파인세라믹 등 21세기형 첨단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신소재 개발 중요성도 더불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신소재 개발을 위해서는 초고온 상태에서 각 소재들에게 나타나는 다양한 물성을 측정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초고온 상태인 물체의 물성은 소재의 질적 향상과 정확도를 높이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고온에 이르면 소재는 물론 소재를 담은 용기가 녹아버리거나 소재와 용기가 물리·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정확한 물성 측정이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공중부양장치다. 공중부양장치는 명칭에서 예상되듯 우주와 동일한 무중력 환경을 구현하는 기기다. 이를 활용하면 실험대상 물질을 공중부양시켜 외부변수를 제거한 채 정확한 실험이 가능하다.

이미 미 항공우주국(NASA)이 ISS 내에 공중부양장치를 운용 중에 있으며 유럽우주기구(ESA)와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등도 자체 공중부양장치를 개발, 우주왕복선 및 항공기의 제트엔진에 쓰일 수백~ 수천도의 온도에 견디는 초내열강 신소재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이들과 같은 공중부양장치가 없었던 우리나라는 지금껏 3,000℃ 이상의 초고온·열물성 측정기술과 이를 이용한 초고온 내열 재료의 실용화 기술 연구기반이 매우 취약했다. 극한 물성을 지닌 대다수 재료와 정보를 미국, 일본, 유럽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최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온도광도센터의 이근우 박사팀이 초고온·과냉각의 극한 환경이나 우주환경을 재현해 실험 대상물질을 공중에 띄워 실험할 수 있는 '우주실험실 구현장치'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지난 2007년부터 4억원의 연구개발비를 들여 개발한 이 장치를 활용, 얼마전 약 1,500℃의 초고온에서 용기 없이 물체를 공중에 띄우는 시험에 성공했다.

세계 8번째 공중부양장치 개발

이러한 공중부양장치는 현재 미국, 일본 등 4개국만이 보유하고 있다. 그 숫자도 총 7개 밖에 없다. 따라서 표준연의 장치는 세계 8번째가 된다. 이 박사는 "우주실험실 구현장치는 액체나 고체를 용기에 담지 않고 공중 부양시킬 수 있다"며 "그만큼 정확한 물성 파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용기와의 접촉에 따른 오염과 측정 오류, 측정 신호의 감소 등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만큼 항공우주, 철강, 군사, 세라믹, 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물질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특히 초고온 재료의 물성 정보를 구축함으로써 그동안 일부 선진국들이 독점하고 있던 신소재 재료 정보를 자체적으로 확보 가능해져 신소재 분야의 발전에 직접적 효용성을 발휘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공중부양 효과는 정전기장과 전기장을 이용한다. 정전기장을 발생시키는 두 전극 사이에 대전된 실험대상 물질을 놓고 중력을 극복할 만큼의 전기장을 걸면 물질이 부양하게 된다. 이 때 레이저로 실험물질을 가열, 초고온 상태를 만들어 물성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 박사는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는 대류현상이 발생하지 않아 순도 높은 연구가 가능하다"며 "표준연의 우주실험실 구현장치는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생물·물리·화학·재료·기계 등의 우주실험을 한층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이어 "우주환경을 이용한 연구는 국가 간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상호 정보교환이 매우 어렵다"면서 "우리나라가 우주개발 및 관련 분야 발전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우주환경을 이용한 실험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기초硏, '미소중력장치' 개발 중

이 박사팀과는 별도로 한국기초과학 지원연구원의 김동락 박사 연구팀도 무중력 우주실험실의 일종인 '미소중력장치'를 개발 중에 있다.

미소중력은 ISS, 인공위성, 자유 낙하하는 엘리베이터의 내부처럼 물체에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데 김 박사는 초전도 자석의 자기장을 활용, 이를 실험실 내에서 재현할 계획이다.

특정 용기 내부를 산소로 가득 채운 뒤 위쪽에 탑재된 초전도 자석으로 고자기장을 발생시키면 지구 중력과 자기장의 힘이 균형을 이룬 위치에서 무중력 상태가 만들어지는 원리다. 김 박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에는 모두 미세한 자성이 포함돼 있다"며 "고자기장의 힘이 지구 중력과 상쇄돼 물체의 부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의 일환으로 김 박사팀은 지난해 10월 전도 냉각의 원리를 통해 액체 헬륨 등 값비싼 냉매를 사용하지 않고도 물질의 온도를 4.5K(-269.15℃) 이하의 극저온으로 냉각할 수 있고 지구자기장의 6만배에 이르는 3테슬라의 자기장을 일으키는 '무냉매 전도 냉각형 초전도 자석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미소중력 상태가 형성되면 지구상에서는 중력 때문에 불가능했던 순도 100%의 결정체를 생산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단백질체 결정의 제작도 불가능하지 않다. 차세대 재료 합성, 신약제조 등에 혁신적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 박사는 "미소중력 환경에서는 액체의 대류현상이 억제돼 양질의 결정을 성장시킬 수 있다"며 "중력의 영향으로 섞여지지 않아 만들 수 없었던 물질을 합성, 신소재 개발에 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덕=구본혁기자 nbgk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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