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2차대전 종전 후 도쿄에는 미군이 씹다 버린 껌을 주우려는 아이들로 넘쳐났다. 이때까지 껌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국가는 미국뿐이었기에 '질겅질겅 껌을 씹는 모습'은 미군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시절이다.
그렇다면 껌은 미국의 발명품일까. 아니다. 껌의 역사는 고대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마야와 아즈텍 문명에서 사포딜라 나무 수액을 끓여 만든 '치클'을 씹었고 고대 그리스인들도 '마스티시'라는 유향수 나무의 수지를 씹었던 것. 치클과 마스티시는 지금의 껌과는 달리 아무런 맛과 향이 없었지만 당시의 문화는 산업화 이전까지 지속됐다.
이에 19세기 이후 많은 발명가들이 더 씹기 좋고 맛 좋은 껌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1890년경 오늘날과 같은 납작한 모양의 껌이 개발됐고 1928년에는 풍선껌도 탄생했다.
하지만 껌의 역사를 바꾼 혁신적인 물질은 바로 비닐이었다. 천연치클은 치아에 달라붙고 재료를 구하기도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저렴한 비닐이 그 대체물로 자리 잡으며 대량생산의 기틀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비닐 껌은 다름 아닌 일본에서 탄생했다. 패전국이 된 일본에서 껌은 흔한 물건이 아니었으며 일본에는 당시 껌의 원료인 고무도 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야마모토 사요지라는 사람이 고무를 대체할 물질을 고민하던 중 전쟁 때 방 탄탱크에 사용되던 비닐이 남아돈다는 얘기를 듣고 이 비닐로 껌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껌베이스의 원료로 쓰이는 초산비닐 수지의 효시다. 덕분에 껌을 대량으로 쉽게 만들 수 있었고, 껌의 가격도 내려갔다. 껌값을 '껌값'으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초산비닐수지인 셈이다.
최근 초산비닐수지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지만 식약청은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초산 비닐수지는 석유 추출물이 아니라 아세틸렌과 초산을 융합해 만들어 안전하다는 설명이다.
사실 껌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그 인기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입 냄새 제거, 졸음 방지, 긴장 완화, 집중력 강화, 치매 예방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껌을 찾는다. 금연, 다이어트 등을 위한 전문적인 껌 제품도 지속적으로 출시된다. 껌을 씹으면 포만감이 생겨 음식 섭취나 흡연 욕구를 자제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껌을 씹는 것이 건강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무리하게 껌을 씹으면 턱관절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탓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무설탕껌을 찾아 씹는 것도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무설탕껌에 흔히 첨가되는 소르비톨은 소장에서 잘 흡수되지 않고 설사를 유발하는 성질이 있다.
껌을 씹는 것은 무엇을 먹는 행위와 가장 가까운 행동이다. 먹는 동안은 졸리지 않고, 먹는 동안은 복잡한 고민이나 불안한 생각도 사라진다. 껌을 씹는 동안 우리는 먹는 시간에 누리는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끼도록 뇌를 속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전쟁 중이나 사회 혼란기에는 껌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의 껌 소비량은 평소보다 2배 늘었고, 군인 1명이 1년에 3,000개의 껌을 씹었다. 이런 수치들을 보면 되도록이면 껌 소비량이 늘지 않는 것이 평화로운 세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