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방수능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이 같은 신통방통한 능력을 부여한 것일까. 고어텍스를 비롯한 기능성 원단들에 숨겨진 비밀을 '팍팍' 파헤쳐 본다.
고어텍스는 나일론 혹은 폴리에스테르 소재를 테플론계 수지로 코팅해 만든 복합 섬유다. 지난 1976년 미국 화학회사 듀폰의 연구원이었던 W.L.고어가 발명해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
프라이팬의 코팅 소재로도 잘 알려진 테플론은 분자구조가 매우 안정적이어서 물이나 기름은 물론 어떤 물질과도 결합하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다. 고어텍스 섬유가 지닌 기본적인 방수 능력이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고어텍스의 진정한 힘은 이 때문이 아니다. 표면에 무수하게 뚫려 있는 미세한 구멍이야말로 탁월한 통기성과 방수성의 비밀이자 원천이다.
80억 개의 미세구멍
고어텍스의 표면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이 구멍들을 볼 수 있다. 그 숫자는 1제곱인치당 무려 80억개나 된다. 1㎠의 면적에 약 7억9,000만개에 달하는 구멍이 있다는 얘기다.
이 구멍 하나의 크기는 단 2㎛로서 육안으로는 확인조차 불가능하지만 하는 일은 마이크로가 아닌 자이언트다. 일반적인 물방울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지름이 1㎜가 넘는다. 고어텍스의 구멍보다 2만 배나 큰 것. 바로 이러한 크기 차이 때문에 빗방울을 포함한 그 어떤 물방울도 구멍을 통과해 안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또한 고어텍스로 의류를 만들 때 원단 조각을 재봉하지 않고 열접착 방식으로 이어 붙여 재봉 선 틈새로 물이 스며들 가능성까지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반면 기체인수증기의 분자는 고어텍스의 구멍보다 700배나 작다. 이로 인해 물방울과 달리 자유롭게 구멍을 넘나들 수 있다. 이렇게 고어텍스는 구멍의 작용에 힘입어 외부의 물방울은 완벽히 차단하면서도 내부에서 수증기 형태로 발산되는 땀은 손쉽게 밖으로 배출해버린다. 마치 우리나라의 옹기가 빗물은 막고 공기는 통과시키는 것과 동일한 메커니즘이다. 이 같은 효과를 투습방수(透濕防水)라고 한다.
듀폰에 따르면 고어텍스의 투습방수 효과는 영하 240℃의 초저온, 영상 260℃의 고온 환경에서도 일정하게 유지된다. 극지와 사막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효용성 만점의 섬유인 셈이다. 이런 고어텍스는 처음 개발됐을 때만해도 첨단특수소재로 인정받으며 우주복의 제작에 쓰였다. 이후 군복, 방한복 등을 거쳐 지금은 일반인들의 운동복과 등산복에 폭넓게 활용되며 대중적인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투습방수에 보온성·운동성까지
고어텍스 제품은 크게 아웃웨어, 풋웨어, 액세서리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아웃웨어는 다시 퍼포먼스 셀, 팩 라이트 셀, 소프트셀, 프로셀 4가지로 나뉘는데 퍼포먼스 셀은 스키, 사이클링, 인라인 스케이팅, 등산, 산책 등 운동 강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다목적 운동복 제작에 적합한 소재다.
가장 큰 특징은 튜브형 공기주머니를 채용, 사용자가 공기를 불어 넣어 보온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한 것. 이는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으면 옷 사이에 공기막이 형성돼 두꺼운 옷 하나를 입었을 때보다 한층 강력한 보온력을 발휘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팩라이트 셀은 고어텍스의 투습방수 기능을 유지하면서 무게를 최소화 시킨 제품이다. 표면에는 탄소코팅을 곁들여 기름에 의해 섬유조직이 손상 되는 것을 방지했다. 특히 접었을 때 부피가 대폭 줄어들어 휴대성이 좋기 때문에 운동 중 휴대하는 가방이 작은 하이킹, 사이클링, 인라인 스케이팅용 의류에 주로 사용된다.
소프트셀과 프로셀은 보온성에 초점을 맞춰 개발된 섬유다. 먼저 소프트셀은 가장 안쪽에 보온 소재를 덧대 외부 온도차에 의해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두께도 얇아 휴대성이 우수하다. 또한 프로셀은 고어텍스 시리즈 중 투습방수력과 방풍력이 가장 좋은데다 날카로운 물체에 긁혀도 찢어지지 않는 내구성을 갖춰 고산지대, 남극 등 극한 환경 탐험용 방한복의 최적 소재로 꼽힌다.
풋웨어, 즉 신발용 고어텍스의 경우 높은 투습방수 효과에 의해 무좀과 동상으로부터 발을 지켜준다. 종류는 사막과 열대지방처럼 기온과 습도가 높은 지역을 위한 익스탠디트 컴포트, 기후변화가 심한 지역에 맞춤화된 퍼포먼스컴포트, 보온력 극대화와 동상 방지 효과를 극대화시킨 인설레이티드 컴포트 등 세 종류가 있다.
마지막으로 장갑, 모자 등 액세서리 용 고어텍스는 본연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그립감과 착용감까지 높이기 위해 단열제, 미끄럼 방지 코팅 등을 추가한 제품이다.
이렇게 투습방수 원단 시장에서 고어텍스의 점유율은 약 80%로 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상태다. 나머지 20%를 테트라텍스와 엔트란트, 이벤트 등이 분할 점유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엔트란트가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국내업체가 개발한 프로엑트, 힐텍스도 고어텍스 못지 않은 기능성을 가진 원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운동능력 극대화 해주는 기능성 원단
스포츠 용품 제조사들은 기능성 원단을 직접 개발해 쓰고 있다. 나이키의 핏 시리즈와 아디다스의 클라이마365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 이들 역시 고어텍스처럼 용도에 따라 각각 4종류로 나눠져 있다. 고어텍스와 차이점이 있다면 보온, 방열, 방 수력에 의한 구분이 아닌 운동 강도를 기준으로 원단의 기능성을 극대화해 용도를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땀을 흡수해 공기 중으로 배출하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킨 흡한속건(吸汗速乾)성 확보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나이키 핏 시리즈 중 서마-핏은 이중구조의 극세플리스 소재를 입체적으로 직조한 원단으로 추위에 의한 체온 하락과 근육의 운동능력 저하를 막아준다.
드라이-핏은 폴리에스터 극세사를 직조한 섬유로서 높은 수분건조력을 자랑한다. 몸에서 배출된 땀을 신속하게 흡수, 제거하는 것. 이 때문에 축구, 농구, 장거리 달리기 등 다량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종목의 유니폼 용도로 효용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 월드컵 대표팀의 유니폼에도 바로 이 드라이-핏 섬유가 쓰였다.
스톰핏은 초극세사 폴리에스터 위에 숨 쉬는 라미네이트 코팅을 입혀 방수·방풍 기능을 극대화한 섬유다. 면 같은 일반 섬유보다 땀 배출력이 우수해 운동 후에도 옷이 땀에 젖어 축축해 지지 않는다. 고어텍스의 기본 기능과 가장 흡사한 섬유라 할 수 있으며 차가운 바람을 막는 윈드브레이커 재킷이나 스키복 등에 주로 사용된다.
핏 시리즈의 마지막인 클라이마-핏은 두께가 얇으면서 방풍·방수 효과가 뛰어나 운동복 위에 겹쳐 입는 바람막이 소재로 많이 이용된다. 내부의 땀을 밖으로 배출하는 효과도 함께 가지고 있다.
아디다스 클라이마365 시리즈는 클라이마웜, 클라이마프루프, 클라이마라이트, 클라이마쿨로 구성돼 있다. 이중 클라이마웜은 무게가 가볍고 통풍이 잘 되는 절연소재다. 따라서 이 소재로 만든 운동복을 입으면 땀을 빨리 배출하면서 체온은 그대로 유지된다. 겨울용 패딩점퍼나 보온 소재를 내장한 바람막이 외피로 많이 적용된다. 클라이마프루프는 방수·방풍력이 높고 무게가 가벼운 섬유로 두께가 얇은 옷을 만드는 데 많이 쓰인다. 나이키의 클라이마-핏, 고어텍스와 성질이 비슷하다.
클라이마라이트는 통기성에 중점을 둔 소재로 몸에서 발생하는 땀과 열의 배출 능력이 뛰어나다. 주로 여름용 운동복 소재로 인기가 높다. 그리고 클라이마쿨은 클라이마라이트를 보완· 개선한 섬유로 땀이 많이 나는 곳에 매시 소재를 덧대, 통기성을 극대화했다. 옷과 신발 제작에 두루 쓰인다.
나이키, 아디다스의 기능성 원단이 고어텍스와 차별되는 또 다른 부분은 제조 방식이다. 고어텍스가 일반 섬유 위에 코팅을 덧입혀 투습방수 효과를 내는 것이라면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원단을 직조할 때 원형이 아닌 V, W, Y 등의 모양으로 형성해 기능성을 구현한다. 이렇게 형성된 섬유는 섬유 사이에 더욱 많은 미세공간이 형성돼 면 등 일반 섬유에 비해 모세관 현상이 잘 일어나 땀이 빨리 배출된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나라 대표팀의 유니폼은 이전보다 개선된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첨단과학기술들이 숨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