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잡는 마약

환각제가 합법적인 마약 중독 치료제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헤로인 중독자에게 환각제를 처방하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달 중 일련의 과학자들이 이를 실행에 옮길 계획이다. 마약 중독의 치료에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환각제의 하나인 '이보게인(ibogaine)'을 처방코자 하는 것.

갈색 분말 형태의 이보게인은 '타베르난테 이보가'라는 아프리카 식물로부터 얻는다. 지난 1962년 뉴욕대학 학생이자 아편 중독자였던 하워드 로트소프가 단 한 번의 이보게인 복용으로 어떤 금단 증상도 없이 아편 중독을 치료한 이래 연구자들이 그 치료효과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문제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이 이보게인을 엑스터시, LSD 등과 함께 1급 마약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 1급 마약은 남용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의료적 가치가 전혀 확인되지 않은 약물을 말한다. 때문에 이보게인 연구자들이 임상시험을 위해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동물실험에 의해 이보게인의 의학적 잠재력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미국 올버니 의과대학의 신경약리학·신경과학센터에서 진행한 연구가 그 실례다. 이곳의 스탠리 글릭 센터장은 "모르핀에 중독된 쥐들에게 이보게인을 처방, 치료효과를 확인했다"며 "쥐들은 단 몇 주 만에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보게인 치료가 합법인 유럽과 멕시코에서 치료를 받은 마약중독자들에게도 매우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멕시코에서 이보게인 치료를 받았던 랜디 헨켄은 "마약 투약을 급작스럽게 중단하면 구토, 설사, 통증 등 극심한 금단증상이 수반되고 마약에 대한 욕망도 끊이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보게인을 복용하자 금단증상이 사라졌고 마약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그는 이보게인 치료 후 9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약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성공적 사례에도 불구하고 이보게인의 과학적 신뢰성은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소재 비영리단체인 환각연구전문가협회(MAPS)의 임상연구 부장인 발레리 모지에코 박사도 "이보게인이 일견 대단해 보일 수 있지만 치료제로서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강조한다.

이에 MAPS는 이달부터 멕시코의 이보게인 치료클리닉인 판게아 바이오메딕스에 의뢰, 이보게인의 치료효과를 측정하는 최초의 장기연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곳에서는 현재 환자당 5,000달러에 이보게인 치료술을 제공하고 있는데 MAPS는 향후 20~30명의 헤로인 중독자들의 치료과정을 지켜보고 내년 중 이들에 대한 심리·약물검사를 실시, 그 효과를 확인하게 된다.

학계에서는 이 연구가 이보게인의 안전한 처방법 파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카리브해의 섬나라인 세인트키츠네비스에서 이보게인 클리닉을 운영 중인 미국 마이애미대학의 데보라 메시 박사는 "생각과 달리 많은 환각제들은 인체에 무해하다"며 "이보게인은 유해성이 더욱 낮다"고 주장한다. 그녀 역시 지난 10년간 단 1건의 의료사고 없이 400명 이상의 마약중독자 치료에 성공했다.

단지 미국 국립약물중독연구소(NIDA)는 1990년대 초 네덜란드의 한 클리닉에서 이보게인 과다복용으로 다수의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지금껏 미국 내에서 자체적인 이보게인 연구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렇듯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이보게인의 작용기전에 대한 두 가지 이론을 도출해냈다. 먼저 일부 학자들은 이보게인이 지극히 생물학적 작용을 일으킨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보게인이 분해되어 생긴 화합물이 뇌 속의 마약 수용체(opioid receptor)에 달라붙어 투약 욕구를 억제한다는 것.

또한 일부에서는 심리적 효과를 강조한다. 이보게인이 환자들에게 자신의 전 생애를 돌아보게 하는 환각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마약의 부정적 측면을 깨달아 마약 중단 의지를 강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물론 작용기전 파악보다는 효과 입증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임상시험에 필요한 자금지원과 정부 승인을 받아 더 정확한 작용기전과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 그 입증은 빠를수록 좋다. 현재 미국에서만 무려 700만명이 불법 마약을 남용하고 있고 이들의 건강관리와 범죄예방 및 피해구제 등에 연간 1,810억 달러의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가히 천문학적 사회비용이 투입되고 있는 상태다. 과연 언제쯤이면 이보게인 치료가 공식화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적어도 10~15년은 걸릴 것으로 예견한다. 이때까지는 이보게인 치료를 받으려면 멕시코 등지로 원정치료를 떠날 수밖에 없다.

MAPS의 창설자인 릭 도블린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MAPS의 연구가 눈에 띄는 결과를 얻는다면 이보게인 클리닉에 대한 지원이 늘어날 것이며 NIDA도 이보게인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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