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지법과 공간이동 실제로 가능할까?

축지법(縮地法)은 예로부터 무협소설의 단골메뉴다. 평범하게 걸음을 걸으면서도 훨씬 빠르거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하는 이 가공의 보법(步法)은 그만큼 오랫동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과연 축지법이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공상과학적 산물에 불과할까.

예로부터 도인이 신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는 축지법을 완성해 선풍도골(仙風道骨)을 갖췄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분신술, 둔갑술, 봉인술, 염력, 장풍 등 다양한 도술 중에서도 축지법이야 말로 도술의 가장 기본이자 정수(精髓)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축지법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땅을 접는 법'이다. 종이를 접듯 땅을 접어서 물리적 길이를 축소함으로써 한 발만 내딛어도 수십 보, 혹은 수백 보를 걷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 즉 축지법은 공간구조를 순간적으로 허물어뜨리는 힘이라 할 수 있다.

간혹 산악지형에서 장기간 수련을 한 사람들이 행할 수 있다고 전해지지만 뛰는 것도, 걷는 것도, 그렇다고 하늘을 나는 것도 아닌 이 기묘한 도술을 정말로 수련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세인들의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1시간 내천리길 주파

오랜 수련을 거쳐 축지법을 익힌 전설 속 도인들은 땅속에서 순환하는 기(氣)의 길을 줄이는 방식으로 땅의 면적을 축소시켜 범인들보다 빨리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육갑천서, 기문둔갑장신법, 저금집 등 신비의 술법들이 적힌 여러 문헌들에는 축지법을 통해 천리 길을 한 시간 내에 주파할 수도 있다고 나와 있다. 이는 평균 시속이 약 400㎞에 달하는 엄청난 속도다. 책에서는 사람이 이토록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원리에 대해 한쪽 발을 공중에 띄운 후 그 발이 땅에 닿기 전에 다른 발을 공중에 띄워 힘껏 차올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구체적인 수련법을 살펴보면 눈은 먼 산을 바라보고, 입은 '어'소리가 날 정도로 벌리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멈춘 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에 8부쯤 들어 올리라고 돼 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상체를 반쯤 숙인 후학이 날아오를 때의 날갯짓 자세를 취하고는 두 번은 갈 지(之)자로, 세 번은 바람을 차듯, 다시 두 번은 뒤로 반동을 주며 움직이면 된다.

호흡을 가다듬고 이런 움직임을 반복하다 보면 공중에서 걸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눈 깜빡할 사이에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는 축지법을 시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축지법은 또 보법과 호흡에 따른 수련 단계도 정해져 있다. 일반적으로 제1단계는 소걸음에 해당하는 우보법, 제2 단계는 산신이 타고 다니는 호랑이 걸음인 호보법, 제3단계는 용의 걸음인 용보법, 제4단계는 구름을 타고 다니는 운보법, 그리고 마지막은 인간계에서 선계로 등극할 수 있는 칠성보법이다. 이를 단계별로 수련해 칠성보법을 깨닫게 되면 마침내 도인이 신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신선술에 관한 최고의 경전으로 꼽히는 육갑천서의 경우 축지법의 수련 단계를 12단계로 본다. 마지막 단계 때 특정 주문을 일곱 차례 반복해서 외워야 하는데 '일보백보 기지자축 봉산산평 봉수수확 봉수수절 봉화화멸 봉지지축 오봉 삼산구후 선생 율령칙'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도인(?)들의 수련 방법이다. 일반인들은 먼저 도인에 이른 후 축지법 수련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일반인이 도인을 거쳐 축지법을 구사하는 신선에 오를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과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아직 어떤 문헌에도 기록된 바가 없다.


축지법과 공간이동

축지법은 여러 대중문화 작품 속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무협장르라면 영화, 만화, 소설을 막론하고 축지법이 핵심 소재로 등장한다.

가장 친숙한 작품으로는 '홍길동전'과 '임꺽정'을 들 수 있다. 홍길동전에는 축지법을 비롯해 둔갑법, 분신법 등 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탐관오리를 소탕하는 민중영웅 홍길동이, 임꺽정에는 하루에 백리에서 천리를 이동하는 축지법의 도사 천왕둥이가 나온다.

중국의 삼국지에도 제갈공명이 기문둔갑술을 발휘, 적을 섬멸하는 장면이 자주 그려져 있다. 기문둔갑술은 음양의 변화에 따라 몸을 숨기고 길흉을 점치는 용병술로서 이것의 핵심 요소가 바로 축지법이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의 축지법은 숙적인 사마의의 입을 빌려 이와 같이 형상화된다. "이상야릇한 일이 다 있구나. 우리가 부리나케 30리를 뒤쫓아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따라잡을 수 없다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오늘날의 영상 작품들에서 축지법은 컴퓨터그래픽을 활용, 한층 현란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그리고 스스로 축지법을 구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속세의 도인들도 TV 화면에 심심찮게 출몰하고 있다. 물론 그들 중 누구도 대중 앞에서 축지법을 시전하지는 못했다.

이와 관련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들 사이에 유명세를 떨 친 한 축지법 도인은 "범인들이 함부로 높은 경지의 도술을 알게 되면 세상이 위험해진다"는 이유로 시전을 거부했다. 과연 그가 실제로 축지법을 구사할 수 있는지, 아니면 혹세 무민을 지속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한지는 알 수 없다.

서양에서는 어떨까. 서양의 경우 축지법은 오랫동안 '공간이동' 혹은 '장소이동' 개념으로 이해돼 왔다. 축지법은 기본적으로 도인들의 효율적인 이동 보법이지만 순식간에 먼 거리를 움직인다는 점에서 서양의 공간이동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서양에서도 이러한 공간이동을 요정이나 마법사의 초능력으로 바라봤으며 오랜 세월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었다. 공간이동을 주요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 들이 속속 제작돼 인기를 끌었던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일례로 지난 2008년 제작된 영화 '점퍼'에는 뉴욕, 도쿄, 로마, 이집트의 스핑크스 등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순간 이동할 수 있는 초능력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이 능력을 이용해 은행금고에 잠입, 거금을 손쉽게 훔치기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축지법과 공간이동 능력은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로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빛의 공간이동 실현

그렇다면 축지법은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축지법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미진했던 반면 그와 유사한 개념인 공간이동은 일찍이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이 시도된 바 있다. 결국 축지법의 현실 가능성 타진을 위해서는 먼저 공간이동의 개념을 빌려올 수밖에 없다.

지난 1993년 미국 IBM의 과학자 찰스 베네트는 4개국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한 결과, 원자 규모의 공간이동이 물리적으로 가능함을 입증해냈다. 여기에는 양자이론이 적용됐다. 양자이론이란 아주 작은 크기로 쪼개진 입자에 대한 것으로 빛, 소리, 전자기장 등을 파동이 아닌 하나의 입자로 보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모든 것의 근원을 추적하면 그것들은 모두 양자적으로 얽혀 있다. 그리고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두 입자는 한쪽 입자의 특성이 바뀌면 다른 입자도 같은 특성을 띠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양자이론의 기본개념인 '얽힘 현상 (entanglement)'이다. 얽혀 있는 두 입자는 그 중 어느 것을 측정하든 같은 특성을 띠게 되므로 이 같은 성질을 활용하면 입자의 특성을 측정하지 않고도 공간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A라는 장소에서 B라는 장소로 전자를 보낸다고 해 보자. 이 때 먼저 a와 b라는 두 개의 전자를 서로 작용시킨다. 그리고 b를 B로 보낸다. 이후 A에서는 공간이동을 원하는 제3의 전자 c를 남은 전자 a와 서로 작용시킨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전자에 관한 정보를 B로 보내는 것이다.

B에서 이에 관한 정보를 받게 되면 제4의 전자 d를 앞서 받은 전자 b와 상호작용 시켜 두 개의 전자 상태가 A에서 보내 온 정보와 완전히 같아지도록 한다. 그렇게 하면 제3, 제 4의 전자 c와 d는 완전한 복제가 된다. 결국 c는 A에서 B로 공간이동을 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다소 이해가 복잡하기는 해도 이 같은 베네트의 논리는 지난 1997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의 안톤 질링거 교수 등에 의해 수차례 실험으로 입증, 유명 과학전문지에 논문으로 게재된 바 있다. 당시 질링거 교수는 한 지점에 있던 빛을 제거한 후 1㎞ 떨어진 곳에서 이와 똑같은 빛을 완전하게 재생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빛의 기본단위인 광자가 지닌 주요 물리적 특성 정보를 다른 광자들에게 고스란히 복사해냄으로써 빛의 공간이동을 실현한 것. 이 같은 결과는 적어도 공간이동 자체가 터무니없는 상상의 산물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사람의 공간이동은 불가능?

대상이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 양자이론 기술로 축지법을 쓰듯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수도 있을까. 사람을 비롯한 살아있는 생명체의 공간이동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과학자들이 적잖은 문제가 있음을 제기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이동의 핵심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정보 추출과 그 정보들의 재조합 부분이다. 사람의 공간이동이 가능하려면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원자들의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완벽히 재조합 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DNA 하나가 사람을 성자로도, 연쇄살인범으로도 만들 수 있음을 감안하면 자칫 단 한 개의 원자라도 일치하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게다가 불행히도 현재까지의 이론에 의하면 아무리 정확한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임의의 측정 대상에 대한 물리량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사람은 일반적인 물건과는 다르다. 육체에 더해 지식, 감정, 경험, 가치관 등 물질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 요소가 복잡다단하게 융합된 존재다. 때문에 물질로 구성된 육체는 물론 정신세계까지 이동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겉모습은 똑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하지만 현존하는 그 어떤 기술로도 정신을 손에 잡히는 물리적 요소로 변환할 수 없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논리일 뿐이다. 앞서 설명한 이론과는 다르지만 우리 곁에는 실제로 공간이동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일례로 지난 1968년 아르헨티나의 한 부부가 공간이동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당시 변호사인 비달 박사와 그의 부인은 친구 부부의 차량 앞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며 샤스콤 시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시내를 통과하는 순간 갑자기 그들의 차량이 사라졌다. 뒤따르던 부부의 신고로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지만 어디에서도 비달 부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후 이들이 발견된 곳은 엉뚱하게도 멕시코시티였다. 멕시코시티는 부부가 사라졌던 샤스콤과 7,000㎞나 떨어진 곳으로서 열차나 배로 이동했을 때 족히 이틀 이상 걸리는 거리다. 언론에도 대서특필된 바 있는 이 사건은 당국의 철저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언젠가는 실현 가능할 '꿈'

한편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도 군사적 목적으로 공간 이동 기술 확보를 위해 비밀리에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해군기지에서 진행된 실험이 음모론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하다. '필라델피아 실험' 혹은 '레인보우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 극비 프로젝트는 미 해군이 독일군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투명한 배'를 만들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기술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선박 주변에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 일반 광선이나 레이더 등의 전파를 굴절시켜 레이더상에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인슈타인, 테슬라, 폰 노이만, 허친슨, 커텐아워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총동원됐다고 전해지는데 완벽하지는 않지만 선박이 푸른 안개처럼 위장돼 레이더에 검출되지 않도록 하는 목표를 달성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실험에 나섰던 선박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필라델피아에서 600㎞ 떨어진 버지니아 주 노퍽에서 발견됐다. 애초의 의도와 달리 결과적으로 공간이동을 구사한 것이다.

음모론자들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공간이동의 결과는 끔찍했다. 대원들 대다수가 사망·실종됐으며 생존한 극소수도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고 한다. 미 해군이 즉각 모든 실험을 중단하고 실험 자체를 은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 스토리는 '필라델피아 특명'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축지법 혹은 공간이동에 대한 과학적 해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이것이 언젠가 반드시 가능해질 기술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앞선 사례에서 벌어진 공간이동 현상의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는 것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과학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 축지법과 공간 이동도 가능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은 정신세계의 이동도 영화 '6번째 날'에서처럼 기계적으로 복사, 저장함으로써 가능해질 수 있다. 물론 그때가 오기까지 축지법은 사람들의 로망과 현실을 오고가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을 테지만 말이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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