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40년, 서울의 빌딩 정원

[탄소제로도시] 가상시나리오

미래의 녹색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처럼 탄소제로를 향한 다양한 시도들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땅값 비싼 도심 한 가운데 빌딩 숲 사이로 들어선 최첨단 유기농 농장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30년 후 서울의 모습을 미리 들여다보자.

건축가로 평생을 보낸 김한국 씨. 그는 일흔의 나이에 새 직업을 택했다. 바로 '수직 정원사' 다. 얼마전 서울 종로 한복판에 건설돼 랜드마크로 떠오른 '수직 정원(vertical garden)' 을 관리하는 게 그의 일과다.

수직 정원이란 유전자 조작이나 농약을 치지 않은 친환경 먹거리를 생산하는 최첨단 유기농 농장으로 고층빌딩의 옥상에 있어 시민들에게는 빌딩 정원이나 빌딩 과수원으로 통한다. 종로에서 작업복을 걸치고 정원용 가위를 든 김 씨의 모습이 아직은 다소 이색적이지만 그는 매일 저녁 이곳에 들려 시간을 보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정원에 들어서면 가히 별천지가 펼쳐진다. 정원 이곳 저곳에서 새들의 지저귐과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한 축축한 흙냄새와 이국적인 꽃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온 몸으로 자연을 느끼다보면 이곳이 대도시의 빌딩 속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다.

수직 정원은 언제나 최적의 실내온도가 유지된다. 자동으로 조절되는 공조시스템이 덥고 습한 열대 우림의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토양 속에는 수많은 센서가 들어있어 각 식물에 필요한 온도, 수분, 영양분 정도를 실시간 파악하고 있으며 지능형관리시스템이 자동으로 햇빛, 통풍, 관개를 조절한다.

농작물을 돌보는 업무는 특수 개발된 로봇들에 의해 이뤄진다. 김 씨가 할 일은 PDA를 통해 이를 모니터하면서 정원이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는 PDA의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이곳의 모든 시스템을 제어, 변경할 수 있다.

수직 정원 구동에 필요한 에너지는 전량 자체적으로 충당된다. 건물 외벽에 박막필름 태양전지를 부착, 전력을 생산한다. 이런 종류의 친환경시스템은 수직 정원에만 채용된 것이 아니다. 도시의 모든 건물들이 이와 유사한 자가발전시스템을 구비하고 있다. 수직 정원 맞은편의 국세청 건물도 그렇다.

건물 외벽에 도색된 페인트에 이산화티타늄(TiO2)이 함유되어 있는데 태양전지의 실리콘처럼 햇빛을 전기에너지로 변환해준다. 빌딩의 창문은 고효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돼 있어 흐린 날이나 야간에는 조명기기로 변신한다. 정원으로 돌아와 보자. 갖가지 덤불과 나무 사이로 채소, 망고, 바나나 등 열대 과일들이 싹트고 자라나며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재배된 작물들은 모두 서울 시내에서 판매된다. 맛과 품질이 우수할뿐더러 순수 유기농 자연환경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물론 같은 건물 아래층에 위치한 고급 식당들도 모두 이곳에서 생산된 작물을 이용한다.

이는 환경과 경제,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이익이 된다. 현지 생산이라 수송과 냉장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아울러 이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직정원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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