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이 꿈꾸는 낙원이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그 낙원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같은 생각은 자칫 쓸모없는 공상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머지않아 이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해답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아틀란티스'를 통해서다.
고도의 문명 갖춘 이상향
"단 하루의 비극으로 아틀란티스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아틀란티스에 대해 최초로 기록한 이는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다. 그는 기원전 360년경 집필한 저서 '대화편'에서 아틀란티스를 이상적인 고대국가로 명명했다.
아틀란티스에 대해 그가 기술한 내용은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의 입법자 솔론이 이집트를 방문했을 당시 전해들은 것이라고 한다. 이후 플라톤은 사실 확인을 위해 직접 이집트로 달려가 조사를 펼쳤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지만 말이다.
플라톤이 아틀란티스에 대해 기술한 주요 내용을 살펴 보면 이렇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클레이토라는 인간 여인을 아내로 얻어 다섯 쌍의 남자 쌍둥이를 낳았다. 이중 장남 아틀라스가 훗날 왕이 되어 아버지가 관장하던 영토를 다스리게 됐는데 그 나라의 이름이 아틀란티스다.
거대한 화산섬이었던 아틀란티스는 초목이 우거진 장대한 산맥, 갖가지 작물이 탐스럽게 영그는 비옥한 토지, 주민들의 호화로운 삶을 보장하는 풍부한 자원 등 살기 좋은 환경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고도의 문명, 최강의 군대, 공정한 법률까지 더해져 아틀란티스는 이상적인 국가로 오랫동안 번성을 누렸다.
하지만 평화롭던 아틀란티스도 어느 순간 부패의 길을 걷게 된다. 아틀란티스인들은 게으르고 사치스러워졌으며 결국 신을 배반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세계 정복을 위한 전쟁에 나서 지중해 연안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기도 했다. 아틀란티스가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이 세계 정복 전쟁에 실패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어느 날 마치 신이 내린 형벌을 받듯 갑작스런 지진과 홍수가 덮치며 아틀란티스는 하루아침에 바다 깊숙이 가라앉으며 사라졌다.
이렇듯 폐국을 맞기는 했지만 서양인들에게 아틀란티스는 오랜 기간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상향의 모습을 영위했던 지상낙원이자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인식돼 왔다.
유토피아, 무릉도원, 도원경(桃源境) 등 낙원을 의미하는 동서양의 용어들이 하나같이 상상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과 달리 아틀란티스는 실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세인들의 관심은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플라톤의 언급이 있은 지 2,400여 년이 지난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이 신비의 대륙이 정말 실재했는지, 만일 그렇다면 어디에 위치했는지는 누구도 명확히 대답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중해에서 1만 년 이상 번성
다만 과학적 진실 여부를 떠난다면 다소나마 궁금증을 풀 열쇠는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이다. 플라톤은 이 책에 아틀란티스의 존재 연대와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힌트를 남겨 뒀다.
먼저 아틀란티스의 존재 연대를 추정해 보자. 플라톤은 저술 당시로부터 약 9,000년 전에 아틀란티스가 사라졌다 는 말을 들었다고 적었다. 솔론의 이집트 방문 시점이 기원전 600년이므로 그보다 9,000년 전이면 아틀란티스의 침몰 시기는 대략 기원전 9,600년이 된다.
그리고 아틀란티스는 침몰 전까지 1만 3,900 년간 번성했다고 하니 아틀라스가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시점은 대략 기원전 2만 3,500년쯤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아틀란티스의 존재 연대는 기원전 2만 3,500년에서 9,600년 사이임을 추정할 수 있다.
위치의 경우 플라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지중해 서쪽 바다, 다시 말해 대서양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과거의 아틀란티스는 리비아, 이집트, 그리고 유럽의 테리니아(현재의 이탈리아 중북부) 인근까지 다스렸던 초강대국이었다는 것. 전체 영토는 지중해 남쪽의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북동 쪽의 터키 지역을 합친 것보다 거대했다고 전해진다.
아틀란티스의 영토를 벗어나지 않고도 바다 반대편의 다른 대륙에 이를 수 있었다고. 이와 관련 플라톤은 "아틀란티스는 거대하고 경이로운 제국의 심장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틀란티스가 대서양에 위치했다는 내용과 부합하는 사항으로는 오늘날 대서양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아틀란틱 (Atlantic)'이라는 점, 지중해 남서쪽의 모로코·알제리·튀니지에 걸쳐 뻗어있는 커다란 산맥의 이름이 '아틀라스 산맥 (Atlas Mountains)'이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이 모두 과거 아틀란티스에서 유래되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틀란티스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그리스 최대의 섬인 크레타가 과거 아틀란티스였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의 기술과는 달리 아틀란티스는 대서양이 아닌 지중해에 위치했었다는 말이다.
수천 년간 번영을 누리며 오리엔트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그리스에 전달하는 교량 역할을 하다가 기원전 1,500년 경 갑자기 멸망해 버린 크레타 문명이 아틀란티스 문명의 멸망 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는 점이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다. 다른 한편에서는 카리브해 서부에 위치한 오늘날의 쿠바가 아틀란티스였다는 주장을 피력하기도 한다.
이는 '아스 틀란'에서 건너온 '뱀의 사람들'이 멕시코의 일곱 개 동굴에서 살았다는 멕시코 신화를 근거로 한 주장이다. 아스틀란 이 아틀란티스와 어원상의 뿌리가 같고 여기서 건너왔다는 뱀의 사람들이 쿠바인들을 지칭한다는 것.
이밖에도 대서양 중앙해령의 일부인 카나리아제도, 아 조레스제도 등의 화산섬이 아틀란티스 대륙의 일부라거나 멕시코 중앙고원에 발달한 아즈텍 문명이 살아남은 아틀란티스인들이 건설한 것이라는 등 각계 연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아틀란티스를 찾아라
이런 가운데 최근 연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지난 6월 프랑스의 한 해저탐사팀이 카리브 해에서 우연히 도시 유적을 발견해낸 것이다. 이 유적은 교차로 직조된 도로와 다양한 건축물을 포함한 하나의 도시였는데 연구자들은 이곳이 전설 속 아틀란티스 일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추가연구를 위한 유적 훼손 방지를 이유로 정확한 위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실 이와 같은 발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65 년에는 에게해 남부의 화산섬 테라 부근에서 물속에 가라 앉은 고대 성곽이 발견됐고 2004년에는 스페인 남부 늪지대에서 플라톤이 표현한 아틀란티스와 흡사한 유적이 발견돼 학계를 설레게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뒷받침할 만한 정황 증거들은 얼마든지 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1940년대 초 아틀란티스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남겼고, 독일의 천문학자 헤르비거는 달이 지구의 인력에 끌려와 현재 지구의 위성이 됐다는 가설을 주창하며 그 무렵 지구에 잇따라 발생한 거대한 자연재해가 아틀란티스의 침몰 시기와 비슷한 1만 2,000년 전이라는 흥미로운 이론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의 예언자 케이시도 명상을 통해 아틀란티스가 세 번의 광범위한 대이변에 의해 부분적으로 무너지다가 결국은 사라졌다고 전하며 마지막 이변은 기원전 1만 년경에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아틀란티스가 1968년 대서양에서 솟아오를 것이라 예언하기도 했는데 그 해에 실제로 대 서양 바하마 부근에서 사람이 손수 쌓아올린 모양의 특이 한 돌벽이 발견됐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진위가 밝혀지지 않았을 뿐 심적으로는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믿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일련의 정황들이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증명하지 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단순한 신화나 전설로 치부할 수는 없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틀란티스는 없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틀란티스에 대 한 수수께끼는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다.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에 현재로선 모든 것들이 그저 가정이고 가설일 뿐이다. 지난 1950년대부터 해저 지형 탐사가 본격화됐지만 대서양에 커다란 대륙이 존재했다거나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 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아틀란티스처럼 고도의 도시문명이 존재했었다고 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는 게 많은 연구자들의 지적이다. 이는 더 나아가 플라톤의 대화편에 기술된 많은 부분들 이 오류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틀란티스에 건설된 구조물이라든지 아틀란티스인들이 운용한 운하나 무기 등도 당시의 기술력에 견줘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인류 최초의 철기 문화도 기원전 3,000년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꽃을 피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아틀란티스 자체를 아예 부정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아틀란티스 이야기는 플라톤의 대화편 외에 그 어떤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근거의 핵심이다. 1만 3,9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세계를 주름잡은 문명이라면 그에 대한 기록을 이토록 찾기 힘들 리가 없다는 것. 때문에 아틀란티스는 플라톤이 자신의 이상주의적 국가 관을 설명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그려낸 상상의 대륙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부정과 부패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상상 속 대륙을 무대로 삼았을 뿐 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일부 연구자들은 고대에는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아틀란티스를 근대의 인문주의자들이 의 도적으로 다시 들춰냈다며 이 역시 플라톤이 생각한 바와 유사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지난 1975년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는 '아트란티스는 사실인가, 허구인가'라는 주제의 국제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각국의 연구자들이 집결한 당시 심포지엄의 결론은 "아 트란티스는 신화일 뿐 실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늘의 신화가 미래의 현실로 이렇게 되면 아틀란티스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틀란티스의 신비를 향한 인류의 열망은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아틀란티스는 과거 대서양 탐험, 나아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탐험가들은 어딘가 있을 아틀란티스의 흔적을 찾아 수백 수천 마일의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결과 인류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많은 연구자들은 아틀란티스를 찾아 끊임없이 목숨을 건 탐사에 나서고 있다. 고고 학자, 해양학자, 천문학자, 지질학자, 인류학자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오늘날의 신화라고 해서 그것이 미래에도 신화로 남아있으리란 법은 없다"고. 트로이의 존재가 유적의 발굴을 통해 '신화'에서 '역사'로 바뀌었듯 어쩌면 머지않아 아틀란티스도 허구가 아닌 실재가 될 수 있 지 않을까. 물론 그날이 오기까지 아틀란티스는 계속해서 우리의 꿈 속 지상낙원으로 머무를 테지만 말이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