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사고의 상흔이 여전한 후쿠시마에 태양광을 활용한 수소 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오는 10월 완공 예정인 이곳에서는 연간 도요타의 수소전기차 미라이 18만대를 충전할 수 있는 규모(900톤)의 수소가 만들어진다. 후쿠시마는 일본의 에너지 수급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음을 보이는 상징적인 장소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원전을 한 축으로 삼던 일본의 에너지 수급 체계는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2015년 체결된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따라 화석연료 사용을 늘릴 수도 없는 터라 초점은 자연스레 신재생에너지로 향했다. 일본 정부가 날씨와 계절에 따라 출력변화가 큰 태양광·풍력 잉여전력의 효율을 대폭 끌어올릴 수단으로 수소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대체 에너지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원전을 닫으면서 일본의 에너지 자급률은 19%에서 6%까지 떨어진 터라 대안 마련이 시급했다.
일본 정부가 새로운 에너지를 찾으며 내건 조건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무타 도루 경제산업성 수소연료전지전략실 과장 보좌는 “새로운 에너지는 자급률·전력효율·친환경 요소를 모두 만족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화석연료의 비중을 높이기도 쉽지 않아 초조함은 더해갔다. 화석연료의 공급이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어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취지와 맞지 않았다. 무타 과장 보좌는 “특히 2015년 190여개 국가가 모여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맺으면서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는 방안 역시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날씨나 계절에 따라 출력이 들쭉날쭉한 신재생에너지의 효율을 제고해야 했다.
일본이 수소에 주목한 것은 이 때문이다. 기존에 쓰지 못하고 버려졌던 전기를 수소로 바꿔 저장해둔 뒤 전력이 급할 때 이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 연료전지 업계는 태양광과 풍력에서 얻은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면 에너지 효율이 70% 정도가 된다고 보고 있다. 연료전지 관계자는 “연료전지를 활용해 이를 다시 전기로 바꿀 때 효율은 60% 수준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기존에 사용하지 않고 버리던 전기의 42%가량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는 전력을 오래 저장하는 데 배터리보다 수소가 더 낫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다이슈 하라 NEDO 연료전지 및 수소기술그룹 책임은 “저장 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배터리의 활용성은 수소에 비해 떨어진다”며 “저장해야 할 양이 많을 경우 더 많은 배터리를 만드는 것보다 수소를 탱크에 저장하는 게 비용 측면에서 낫다”고 설명했다.
수소를 통해 대용량의 에너지를 해외에서 수입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나라에서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들여오는 식이다. 자급률을 높인다는 기본 취지와는 맞지 않더라도 수급처를 다변화해 공급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무타 과장 보좌는 “수소사회는 수소자동차 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에너지 수급 체계 자체를 재고하자는 것”이라며 “당장에 수익성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충분히 기대할 만한 미래라고 본다”고 낙관했다. /도쿄=김우보·박민주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