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이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해 투자상품을 대수술한다. 해외 금리 연계 파생상품(DLF) 사태를 계기로 자산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혁신안을 내놓은 것. 특히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면 고객에게 투자원금을 되돌려주는 ‘투자상품 리콜제(책임판매제도)’를 업계 처음으로 도입하는 파격 행보에 나섰다. 앞서 우리은행(000030)이 DLF 수습책의 일환으로 상품투자숙려제도를 제시한 데 이어 하나은행이 공사모 상품 모두에 적용되는 ‘리콜제’를 도입하면서 향후 금융권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은 17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손님 신뢰 회복 선언’을 발표하고 “DLF 고객들이 입은 금전적 손실과 심적 고통에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지성규(사진) 행장이 사과한 지 17일 만에 재차 사과하며 신속한 배상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하나은행은 자산관리 체계 개편을 위해 불완전판매 원천차단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한편 손님 중심 영업문화와 자산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3단계안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불완전판매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프로세스 혁신에 집중했다. 우리은행은 공사모 상품 전체에 투자상품 리콜제를 시행해 불완전판매 사실이 밝혀지면 투자원금과 이자까지 돌려주기로 했다. 증권사에서는 2010년부터 불완전판매된 펀드에 대해 원금과 판매수수료를 돌려주는 ‘펀드 리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은행권에서는 처음이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 기간에 은행권 ‘펀드 리콜제’의 조속한 도입 필요성이 지적된데다 전날 우리은행도 비슷한 성격의 고객철회제도 도입 의사를 밝혀 은행권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상품 재검토 과정도 도입된다. 고위험 상품을 프로세스대로 판매했더라도 재검토해 상품 판매 여부를 다시 결정하는 방안이다. 대필 등을 차단하기 위해 인공지능(AI) 모델을 적용한 필체인식 시스템을 개발하고 거래신청서·투자설명서의 상품 판매 과정을 총괄하는 통합전산 시스템을 구축해 불완전판매를 원천차단하겠다는 목표다.
경쟁 위주의 영업문화를 바꾸기 위해 올해 하반기부터 핵심성과지표(KPI)에 고객수익률 배점 비중을 높이고 일반 영업점 직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단순 상대평가식의 수수료 경쟁이 아닌 고객 수익률 제고에 따른 신뢰 회복에 방점을 뒀다. 고객 자산이 고위험상품에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투자자 성향 분석 시 실시간 본인 의사를 재확인하는 확인콜 제도도 시행한다. 아울러 자산관리 역량을 높이기 위해 고객투자분석센터를 신설하고 프라이빗뱅커(PB)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한편 투자상품 전문인력 육성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번 자산관리 체계 개편은 지 행장이 공을 들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산관리 전부를 바꾸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전사적으로 신뢰 회복에 나서자는 주문을 한 셈이다. 지 행장은 글로벌 진출과 디지털 전환 등 하나은행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결국 고객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영업 프로세스뿐 아니라 영업문화 전반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전체 직원들과 공유했다. 하나은행도 이번 신뢰 회복 선언과 함께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을 무조건 수용할 것”이라며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