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 범죄의 재범률이 36%에 이르는 가운데 특히 만 19세 이하 미성년자의 약물 경험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청소년의 마약 경험은 성인보다 빠르게 중독으로 진화할 수 있는 데다 다른 범죄 및 약물 사용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의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마약류 범죄와 중독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마약 경험자에게 범죄자 딱지를 붙여 사회에서 격리하는 형사처벌 중심의 정책으로는 청소년 마약 문제를 뿌리 뽑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마약 경험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전문적 중독 예방 교육 도입과 중독자에 대한 치료·재활 중심의 정책 전환이 처벌 강화보다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대검찰청 마약범죄백서에 따르면 2022년 전체 마약사범은 전년 대비 13.9% 증가한 1만 8395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4년 연속 1만 6000명 이상의 마약사범이 검거된 가운데 마약류 범죄 증가세를 이끌고 있는 세대는 만 39세 이하 청년층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30대 이하 마약류 사범은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1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마약사범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9.8%로 2년 연속 60%에 육박하고 있다.
만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사범의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지난 한 해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사범은 481명으로 2012년의 38명 대비 12.6배 늘었다. 전체 마약사범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0.4% 수준에서 2.6%로 뛰었다. 여중생이 텔레그램으로 필로폰을 구해 투약하다 경찰에 입건됐고 고등학생이 마약 유통망 총책으로 검거되기도 했다. 마약류 범죄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마약을 접한 청소년 수가 1만 3000명(암수율 28.57배 적용)을 훌쩍 넘으리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마약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인도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청소년 마약 확산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다. 민간 마약류 중독 재활센터인 경기도다르크의 임상현 센터장은 “과거에는 마약을 구하려면 서로 얼굴을 봐야 했기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사이에서만 마약이 유통됐다”며 “지금은 약물 유통의 70~80%가 온라인·비대면으로 이뤄지다 보니 서로 큰 부담 없이 이를 사고판다”고 설명했다. 펜타닐과 디에타민·애더럴 등 합법적인 경로로 구할 수 있는 의료용 마약이 불법 유통되고 저가의 신종 마약이 대거 등장한 점도 청소년의 마약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는 분석이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성장기에 있는 10대의 뇌는 성인보다 민감해 마약 등에 중독되기가 더 쉽다. 마약은 강한 중독성으로 자발적인 단약 노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적절한 치료 개입이 없을 경우 젊은층의 마약류 사용이 장기간의 중독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은 36.6%로 절도(22.8%)와 강도(19.7%), 폭력(11.7%), 살인(4.9%) 등 다른 범죄보다 눈에 띄게 높다. 마약류 중독 재발률 또한 40~60%로 만성질환에 버금갈 정도로 알려졌다.
중독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재활이 필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마약 문제를 일부 개인의 범죄나 일탈로 간주하는 경향이 높다. 단적인 예로 우리는 청소년이 왜 마약을 접하고 어떤 경로로 약물을 구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차 모른다. 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청소년 약물 이용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수집하며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제에 초기 개입하고 지원을 위한 예산 마련, 효과적인 치료 방법 등을 찾는다. 우리 정부도 4대 중독(알코올·도박·인터넷·약물)에 대한 실태 조사는 벌이고 있지만 마약류의 경우 만 19세 이상 사용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청소년 마약 사용과 관련한 데이터는 건강보험 질병 자료와 대검찰청의 범죄 통계가 전부인 셈이다. 양혜정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미국 청소년은 중독자인 부모 또는 주변 성인 중독자의 영향을 받아 마약을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지만 우리의 경우 부모가 중독자라서 마약에 빠져드는 청소년은 드물 것”이라며 “정확한 실태 조사를 통해 우리 청소년의 중독 원인과 경로 등을 파악해야 맞춤형 대책 마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마약 오남용을 사건 또는 일탈로 치부하는 분위기에서 예방 교육이 제대로 될 리도 없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은 “담배가 건강에 해롭고 중독성이 높다는 캠페인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데 반해 마약은 4대 중독 중에서도 위험성이 높지만 전문성 있는 예방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약물 경험을 한 학생이 학교에 나오더라도 강제 전학 등의 조취를 취한 후 ‘우리 학교에는 마약을 하는 학생이 없다’며 쉬쉬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귀띔했다.
중독 치료와 재활을 위한 기관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점도 문제다. 일례로 마약류 중독자 본인이나 가족이 치료 보호를 의뢰하면 지자체별 승인을 거쳐 지정 기관에서 최대 1년까지 무상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치료지원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정 기관이 전국 21곳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대부분 실적이 없다. 2017년부터 약 5년간 21개 기관이 치료 보호한 마약류 중독 환자는 총 1130명에 그친다. 치료 보호 지원 예산이 2022년 기준 4억 원 수준이라 많은 환자를 돌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극빈층 정도만 복지 혜택을 받으며 일반 중독자들은 치료 의지가 있어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싼 치료비 때문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21곳 중에서도 5년 간 의미 있는 치료 실적을 올린 기관은 인천참사랑병원(496명), 국립부곡병원(398명) 등 2곳에 불과하다. 2곳이 전체 환자의 80%(인천참사랑병원 43.9%, 국립부곡병원 35.2%) 가까운 환자를 치료한 셈이며 9곳은 아예 실적이 없다. 중독자 가운데서도 다루기 힘들다는 마약 환자에 대한 치료비 지원조차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치료 제공을 꺼리는 것이다.
미국·독일 등 해외는 예산 책정부터 정책까지 치료·재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21년 약물 남용 관련 예산 350억 달러(약 46조 원) 가운데 치료 예산이 165억 달러(약 21조 원)로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또 미국의 약물 남용 치료 시설은 민간을 포함해 2020년 기준 1만 6066개에 이르며 18세 이상 인구 10만 명당 336명의 중독자가 이 시설에서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은 중독자들이 스스로 치료하는 자조 단체까지 대부분 법정 건강보험과 연금기금의 지원을 받아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중독자 자조 모임 대다수가 정부 지원 없이 종교단체나 비영리단체에 의해 운영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마약류 범죄 감소와 중독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해 처벌보다 예방·치료·재활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며 국가 주도로 통합 관리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양 교수는 “현재 마약류 관리의 경우 예방 교육은 교육부, 약물 관리는 식약처, 처벌은 사법기관, 치료·재활은 복지부가 하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앙 컨트롤타워 설치와 예방·치료·재활 예산 확충을 위해 관련법 개정도 필요하다”며 “최근 정부에서 통합 관리의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지만 청소년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좀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