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정부가 21대 국회부터 정부입법권을 대폭 강화할 목적으로 법제처에 강한 힘을 싣기 시작했다.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작은 조직이었던 법제처가 어느덧 적극행정과 규제혁신·신남방정책 등의 선봉에 선 분위기다. <관련기사> ▶[단독] 정부부처 '깜깜이' 행정규칙, 법제처장이 공개 여부 재판단한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2일 2년 한시로 ‘법령의견제시팀’이라는 직제를 새로 만드는 내용의 ‘법제처 직제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을 공포했다. 규제혁신과 적극행정은 물론 신기술·신사업 도입을 위한 법적 쟁점까지 검토하는 자리다. 법제처는 이날 이 직제 신설과 함께 정용복 법제지원총괄과장을 법령의견제시팀장으로 전보 발령했다.
법제처는 또 적극행정의 근거가 되는 ‘행정기본법’ 제정안을 이날 재입법예고했다. 이 법은 현재 수천 개로 산재한 행정 관련 법령에 집행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는 법률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 하나의 제도개선을 위해 여러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줄어 행정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법제처 입장에서는 이 법이 제정될 경우 이를 관리하는 조직이 신설될 가능성도 있다.
법제처의 위상이 달라지는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행정심판 기능을 떼어내는 내용의 ‘부패방지권익위법’과 ‘행정심판법’ 개정도 재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법에 따르면 중앙행정위를 지난 2008년 권익위 통합 이전처럼 국무총리 소속으로 바꾸고 위원장도 권익위 부위원장에서 법제처장으로 변경한다. 권익위의 이름도 부패방지국민권익위원회로 탈바꿈한다. 이 법안은 2018년 1월에도 한 차례 입법을 추진했으나 ‘행정심판의 독립성이 저해된다’는 반발에 부딪혀 20대 국회에서는 통과에 실패했다.
김형연 법제처장. /연합뉴스
지난달부터는 훈령·예규 등 각 부처별로 독자 유지하던 비공개 행정규칙을 기관장이 새로 발령할 때마다 김형연 법제처장이 공개 여부를 재판단하도록 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각 부처가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내부 규정을 법제처장에게 통보만 하게 돼 있으나 법령이 개정되면 법제처장의 권한은 크게 강화된다.
정부가 이렇게 법제처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것은 2년도 채 남지 않은 현 정부 임기 동안 각종 개혁법안들을 신속히 통과시키겠다는 목적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최고의 법률 유권해석 기관은 대법원, 헌법은 헌법재판소이지만 정부 내에서는 법제처가 최고의 유권해석 기구”라며 “각 부처가 적극적으로 법제처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법제처 역할을 강화할 경우 각 부처가 외부 로펌에 법률자문을 구하기 위해 지급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훨씬 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2일 “(20대 국회에서) 아쉽게 통과되지 못한 주요 법안들은 21대 국회에서 신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재입법 준비를 서둘러주기 바란다”고 각 부처에 당부했다.
법제처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령의견제시팀 신설은 행정안전부가 올해 선정한 정부 벤처형 조직 10곳 중 하나이며 대부분의 사항이 대통령 지시와는 무관하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현 법제처장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진보 성향 법관들의 모임으로 분류되는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를 맡았던 김형연 처장이다. 그는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시절이던 2017년 3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에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진상조사를 청원했다. 이후 현 정권 출범 직후 사표를 내고 이틀 만인 2017년 5월21일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돼 법조계에서 화제의 인물이 됐다. 김 처장은 이후 만 2년 뒤 법무비서관 자리를 같은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인 김영식 전 부장판사에게 넘기고 지난해 5월 차관급인 법제처장으로 초고속 승진 코스를 밟았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