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각 부처별로 독자 유지하던 비공개 행정규칙을 기관장이 새로 발령할 때마다 김형연 법제처장이 공개 여부를 재판단한다. 이에 따라 법무부·검찰 등 각 부처별로 은밀하게 운영하던 상당수 비공개 내부 규정들이 개정 작업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공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제처는 지난 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통령령 ‘법제업무 운영규정’과 총리령 ‘법제업무 운영규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새로운 개정안은 비공개 훈령·예규 등의 적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이들도 원칙적으로 발령 후 10일 이내에 법제정보시스템에 내용을 등재하도록 했다. 특히 새 개정안은 법제처장이 해당 훈령·예규가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이를 기관장에게 통보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각 부처가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내부 규정을 법제처장에게 통보만 하게 돼 있다. 각 훈령·예규에 대한 공개 여부 결정과 관련해 법제처의 업무 영역이 늘어난 것이다.
이번 개정으로 상당수 비공개 훈령·예규가 법제처장에게 공개 여부를 재판단 받을 공산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최근 논란이 된 비공개 내부 규정 가운데는 언론사와 검사장 간 유착 의혹 사건으로 조명을 받은 ‘대검찰청 감찰본부 설치 및 운영규정’ 등이 있다. 법무부의 경우 2012년 6월 ‘집중관리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이라는 예규를 비공개로 만들었다가 ‘검사 블랙리스트’라는 정치권과 여론의 비판을 받고 지난해 2월 폐지한 바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달 22일 을지태극연습 등 재난·전시 등 국가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민관군 합동 연습 체계와 절차를 규정하는 ‘비상대비훈련 예규’를 총리 훈령으로 전부 개정하면서 이를 ‘대외비’에서 ‘평문’으로 풀어 공개하기도 했다.
현 법제처장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진보 성향 법관들의 모임으로 분류되는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를 맡았던 김형연 처장이다. 그는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시절이던 2017년 3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진상조사를 청원했다. 이후 현 정권 출범 직후 사표를 내고 이틀 만인 2017년 5월21일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돼 법조계의 화제 인물이 됐다. 김 처장은 이후 만 2년 뒤 법무비서관 자리를 같은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인 김영식 전 부장판사에게 넘기고 지난해 5월 차관급인 법제처장으로 초고속 승진 코스를 밟았다. 이번 대통령령과 총리령 개정으로 그의 권한은 한층 확대됐다.
법제처는 또 훈령·예규 등 행정규칙에 대한 입안 지원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그 대상을 기존 법령에서 훈령ㆍ예규 등으로까지 확대키로 했다. 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해서도 각 소관기관장들이 검토 의견을 법제처장에게 송부하도록 했다. 법령해석 과정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중앙행정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 외에도 민원인이 법령해석심의위원회에 직접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도 마련했다. 입법 예고 기간은 내달 15일까지다.
법제처 관계자는 “그간 비공개 내부규정에 대한 지적들이 많아 특정 부처가 아닌 전 부처가 발령 시 이를 재검토받을 수 있게 하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며 “국가보안 등과 관련된 규정의 경우는 계속 비공개로 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