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 향상에 중점을 둔 차세대 원자로를 소개한다.
지난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원자력 산업은 체르노빌 사고 때와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 텍사스주 등에서 추진됐던 신규 원전 건설이 속속 좌초될 상황에 처한 것.
또한 많은 국가들은 이미 자국 내 모든 원전의 안전성 재평가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의 비중은 이미 매우 높은 상태다. 미국은 전체 전력수요의 20%, 우리나라는 31.4%를 원자력에서 얻고 있다.
이는 청정에너지 중에서는 적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높은 효율성에 기인한다. 실제로 면적 2.59㎢의 원전 한 곳에서는 51.8㎢ 면적의 태양광발전소 혹은 1,200대의 풍력발전기와 동일한 양의 전력을 생산한다.
결국 세계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데 있어 원전은 더없이 좋은 대안이다. 다만 안전성이 담보된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사실 지난 30여 년간 원자로는 세대를 거치며 안전성이 크게 향상됐다. 초창기 1세대에 이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2세대, 1990년대 후반부터는 3세대 원자로 건설이 이뤄졌고 지금은 3세대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3세대 플러스'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3세대 플러스 원자로는 대부분 여러 단계의 수동식 안전시스템을 구비, 전력이 차단돼도 노심용융(meltdown) 사태를 막을 수 있다. 현재 유럽에서 최초의 3세대 플러스 원자로 건설이 진행되고 있으며 중국도 최소 30개소의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미국 역시 조지아주 오거스타 인근에 2016년 가동을 목표로 3세대 플러스 원자로를 채용한 보그틀 원전 건설에 돌입했다. 향후 미국에 건설될 많은 3세대 플러스 원전들이 그렇겠지만 보그틀 원전도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자로를 사용하게 된다. 경수로의 일종인 AP1000은 우라늄 235를 연쇄반응시킬 때 생성되는 고에너지 중성자로 물을 데워 증기를 얻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을 한다.
원전 최고의 위험상황은 노심용융이다. 고체 핵연료가 과열돼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일어나면 격납용기를 파열시켜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
AP1000 또한 기존 원자로들처럼 평상시에는 전력으로 구동되는 물 펌프와 팬을 이용해 노심을 냉각한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전력이 끊겨도 냉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동식 안전장치가 추가 구비돼 있다.
수동식 안전장치의 핵심은 격납용기 최상단의 물탱크. 총 302만8,300ℓ의 냉각수를 담고 있는 이 탱크는 전력으로 작동되는 차단장치에 의해 배수밸브가 막혀 있는데 전기가 끊기면 차단장치가 풀리며 물이 격납용기로 떨어진다. 이와 동시에 격납용기의 통풍구가 열리면서 찬 공기가 유입돼 냉각수의 냉각효과를 가속화한다.
필요하다면 격납용기 내부의 또 다른 물탱크를 수동으로 열어 반응로가 들어있는 구멍에 냉각수를 넣을 수도 있다. 이 냉각수는 노심의 열기로 기화돼 증발하더라도 격납용기의 천장에서 냉각, 응축돼 비처럼 떨어지면서 재차 냉각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렇게 AP1000은 외부 전력이나 인간의 개입 없이 최소 3일간 안전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에 비해 기존 원자로의 예비전력시스템은 정전 시 4~8시간의 추가 전력을 공급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같은 추가 안전장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3세대 플러스 원자로도 노심용융에서 100%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몇몇 원자력 전문가들은 더 안전한 4세대 원자로의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용융염 원자로(MSR), 초고온 가스로(VHTR), 소듐 냉각로(SFR) 등이 바로 4세대에 속한다. 이중 MSR의 경우 고체 우라늄 대신 액체 토륨(Th)을 핵연료로 사용, 노심용융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영리기구 토륨에너지연맹(TEA)의 수장인 존 쿠트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MSR은 이론상 존재하거나 실험 단계의 원자로가 아닙니다. 이미 건설됐고 제대로 가동까지 된 물건입니다."
실제로 MSR은 지난 1960년대 초반 미국 테네시 소재 오크리지국립연구소(ORNL)에 의해 개발돼 1965년부터 1969년까지 2만2,000시간 동안 가동된 바 있다. 4세대 원자로 중 이렇듯 컴퓨터를 뛰쳐나와 현실 세계에 데뷔한 것은 MSR이 유일하다.
ORNL의 원자력기술프로그램 매니저이자 물리학자인 제스 게힌 박사도 "완전한 시스템이 개발된 것은 아니지만 MSR은 성공적으로 설계·운용될 가능성이 증명된 원자로"라고 강조했다.
The AP1000
전 세계에서 운용되는 원자로 440개 중 절반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설계에 기반한다.
이 회사의 1,150㎿급 AP1000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최종 설계인증을 획득한 최초의 3세대 플러스 원자로로서 50여년의 원자로 설계·운용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수동식 안전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통풍구
비상시 격납용기 상단의 공기통로가 열리며 외부의 찬 공기가 유입된다.
이 공기는 최대 100℃에 달하는 격납용기의 냉각에 도움을 주는 한편 반응로 상부로 열기를 빼낸다.
물탱크
격납용기 최상단에 302만8,300ℓ 용량의 물탱크가 위치한다. 전력이 차단되는 비상사태가 발발하면 이 물이 배출돼 격납용기를 식힌다.
펌프가 가동돼 추가적인 물 공급이 가능하다면 이 시스템으로만 72시간 동안의 냉각이 가능하다.
테러 방지
9·11 테러 이후 NRC는 신규 원전의 경우 대형 항공기가 충돌해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안전성을 요구하고 있다.
AP1000의 차폐 벽은 두께 91.5㎝의 강화콘크리트 양면을 19㎜의 철판으로 덧대어 이 조건을 충족시킨다.
사용 후 연료봉
기존 원전과 마찬가지로 방사성 폐기물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 속의 수조에 보관된다.
전력공급 중단 시 즉각 가동되는 수동식 급수시스템이 기본 채용돼 있다.
긴급 급수
원자로는 항상 물속에 잠겨 있어야 노심용융을 막을 수 있다.
대형사고가 터지면 엔지니어는 원자로가 들어 있는 구멍에 수동으로 물을 주입할 수 있다.
통제실 안전
비상상황에서도 11명으로 이뤄진 AP1000의 통제실 근무자들은 3일간 안전한 체류가 가능하다.
압력제어장치가 통제실의 내부 기압을 격납용기의 기압보다 높여 방사성 먼지와 증기의 유입을 막는다.
토륨 용융염 원자로
50여 년 전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가 처음 개발한 용융염 원자로(MSR)는 탁월한 안전시스템에 더해 토륨(Th)을 연료로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토륨은 우라늄보다 구하기 쉽고 위험성도 적다.
미국의 MSR 지지자들은 초기투자금만 확보되면 기존 경수로보다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된 MSR을 10년 내 실용화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연료 순환
용융염에 용해된 토륨이 펌프에 의해 연료배관을 따라 원자로와 열교환기를 순환한다.
토륨의 핵분열은 연료배관 직경이 6피트(1.8m) 이상일 때만 일어나므로 배관 두께를 조절, 원자로 내에서만 핵분열을 일으키도록 할 수 있다.
연료 저장탱크
비상시 연료배관에서 배출돼 저장탱크로 유입된 액체 토륨은 인위적 조작 없이도 열을 잃으며 경화(硬化)된다. 녹아내린 촛농이 냉각되며 천천히 굳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저장탱크 내의 탄소나노튜브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중성자를 흡수, 핵분열 반응 안정화에 기여한다.
전력 송전 효율
MSR은 기존 원자로보다 작고 안전하기 때문에 거주지와 좀 더 가까운 곳에 세울 수 있다. 이는 송전 시의 전력손실 방지에 기여한다.
일반 원자력발전소들은 생산된 전력의 20~30%를 송전 과정에서 잃어버린다.
연료 배출구
비상상황에 대비, 연료 배관에는 배출구가 마련돼 있다. 배출구는 평상시 냉동된 소금으로 막혀 있으며 전기 구동식 팬에 의해 냉각이 이뤄진다.
즉 전력이 끊기면 소금이 녹으면서 연료가 배출돼 별도의 저장탱크로 주입된다.
격납 용기
MSR의 액체 토륨 연료는 큰 압력을 받지 않기 때문에 폭발 위험이 적다. 따라서 대형 격납 용기도 필요 없다.
설령 격납 용기와 원자로에 균열이 생기더라도 인근 거주자들을 위협할 만큼의 방사능은 누출되지 않는다.
발전 설비
일반 원전들처럼 MSR도 핵분열 반응 시 발생하는 열로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을 한다.
MSR 지지자들은 저압 고밀도 이산화탄소를 사용, 냉각탑 설치가 필요 없는 '브레이턴 사이클(Brayton cycle)' 방식의 터빈을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