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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테러리즘의 실체와 대책

가난한 자의 원자폭탄

냉전 종식 후 전 세계는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그 자리를 '값싼 원폭'이라고도 불리는 생물학 병기가 대체하고 있다. 생물학 무기의 제조·살포기술이 돈 없는 정치단체나 테러 단체에 흘러들어가며 바이오테러리즘의 공포가 부각되고 있는 것.

빈 라덴의 죽음에 복수를 다짐했던 알카에다도 이 같은 생물학 테러를 선택할 개연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글_이동훈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지난 5월 2일 미국은 파키스탄에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자국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다고 밝혔다. 다음날 알카에다 측은 빈 라덴의 사망을 인정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 대한 보복과 저주를 부르짖었다.

과연 알카에다는 이 말을 행동으로 옮길까. 만일 그렇다면 어떤 방법의 보복을 선택하게 될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생물학 무기를 이용한 테러, 즉 바이오테러리즘이 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5일 미 군축대사인 로라 케네디는 알카에다가 빈 라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며 특히 바이오테러리즘의 가능성을 경고했다. 생물학 병기는 막강한 인명 살상력에 비해 약간의 전문 지식과 저렴한 제조시설만으로도 제조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탐지는 어렵고 살상력은 높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정의를 빌리자면 바이오테러리즘 공격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독극물 등 유해한 생물학 작용제를 의도적으로 살포해 사람과 동식물에 질병을 일으키거나 살상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작용제는 보통 자연에서 획득할 수 있는 것들이 주를 이루지만 살상력과 치료제에 대한 저항력 제고, 살포 효율 증대를 위해 인위적 돌연변이, 유전자 조작 등 생물학적 개조가 가해지는 경우도 많다. 이들을 공기, 물, 음식 등에 살포해 적대국에 심대한 인적·물적·사회적 피해를 가하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이 생물학 작용제 공격을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먼저 제작 및 살포가 쉽고 저렴하며 미생물인 만큼 잠복기에는 검출이 어렵다는 점이다. 또한 스스로 증식하는 데다 전염이 가능해 살포가 이뤄지면 엄청난 속도로 전파된다. 공격자조차도 얼마 만한 파급력이 나올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이런 특성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물리적 피해를 뛰어넘는 공포심과 혼란을 줄 수 있다. 바이오테러리즘 공격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작년에 발생했던 구제역 파동, 그리고 그에 따른 살처분에 의한 경제적 피해가 총 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를 보면 누군가가 작심하고 가한 생물학 테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보건복지부와 농업부에서 공공 보건과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물학 작용제를 '선택 작용제'라는 명칭으로 분류, 관리하고 있다. 바로 이들을 사실상의 생물학 병기이자 바이오테러리즘의 도구라 봐도 무방하다.

구체적으로 선택 작용제는 위험도에 따라 A, B, C등급으로 나뉜다. 가장 위험한 A급은 살포와 전파가 용이 하고 치사율이 높아 공중 보건에 큰 악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특단의 대응조치가 요구되는 작용제들이다. 탄저균, 페스트균, 천연두 바이러스, 보툴리누스균의 독(毒) 등이 여기에 속한다.

B급의 경우 A급보다 살포가 다소 어렵고 치사율 또한 낮은 것으로서 브루셀라균, 클로스트리듐균의 입실론 독, 탄저병균, 티푸스균, 뇌염 바이러스, 비브리오 콜레라 등이 있다.

C급은 신종 병원체 중 치사율과 인 체적 유해성이 매우 커서 대량 살포가 용이하도록 가공되면 병기로서의 가치를 갖는 작용제를 뜻한다. 니파 바이러스, 한타바이러스, 사스(SARS),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이 그것이다.

원시적 바이오 테러리즘

인류는 미생물의 존재를 모르던 옛날에도 생물학 무기를 전투에 사용했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의도적 생물학 병기 공격은 BC 1500~1200년경 히타이트에서 실시됐다고 한다.

다름아닌 페스트에 걸려 죽은 사람의 시신을 적국의 영토 내로 가져다 놓는 것이었다. 이후 그 유명한 그리스의 트로이 전쟁에서 창과 화살에 독을 발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BC 590년경 제1차 신성전쟁에서는 아테네와 인보동맹회의 연합군이 키르하 마을의 우물에 헬레보어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독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BC 184년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살아있는 독사를 담은 냄비를 페르가몬 왕국의 군함에 집어던졌고 서기 198년 파르티아 왕국의 하트라 시에서도 살아있는 전갈을 담은 냄비를 로마군에게 던져 격퇴했다고 한다.

중세의 경우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투석기를 사용해 흑사병에 걸려 죽은 사람의 시체나 흑사병 환자의 의복, 대소변을 상대편 성벽 너머로 날려 보내는 것은 유럽에서 매우 일반적 전술이 됐다. 일견 주술적으로까지 보이기도 하는 이런 원시적 전술이 사라진 것은 거의 18세기가 되어서다.


공갈협박형 테러로 공포심 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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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발견, 입증된 것은 17세기 안토니 판 레이우엔 훅에 의해서다. 하지만 인류는 빵을 만들 때 이스트균을 사용하는 등 오래 전부터 경험적으로 미생물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바이오테러리즘으로 대변되는 미생물의 병기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미생물의 존재를 모르던 고대에도 이미 적의 얼굴에 분뇨를 투척하거나 전염병 사망자의 시신을 적의 영토에 버려 두는 등 생물학 공격을 자행했다. 근래의 바이오테러리즘 사건 중 특기할만한 것은 1984년 미국 오리건 주에서 발생한 라즈니쉬 바이오테러를 들 수 있다.

당시 인도의 유명한 신비철학자 오쇼 라즈니쉬를 추종하던 범인이 음식점, 잡화점, 문고리 등에 장티푸스 원인균인 쥐티푸스균(Salmonella typhimurium) 균을 발라놓으면서 무려 751명이 식중독을 일으켰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이 사건은 20세기 미국 최초의 바이오테러 공격으로 기록돼 있다.

가장 유명한 바이오테러리즘 공격은 단연 2001년 9월과 10월, 알카에다가 미국에서 벌인 탄저균 테러다. 이들은 미국 내 주요 언론사와 미 국회의사당에 탄저균이 든 편지를 보냈고 그로 인해 5명이 숨졌다.

이쯤에서 만일 누군가에 의해 바이오테러가 일어난다면 어떤 형태를 띄게 될지 궁금증이 일 것이다. 물론 그 대처법도 함께 말이다. 확률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형태의 바이오테러는 실제 생물학 작용제를 사용하지 않은 공갈협박형 바이오테러다. 알카에다의 탄저균 테러 등 과거의 각종 바이오테러에 의해 이미 바이오테러의 위험성은 충분히 알려졌다.

그리고 생물학 작용제가 아무리 구하기 쉽다고는 해도 그조차 구할 능력이 없는 개인이나 단체는 공포심 조장을 목표로 가짜 바이오테러 공격을 단행할 수 있다. 이렇게만 해도 상대 국가는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정치적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혹시라도 "이 편지에는 탄저균이 묻어있다.

당신은 감염됐다."고 적힌 편지를 받더라도 패닉에 빠지지 말고 일단 관계당국에 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진실을 신속히 파악, 최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소규모 공격이 더 위협적

실제 생물학 작용제를 사용한 바이오 테러는 대규모 공격과 소규모 은밀 공격으로 나뉠 수 있다. 이중 대규모 공격은 라즈니쉬 바이오테러 사례처럼 넓은 지역에 닥치는 대로 생물학 작용제를 살포, 가급적 많은 사람을 타격하는 방식이다.



테러 초기부터 상당수의 피해자가 속출하게 돼 빠른 시간 내에 심리적·물리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하지만 관계당국의 초동조치가 신속 정확하게 이뤄져 생물학 작용제의 식별과 치료제 확보에 성공하면 그만큼 빠르게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다. 이에 비해 소규모 은밀 공격은 오히려 대규모 공격보다 대응이 매우 어렵다.

일례로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전염성과 살상력은 높지만 잠복기가 길거나 평범한 질병과 전조증상이 유사한 생물학 작용제를 전파했다고 치자. 이때는 감염자나 보건당국이 장기간 생물학 테러 사실을 알지 못할 가능성이 커 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손쓰기조차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렇듯 바이오테러리즘은 예방이 상당히 어려운 유형의 테러 공격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매개체로 이용, 일반적인 질병으로 오인될 소지가 다분한 탓이다. 따라서 안티 바이오 테러리즘은 체계적인 생물학적 감시시스템의 수립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와 관련 1999년 미국 피츠버그 대학 생명의료정보학센터에서는 최초의 완전 자동화된 바이오테러리즘 감시체계인 '실시간 질병 발병 감시시스템(RODS)'를 개발한 바 있다. RODS는 병원진료 기록, 911 통화 기록, 연구실 실험 기록, 동물병원 진료 기록 등 수많은 출처에서 얻은 의료 데이터를 토대로 바이오테러 공격 가능성이 높은 질병의 발병을 조기에 탐지한다.



2000년에는 이에 더해 소매점 상품판매 기록, 학생 출석 상황 같은 비 의료적 정보를 함께 취급, 분석의 정확도를 높였다. 바이오테러에 활용되는 각종 생물학 작용제의 탐지기법도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이미 탐지 대상이 병원체 인지 독극물인지에 따라 매우 다양한 기법이 개발돼 있다.

현재는 기존 탐지기법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던 높은 경보 오류율을 줄이고 탐지장비의 휴대성과 탐지 속도를 높이는 데 연구의 주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 메릴랜드대 벤자민 사피로 박사팀의 경우 간편한 바이오테러 진단 칩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는 반투성 막으로 이뤄진 칩 안에 특정 병원체에 노출되면 빛을 방출하며 사멸하는 세포를 저장한 것으로 불과 몇 분 만에 특정 병원체의 존재 여부가 확인된다. 덧붙여 조지아텍의 러셀 뒤피스 박사팀은 탄저균 등 대다수 생물학 작용 제가 자외선을 다량 뿜어낸다는 점에 착안, 자외선을 탐지하는 광다이오드를 이용한 탐지장비 개발에 성공했다.

일단 바이오테러리즘 공격인 것이 확실하면 그때부터는 민관군이 모두 협력해서 사상자를 구호하고 방역 및 제독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하지만 전파력이 뛰어난 미생물을 상대로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뻔한 얘기 같지만 결국 가장 정확한 안티 바이오 테러리즘은 대중에게 생물학 무기가 전파되기 전에 철저한 예방과 조기 발견을 수행하는 것이다.

생물학 병기는 '가난한 자의 핵무기'라고 할 만큼 제조와 살포가 용이하며 바이오테러리즘은 상대방에게 엄청난 살상력 및 심리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또한 라즈니쉬, 오움 진리교, 알 카에다 등의 바이오테러로 인해 이제 바이오테러리즘에 쓰이는 생물학 병기가 국가에만 독점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 입증됐다. 생물학 관련 지식과 기술의 일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빈 라덴 사후 복수를 노리는 알카에다는 물론 세계 곳곳의 정치 단체가 바이오테러리즘이라는 비수를 빼들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상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우리들을 끊임없이 괴롭혀 왔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친구들까지 싸움에 동원하고 있다. 그 대가가 너무나도 명확한 이상 충분하고도 확실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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