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자

Science Business Belt

최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설립이 과학계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종류와 현황을 파악하고 이들이 만들어낸 경제적 효과를 살펴보는 것은 향후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는 건전한 토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_한국산업기술진흥원 기술과 미래
글_김정욱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선임연구원 kjwcow@kiat.or.kr

정부 주도형
노스캐롤라이나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TP)는 1950년대 노스캐롤라이 나주가 처한 경제적 상황을 개선코자 하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당시 노스캐롤라이나의 1인당 소득은 1,049달러로 미국 평균 1,639달러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수한 학생들은 모두 직장을 찾기 위해 다른 주로 떠나는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1959년 주정부와 대학, 기업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것이 RTP이며 롤리, 더럼, 채플힐 등의 세 도시를 거점으로 한 삼각형 지역이라 해서 트라이앵글 파크로 명명됐다.

현재 RTP에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채플힐캠퍼스(UNC),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NCSU), 듀크대학과 같은 연구중심 대학들과 IBM,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시스코, 크래딧 스위스 등 유수의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노스캐롤라이나주 전체에서 중요한 경제적 비중을 차지한다.

RTP의 특징 중 하나는 이곳에서의 삶의 질이 높다고 강조한다는 점이다.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에 비해 노스캐롤라이나의 물가와 집값이 저렴하고 녹지 또한 상대적으로 많아 동일한 수입으로도 한층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음을 내세우고 있는 것. 또한 연구단지 관련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구축해 왔다는 사실 또한 장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입지에 있어 핵심적 조건의 하나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우수한 연구 인력을 인근 지역에서 얼마나 잘 공급할 수 있는 지의 부분이다.

이 점에서 UNC, NCSU, 듀크 대학은 RTP를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이다. RTP의 주력 연구분야에 맞춰 주변 대학들이 학제 편성을 유연하게 운용함으로써 RTP가 요구하는 첨단기술 분야의 연구 인력 수요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유연하고 집중화된 학제 편성이 학생들로 인해 산업에서 당장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케 하고 실제 연구현장에 신속히 투입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앞서 언급됐듯이 노스캐롤라이나는 1950년대까지는 과학기술과 별로 연관이 없는 지역이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 관련 일자리가 없어 관련 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RTP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RTP 인근지역은 미국 전국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과학기술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 효과는 RTP 지역을 넘어 노스캐롤라이나주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태다.

학계 주도형
보스턴 연구단지


보스턴은 오랫동안 교육의 도시로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들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다. 대표적으로 MIT와 하버드가 있으며 보스턴 대학 등 여타 유수 대학들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MIT와 하버드는 보스턴 도시 안에서도 가깝게 붙어있기 때문에 두 학교가 모여 있는 지역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연구단지 역할을 했다. 이에 기업들도 우수한 인력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이들 학교 근처에 연구소를 세웠고 이런 식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보스턴의 과학비즈니스벨트는 과학연구단지의 성격을 가지게 됐다.

또한 이곳에서 창출된 혁신적 과학기술 연구 성과들은 궁극적으로 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응용되면서 지역경제에 장기적인 파급 효과를 이끌고 있다.


MIT 미디어랩의 경우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포함, 약 60여 개 기업들의 지원을 받고 있 으며 회사가 연구소를 지원하는 동안 등록된 특허들은 '영원히 무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방식의 관계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에 힘입어 MIT 미디어랩에서만약 50여 개의 벤처 회사가 창업됐고 매년 20여 개의 특허가 신규 등록되고 있다.

관련기사



또 다른 예로서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사노바티스는 자사 연구센터의 본사를 아예 MIT 캠퍼스 바로 옆에 두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MIT, 하버드 등과 협력해 생명과학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보스턴의 연구단지는 중앙에서 계획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이 아닌 우수한 학교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사례이기 때문에 이 지역의 경제성 자체를 정확하게 평가한 자료는 많지 않다.



하지만 생명과학분야 하나만 봐도 MIT와 하버드 근처에 약 200개의 생명 과학 관련 기업이 총 1만 6,000여 명의 연구 인력을 고용하고 있으며 총 경제적 효과는 22억 달러, 한화로 약 2조4,000억 원에 달한다.

기업 주도형
실리콘밸리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 전자·정보 통신 기술 산업의 메카다. 시장을 선도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신규 벤처들도 많은 수가 매년 새롭게 등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등장한 벤처 중 일부는 전 세계의 IT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사실 현재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지역은 1950년대까지 하이테크 산업이 크게 발달한 곳이 아니었다. 이 지역은 주로 과수원이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당시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탠포드대학 등에서 수학한 우수한 인재들이 직장을 구하기 위해 동부로 떠나가는 상황이었다.

스탠포드 공과대학 학장이었던 터먼 교수는 이 같은 상 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졸업생들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해 샌프란시스코에 남아 산업을 조금씩 키워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과정에서 창업된 회사가 세계적인 전자기기 업체로 발전한 휴렛팩커드(HP)다. HP의 이후에도 창업 성공사례가 늘어나면서 학생들은 고무됐고 더 많은 회사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은 뒤에 자신의 회사를 창업하는 경우 도 많았다.

1958년 쇼클리반도체 출신의 과학자와 공학자 12명이 세운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바로 그런 기업이다. 또한 컴퓨팅 업계의 거두인 인텔은 다름 아닌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세운 기업이다. 이렇게 점차 하이테크 산업, 그중에서도 전기전자와 관련된 산업 지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급기야 실리콘밸리는 신기술에 기반한 벤처기업들의 인큐베이터로 성장했다. 그러자 법률자문사, 벤처 투자자, 경영자문사들도 실리콘밸리에 사무소를 내기 시작했다.

벤처 기업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회사로서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법률 관련 업무나 자금 조달 등 모든 기능을 대기업처럼 회사 내부에 구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틈새 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어쨌든 서비스 인프라까지 구축되면서 창업을 위한 진입 장벽은 더 낮아졌고, 이는 다시 벤처 창업을 부흥시켜 우수 인재를 끌어 모으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됐다. 신생 벤처기업들이 주축이 됐다는 부분에서 실리콘밸리는 기업 중심의 과학비즈니스벨트 성격이 짙다.

하지만 그 주변에 스탠포드대학과 UC 버클리라는 우수한 연구 중심 대학이 있으며 최근 부상하고 있는 산호세 주립대학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보스턴과 실리콘밸리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양쪽 모두 대학이 인력을 공급하고 기초 연구를 수행하 는 등 과학비즈니스벨트 구성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보스턴이 우수한 학생들을 배출하는 대학에 접근하기 위해 기업들이 연구소를 세우면서 과학비즈니스벨트가 형성됐다면 실리콘밸리는 창업에 좋은 환경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매력에 이끌린 우수 인재들이 스탠포드와 UC버클리에 진학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RTP, 보스턴 연구단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미국과학비즈니스벨트의 사례와 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해 살펴봤다. 여기서는 성공적인 사례들을 얘기했지만 그 이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실패 사례 혹은 성공하지 못한 사례가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선순환의 구조를 창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선순환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모든 단계를 완성시키려 하기보다는 선순환 고리의 일부분을 특별히 강화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신규 연구소 유치를 촉진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거나 혁신적 연구 결과를 상업적으로 도 성공시키기 위해 다양한 자문 서비스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동시에 형성될 수 있다면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파퓰러사이언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