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살아있는 식물도감 만들어 사회 환원”

해여림식물원 꾸민 나춘호 예림당 회장의 제 2인생 설계


나춘호 예림당 회장은 해여림식물원을 꾸며 세컨드 커리어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한 살아있는 식물도감을 만들고 싶다는 그를 만나 제 2의 인생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한정연 기자 jayhan@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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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3,000만 부가 팔린 ‘해리포터’ 시리즈보다 더 많이 팔린 아 동도서가 있다. 나춘호(69) 회장이 1972년 세운 아동도서 전문 출판기업 예림당의 ‘Why?’시리즈다. 2001년 이후 4,000만 부가 팔렸다. 이 책을 모두 쌓으면 높이가 600km다. 2744m인 백두산의 242배나 되는 분량이 다. 우리나라 과학학습만화 시대를 연 이 시리즈는 똥, 사춘기 등 90여 편 이 출간됐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인세가 거의 나가지 않는다는 것. 나춘 호 회장이 처음부터 모든 기획을 직접했기 때문이다. 유사 시리즈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와도 예림당에 밀릴 수밖에 없는 사업 구조다.
아동출판 불모지였던 한국 출판계에서 이런 대기록을 세운 나춘호 예 림당 회장을 6월 9일 오후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20분 거리인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상품리의 한 식물원에서 만났다. 국내 최초로 관광식물 원으로 등록된 해여림식물원이다. ‘해’가 지지 않는 ‘여주의 숲’이란 뜻으 로 나 회장이 이름을 직접 붙였다고 한다. 내부에 있는 ‘애기폭포’, ‘비밀 의 화원’과 같은 푯말도 그가 만든 이름. “제목 짓는 게 제 일이었잖아요. ‘Why?’ 시리즈 제목도 제가 지은 겁니다.”
해여림식물원은 나춘호 회장의 제2 인생이 펼쳐지는 곳이다. 나 회장 이 식물원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직접 전동카트 운전대를 잡았다. 좁고 경 사가 심한 길인데도 운전이 거침이 없었다. 나 회장은 겉보기엔 직선적이 고 강해 보이지만 실은 잔정이 많다. 집에서 기르던 개를 보러 가자더니 겨울에 태어났다고 ‘쿨’이라고 이름을 지은 풍산개를 한참 쓰다듬는다. 식 물원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둘째 아들 나도원 대표에게는 특히 엄한 회장 님이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식물을 잘 몰라서…” 하다가도 곳곳에서 벤치, 휴지통, 난간 등을 보면 “이게 다 아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슬쩍 나 대표 자랑을 한다.
해여림식물원은 대지가 19만8,000㎡(약 6만 평)이다. 나 회장은 2000 년 대지를 구입한 후 둘째 아들인 나도연 대표(식물원장)와 함께 직접 땅 을 일구고 나무와 꽃을 심기 시작했다. 식물원이 개장하기까진 5년이란 시 간이 걸렸다.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다. 나도연 대표는 “회장님이 직접 포크 레인을 몰고 공사를 하다가 전복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나 회장은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돼 식물원을 열게 되자 세컨드 커 리어를 시작했다. 예림당은 큰아들에게, 식물원은 둘째 아들에게 대표직 을 넘겼다. 그는 직접 일구다시피한 식물원을 떠나기 싫어 내부에서 기거 하기도 했다. 손님이 너무 많이 찾아와 양평으로 옮긴 후에도 집 앞 1,000 여 평 텃밭을 직접 일구고 있다. 식물과 흙을 좋아한다지만, 그저 취미라기 엔 19만8,000㎡ 대지에 3,900여 품종의 나무와 습지식물, 꽃을 심어야 하는 전문 식물원은 스케일이 너무 크다.
“1990년대에 어린이 식물도감을 냈습니다. 당시에는 사진 구하기가 어 려워 등산객에게 사진을 얻어가며 책을 펴냈어요. 저기 해당화 보이시죠? 꽃이 피기 전에 열매는 어떻게 열리고 씨앗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설명 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랍니다. 살아 있는 식물도감을 낸다는 생각으 로 (해여림식물원을) 시작했습니다.”
나 회장은 “출판도 악조건에서 시작했다”며 말을 이었다. 그는 “출판사 를 만들겠다고 하니 집사람이 ‘셋방살이 면하기 힘들겠다’고 하더라”고 당 시 상황을 털어놨다. 나중에야 출판협회장까지 지냈지만, 그는 사업 초기 에 엉뚱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어린이 책은 할부 로 사는 게 일반적이었다. 처음으로 할부판매 대신 서점에 어린이 도서를 직접 보급한 것도, 물류센터를 도심이 아닌 수도권에 두기 시작한 것도, 컴 퓨터 소프트웨어로 생산 재고관리를 한 것도 모두 그였다. 출판사와 식물 원 운영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힘들었을지 궁금해졌다.
“책은 사람을 만들고, 식물은 삶을 만든다고 합니다. 책은 머리로 만들 지만 식물은 손으로 만드는 겁니다. 3,000종이 있다면 사람 손이 3,000 번 가야 합니다. 식물원 만들기가 당연히 더 어렵습니다.”
예림당은 2009년 6월 웨스텍코리아를 통해 우회상장했다. 꾸준히 늘 어난 연매출은 2009년 507억 원에 이어 지난해 660억 원을 기록했다. 영 업이익도 올해는 170억 원으로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Why?’ 시리즈의 수출 라이선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평균 5만 명 수준이었던 해여림식물원의 연 방문객 수도 올해는 크게 꾸준히 늘고 있다. 2009년 4만2,999명에서 2010년 6만2,602명으로 크 게 늘어났다. 올해에는 5월 말까지 4만6,087명이 다녀갔다. 식물원의 월 유지비용은 약 6,000만 원. 나춘호 회장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현상유지 가 가능하지만 겨울을 넘기려면 아직도 사비를 털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식물과 함께 사는 법을 이곳에서 배웠으면 한다는 소망 을 밝혔다. 모든 지구상의 존재는 진화의 과정 속에 있고, 자신도 진화의 일면이라고도 했다. 나 회장은 “내가 사회에 뭔가 이바지하는 것이 곧 내 자신의 흔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를 위한 사회 환원 차원에서 식물원을 봐달라는 주문이었다.
‘천연지’라고 그가 이름 붙인 작은 연못을 함께 보면서 질문을 해서일 까. 나 회장은 제일 좋아하는 식물로 수련을 꼽았다. “수련은 흙탕물에 들 어가도 물을 정화시킬 수 있는 식물입니다. 연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수련 과 어련은 밤에는 잎을 오므립니다. 그중에서 잎사귀가 말발굽처럼 살짝 갈라진 게 수련입니다.”
나 회장은 기자 일행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 전동카트를 수시 로 멈춰 세웠다. “이거 보이세요? 줄기가 세 갈래로 나죠? 그러면 잎은 9개 가 되니까, 이름이 삼지구엽초예요.”
나 회장은 애초에 식물원을 지금처럼 크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여 주군과 경기도가 관광지 조성 차원에서 식물원을 육성하겠다고 제안했 다. 어린이를 위해서, 그리고 식물도감의 살아 있는 부록을 만들기 위해서 그는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역시 사업가였다.
“돈을 따라가면 아무 일도 못 합니다. 제대로 된 세컨드 커리어를 가지려 면 특히 명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2000년부터 식물원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군요. 하지만 아직도 사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도 먼 훗날엔 예림당보다 해여림식물원이 더 크게 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 회장은 “젊고 건강하니 첫 커리어에선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세컨드 커리어에선 결코 실패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이라도 미리 준비하고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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