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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지배하는 숫자

천문학적 단위가 난무하는 과학 기사들, 하지만 행복의 파랑새가 멀리 있지 않듯 우주에서 제일 중요한 숫자는 의외로 우리 주변에 있는 작은 수들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꼭 기억해야 할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숫자 8개를 알아본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1. 파이 (π)
파이는 원주율 혹은 π라는 기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구하는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다.

원의 둘레를 지름으로 나누면 그만이다. 누구나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숫자라 식상할 만도 하지만 우주공간에 있는 모든 구 모양의 항성과 행성, 심지어 사람의 눈과 같은 원형 또는 구형 물체에 관련된 계산은 파이의 도움 없이는 절대 구해낼 재간이 없다. 하다못해 매일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바퀴를 설계할 때도 파이는 필수불가 결한 숫자다.

파이는 ‘아르키메데스 상수’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파이의 대강의 값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파이는 인류에게 알려진 지 오래된 수다.

파이의 정확한 값은 3.141…이다. 정확한 값은 모른다. 파이는 무리수이자 초월수인 탓이다. 이 사실이 밝혀진 것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볼 때 그리 오래되지 않은 1882년. 그 이전까지 무수히 많은 수학자들이 파이의 정확한 값을 구하려는 무모한(?) 일에 도전했다가 실패의 쓴 잔을 들었다. 이 점에서 파이는 수학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제멋대로 가지고 논 숫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기도 한 파이 값을 최대한 정확히 구하기 위해 현대의 수학자들은 슈퍼컴퓨터를 동원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파이 값은 소수점 아래 5조 자리가 최고인데 일본의 한 회사원이 직접 제작한 PC로 90일 7시 간 동안 계산했다고 한다.

2. 자연상수 e
자연상수 e는 탄젠트 곡선의 기울기에서 유도되는 특정한 실수(實數)다. 처음 정의한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이름을 따 ‘오일러의 수’로도 불리며 로그 계산법을 도입한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존 네이피어를 기려 ‘네이피어 상수’라고도 한다.

유도하는 식은 x가 무한대(∞)로 갈 때 lim (1+1/x)x 며 근사값은 2.71828…이다. 이 역시 무리수이자 초월수이기 때문에 정확한 값은 알 수 없다.

자연상수 e는 흔히 복리 이자를 계산하는 용도로 쓰인다고 알려져 있지만 학문적으로는 이와 비교 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 우주 속의 모든 물체를 특징짓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실제로 우주의 모든 물질과 공간은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주파수를 가진다. 예를 들어 유리잔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바로 유리잔의 주파수다. 주파수가 없는 물질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각 물질이 가진 주파수는 자연상수 e를 이용한 자연로그에 의해 계산이 가능하다.

3. 황금비율 (φ)
황금비율을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로 칭하기에는 다소 이견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합당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연계에 존재하는 많은 물체들에 황금비율이 적용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로와 세로 비가 1:1.618…인 황금비율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장 안정적이고 미학적 감정을 느끼는 비율이기 도 하다.

기원전 3~4세기의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가 처음 정의한 황금비율은 이렇게 구한다. 하나의 선분이 있을 때 그 선분을 둘로 나눠서 긴 쪽을 a, 짧은 쪽을 b라고 하자. 이때 a의 길이 대비 선분 전체(a+b)의 길이 비율, b의 길이 대비 a의 길이의 비율이 동일하도록 a와 b의 길이가 나눠진 상태가 바로 황금비율이다.

황금비율은 자매품(?)도 있다. 피보나치 수열과 거기에서 파생된 피보나치 나선이다. 피보나치 수열은 1을 첫 번째와 두 번째 숫자로 정하고 앞의 두 숫자 합을 다음 수의 값으로 하는 수열이다. 따라서 1, 1, 2, 3, 5, 8, 13… 식으로 무한히 값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피보나치 수열의 n번째 수를 n-1번째 수로 나눈 값은 언제나 황금비율의 값과 상당히 비슷하다. 같은 이유로 피보나치 나선 또한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앞줄과의 간격이 앞줄과 그 앞줄의 간격보다 약 1.618… 배씩 늘어난다.

이게 무서운 이유는 황금비율과 피보나치 나선이 주변 어디에나 적용돼 있기 때문이다.

방문, 창문, 담뱃갑, 신용카드, 그리스 신전 등이 황금비율로 이뤄져 있으며 암모나이트, 앵무조개 등 자연계의 대다수 나선들이 피보나치 나선에 부합한다. 인체, 자연, 패션, 미술, 음악, 경제 등 어느 분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황금비율에 대해 깊이 알면 알수록 매트릭스 속에 내던져진 네오와 같은 시각으로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4. 1 (one)
수학의 세계에서 숫자 1은 명실공히 신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우선 1은 다른 모든 숫자를 재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 길이다. 그리고 세상의 정보를 1과 0이라는 두 숫자로 해석하는 이진법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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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1만이 지닌 특성은 얼마든지 있다. 1은 소수도, 합성수도 아니며 모든 수의 약수다. 또한 첫 번째 삼각수이자 첫 번째 제곱수이며 첫 번째 세제곱수, 첫 번째 오각수이기도 하다. 0 번째와 1번째 카프리카 숫자며 확률론에서는 어떤 사건이 반드시 일어날 때의 확률을 의미한다. 특히 어떤 수를 곱해도, 혹은 나눠도 항상 그 수 자신이 되는 숫자다.

1이라는 숫자 없이는 인간은 숫자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도무지 질서 있게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1을 발명한 것일지 모른다.

5. 플랑크 상수 (h)
플랑크 상수는 수학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경배해 마지않는 상수다. 플랑크 상수의 정체를 알려면 고전 물리의 문제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19세기 후반 고전 물리는 흑체복사(blackbody radiation)와 관련된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고전 물리의 예측 결과와 흑체복사의 실험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던 것. 외부와의 에너지 교류가 없는 상자 안에 흑체와 빛을 넣고 상자를 닫으면 흑체는 빛을 흡수해 파장의 형태로 방출하는데 고전 물리의 등분배 법칙에 의하면 흑체가 방출하는 에너지는 모든 파장에 골고루 나눠져야 한다. 그래서 아주 미량의 빛을 넣어도 상자를 열 때는 X선이나 감마선들이 나와야 했다. 하지만 실제 그토록 높은 파장의 빛은 방출되지 않았다.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이의 해결을 위해 ‘에너지는 주파수에 비례한다’고 가정했다. 흑체가 방출하는 에너지는 양자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입자의 에너지와 드브로이 진동수의 비(E/f)를 구해 나온 값인 초당 6.626068×10-34 줄(J)을 에너지와 주파수를 연결해주는 비례상수인 ‘플랑크 상수(h)’라 불렀다. 이를 이용하자 앞선 실험의 결과가 제대로 설명됐다. 줄은 에너지의 양을 표기하는 최소단위며 플랑크 상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단위다.

어쨌든 플랑크 상수를 통해 과학 영역에 양자역학이 추가됐고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우주의 에너지 흐름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레이저 기기에서부터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에 이르는 모든 전자제품의 발전도 가속화됐다.

6. 0 (zero)
0은 -1보다 크고 1보다 작은 정수다. 수를 표기하기 위한 숫자이기도 하다. 모든 수에 0을 더한 값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0은 또 수직선과 좌표계의 영점이며 음의 값이 없는 양(量)을 나타낼 경우에 ‘무(無)’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양이 존재하 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0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어떤 공학도, 기계 문명도 존재할 수 없다.

이런 특성을 가진 0은 가장 중요한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발명되는데 수 천년이나 걸 렸다. 실제로 0이라는 숫자가 처음 등장한 것은 서기 876년 인도였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0의 사용을 거부했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표기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만약 로마인들이 0의 정확한 개념과 표기방법을 확립했더라면 아마도 문 명을 급속도로 발전시켜 인류 최초의 수소폭탄을 완성, 세계정복을 실현 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0은 또한 모든 물체의 이동이 정지되는 온도, 즉 운동량과 에너지 및 엔트로피가 제로가 되는 절대 0도(0K, -273.15℃)에도 쓰인다. 이 온도에서 모든 기체는 액화된다. 과학실험의 경우 원자에 레이저를 쏴서 온도를 0K에 근 접하도록 낮추는 방식으로 움직임을 둔화시킬 수 있다. 0K에 가까운 상태에서는 초전도 현상과 초유동 현상도 나타난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실험을 통해 0K를 구현한 적도, 관측한 적도 없다. 0K는 계의 에너지 상태가 완전히 확정된 상태를 말하는데 이때 시각의 불확정성은 무한이 되기 때문이다. 0K를 만드는 데는 무한대의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꼭 여기에 해당된다.

7. 허수단위 (i))
허수단위 i는 제곱을 했을 때 -1이 나오는 숫자, 다시 말해 -1의 제곱근이다. 명칭에서 느껴지듯 이는 그 값이 절대 존재할 리가 없는 허수(虛數)다. 양수와 음수는 모두 제곱을 하면 양수가 되며 0의 경우에도 -1이 아닌 +1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無)를 의미하는 0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듯 허수단위 i도 수학자들이 매우 좋아하는 없어서는 안 될 숫자의 하나다. 인간의 사고 중에는 실존하지 않아 상상력이 필요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탓이다.

즉 아직 일어나거나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충분한 모든 것, 예를 들어 채무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둘 때 허수단위야말로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숫자다.

인간은 너무나 아둔해 수학의 모든 영역을 머리로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이 그 영역에서 실수하지 않게 도와주는 가이드가 필요하며 가이드 중에서 제일 크고 확실한 것이 바로 허수단위라 할 수 있다. 물론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제곱을 했을 때 -1이 되는 수 따위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허수단위의 개념은 전자석, 제어이론, 양자역학 등의 기반이 되어 준다. 실존하지는 않지만 마치 제우스의 번개와도 같은 만능 무기가 허수단위 i인 셈이다.

8. –1 (minus one))
이제까지 수학의 가장 중요한 상수들을 살펴봤다. 하지만 -1이야말로 이들 상수를 모두 쥐고 흔들 수 있는 막강 비밀병기다. 무엇 때문에 그럴까. 바로 오일러의 등식 덕분이다.

오일러의 등식은 드 무아브르의 공식을 복소수까지 확장한 것으로서 누구나 쉽게 외울 수 있다. 오직 e πi+1=0, 또는 eπi=-1의 형태로 끝난다.

구체적으로 이 등식은 실수 x에 대해 eix=cos x+i sin x가 성립해 x에 π를 대입하면 cos π=-1, sin π=0이므로 eπi+1=0 또는 eπi=-1이 된다는 식으로 유도된다.

이 등식의 위력은 e, π와 같은 무리수와 i와 같은 허수, 즉 도저히 정확한 값을 구할 수 없는 수들을 버무려 -1이라는 하나의 값으로 만들어 냈다는 데 있다. 물론 엄밀성을 무제한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오일러의 등식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1에 무한히 수렴하는 무한소수인 0.999999…가 이론적으로 1과 같다고 여겨지지만 사실상 완벽한 1은 아닌 것과 동일한 이치다.

하지만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1이 라는 테두리 안에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상수, 결코 만만치 않은 상수들을 몰아넣은 것은 분명 오일러의 뛰어난 업적이다. 또한 이 등식은 지수, 곱셈, 덧셈, 등호로 나타나는 수학의 중요한 연산 4개도 한 등식 안에 넣 었다. 그래서 수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 꼽히고 있다.



과학 기사에서 10자리가 훌쩍 뛰어넘는 숫자들을 만나는 것은 흔하디흔한 일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어렵고 까다롭게 느끼는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주를 움직이고 표현하는 데 기본이 되는 숫자는 그런 큰 숫자들이 아니다. 그리고 제 아무리 큰 숫자라도 결국 매우 많은 1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그런 점을 깨닫는다면 어렵게만 느껴졌던 과학과 수학에 조금은 더 편안히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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