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에 그려진 인물과 동물, 유적지, 상징물들의 면면은 그 나라를 이해할 최고의 역사 교과서다. 이는 과학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지폐 속에 등장하는 과학자와 과학기기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좁게는 한 국가, 넓게는 인류의 과학 역사를 알 수 있다.
김청한 기자 best@hmgp.co.kr
예로부터 우주는 신비의 영역이었다. 쏟아질 것만 같던 은하수, 예술 작품 같은 오로라, 밝고 은은한 달 등은 고대 사람들에게 경이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 우주를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과학자가 바로 노르웨이 200 크로네 화폐의 주인공, 크리스티안 비르켈란이다. 비르켈란은 오로라의 발생 원리를 밝혀내고, 태양의 내부구조 및 흑점을 연구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겨 오늘날 우주 연구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최초의 우주 실험
1867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난 비르켈란은 기초 학업을 채 마치기도 전인 18세에 과학 논문을 작성할 정도로 재주가 많았다. 이후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서 전자기학을 연구하던 그는 28세의 젊은 나이에 15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노르웨이 아카데미의 정식 회원으로 선출됐다. 또한 1898년 왕립 프레데릭대학의 교수에 임명됐는데 이는 당시 역대 최소 임용 기록이었다. 때문에 그는 소년 교수라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비르켈란이 이른 나이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전자기학에 기반해 우주연구에 대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1898년부터 1917년까지 프레데릭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극지방 오로라와 지구자기학 연구를 통해 우주연구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특히 1901년 비르켈란이 직접 고안한 연구실은 그 정점이었다. ‘테렐라 연구실’이라 불렸던 이 연구실에서 그는 전자기적 조작이 가능한 1m 가량의 상자를 활용, 역사상 처음으로 오로라를 재현하는 등 각종 우주현상들을 실험했으며 이는 그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됐다.
연구 위해 극지방 3번 탐험
비르켈란은 단순히 실험실에만 틀어박혀 연구에 골몰했던 과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우주의 움직임과 오로라 등을 더 자세히 파악하고 전자기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1897년부터 1903년 사이 3번에 걸쳐 탐험대를 구성해 극지방 탐사에 나선 행동하는 과학자였다.
1899년에는 노르웨이에 있는 해발 900m의 산에 오로라 관측소를 만들기도 했다. 평소 오로라가 생길 때 자기력선을 따라 강한 전류가 흐른다고 추측했던 그는 실험실 연구와 현장 탐사를 통해 결국 전자기 흐름이 극지방의 공통된 현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진공상태에서 음극선의 영향을 연구, 오로라가 태양풍에 의해 발생한 것임을 증명했다. 그는 오로라 연구에 대한 내용을 담아 책을 발행했으며, 이는 무려 800페이지가 넘었다.
현장 탐사를 끝낸 1906년 이후에는 다시 테렐라에서의 연구에 몰두, 전자기 이론과 실험을 통해 우주 현상 및 태양의 움직임 등을 규명하는 데 힘썼다. 당시 그의 실험실에서는 태양, 토성의 고리에서부터 오는 입자 방사선에 대한 영향까지 측정했다고 하니,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뒤늦게 인정받은 선구자
이렇게 우주 연구의 신기원을 이룩한 비르켈란이지만 과학계에서는 의외로 그를 크게 인정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가장 영향력 강한 과학자의 한명이었던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로드 켈빈이 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기 때문 이다. 그래서인지 생전에 4번이나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1917년 일본에서 자살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우주에 대한 그의 연구는 20세기 후반 우주선이 실제로 우주에 진출하면서 뒤늦게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된다. 노르웨이 정부는 그에게 ‘세계 최초의 우주 과학자’라는 타이틀을 수여했다. 결국 생전에는 다소 빛이 바랬지만 1994년 200 크로노의 모델로 선정돼 오늘날까지 노르웨이의 국민 과학자로 인기를 얻고 있다. 200 크로네 지폐의 뒷면에는 노르웨이의 자랑이자, 비르켈란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오로라가 그려져 있다.
과학자: 크리스티안 비르켈란
국가: 노르웨이
지폐: 200 크로네
신비한 빛의 장막, 오로라
아름다움으로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는 오로라는 태양풍의 영향에 의해 생기는 현상이다. 태양풍은 태양의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는 코로나가 고온 때문에 팽창한 것으로 여기에 포함된 하전입자가 지구까지 날아왔다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로 진입, 지구 대기의 공기와 충돌하게 된다. 이때 공기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 및 이온이 하전입자를 만나면 에너지준위가 올라가는데 이 입자의 에너지준위가 다시 떨어지면서 빛을 방출한다. 오로라는 이렇게 방출된 빛이다.
때문에 형형색색을 자랑하는 오로라의 색은 하전입자가 충돌하는 원자의 성질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오로라에서 볼 수 있는 녹색과 적색은 공기의 주성분인 산소, 청색과 핑크색은 질소 분자 이온이 방출하는 것이다.
오로라는 주로 남북 양극지방의 지구자기위도 65〜70도의 범위에서 관찰할 수 있으며 이 지역을 오로라대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오로라를 관찰할 수 없다. 북반구에서 오로라를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곳으로는 알래스카, 캐나다 북부, 그린랜드 남단, 아이슬랜드,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 및 북극해 연안의 시베리아 지방이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