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벗이 남긴 소중한 도전정신


지난달 잡지 마감에 혼을 빼고 있을 무렵 네팔로부터 비보 하나가 날아들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코리안 신루트를 개척하던 박영석 대장과 그의 대원 두 명이 실종됐다는 소식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33년 동안 우정을 쌓아온 터라 박 대장의 실종은 내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3일 동안 그의 빈소를 찾아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야만 했다.

참 배울 게 많은 친구였다. 학업 성적은 늘 바닥권을 헤맸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감과 열정에 충만해 있었다. 엄청난 고통이 그를 짓눌러도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등반을 할 때도 남들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짓만 골라 했다. 1년이라는 최단기간 동안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정상에 6번이나 올라 기네스북에 오르고,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등정해 아시아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무모하고 과감한 도전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기록 뒤엔 참혹한 실패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20여 년간 강행해 온 숱한 등반 과정에서 많은 동료 대원들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야 했고, 자신도 100m 이상을추락해 얼굴뼈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공군 소장 출신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산악인이 된 이후에는 집으로부터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위로 누나 4명을 둔 장남이 위험한 산행에 나서는 걸 가족들이 결코 반길 리 없었다. 그는 해외 원정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심야에 건설현장 자재를 지키는 일까지 했다. 초창기 나와 함께 스폰서를 구하러 다녔을 땐 모 백화점에서 육포 10kg을 주며 정상에서 사기(社旗)를 들고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달랑 고기 몇 점을 주고 사지로 떠나는 박 대장에게 회사 홍보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셈이었다.

무명의 설움을 겪을 때부터 그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왔기에 나는 그의 탐험정신과 도전의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안다.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에 모두 오른 뒤에도 그는 "동물원의 호랑이는 맹수가 아니다"라며 남극점, 북극점,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 등으로 탐험을 이어갔다. 그는 이번 안나푸르나 원정을 떠나기 전 서울의 한 냉면집에서 소주 잔을 기울이며 몸 걱정을 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릎이 안 좋아 산행하기가 점점 힘들어. 그래도 육신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진 계속할 거야. 탐험가가 강연이나 하러 다니면 안 되잖아. 계속모험을 해야지."그는 걸핏하면 집을 비우는 자신을 대신해 두 아들을 잘 키워준 아내 홍경희 씨가 너무 고맙다는 말도 남겼다.

그의 몸은 설산에 묻혔지만, 그의 도전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나는 믿는다. 특히 한국의 기업인들은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의 강한 도전의지를 배워야 한다. 지난달 소개한 짐 콜린스의 신간 '위대한 선택(Great by Choice)'에 나오는 일화도 이 같은 교훈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1911년 비슷한 시기 남극점 탐험에 도전한 로날드 아문젠과 로버트 스콧의 사례에서도 매일 꾸준히 역경을 뚫고 진군을 강행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렸다는 것이다. 모든 위대한 기업의 성장 배경에는 이토록 집요하게 도전과 탐험을 강행한 의지가 있었다고 짐 콜린스는 강조했다.

나는 '철저하게 부서져 봐야 새로운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박영석 대장의 신념도 존중한다. 그는 50%, 60%가 아닌 100% 최선을 다한 후 실패를 해야 그 실패의 본질을 이해하고 미래의 승리를 꾀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나는 여기에도 우리 기업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교훈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위험한 산악이나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는 모두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 존재해 필연적인 성공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실패했더라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최선을 다했다면 다음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자양이 된다는 얘기다.

나는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말년을 함께 보내려 했던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는 슬픔이 시시각각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떠난 친구의 영혼에게 말해주고 싶다. 평생탐험으로 지친 몸 이젠 편히 쉬라고. 지난 33년간 영석이 네가 있어 나는 정말 행복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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