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난제를 풀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산타크루스캠퍼스의 생물학자 위니프레드 프릭 박사와 보스턴대학 톰 쿤츠 박사는 독특한 부류의 사람들과 동맹을 맺었다. 바로 기상연구가들이다. 오클라호마대학 대기물리학자 필립 칠슨 박사와 미국 국립재해기상연구소(NSSL)의 레이더 공학자 켄 하워드 박사가 그 주인공.
이번 동맹은 미국 기상청이 자국 전역에서 운용하고 있는 156기의 도플러레이더 네트워크 '차세대 기상레이더(Nexrad)'가 수집한 막대한 데이터를 박쥐 연구에 활용하기 위함이다. 이들 레이더는 하루 24시간, 5~10분 간격으로 지평선 0.5~19.5도 범위를 스캔한다. 그리고 그 과 정에서 기상 정보 이외의 정보가 다량 수집된다. 레이더는 상공을 날아다니는 모든 물체, 즉 곤충과 새, 풍력 터빈, 저공비행 항공기, 산불 연기, 별똥별, 추락하는 NASA 우주선, 심지어 박쥐까지 탐지하기 때문이다.
하워드 박사에 의하면 레이더 공학자들은 이처럼 날아다니는 동물들로부터 나온 신호를 '바이오클러터(bioclutter)'라 부른다. 해석하자면 '불필요한 생체신호'다.
"기상학적 관점에서 바이오클러터는 잡신호에 불과해요. 기상알고리즘을 오염시켜 분석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죠. 레이더 상에는 폭풍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동굴 밖으로 쏟아져 나온 박쥐 떼의 신호로 밝혀진 사례도 많습니다."
TV에 나오는 기상도의 대부분은 바이오클러터를 제거한 것이다. 원래의 이미지는 훨씬 복잡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밤하늘에도 날개 달린 동물들이 엄청나게 많이 날고 있는 탓이다. 이는 레이더 상에 무수한 녹색 점들로 표시되며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 만약 해질녘에 동굴 주변에서 녹색 점들이 잔뜩 보인다면 그것은 박쥐일 개연성이 높다. 다시 말해 미 기상청이 보유한 20년간의 기상데이터 1.2페타바이트(PB, 1PB=1,024테 라바이트)에는 20년간 박쥐들이 날아다닌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이들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생태연구들은 이미 시작됐다. 쿤츠 박사에 의해 '대기생태학(Aeroecology)'이라는 학문 영역도 탄생했다.
일례로 프릭 박사는 날씨가 건조해 곤충이 많지 않은 해에는 텍사스주의 특정 동굴에 사는 브라질산 자유꼬리박쥐가 평년보다 일찍 먹이 사냥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먹이가 많지 않으니 더 일찍 집을 나서는 겁니다. 반면 비가 많이 내려 곤충이 많을 때는 출발시간도 늦어져요."
프릭 박사는 이 연구를 통해 곤충들이 폭풍성 기상전선을 따라 개체수가 많아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바람이 곤충들을 몰아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박쥐들은 바람이 만들어준 이 뷔페 테이블을 자주 찾았다. 바람이 박쥐의 사냥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명한 증거다.
"지난 20년간의 모든 자료를 연구하고 싶어요. 그러면 자유꼬리박쥐들이 예전처럼 겨울에 남쪽으로 이주하는지, 아니면 그냥 텍사스에 머무는지도 알 수 있겠죠. 지구온난화가 박쥐들의 이주 패턴에 미친 영향이 드러나는 겁니다."
과학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기상데이터를 활용한 각 동굴별 박쥐의 개체수 파악이다. 아직 박쥐와 새, 곤충을 명확히 구분해주는 수준의 알고리즘은 없지만 개발될 여지는 충분하다. 이때가 되면 기상학자와 생물학자는 한층 올바른 분석이 가능해진다.
이와 맞물려 현재 레이더 공학자들은 연구 자료로서 기상데이터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상상황만 표시된 기상도처럼 동물들만 표시된 동물 비행도를 만드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려면 각 동물들이 레이더에 어떻게 보이는지 아는 것이 먼저지만 말이다.
작년 여름 프릭 박사와 칠슨 박사는 토네이도 추적용 이동식 레이더 장비로 서부 텍사스에서 박쥐 떼를 추적 관찰했다. 적외선 카메라로 개체수를 파악했고 외부소음과 음향의 반사가 거의 없는 무향실(anechoic room)에서 박쥐의 레이더 신호 특성을 분석하기도 했다. 하워드 박사는 이 같은 노력이 생물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야간투시경이나 레이더를 사용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무수한 생명체의 활동들이 밤하늘에서 펼쳐집니다. 육안 관찰에 의지해서는 이들을 제대로 알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