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날 다음 일은?

금융업계가 시위대에 포위당한 가운데 세계 경기는 둔화되고 업계에는 새로운 규제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다시 호황국면에 진입하려면 주요 기업부터 뼈를 깎는 혁신에 돌입해야 한다.

2008년 말 금융업계의 대격변 속에선 밝은 면이라고는 찾기 힘들었다. 위기는 그 어떤 예상보다 갑작스럽게 닥쳤고, 앞으로 아마겟돈Armageddon*역주: 성서에서 지구 종말을 앞두고 벌어진다는 선과 악의 대결이 펼쳐지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니 프랭크Barney Frank만은 낙관적이었다. 그는 한 소비자 로비 단체에서 “장담하건대 내년(2009년)은 뉴딜 시대 이래 공공정책 분야에서 최고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큰 정부 지지 성향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바니 프랭크 위원장의 명랑한 전망은 월스트리트에 있는 누구에게도 희소식이 될 수 없었다. 프랭크의 말은 타이밍만 빼고는 옳았다. 도드 프랭크 법Dodd-Frank Law*역주: 미 상원 크리스토퍼 도드 의원과 하원 바니 프랭크 의원의 이름을 딴 금융개혁법으로, 대공황 이후 가장 강력한 규제안으로 평가됨은 프랭크가 언급한 시기보다 늦은 2010년에야 제정되었다. 도드-프랭크 법은 뉴딜시대 이래 가장 전방위적인 월스트리트 규제법안으로, 얼마나 광범위하냐 하면 지난 75년간 연방 차원에서 금융 업계에 가한 모든 규제를 합친 것과 거의 맞먹을 정도다. (이 빛나는 업적을 세운 프랭크는 내년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을 법한 이 법안은 사실 금융업계가 입은 이중 타격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나머지 하나는 최악의 경제상황이다. 미국의 성장세는 더디고, 아시아의 성장세는 더뎌지고 있고, 유럽은 심각한 재정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마겟돈은 다시 한 번 슬금슬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의 파괴력을 합치면 현재 월스트리트가 처한 상황이 3년 전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변화는 투자자에게는 혜택인 동시에 부담이다. 전방위적인 규제는 원래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지만, 현실은 소비자들에게 혜택인 동시에 부담이다. 새로 마련된 규제가 완성되려면 한참 남았는데도 월스트리트는 벌써 점점 작아지면서 모험성을 잃어 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는 멸시도 받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대가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는지 몰라도 그들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커뮤니케이션 기업 에델만이 최근에 발표한 신뢰도 지표조사Edelman Trust Barometer 결과에 따르면, 세계에서 신뢰도가 가장 낮은 3대 업종이 보험, 은행, 그리고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서비스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금융업계의 평판이 엉망이 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재계 상황이 최악이라는 점이다.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고했던 애널리스트 메레디스 휘트니Meredith Whitney는 “대기업은 지나치게 팽창해서 일부 경기하강 지역에선 터지기 직전까지 몰렸다”며 “지난 몇 년 동안 월스트리트 수입의 70~80%는 미국과 유럽에서 나왔다. 바로 그 두 지역이 현재 수년에 걸친 디레버리징 과정을 밟고 있다. 기업들에겐 엄청난 역풍이 몰려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초저금리 기조도 골치 아픈 문제라니 퍽 놀랍다. 일각에선 연방준비 이사회의 저금리 유지 이유가 저비용 자금조달을 지원해 은행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은행이 그렇게 조달한 자금을 빌려 줄 때 적용되는 금리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리 사이의 스프레드를 통해 은행업계 용어로 순이자수입net interest income이라는 것이 창출되는데, “이런 환경에선 그것이 나오기가 무척 어렵다”는 게 한 전직 은행 고위급 임원의 설명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스프레드가 바닥으로 직행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다. 월스트리트에선 사실 대다수가 장기금리 인상을 바라고 있다. 규제 폭풍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도드 프랭크 법안에 따라 새로 만들어야 할 규정이 수백 가지인데, 워싱턴 정가는 움직임이 한참 느리다. 월스트리트의 공격적 로비 때문에 작업이 지연되는 측면도 있지만, 어쨌든 완성되려면 앞으로도 2년에서 5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무엇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그리고 월스트리트가 왜 이토록 이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는 새 규제책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이른바 ‘볼커 룰 Volcker Rule’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볼커 룰은 한 마디로 간단히 설명된다. 바로 은행이 자기 계좌로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이다. 실제로는 현재 마련된 초안이 288쪽이며, 여기에는 은행업계를 비롯해 누구라도 대답할 수 있을 질문이 1,000개 이상 담겨 있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내년쯤 최종 규제방안을 발표하면 은행업계와 FDIC 사이에 그 의미를 놓고 논쟁이 시작될 것이다. “현재 초안대로라면 볼커 룰이 업계 판도를 완전히 뒤집을 것”이라고 휘트니는 말한다. 볼커 룰이 도입되면 은행은 단순히 자기거래proprietary trading*역주: 약어로 프롭 트레이딩 prop trading. (은행이 고객의 돈이 아닌 은행 돈으로 수익 창출을 위해 증권이나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시스템을 금지당하는 차원을 넘어서 혹시 소비자가 찾을 경우를 대비해 증권을 재고로 보관할 수도 없다. 소비자가 먼저 증권을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 “수첩에 모든 것을 다 적을 수는 없으니 주문을 하려면 직접 나가서 건수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되면 업무가 엄청나게 느려진다”고 휘트니의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새 규제방안에도 문제가 있다. 특히 규제당국이 강요하는 자본금 요구조건이 까다로워진다. 도드 프랭크 법안을 통해 태어날 완전히 새로운 규제 체제의 효과는 아직도 거의 예측이 불가능하다.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는 이제 막 출범했고, 소비자보호국(CFPB)은 아직 국장도 임명되지 않았다. 이 단체들을 비롯해 아직도 마련되지 않은 수백 가지 새 규제방안은 월스트리트의 활동 범위를 좁히고 업무 속도를 떨어뜨릴 것이다. 이것이 진짜 규제방안의 의미다. 이런 환경에서 월스트리트는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을까? 끊임없이 들리는 말은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다. 레버리지가 이미 많이 된 자기거래보다는 증권인수 수수료, M&A 자문, 투자운용 등으로 수익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순자산 규모가 큰 개인 고객에게 좋은 소식은 앞으로 이들이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한 금융기업의 전직 고위임원은 “모든 기업들이 자산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자산운용은 수익률도 높고 변동성도 낮은 사업이다. 하지만 기반을 다지기가 어렵다. 부자 고객들은 자산운용 자문인이 대표하는 회사보다는 자문인 자체와의 인연을 훨씬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최고급 인재를 영입해 훌륭한 자문인 팀을 꾸리려면 시간이 걸린다. 월스트리트에게 더 큰 도전과제는 금융업이 세상의 중심 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이다. 2005년만 해도 업계 1위 씨티그룹 Citigroup과 2위 BoA를 비롯해 ‘가장 가치 있는 은행Most Valuable Banks’ 리스트 상위 10위 중 절반인 다섯 곳이 미국 은행이었다. 톱10 중 중국 은행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1위 중국공상은행(ICBC)과 2위 중국건설은행(CCB)을 비롯해 10위권 은행 중 네 곳이 중국계다. 10위권에 오른 미국 은행은 네 곳으로 줄어들었다. 그중 가장 순위가 높은 웰스 파고Wells Fargo는 4위를 기록했다. 업계 거대기업인 칼라일 그룹Carlyle Group 사모펀드의 데이빗 루빈스타인David Rubenstein 대표는 이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미국에게 향후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할 능력이 있을까? 1960년에는 전 세계 GDP의 46%가 미국에서 창출되었지만, 오늘날에는 21%만이 미국에서 나온다. 그런데도 세계 투자은행의 지분 100%를 미국이 계속 갖고 있을 수 있을까?”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No’임이 명백하다. 보다 폭넓게 보면 월스트리트에겐 고통스런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 몇 년 전만 해도 영예로운 호황을 누렸던 주요 기업도 이제는 자본비용을 다 건지지 못한다. 이들은 무너지고 있고, 누가 보더라도 앞으로 얼마간 그들의 미래는 낮은 수익률과 낮은 이윤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기업의 규모도 줄여야 하고, 비용도 삭감해야 하고, 호사스런 관행도 고치고, 직원들 월급도 깎아야 한다. 영광의 세월은 이제 끝났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주목할 사실이 있다. 월스트리트가 누린 영광의 세월은 사실 지금까지도 10년에 한 번씩, 시계바늘이 제자리에 돌아오듯 끝났었다. 10년간 침체에 시달린 후였던 70년대 말에도 그랬고, 기업인수와 LBO*역주: 차입금을 이용한 기업 매수가 뜸해졌던 80년대 말과 닷컴버블이 터진 90년대도 그랬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난 이번 2000년대 말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때마다 영광의 세월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월스트리트에 다시 찾아왔다. 이와 같은 과거 패턴은 업계에겐 희망적이다. 하지만 바니 프랭크와 그의 발의에 따라 새로운 규제체제를 형성할 규제 군단에겐 걱정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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