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스릴에 목숨을 건 사람들

창시자들이 말하는 익스트림 스포츠의 역사

PART Ⅰ
극한 스포츠의 원조
[1954 — 1980]
양치기 농부가 강을 거슬러오를 수 있는 강력한 엔진을 개발

20세기 후반 뉴질랜드 사람들은 위험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을 창안했다. 발목에 고무줄을 묶은 채 높은 다리에서 뛰어내렸고 보트도 없이 급류에 몸을 내던졌다. 대형 연에 몸을 묶어 하늘을 날기도 했다. 이 무모해보였던 도전은 이제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는 야외 레저스포츠의 대명사가 됐다. 선구자들의 용기 덕분에 많은 현대인들이 하늘을 날고, 산에서 뛰어내리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짜릿하게 날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들 익스트림 스포츠를 직접 개발한 창시자들의 입을 통해 발명의 배경과 향후 전망을 점쳐본다.



트레버 갬블 [숏오버 제트 보팅(shotover jet boating) 창시자] : 혹시 철조망 정신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헨리 반 애쉬 [번지점프 공동 창시자] : 200년 전 뉴질랜드로 이주한 유럽인들은 쾌활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었죠. 이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냈어요.

조지 데이비슨 [워터제트 추진장치 기업 해밀턴 제트의 엔지니어] : 당시 우리 선조들은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자기 손으로 직접 해야 했죠.

앤드류 에이커스 [조빙(Zorbing) 발명자] : 양치기 농부들은 항상 철조망을 가지고 다녔어요. 철조망만 있으면 못 고치는 게 없었죠. 당시의 덕트 테이프라고 할까요.

매트 베케트 [블로카트(Blokart) 매니저)] : 그게 바로 철조망 정신이죠.

피터 린 [카이트 버기(kite buggy) 발명자] : 기술혁신의 스펙트럼에는 두 개의 극이 있어요. 하나는 맨해튼프로젝트처럼 엄청난 재정지원을 받고 목표도 분명해요. 다른 한쪽 극은 고독한 발명가죠. 뉴질랜드는 후자 쪽에 훨씬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스티브 웨이드먼 [스카이 점프 발명자] : 또한 뉴질랜드의 자연환경은 거칠어요. 산과 강이 많습니다.

린 : 맞아요. 기술혁신은 생활스타일을 반영하기 때문에 뉴질랜드인들은 야외 생활에 친숙할 수밖에 없겠죠.

갬블 : 뉴질랜드에는 일반 보트로는 다닐 수 없는 망류하천이 많아요. 이런 곳에서는 프로펠러 선박은 다닐 수가 없어요.

폴 베케트 [블로카트 발명자] : 제트보트 발명가인 빌 해밀턴도 남부 출신의 양치기 농부 아니었던가요?

데이비슨 : 해밀턴은 상류로 낚시하러 갈 방법을 찾다가 제트보트를 만들었죠.

갬블 : 사실 그가 한 건 워터펌프 개발 밖에는 없어요. 물을 빨아들여 보트 내부로 통과시켜서 배출하는데 '속도+무게=추력'이라는 간단한 원리예요. 어쨌든 그게 1954년의 일이죠.

데이비슨 : 해밀턴도 저처럼 농장을 떠난 시골 소년이었어요. 어렸을 적 농장에서 각종 기계류와 보트, 부품들을 다뤘죠.

워터펌프는 그의 지인이 미국의 몇몇 일부 소방선(船)에서 사용했던 원심분리 펌프 '핸리 하이드로제트(Hanley hydrojet)'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잉태됐어요.

사진만 보고 똑같이 만들어냈는데 작동은 그리 시원치 않았어요. 물 흡입구 바로 뒤에 엘보우 노즐을 배치하면서 추력이 낮아졌고 저항력은 엄청났죠.

그래서 두 사람은 설계를 바꿔 노즐 위치를 맨 뒤로 옮겼고 흡입된 물을 공기 중으로 내뿜는 워터펌프를 완성했어요.

토니 킨 ['빌 해밀튼의 연가' 저자] : 보트의 속도는 두 배가 됐고 프로펠러처럼 하천 바닥에 부딪쳐 고장 나는 부속도 사라진 거예요. 그들은 이 보트를 가지고 그랜드 캐니언을 따라 콜로라도를 여행했죠. 그곳이야말로 제트 보트의 진정한 데뷔 무대랍니다.

데이비슨 : 1960년이 되자 뉴질랜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제트보트로 얕은 급류를 거슬러 올라갔어요.

갬블 : 바로 그때 숏오버강의 관광사업이 만들어졌어요. 저도 1만1,000달러나 투자했고요.

사실 이전까지 저는 평생토록 어떤 보트도 몰아본 적이 없었지만 1970년 처음 보트를 몰고 강위를 달려봤죠. 그렇게 수차례 경험을 쌓고는 조금 더 바위 가까이로, 조금 더 빠르게 달렸어요.

하지만 거칠게 몰다보니 불평하는 분들도 간혹 계셨고 그때는 곧바로 안전하게 주행했죠. 영업 3년차에 70세는 넘은 듯한 여성분이 오셨는데 강의 중간쯤 이르자 이러시는 거예요.

"너무 실망스럽네요. 작년에는 보트 타다가 물에 빠져본 적도 있는데 그렇게 해야 더 재미있다고요."

이후부터 저는 바위를 향해 보트를 돌진하고, 180도 회전과 360도 회전도 선보였죠. 그분 덕택에 저희 영업방침이 크게 바뀐거죠.

망류하천 - 얕은 여울에 의해 여러 길로 무질서하게 흐르는 하천. 수심이나 유량에 비해 하천의 폭이 매우 넓다는 특징이 있다.





PART Ⅱ
추락의 개념 재정립
[1980 — 1993]
발명가들은 바람과 물을 함께 엮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애쉬 : 번지점프의 기원은 참마의 풍작을 축하하는 바누아투족 의식에서 비롯됐어요. 그들은 덩굴로 다리를 옭아매고 정글에 세운 높은 단상에서 뛰어내렸죠. 우리는 1979년 옥스퍼드대학 모험스포츠클럽 회원들이 금문교에서 점프를 하는 것도 봤죠. 농장에서 자란 저는 항상 바이크를 몰고 내리막길을 질주했습니다. 중력에 이끌려 자유낙하 하는 것은 언제나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어요.

그러던 중 스키 레이싱을 하다가 번지점프의 공동창시자인 A.J. 해킷을 만났죠. 1986년 그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그린히스 다리에서 처음 번지점프를 했고, 그 다음 주에 저도 다른 다리에서 똑같은 짓을 했어요.

존 임후프 [리버 서핑(River surfing) 발명자] : 1988년 저는 번지점프대가 설치돼 있던 어떤 다리에서 '요금 60달러'라고 적힌 안내판을 본 경험이 있어요. 한 여성이 테이블을 놓고 요금을 받고 있었는데 현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더군요. 거기서는 오직 현금만 받았어요. 전화기도 없고, 예약도 받지 않았는데 말이죠. 제게는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어요.

애쉬 : 번지점프에 푹 빠진 뒤 저와 해킷은 어느 곳에서든 번지점프를 하기 시작했어요. 1987년 해킷이 에펠탑에서 번지점프를 한 것이 전 세계 매스컴을 장식했던 것을 알고계실 겁니다. 사실 해킷은 예쁜 프랑스 모델에게 잘 보이려고 한 행동이었어요.

제드 헤이 [리버보딩(Riverboarding) 발명자] : 1980년대 초반 번지점프의 메카로 불리는 퀸즈타운을 처음 찾았어요. 당시 저는 급류 래프팅에 푹 빠져들었죠.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거든요. 시간이 흘러 1985년의 어느 날 가이드 재킷을 입고, 소형 보디보드만 들고서는 물로 몸을 던졌죠.

임후프 : 급류타기를 발명해 낸 것은 프랑스인이에요. 그들은 앞부분을 잘라낸 카약처럼 생긴 것으로 급류를 탔죠. 그걸 본 저는 보드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헤이 : 제 경우는 프랑스 사람들이 그런 것을 즐겼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리버보딩은 어디까지나 제가 생각해낸 기막힌 아이디어였죠.

임후프 : 전 스노보드를 타려고 퀸즈타운에 간 적이 있어요. 하와이에 살 때는 서핑에 빠져있었고요.

헤이 : 하와이에서 오신 이분이 저희를 찾아와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저는 정말 보디보드로 강을 타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린 이렇게 말했어요. "우린 매일 하고 있는데요."

임후프 : 래프팅 가이드들이 카와라우강을 추천해 주더군요. 거기서는 정말 보디보드를 탈 만했어요. 그래서 전 이 스포츠를 '리버 서핑'이라 명명했죠. 강의 물결을 타고 서핑을 한다는 뜻입니다.

헤이 : 아니죠. 리버서핑이 아닌 '리버보딩'이에요. 제가 임후프 씨보다 먼저 사업을 시작했으니까요.

임후프 : 원조 논쟁으로 돌입하는 건가요? 보세요. 이미 10만년 전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홍수로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가다가 살기 위해서 옆에 떠내려가던 나무토막을 붙들고 급류를 탔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우와, 이거 재미있는데"라고 생각했다면 누가 과연 원조일까요. 10만년 전의 그 원주민이 바로 원조랍니다.


헤이 : 래프팅, 번지점프, 제트스키, 그리고 당신의 리버서핑 혹은 리버보딩도 다 즐겨봤어요. 리버보딩만큼 스릴을 주는 것은 없더군요. 그것 하나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초보자들이 리버보딩을 하면 심박수가 올라가고 물을 한껏 마시게 되죠. 그러면 '이제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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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하랩 [플라이 바이 와이어 발명자] : 뉴질랜드에서는 미국만큼 소송이 쉽지 않아요. 변호사 숫자를 많이 줄였거든요.

에이커스 : 사고보상위원회(ACC)의 힘이죠.

뉴질랜드에서는 일하다가, 심지어 레포츠 중에 상해를 입어도 ACC 덕분에 자비를 들여 치료받을 필요가 전혀 없어요. 레포츠 관리자는 안전 의무를 태만히 할 경우 고소를 당하지만 그것만 지킨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미치도록 위험한 놀이를 시도해볼 여건이 조성돼있다고 할까요.

린 : 저는 거대한 연을 설계했어요. 저희 공장에서 만든 연 중에서 6개는 세계 최대 크기에요. 얼핏 연날리기가 안전한 놀이라고 생각되지만 정말 그럴까요?

이탈리아에서 연을 날리다가 레스토랑 하나를 박살낸 적도 있어요.

저희 연은 초대형 가오리라는 뜻의 '메가 레이(mega ray)'라고 불러요. 면적이 630㎡나 되는 놈이죠. 보통은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늘어선 해안에서 날리는데 사고가 난 날은 메가 레이 하나가 잘못 움직이면서 레스토랑의 네온사인과 위성안테나를 부수며 지나갔어요.

게다가 연의 꼬리가 레스토랑 앞에 있던 대형 파라솔까지 채갔죠. 파라솔 아래에 콘크리트 무게추가 달려있었지만 메가 레이는 레스토랑 상공에 파라솔을 가뿐히 들어 올린 채 휘청이고 있었어요.

종업원들이 놀라서 손님들을 대피시키느라 정신을 못 차리더군요. 그렇게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파라솔이 지붕에 떨어졌고 레스토랑은 끝장이 났죠.



임후프 : 이런 모험적 레포츠는 사실 돈 버는 것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됐다고 봐요. 저만 해도 그저 제가 즐겁기 위해서 강으로 나간 것이니까요.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의 친구를 만나면서 맥주를 마시며 일상을 벗어나 하루를 즐기고 싶은 마음 뿐이었어요.

린 : 1987년부터 연의 힘으로 움직이는 레포츠 도구들을 200개 정도 만든 것 같아요. 대부분은 보트들이지만 버기카도 하나 있어요. '카이트 버기'라고 부르죠. 그걸 빼고는 거의 실패작이에요. 아내 말로는 제 행동이 이성적으로는 납득이 안 간다고 하네요.



PART Ⅲ
한차원 강력한 스릴
[1994 — 2011]
발명가들이 새로운 차원의 즐거움을 위해 팬 샤프트, 플라스틱 공, 항공기 엔진 등 복잡한 장비들을 도입한다.

웨이드먼 : 저희는 도시 한복판의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스카이 점프'라는 체험을 선보였죠. 사람들은 정말 무서워했어요.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죠.

애쉬 : 저도 해봤어요. 높은 곳에서 스스로 발을 떼어 뛰어내린다는 점에서 번지점프랑 비슷한 거 같아요.

웨이드먼 : 번지점프는 도시에서는 불가능해요. 건물주들이 싫어하니까요. 스카이 점프는 팬이 샤프트에 연결돼 있고 샤프트에 와이어로프가 감겨 있어요. 이 로프를 몸에 묶고 오클랜드 스카이타워의 192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거죠. 낙하속도가 시속 83㎞나 돼요. 168m 정도 빠르게 떨어지다가 땅에 부딪치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팬 샤트프가 로프를 감으면서 낙하속도를 줄여 안전하게 착지토록 해 줍니다.

애쉬 : 하지만 번지점프처럼 낙하속도의 가속이나 지상에 내려오기 전 몸이 튕겨 올라가는 경험은 없지 않나요. 번지점프와는 신체적·감정적 감응이 달라요.

웨이드먼 : 최초의 스카이 점프 경험자가 누굴까요? 접니다. 비밀유지를 위해 새벽 2시에 뛰어내렸는데 이슬비가 내리고 구름이 끼어 아래가 보이지 않는 등 점프에 좋은 날씨도 아니었어요. 특히 근처에 숙박시설과 아파트, 콘도들이 밀집해 있어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뛰어내렸죠. 어땠는지 아세요? 떨어지는 내내 괴성을 질렀답니다.

에이커스 : 우리도 미친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를 계속 냈어요. 그 중 하나가 물 위를 걷는 거였죠. 처음에는 팽창식 신발을 떠올렸고, 다음에는 거대한 플라스틱 공에 사람을 넣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공의 외피를 두 겹으로 하면 좋겠다는 데까지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3~4개월에 걸쳐 구를 제작해서는 해변으로 가져가 성능을 테스트했어요. 문제는 바람이 불면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거였죠. 구가 먼 바다로 밀려가도 그 안의 사람은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주목은 받았어요. 어찌됐든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예쁜 공이니까요.

그래서 이것을 사업화할 방법을 궁리했죠. 모든 것은 운에 맡기고 산에서 굴려보기로 했어요.

부모님이 운영하던 농장의 산등성이에서 첫 실험을 했는데 공 속에 들어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떠올리니 꽤 무섭더라고요.

하랩 : 플라스틱 공 안에서 산비탈을 굴렀다고요? 왜 그런 걸 하는 사람이 있는지 늘 궁금했었어요.



에이커스 : 우리가 조브(Zorb)라고 부르는 이 공은 10m마다 한 바퀴씩 구릅니다. 굴리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죠. 또 균형 유지를 위한 하네스 시스템을 장착, 탑승자는 공이 구르는 것과 상관없이 완벽히 안정된 자세를 취할 수 있어요. 공만 회전할 뿐 사람은 언제나 똑바로 선 상태를 유지하는 거예요.

웨이드먼 : 플라이 바이 와이어라는 장비도 있었다죠? 오작동으로 사고가 났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하랩 : 제가 개발했어요. 몸을 허공에 매달아 시계추처럼 흔드는 레포츠예요. 단순히 앞뒤만이 아니라, 위에서 보면 8자를 그리면서 흔들려요. 천장에 실을 붙여놓고 끝부분에 성냥개비를 하나 묶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게 바로 플라이 바이 와이어의 기본 구조입니다. 다른 점은 그 성냥개비 속에 모터가 달려있다는 거죠. 특허를 출원할 때의 명칭은 '자체 동력을 갖추고 조향이 가능한 흔들리는 놀이기구'였어요.

에이커스 : 지금도 쓰이고 있나요? 아이디어는 근사하지만 뭐라도 하나 잘못되면 정말 큰일 날 것 같네요.

하랩 : 제 차고에서 실험을 해봤어요. 천장에 물건을 매달아 놓고 말이에요. 그리고 밖으로 나가 나무에 실을 묶어서 다시 실험했죠. 저는 이 기구에 작용하는 물리학적 기본 원리를 알고 싶었어요. 비행기처럼 생긴 물건이 필요했는데 꼬리날개와 프로펠러도 달렸으면 했죠. 그래서 항공공학자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어요. 이 기구는 시속 100㎞로 움직입니다.

180m 상공에서 늘어뜨린 줄의 끝에 매달려 이런 속도로 지면에 근접할 때는 땅에 처박힌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특히 로켓처럼 생긴 탑승체에는 엔진이 있기 때문에 탑승자 스스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어요. 일단 타보면, 어떻게 해야 더 빨리 움직일까 하는 생각뿐이죠.

저희도 그걸 권장하고요.

에이커스 : 한 여성이 추락사고로 부상을 당했다던데요.

웨이드먼 : 그분이 팔을 잃을 뻔 했다고 들었어요.

하랩 : 누구의 잘못인지를 떠나 책임으로부터 제 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 캐터펄트 웨이드먼 : 위험한 것은 놀이기구의 개념이라기 보다 조작자들 아닌가요? 사실 요즘에도 발목의 하네스를 제대로 채우지 않고도 사람들을 번지점프대로 보내는 경우를 보곤 해요.

하랩 : 안전검열관들은 고객들에게 헬멧을 쓰라고 강요하더군요. 제 기구에 왜 헬멧이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새들과의 충돌 가능성은 0%인데 말이죠. 새들은 제 기구를 무서워해서 근처에도 오지 않아요.

헤이 : 요즘 안전 기준이 점점 강화되고 있어요.

임후프 : 많은 경우에서 법은 정말 바보 같아요.

에이커스 : 다음 얘기로 넘어가죠. 몇몇 사람들이 탑승객을 안전그물이나 물 위로 쏘아 보내는 초대형 새총을 사업화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어요.

하랩 : 현재 한국과 터키에서 플라이 바이 와이어의 도입을 원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이를 아시아 전역에 보급하고 싶어 해요.

헤이 : 저는 한때 사람들을 어딘지 모를 인적 없는 곳에 떨어뜨려 놓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오도록 하는 레포츠도 생각해봤어요.

린 : 저는 골절을 참 많이 당해요. 하루에 두 번이나 코가 부러진 적도 있죠. 열정에 비해 기술이 모자랐던 거겠죠.

헤이 : 너무 위험한 놀이라는 게 뭐죠? 전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안전하다는 번지점프의 줄도 끊어질 수 있는 겁니다. 그 실패를 교훈삼아 더 안전하고 좋은 시스템이 갖춰지겠죠.

레포츠는 그런 식으로 발전하다고 봅니다. 이는 인류가 진화한 방식이기도 하죠. 그렇지 않나요?

BY PAUL KVINTA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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