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경제 검찰' 공정위… 기업의 저승사자인가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 검찰'로 불린다.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주요 임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공정위를 '저승사자'라고도 부른다. 공정위가 휘두르는 서슬 퍼런 '칼날'에 맞으면 기업 경영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기업들의 긴장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등장한 배경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사회적 약자의 보호와 빈부격차 해소로 요약될 수 있다. 결국 경제민주화는 빈부격차 해소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 수단 중 하나라는 얘기다.

하지만 애초부터 명확한 개념 없이 출발한 경제민주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제시한 각종 정책들의 공통점을 뽑아내 유추하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개념정의가 가능하다.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제시된 정책은 신규 순환출자 해소, 금산분리 등 기업 지배구조 개선,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부의 편법 증여 금지, 소비자 보호 등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경제민주화는 대기업의 무한 확장을 억제해 중소 상공인과 서민들의 경제활동 영역을 보장해줌으로써 사회적 부의 편중을 막고 나아가 부를 재분배하는 정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내세운 경제민주화 공약은 대기업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사전적 구조개혁'보다는 경제력 남용방지 등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과 부의 편법 승계를 막는 '사후적 행위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규순환출자의 '해소'보다는 '신규 내지 추가 출자 금지'를 내세운 게 대표적인 예다.

당초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총괄한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은 '신규순환출자 해소'를 주장했으나, 박 대통령은 '기업 활동의 위축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배'보다는 '성장'을 우선하는 보수의 색채가 묻어나는 대목이다.박 대통령의 공약이 대기업의 의견을 일정부분 수용한 '절충안'이기는 하지만, 정책 대상인 대기업으로서는 마냥 반길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대기업들이 경제민주화 공약 이행의 핵심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기업의 저승사자인 공정위를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탄생 배경과 현안, 구성멤버들의 색깔 등을 들여다 봤다.

글=서울경제 김능현기자 nhkimchn@sed.co.kr 일러스트=서울경제 이동수기자 vvg75@sed.co.kr


부당 내부거래는 대기업 집단 총수 일가의 재산증식 및 부의 편법 승계 수단으로 빈번하게 이용돼 왔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고 규모가 작은 비상장사의 내부 거래 비중이 높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총수 일가가 소규모 비상장사를 설립해 계열사들의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키운 후에 주식을 상장시켜 상장차익을 얻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기업 집단 2세들은 자연스럽게 경영권을 승계하게 된다. 주로 시스템통합(SI) 업체 부동산, 도매, 광고업을 영위하는 회사를 설립해 계열사의 일감을 몰아주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부당내부거래는 불법적인 부의 승계뿐 아니라 경제력 집중도가 높아지고 중소기업의 영역이 축소되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실제 부당내부거래에 이용되는 비상장회사 대부분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적합한 SI, 광고업을 영위하고 있다.

부당내부거래는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행위다. 현 공정거래법은 "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해 상품·용역 등을 제공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해 특수관계인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고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런데 실제 부당내부거래로 처벌된 재벌은 많지 않다. 부당내부거래의 대표적 사건인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및 삼성생명 주식 우회매매, 현대택배 실권주 저가 배정, LG화학 주식 저가 매각 등 재벌 2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당내부거래 사건에서 법원은 대부분 재벌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현행법이 부당내부거래 성립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인데, 문제가 되는 부분은 '부당하게' 와 '현저히'라는 문구다.

'부당하게'라는 요건이 성립하려면 부당내부거래로 인해 관련 시장의 경쟁이 저해되거나 경제력 집중이 야기되는 등 공정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어야 한다. 즉, 내부거래를 통해 계열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안정적으로 원재료의 납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등의 회사 내부 사정은 부당성 판단의 고려 요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부당성 요건은 부당내부거래를 통한 재벌 2세 승계 작업을 억제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실제 삼성SDS사건 등에서 법원은 관련 시장의 경쟁제한 등 부당성 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현저히'라는 요건도 그 기준이 불명확해 불공정거래행위 여부 판단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요소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부당내부거래 성립요건 가운데 '현저히'라는 문구를 아예 삭제하거나 '상당히'라는 문구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국회에는 '부당성'을 관련 시장에서의 경쟁제한성이 아닌 경제력집중 여부로 판단토록 해 부당성 입증을 용이하게 하는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또 현행 공정거래법은 부당내부거래 규정 위반 시 과징금 부과 대상을 지원한 기업으로 한정하고 있으나, 실제 이익을 얻은 기업(지원객체)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회사뿐 아니라 의사결정을 내린 경영진이나 총수 일가를 직접 제재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박 대통령도 국정과제에서 '이익을 본 총수 일가에게도 직접 과징금을 부과해 부당이득을 환수하겠다"고 약속했다.


대기업 편중과 총수 전횡 방지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도 경제민주화 과제의 핵심 중 하나다. 신규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이 지배구조 개선 내용이다. 이 가운데 공정거래법과 연관된 공약은 신규순환출자 금지 및 금산분리 강화다.


2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당내부거래 사건에서 법원은 대부분 대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
주주자본주의의 핵심은 1주=1표 원칙이다. 보유한 주식수에 비례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원칙이 재벌 총수 일가에게는 예외다. 이들은 실제 보유한 주식보다 실질적으로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를 '가공 의결권'이라 한다.

가공의결권을 가능하게 하는 게 순환출자다.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3.57%에 불과하지만 실제 행사하는 의결권은 28.88%에 달한다. 단 3%대의 지분을 가지고 전체 의결권의 4분의 1 이상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현재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는 재벌은 총 15개다. 이들 재벌에 속한 계열사는 586개사이며 순환출자 고리로 묶여 있는 계열사는 90~1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의 김종인 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이를 소급해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박 후보는 당시 "기업들의 부담이 커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이를 공약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순환출자 해소가 투자를 위축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재계는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비용이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재계의 논리가 기업과 총수를 동일시하는 오류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순환출자 해소 비용은 해당 기업이 아닌 총수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만큼 기업의 투자위축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총수들이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계열 기업의 지분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기업으로 자본유입이 일어나고 소유와 지배의 괴리가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산분리 강화

박근혜 대통령은 "금융의 안정성을 높이고 고객자산이 대주주의 사적 이익추구에 동원되는 것을 방지"하겠다며 ▶금융회사 보유 비금융계열 주식에 대한 의결권 상한을 5%로 상향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 축소 ▶대주주 적격성 심사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가운데 논란이 되는 부분은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의 의결권 상한 강화다. 이 공약의 이행여부가 재벌의 대명사인 '삼성'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금융회사의 의결권 행사를 내부 지분율 15%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이건희 회장과 삼성물산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8.9%와 삼성생명(7.5%)·삼성화재(1.3%)가 보유한 지분 8.8%를 합한 17.7%의 지분 중 15%까지만 삼성전자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즉, 2.7%의 지분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논란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에서 의결권 제한을 '단독' 금융회사 기준 5%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실효성이 없다. 공약대로라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7.5% 가운데 2.5%만 의결권을 제한받게 되는데, 현재도 삼성생명은 2.7%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공약이 현실화되면 삼성생명은 오히려 0.2%포인트의 의결권을 추가로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더 강화시켜주는 이상한 공약이라는 얘기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공약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자 공정위는 인수위에 금융회사 전체의 의결권 제한을 5%로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삼성 봐주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보유지분 8.8% 가운데 3.8%는 의결권 행사를 못하도록 규제하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현재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2.7%보다 1.1%의 의결권이 더 묶이게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삼성의 삼성전자 지배구조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결국 삼성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로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을 막으려면 특수관계인과 금융사의 지분을 합한 내부지분율의 의결권 행사 상한을 현행 15%에서 5%로 낮추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 방안은 현재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 등의 발의로 국회에 상정돼 있다.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

중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대표적인 제도가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다. 비록 박 대통령의 공약에는 빠져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기업결합(M&A) 제한을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중소기업 시장점유율이 3분의 2 이상인 분야에 진출해 5% 이상 시장점유율을 가지게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장점유율 기준을 더 낮춰 대기업의 진입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실제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8월 시장점유율 요건을 1%로 하향조정하자는 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소비자피해구제 명령제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불공정행위에 따른 소비자피해 구제방안을 마련해 소송없이 사건을 해결하는 제도다. 예컨대, 지금까지는 허위·과장광고 등 불공정거래행위가 드러날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지만, 앞으로는 소비자에게 직접 피해금액을 지급하도록 금전배상을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공정거래법상 동의의결제를 확대한 것이다. 동의의결제는 사업자가 스스로 시정방안을 제안하고 공정위가 그 타당성을 인정하면 위법여부 확인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소비자피해구제 명령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140대 국정과제에서는 '소비자피해구제 명령제'라는 용어가 삭제된 대신 "표시광고법에 동의의결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만 포함돼 소비자보호 정책의 후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피해구제명령제와 동의의결제는 기업들이 형사처벌을 피할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소비자보호기금은 공정위가 기업 부당거래행위 등에 부과하는 과징금의 일부를 적립해 설치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공정위는 내부적으로 과징금의 10% 정도를 떼어 기금에 적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정위가 매년 부과하는 과징금은 수천억 원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에는 '경제 민주화'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공정위의 불공정거래 조사도 강화돼 과징금 부과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

소비자기금은 소비자단체의 시장감시 활동과 소비자교육 및 정보 제공 등에 사용될 전망이다.

징발적 손해배상, 집단소송, 사인의 금지청구권 등도 중소상공인 등 경제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공약에 속한다.

사적 피해보상 제도인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박 대통령은 인수위 국정과제에서 "하도급법상 '부당단가인하, 부당 발주 취소, 부당반품' 에 우선 도입하고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징벌적 배상금액 상한은 외국 사례를 고려할 때 손해액의 3배가 유력하다. 미국도 지난 100년간 3배 배상 제도가 유지돼 왔다.

향후 쟁점은 이 제도를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도 도입할지 여부다. 현재 야당인 민주당은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불공정거래행위, 담합 등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담합에 대해서는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도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 지난 2006년 말 활동을 종료한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제조물책임법, 증권거래법, 환경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근로기준법, 식품위생법 등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집단소송제도는 피해자 일부가 소송을 제기하면 그 판결의 효력이 소송 비참가자에게도 미치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증권관련 소송'에만 이 제도가 도입돼 있으나, 소송 요건이 엄격해 사실상 사문화돼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과 인수위 국정과제에서 공정거래법상 담합과 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과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 의원도 집단소송제 도입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대기업 봐주기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도 개혁 대상이다.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기업들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단 소송을 제기하고 보자는 '마구잡이 소송'에 시달릴 수 있고, 소송에서 패하는 경우 손해배상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집단소송 도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더라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한다. 집단소송이 가능한 증권 관련 사건의 경우 까다로운 소송요건 탓에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과제에서 증권 관련 집단소송의 요건도 완화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주무부처인 공정위는 신중한 입장이다. 집단소송제도 도입이 기업들의 자진신고를 위축시켜 담합 적발이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자진신고 사업자에 대해서는 소송부담을 완화시켜주는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사인의 금지 청구제도는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로 피해를 본 사람이 법원에 위반행위의 중지를 청구하는 것이다. 통상 1년 이상 걸리는 공정위의 행정처분전에 이해당사자가 자기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이 제도를 도입한 상태다. 또 현재 특허법, 디자인보호법, 상표법, 저작권법 등 지적재산권 관련 법안에 이 제도가 이미 도입된 상태여서 공정거래법에도 준용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 봐주기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도 개혁 대상이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의 고발 없이는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다만, 검찰총장은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할 경우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두고 있다.

당초 전속고발권제가 도입된 취지는 공정거래 사건의 특수성 때문이다.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해당 기업이 행위의 위법여부를 사전에 알기 어렵고, 영업활동에 대한 사항을 검·경이 직접 수사하면 기업활동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행위에 대해 검찰과 공정위의 판단이 달라 기업활동에 혼란을 초래하고 이중규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하지만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제한적이고 자의적으로 행사해 중대한 법위반 행위를 한 기업들이 형사처벌을 면제받고, 피해자의 권리구제도 제한되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지적이다. 법무부 역시 담합 등 중대한 법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도 전속고발권의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공정거래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반대 이유는 권한이 축소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공정위의 고발 없이도 형사기소가 가능하게 될 경우, 기업들이 공정위보다 검찰의 눈치를 보게 되면서 담합 등 중요 사건에 대한 처리권한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담합 자진신고자에 대해 과징금을 감면해주는 이른바 '리니언시' 제도로 인해 담합 적발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박 대통령은 공정위에 법집행에 대한 견제를 위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인수위 국정과제에서는 고발 요청권을 검찰총장외에 조달청장,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에게까지 확대하는 쪽으로 후퇴했다. 즉, 전속고발권의 폐지가 아닌 고발요청 주체를 확대한 것이다. 문제는 전속고발 요청권 확대가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검찰의 고발요청권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조달청이나 중소기업청의 고발요청권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 국회의원들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법안을 다수 발의해 놓고 있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담합 및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사업자 단체의 금지행위, 부당지원 행위,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등 특정 법위반 행위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으며, 최근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의원도 부당공동행위(담합) 등 일부 중대 범죄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올 4월1일 설립 32돌 맞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981년 4월 1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시행과 함께 경제기획원 내에 처음 설치됐다. 출범 초기에는 독립된 행정관청이 아닌 심의의결기구에 불과해 독립적인 법 집행 및 법률안 제청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공정위원장은 경제기획원 차관이 겸임했으며, 행정처분도 경제기획원 장관 명의로 나갔다. 공정위가 오늘날과 같은 독립기구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은 1990년 경제기획원 소속 합의제 독립행정기관으로 승격되면서다. 이때부터 경제기획원 차관 겸임제가 사라지고 공정위 살림을 총괄하는 사무처와 지방사무소가 신설됐다. 1994년에는 국무총리 소속 기관으로 승격됐으며, 1996년에는 위원장이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승격돼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경제발전의 중심 축이 정부에서 시장으로 옮겨가고, 재벌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시장질서를 규율하는 공정위의 역할도 강화돼 왔다. 1981년 공정위 출범 당시에는 공정거래법에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금지 등 몇 개 규정만 존재했으나, 이후 상호출자 금지 및 출자총액제한제 도입 (1986년, 출총제는 2009년 폐지), 계열사 간 채무보증 제한(1992년),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과징금 도입, 독과점적 시장 구조 개선 규정 및 기업결합규제 대상 확대(1996년), 독과점시장구조의 조사·공표제도 도입(1999년), 불공정거래 행위 범위 확대 등이 이뤄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공정거래법이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 시절에 도입됐다는 점이다. 정확하게는 신군부가 국회를 해체하고 대체 입법기관으로 내세운 임시입법회의에서 최종 통과됐다. 물론 재벌의 독점 구조를 깨기 위한 논의는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고, 그 결과물이 1975년 제정된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다. 하지만 이 법률은 재벌의 저항에 굴복한 반쪽짜리 법이었다. 법안의 이름으로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물가안정을 위해 재벌의 독과점 구조를 손보려는 정부와 이에 반발하는 재계가 서로 한발씩 양보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법안의 주요 내용도 재벌 규제보다는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나마 정부가 4차례나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으나 번번이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되다 1974년 물가앙등이 심각해지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재계가 양보했기에 입법이 가능했다. 당시 정경유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감안할 때 신군부의 서슬 퍼런 독재가 없었다면 재벌을 규제하는 공정거래법이 빛을 보는 시기가 훨씬 늦춰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악명(?) 떨치는 공정위 사람들

매년 초 인사철만 되면,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공정위 고위 공직자의 인사이동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어느 보직에 누가 임명되느냐에 기업의 생사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경제검찰'을 자처하는 공정위의 특성상 고위 공직자들은 대부분 이름값을 하고 있다. 웬만한 국장급 이상은 무시무시한 별명 하나쯤은 기본으로 달고 있을 정도다.

공정위 살림을 총괄하는 한철수(행시 25회) 사무처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공정거래 정책 전문가다. 부하직원들이 올리는 보고서에서 잘못된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낸다고 해서 '매의 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웬만큼 실력있는 과장이나 사무관도 한 사무처장에게 보고할 일이 생기면 잔뜩 긴장한다"고 전했다. 공정위에서 최고 핵심부서로 경쟁정책과장 자리를 3년이나 꿰찬 최장수 기록도 갖고 있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사무관보다 일을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한 사무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공정위의 경제민주화 정책 로드맵도 그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는 류성걸 경제 1분과 간사가 "공정거래 분야 대가라는 평소 소문처럼 업무보고 자료를 훌륭하게 정리해줘 고맙다"고 칭찬했다는 후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민주화'를 최대 과제로 꼽은 만큼 한 사무처장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공정위 직원들의 중론이다.

지철호 상임위원(행시 29회)도 '불도저' '포도대장' '유통업계 저승사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달고 있다. '불도저'라는 별칭이 암시하듯, 일처리가 과감하고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는 성격이다. 지난해 기업협력국장 시절에는 대형유통업체 판매수수료 인하를 이끌어내 세간을 주목을 받았다. 당시 유통업계에서는 "앞으로 얼마나 잘되는지 두고보자"며 잔뜩 이를 갈았다고 한다. 공정위에서 최장수 대변인을 역임해 언론감각도 탁월하다는 평이다.

공정위 정책을 총괄하는 신영선(행시 31회) 경쟁정책국장은 조용한 학자스타일이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범생이' 또는 '모범생'이다. 지난해 출입기자단 조사에서 '가장 일을 잘할 것 같은 국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재벌규제 관련 정책은 대부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곽세붕(행시 32회) 소비자정책국장은 '한국형 컨슈머리포트'의 산파 역할을 해 주목을 받았다. 동네 아저씨같은 평범한 외모와 달리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안을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나 '곰탈 여우'로 불린다. 곰처럼 생겼지만 여우 같은 지혜가 있다는 뜻이다.

기업 불공정거래 사건을 담당하는 김재중(행시31회) 시장감시국장은 '영웅재중'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린다. 남성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영웅재중'과 이름이 같아서다. 선이 굵은 업무스타일로 부하직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최근 수입차 업체 '담합' 의혹 조사로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성구 서울사무소장(행시 24회)은 '미스터 컨슈머'라 불린다. 공정위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소비자정책 분야를 핵심 부서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담합'사건을 전담하는 신동권(행시 30회) 카르텔조사국장은 항상 웃는 표정으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해서 '해피'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기업들에게는 저승사자다. 라면, LP가스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을 대거 적발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가 적발한 담합 사건만 줄잡아 25건이 넘는다.

대언론 관계를 담당하는 김준범(행시 32회) 대변인은 공정위 내 대표적인 '스포츠맨'이다. 사이클이 전문가 수준이며 철인 3종경기에도 출전할 정도다. 강인한 체력만큼이나 업무 추진력이 돋보인다. 불공정거래 분야를 담당하는 시장감시총괄과장 시절 자사 칩을 구입한 구매처에 로열티 등 각종 가격할인 혜택을 제공해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막은 퀄컴의 '독점적 지위남용'에 대해 2,6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경영학석사(MBA)를 졸업한 학구파이기도 하다.

교육 파견 중인 김형배(행시 34회) 국장도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강원도 삼척이 고향인 그는 시골 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유창한 영어실력을 자랑한다. 시장감시국장 시절 아웃도어·시스템통합(SI)·베이커리 업체 등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제재하는 성과를 냈다.


조사 대상 기업들이 기를 쓰고 공정위 조사를 막는 이유는 단순하다. 과징금보다 과태료가 더 싸기 때문이다.


공정위, 조사방해 벌칙 강화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는 대기업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불공정거래행위나 담합 등이 적발되면 수십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자칫 피땀 흘려 벌어들인 돈을 몽땅 과징금으로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해 농사 과징금 때문에 망친다'는 푸념이 나올 만하다. 이 때문에 공정위 조사 현장에서는 '조사를 최대한 방해하려는' 기업 직원과 '신속히 현장을 급습해 중요 증거를 확보하려는' 공정위 직원이 충돌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공정위 직원 간 몸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지난 2011년 3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공정위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휴대폰 유통 과정에 불법 행위가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급파된 공정위 직원들은 담당 부서인 무선사업부 한국상품기획그룹을 급습하려 했으나, 보안담당 직원들이 "사전약속이 없을 경우 담당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출입을 거부했다. 1시간가량의 실랑이 끝에 조사 현장에 들어갔지만, 삼성전자 직원들은 모두 사라지고 관련 자료도 완전 폐기된 상태였다. 공정위 관계자는 "보안담당 직원들이 1시간가량 출입을 막는 사이 핵심 조사 대상자들의 개인용 컴퓨터(PC)를 공PC로 교체하고, 주요 서류를 없애버렸다"고 말했다. 심지어 핵심 조사 대상자인 삼성전자 김모 상무는 당시 수원사업장 사무실에 있으면서도 공정위 직원과의 통화에서 "서울 본사에 출장 중"이라고 거짓말까지 하며 조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 뿐 아니다. 삼성전자는 공정위가 "출입지연 사유를 확인하겠다"며 해당 건물 출입기록을 요청하자, 내부 회의를 거쳐 PC교체를 담당했던 직원의 이름을 삭제한 허위 출입기록을 제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이런 대응은 공정위 조사에 대비한 사전 시나리오에 따른 것으로 사후에 밝혀졌고, 공정위는 삼성전자와 관련 임직원에 대해 총 4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또 향후 현장출입 저지 등의 조사방해 행위가 재발될 경우 검찰 고발 등 형사처벌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의 조사 방해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불과 4개월 후인 같은 해 7월에는 SK C&C와 LG전자가 공정위 직원들의 현장 조사를 방해해 억대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1998년 이후 조사 방해로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례는 18건에 달한다. 대부분 재벌 계열 기업들이 대상이었다. 삼성그룹 계열이 6건으로 가장 많고, 현대, SK, CJ 등 대기업 계열 회사들이 1~2건씩 포함돼 있다.

조사 대상 기업들이 기를 쓰고 공정위 조사를 막는 이유는 단순하다. 과징금보다 과태료가 더 싸기 때문이다. 과징금은 최대 매출액의 10%까지도 부과되는 반면, 과태료는 아무리 많아야 2억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함부로 공정위 직원들의 조사 행위를 방해할 경우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지난해 6월 '폭언·폭행, 고의적인 현장진입 지연·저지 등을 통해 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기피한 자'에 대해서는 3년 이하 징역, 2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이 규정의 핵심은 '고의적인 현장진입 지연·저지'라는 부분이다. 폭언·폭행은 현행 형법상으로도 처벌이 가능하고, 실제 조사현장에서 보안요원들이 공무원인 공정위 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의적인 현장 진입 저지 등도 형법상 '공무집행 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으나, 처벌 요건이 좀 더 완화됐고 행위자뿐 아니라 회사에 대해서도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공정위가 이 규정을 적용해 조사를 방해한 기업을 고발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이 규정이 공정위의 요구로 추가된 만큼, 공정위는 향후 기업의 조사·방해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할 경우 지체 없이 이 규정을 적용할 공산이 크다. 실제 공정위는 삼성전자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면서 "향후 조사방해 행위에 대해 형벌 적용을 적극 행사할 계획"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대형 로펌의 한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앞으로 공정위 조사를 방해할 경우 비록 회사 측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앞으로 '보안'을 핑계로 한 출입지연 등의 편법으로 공정위의 정당한 조사를 막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방해로 직원이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회사의 이미지에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격 동시에 올리면 무조건 담합?

"우리는 물가 당국이 아닙니다." 공정위 공무원들이 기자들에게 종종 내뱉는 푸념이다. 맞다. 공정위는 물가관리 기관이 아니다. 적어도 법상으로는 그렇다. 공정위는 기본적으로 경쟁적 시장환경을 조성해 대기업의 횡포를 막고 약자인 중소기업과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기관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공정위는 엄연한 물가 당국이다. 공정거래위원장은 물가관계장관회의의 주요 멤버다. 물가관계장관회의는 기획재정부, 안전행정부, 농림축산식품부, 국토교통부, 공정위, 국세청, 통계청의 장들로 구성된다. 이 중 공정위는 국세청과 함께 핵심 중의 핵심멤버라 할 수 있다. 다른 부처들은 유통구조 개선, 수입 확대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물가에 영향을 미칠 권한밖에 없지만, '조사권'을 가진 두 기관은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기업을 힘으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생활물가가 오를 조짐이 보일 때면, 다른 부처 장관들은 물론이고 언론까지 으레 '공정위와 국세청이 행동에 나서겠지'라는 기대를 품어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고 했다. 두 기관이 담합이나 탈세 적발을 명목으로 '조사'에 착수하는 것만으로도 기업들은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동시 다발적인 가격 인상의 배경에는 '담합'이 존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담합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데 있다.


"우리는 물가 당국이 아닙니다." 공정위 공무원들이 기자들에게 종종 호소하는 푸념이다.


'텔레파시'만 통해도 담합일까?

얼마 전에 H사 등 7개 철근 제조업체는 유사한 시기에 2~3차례 가격을 인상한 혐의로 공정위에 적발돼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이들은 원가 인상(원자재 가격 인상)을 반영한 것일 뿐 가격인상을 위한 합의는 없었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실무자들은 서로 가격 인상 정보를 교환한 뒤, 상대방이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자신도 가격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기업들은 법원에서 "서로 가격을 얼마씩 인상하기로 합의한 적이 없다"며 법원에 소를 제기했으나, 법원은 "암묵적 양해를 기초로 가격을 올렸다면 담합에 해당한다"며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서로 가격인상 시기와 폭을 문서 등을 통해 명시적으로 합의하지 않았더라도 상호 암묵적 양해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 담합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찰담합의 범위도 일반적인 상식보다 훨씬 넓다. 만일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의 입찰을 앞두고, 입찰에 참여하려는 건설사 실무진들이 음식점에 모여 이런 저런 잡담을 하던 도중, 한 사람이 입찰가격 한도를 우연히 언급했고, 결과적으로 각 건설사들이 이 가격한도 이상으로 입찰가를 써냈다면 담합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게 법원의 해석이다.

공정거래법은 또 '담합'의 존재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추정' 조항을 두고 있다. 일정한 정황증거가 있을 경우 기업들이 담합을 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담합을 한 것으로 추정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정의 요건으로는 일정한 기간 내에 가격이나 거래조건을 변경하는 등 행위의 외형이 일치하고, 사업자 간 의사연락이나 정보교환을 했다는 증거가 있거나, 합의 없이는 행위의 일치가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이다.

예컨대 카드사들이 1~2개월 사이에 카드수수료를 1% 안팎으로 인상하고 수수료 인상 전에 담당 실무자들이 이메일이나 전화로 연락을 취했거나 음식점에서 모였다는 정황이 있다면, 실제 가격담합을 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담합으로 추정한다는 얘기다. 또 가격인상이 행정관청의 행정지도에 의한 것일 경우에도 담합으로 인정될 수 있다. 행정지도는 법적인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주의할 것은 반드시 명시적으로 가격을 올려야만 '담합'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격은 유지하는 대신 상품의 양을 줄이는 경우도 담합에 해당한다. 동일한 가격에 제공하는 상품의 양을 줄이는 것은 사실상 가격을 올린 것과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용카드사들이 할부수수료를 유지하면서 할부구매 최저금액을 인상하거나 할부기간을 줄인 경우 용역의 양을 줄여 가격을 올린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담합에 해당한다.


박근혜 당선인 경제민주화 공약 주요 내용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 제고
중소도시 대형마트의 신규 입점, 지역협의체 합의 전제 허용
대형유통업체의 납품ㆍ입점에 대한 불공정행위 및 가맹점에 대한 불공정행위 근절
중소ㆍIT분야 등 하도급 불공정특약에 따른 중소 사업자 피해 방지
소비자피해구제 명령제 도입
소비자권익 증진을 위한 소비자보호기금 설립

공정거래법 개정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집단소송제도 도입
사인의 금지청구제도 도입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불법 및 사익 편취 행위 근절
특경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한 형량 강화(집행유예 불허)
대기업 지배주주 및 경영자에 대한 사면권 제한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내부거래 금지 규정 강화 및 부당이득 환수

기업지배구조개선
대기업에 대한 신규순환출자 금지
소액주주의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위한 제도 구축
공적연기금의 독립성 강화 통한 의결권 행사 강화
'다중대표소송제' 단계 도입

금산분리 강화
금융사 보유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상한 5%로 강화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 축소
대주주적격성 심사, 전 금융사로 확대
*출처: 박근혜 대선 후보 공약집 및 경제개혁연대 보고서


부의 대물림 방지…일감 몰아주기 규제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과 관련해 대기업(재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부당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 금지다. 지난해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부상한 것도 대기업들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를 통한 부의 편법 승계가 도를 넘었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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