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기업이 하나 있다. 설립 3년 2개월 만에 누적 매출 2,000억 원과 영업이익 170억 원을 돌파한 기업·전체 매출액 가운데 30%가 수출인 기업·임직원 154명 중 30명이 R&D 연구·개발 인력인 기업. 이 기업은 설립 초기 설비투자비용이나 판관비 등의 부담에도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을 8%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직원 1인당 평균 매출액도 4억 원이 넘는다. 내용만 보면 언뜻 온라인 콘텐츠 기업인가 싶지만 이 기업은 엄연히 산업자동화기기 전문업체다. 게다가 올해 코스닥 상장까지 추진하고 있다. 바로 알에스오토메이션이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2008년 리먼 사태가 터졌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신청을 했고, 그 영향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미국 산업자동화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로크웰오토메이션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크웰오토메이션은 세계 각국의 지사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로크웰오토메이션코리아의 기흥공장 총괄책임자이자 사업부장이었던 강덕현 현 알에스오토메이션 사장은 한국 시장의 대부분이 일본 미쓰비시나 야스카와로 넘어갈 것이라고 걱정했다. 산업자동화설비를 해외업체가 독점하게 되면 우리 기업들의 내부설비에 대한 비밀과 시스템이 해외로 유출돼 기업경쟁력이 약화될 우려가 컸다. 강덕현 사장은 결심했다. 삼성과 로크웰오토메이션을 거치며 얻은 글로벌 프로세스와 기술, 제품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우리 기업을 만들어보겠다고. 그리고 지금이 바로 기회라고. 국내 최초, 유일의 산업용자동화기기 전문업체 알에스오토메이션은 그렇게 탄생됐다.
알에스오토메이션의 역사는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항공(현 삼성테크윈) 자동화사업부 출범을 그 모태로 한다. 이후 1997년 삼성항공에서 삼성전자로 자동화사업 단일화 과정이 이뤄졌고, 2002년에는 미국 업체 로크웰오토메이션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서 지분 40%를 인수해 로크웰·삼성오토메이션이라는 합작사가 탄생했다. 2006년 로크웰오토메이션이 자동화사업부문 전체를 흡수하면서 로크웰오토메이션코리아로 사명이 변경됐다가, 2008년 리먼쇼크 여파로 지역 사업부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강덕현 사장이 스핀오프 방식으로 이 회사를 인수해 2010년 알에스오토메이션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알에스오토메이션' 사명은 'Reliable & Smart Automation'의 약자이다. '믿을 수 있고 스마트한 자동화기기 솔루션으로 산업현장을 위한 최고의 품질과 성능을 제공한다'라는 기업의 경영이념이 담겨 있다. 기업의 전신이 삼성과 로크웰오토메이션이었기 때문에 사업 내용에 대한 이해와 글로벌 감각, 기술 수준, 경영 시스템 등이 웬만한 중견기업 이상이다. 그중에서도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상용 고객만족 이사는 말한다. "154명 직원 중 엔지니어를 제외한 순수 R&D 연구인력만 30명입니다. 그중 4명은 해당분야 박사 출신이고요. 거의 대부분의 인력이 삼성과 로크웰오토메이션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사람들이라 각 개인의 수준도 굉장히 높습니다. 회사의 규모는 작지만 R&D 인적구성의 질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대기업에 버금갑니다.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어요."
전체 임직원이 150명을 겨우 넘는 회사지만, 지난 3년간 투자한 연구개발비는 75억 원에 달한다. 연간 투자 비용이 20억 원을 넘어서는 셈이다. 물론 결과도 좋았다. 지난해 1월엔 태양광용 인버터 PCS(Power Conversion System·생산한 전력을 직류에서 교류로 변환시켜 주는 장치) 연구에 착수해 1년 만에 제품을 개발했다. 같은 해 9월엔 국내 최초 산업용 이더넷을 기본으로 채택한 '차세대 네트워크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공장 생산라인 설비를 원격으로 통제하는 기술) X8'을 출시해 상위 컨트롤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올해 내놓을 예정인 차세대 네트워크 모션 컨트롤러, 2014년 출시 예정인 차세대 네트워크 서보 드라이버, 고사양 광학 분할 엔코더 등의 제품도 개발이 상당히 진척되어 있는 상황이다.
기술력은 제품력이 동반될 때라야 빛을 발한다. 제품력은 생산현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본사 3층 공장동에서 공정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박기욱 생산팀 이사는 공장동 설명에 신바람이 났다. 공장동을 직접 설명해주려고 외부 일정까지 조정했다. 박 이사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것은 제품공정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의 설명에서 배어 나오는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에선 장인의 자존심마저 느껴졌다.
알에스오토메이션의 공장동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장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흡사 연구실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600평 규모의 공장동 안에는 SMT(Surface Mounting Technology·표면실장기술을 뜻하는 것으로 전자기기 조립을 자동으로 실행하는 장치)와 PCBA(Printed Circuit Board Assembly·회로 설계에 근거해 회로부품 접속의 전기배선을 배선 도형으로 표현하고 절연물 상에 전기도체를 재현하는 조립 장치) 라인들 사이로 고가의 검수장비와 테스트장비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반도체와 관련한 납품량이 상당한 만큼, 또 자동화기기 자체가 상당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대부분의 기계들이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정밀한 공정을 요한다. 박 이사는 "산업용 장비 중에서도 우리가 생산하는 모션 제어기, 논리 제어기 등의 산업자동화기기는 조금만 불량해도 바로 생산현장에 차질이 생깁니다. 인명피해나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죠"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알에스오토메이션의 주요 고객은 삼성전자와 계열사, 로크웰오토메이션 등이다. 거래하는 기업은 약 500여 사에 달한다. 삼성 관계사 및 설비공급업체에 매출의 40%가 집중되어 있다. 해외기업으로의 수출도 상당히 많아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한다. SPS/IPC 등 자동화기기 관련 세계 전시회에 참여해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거래 기업들의 산업순환구조에 따라 제품별 매출 순위가 변하기도 하지만 단일 품목으로는 서보 드라이버(장치가 안정적인 방향으로 구동될 수 있도록 기준 상태와 비교해 피드백함으로써 가장 적합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자동 제어하는 장치)의 매출이 제일 큰 편이다. 생산제품이 산업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B2B제품이다 보니 글로벌 경기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전체 매출은 연 600억 원대 중반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알에스오토메이션은 IPO도 진행할 예정이다. 2011년 기업공개를 하려 했지만, 경기 악화로 IPO기업들의 공모가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자 유보 결정을 내렸다. 설립 후 경과 연수가 기준에 못 미쳤지만, 이전 사업 경력을 인정받아 상장 요건이 충족된 상태였다. 현재는 알에스오토메이션 자체로도 설립 후 경과 연수 3년이 충족된다. 게다가 경영이나 재무적 요소가 더 안정됐다.
문제는 시장에서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느냐다. 국내 최초, 유일의 산업자동화기기 전문업체이기 때문에 적정 수준을 비교할 만한 상대가 마땅찮다. 미쓰비시나 야스카는 거래 시장이 다르고, 우리나라 LS는 기업 규모나 생산품 종류에서 차이가 난다. 거대 잡화점과 공구 전문 판매점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맞다. 현재 지분구조는 강덕현 사장이 1대주주이고 삼성벤처투자가 2대주주이며 그 밖에 창투사와 임원들, 우리사주가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정확한 지분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보통주 419만2,000주, 우선주 240만 주로 총 주식 수는 659만2,000주이다. 액면가는 500원에 자본금은 32억9,600만 원이다.
알에스오토메이션의 최종 목표는 산업용제어장비 분야에서 글로벌 톱 10에 진입하는 것이다. 시장점유율로는 글로벌 마켓의 2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알에스오토메이션은 이를 위해 중국, 인도, 동유럽, 라틴아메리카 등 이머징 마켓에 집중하려 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등 선진국으로의 수출이 상당한 수준이지만, 산업자동화기기 특성상 기존 거래 기업을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시장 확대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강덕현 사장은 말한다. "2015년에 매출액 규모를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내수 시장만으론 이 같은 목표달성이 어렵기 때문에 신흥 시장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산업용 모션 제어기의 지능화 및 네트워크화, 핵심 센서 부품의 내재화 등 차별화된 기술력만 갖추게 된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