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핵개발을 둘러싸고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에서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자칫 세계정세가 급격히 요동칠 수도 있다. 과연 실체는 무엇일까.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이란은 우리나라와는 아주 멀리 떨어진 나라다. 북한이라는 골치 아픈 상대를 머리 위에 이고 있는 탓에 크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나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란은 알아둬야 할 가치가 충분한 나라다. 석유로 현대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산유국인데다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과 접하고 있어 국제유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게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에선 북한만큼이나 서방세계와 사이가 좋지 않다.
이란과 서방세계, 그중에서도 초강대국 미국과는 1979년의 이슬람 혁명이 사이가 틀어지게 된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 이란을 지배했던 팔레비 왕조는 친미 노선을 견지하며, 1963년부터 '백색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토지 개혁, 여성 참정권 부여 등의 근대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왕권 안정을 위한 국방비 증액, 인플레이션, 생필품 부족 등에 따른 국민의 불만과 이슬람교 및 민족주의를 중시하던 전통 보수 세력의 저항을 불러왔다.
팔레비 왕조는 이러한 저항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고, 결국 이슬람 혁명을 통해 왕좌에서 물러나면서 반정부 운동의 선도자였던 루홀라 호메이니의 지도 하에 이슬람 원리주의에 기반한 독재 국가로 변모해 나갔다.
이렇게 새로 태어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980년 샤트 알 아랍강의 영유권 확보와 이란 혁명정권 타도를 목표로 이라크가 '이란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을 때 미국은 이란을 견제하고자 이라크에 막대한 지원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란은 이란 이라크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인정치 않으면서 생존을 위해 '자기 방식'에 의존했다. 산유국으로서의 지위,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과 접한 지정학적 입지를 이용해 자원을 무기화하고 자원 수송로를 독점하는 방법이었다.
실제로 이란은 혁명 이후 이 방법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그러나 자칫 미국을 위시한 서구 국가들과의 정면충돌만은 피해야 했다. 재래식 군사력이 열세인 이란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웃나라이자 1990년대 이후 미국에 의해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이라크가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무너지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체포당해 사형에 처해지는 모습을 본 이란으로서는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핵 전력의 보유만이 유사시 미국으로부터 자국을 지키면서 중동지역의 패권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이란 지도부의 머릿속에 확고히 뿌리박혔다. 이란이 지난 2005년 이래 핵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핵이라는 무기는 핵폭탄만 개발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목표 지점까지 날려 보낼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이는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탄도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 그리고 조금 넓게 보면 이러한 미사일의 이동식 발사대 역할을 하는 차량을 의미한다. 미국을 비롯한 이란의 잠재적인 적들이 딴 마음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러한 장비들의 존재 이유이니만큼 이란 당국도 이런 장비들의 존재는 굳이 숨기고픈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란의 첨단무기를 홍보하는 사진들에서는 이상한 향기가 솔솔 퍼지고 있다.
지난 2008년 7월 9일 이란 혁명 수비대 소속 통신사인 세파 뉴스는 4발의 샤하브-3 미사일이 일제히 하늘로 발사되는 사진을 뉴스에이전시인 프랑스 프레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배포했다. 샤하브-3 미사일은 북한의 로동 1호를 베이스로 이란이 개량해 만든 중거리 탄도 미사일로 유효사거리가 최대 1,930㎞, 탄두 중량은 최대 990㎏에 달한다. 이란은 이 미사일을 2003년부터 실전 배치했으며, 2006년부터는 군용 미사일의 성격에 맞춰 엔진을 고체연료 엔진으로 변경한 모델을 생산 중에 있다.
아무튼 미사일 발사 사진은 여러 주요 언론사의 1면에 실렸다. 그런데 이 사진이 뭔가 이상했던 모양이다. 사진을 유심히 살펴본 비평가들은 이내 이상한 느낌의 실체를 알아채고 말았다. 다름 아닌 포토샵을 이용한 조작의 흔적이었다.
이 사진은 얼핏 봐도 왼쪽에서 두 번째 미사일과 세 번째 미사일의 배기 화염이 비슷하다. 그리고 그 배기 화염들 아래, 그러니까 지상에 일어나는 먼지 구름은 세 번째 미사일과 네 번째 미사일의 것이 똑같다.
이는 성적표의 D학점을 A학점으로 고쳐 쓴 거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전 세계 네티즌들은 각종 패러디 사진들을 만들어 이란의 사진 조작 행위를 조롱했다. 이미 교차 검증 없이 사진을 내보낸 세계의 주요 언론사들은 홈페이지에서 해당사진을 내려야 했다.
그러자 다음 날 세파 뉴스는 AP통신에 미사일 발사 광경을 다룬 또 다른 사진을 공급했다. 첫 번째 사진과 거의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촬영된 것이 분명했지만 세 번째 미사일이 발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첫 번째 사진이 조작됐음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된 것이다.
도대체 이란은 왜 이런 사진을 내보냈을까? 조작되지 않은 것으로 판정된 두 번째 사진을 보면 그 이유를 대강 알 듯도 하다. 발사되지 않은 세 번째 미사일은 아마도 발사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 입장에서 이는 분명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기에 조작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샤하브-3는 유효사거리가 길기 때문에 모두 성공적으로 발사되는 장면을 보여줘야만 주변국과 잠재적 적국에 힘의 시현 효과가 크다는 점도 일정부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조작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이란은 잠시나마 자국 미사일의 위용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는 성공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래도 이건 실제 발사가 가능한 미사일이니 일단 봐주기로 하자. 그 이후로 드러난 이란의 사기행각은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다.
지난 2012년 11월 8일. 이란 언론들은 자국 최초의 수직이착륙 무인기(UAV) '코커-1(Koker-1)'의 처녀비행이 성공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란측은 보도를 통해 코커-1은 탐색구조와 육상·해상 정찰 임무에 활용될 수 있으며, 한 달 내에 키쉬섬에서 1단계 프로젝트 결과가 일반에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무인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무인기의 존재한다는 증거로 이란측이 제시한 유일한 사진에 어설픈 포토샵 작업 티가 역력했던 것.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 와이어의 조사에 따르면 이 사진은 일본 치바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QTW-UAS' 무인기의 사진을 가지고 포토샵으로 배경을 지운 것에 불과했다. 이란은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무인기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외국에 무인기 개발 능력을 확보했다고 과시하려 했던 모양인데 오히려 코커-1이 없다는 사실만 확실히 입증시킨 결과가 초래됐다.
이란의 자충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3년 2월 2일 'F-313'이라는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 중이라며, 실물을 촬영했다는 사진과 비행 동영상을 공개한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코커-1 때와는 달리 항공기 옆에 사람이 서 있거나 조종석에 사람이 타고 있는 등 다양한 앵글의 사진이 함께 공개됐다.
이로써 최소한 사진에 장난을 치지는 않았음이 확인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이 다시 한번 집중됐다. 스텔스 전투기 개발이 사실이라면 이란은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실용 스텔스 전투기 보유국이 될 터였다. 스텔스 전투기가 갖는 군사적 가치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란은 F-313이 저공작전 성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착륙 거리가 짧고 정비가 간편하다고 설명했다. 또 2발의 2,000파운드(900㎏) 폭탄 탑재가 가능하고, 지능형 유도 폭탄은 더 많은 수를 탑재할 수 있으며, 최소 6발의 PL-12 공대공 미사일을 장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더해 비행 안정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컴퓨터로 동체를 제어하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 조종방식을 채용할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뭔가 이상한 점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항공기의 개발이 얼마만큼 진척되었는지를 입증할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전무한 상태였다. 그리고 일부 평론가들은 이 항공기 역시 가짜이며, 우스꽝스러운 모조품이라고까지 폄하했다.
BBC 뉴스 페르시안 서비스의 사이러스 아미니 기자도 기사를 통해 "공개된 항공기의 형상으로 볼 때 도저히 이란이 주장한 성능을 낼 수 없다"고 단정했다. 그는 또 사진 속 항공기가 비행이 전혀 불가능한 실물 모형 내지는 축소 모형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란측이 무장창에 대한 세부기술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던지라 무장 능력의 상당수는 애당초 검증조차 불가했다.
항공관련 웹진 '플라이트 글로벌' 역시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항공전문가의 말을 빌려 이 항공기를 '매우 멋진 플라스틱 모델'이라 결론 내렸다. 항공기의 캐노피는 항공기에 쓰이는 특수 아크릴이 아니라 일반적인 투명 플라스틱처럼 보이며, 공기흡입구는 말도 안될만큼 작다는 게 그 근거였다. 때문에 이 웹진은 낡은 항공기의 외부에 플라스틱 부품을 붙여서 리폼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란이 자체 개발했다고 밝힌 스텔스 전투기 'F-313'.
군용기 전문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센치오티의 경우 "이 항공기는 공기역학적으로 적절치 못한 디자인을 하고 있고 할리우드 영화 소품으로나 적절한 싸구려 광택을 풍긴다"고 평가했다. 또한 동체 크기가 전투기 치고는 너무 작고, 조종석이 너무 단순하며, 계기도 민간용 경비행기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라 지적했다.
아닌 게 아니라 계기판을 촬영한 사진에는 군용 대비 상대적으로 저급한 계기들이 달려 있다. 전투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백업용 대기 속도계에 적혀 있는 마킹도 말이 되지 않았다. 사진 대로라면 이 항공기의 실속 속도는 70노트(시속 130㎞), 최대속도는 260노트(480㎞)에 불과해야만 했다. 이는 전투기보다 소형 터보프롭 항공기에나 어울리는 속도다.
사진과 함께 공개된 동영상도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증폭시키는데 일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동영상에 찍힌 F-313이 실제 항공기가 아닌 무선조종(RC) 모형 항공기일 개연성을 제기했다. 동영상의 화질이 상당히 좋지 않아 항공기의 크기를 전혀 식별할 수 없으며, 무장이 되어 있지 않고, 이착륙 모습이 없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한 이스라엘 항공공학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진에 공개된 이 항공기가 디자인적 관점에서 상당한 스텔스 성능을 갖추고 있으며, 기동성 또한 뛰어나 보인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무장의 경우 폭탄 탑재는 어려워 보이지만 공대공 미사일 정도는 탑재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내렸다. 이란 영공을 침입한 적기를 요격하는 용도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외국 언론의 반응에 대해 이란 국방부는 올해 2월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부정확한 것이며, 항공기에 사용될 엔진을 성공적으로 시험 완료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동영상에 나온 항공기가 실기가 아닌 무선조종 모형항공기며, 현재는 실물기가 비행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가까운 장래에 실물기의 비행시험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선 수차례의 '양치기 소년' 행각을 경험한 세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사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들어온 미 해군을 공격하는 데 굳이 스텔스 전투기와 같은 첨단무기가 필요하지 않다. 고속정, 순항미사일, 기뢰 정도의 병기만으로도 충분히 격퇴시킬 수 있다. 때문에 스텔스 전투기의 실존 유무나 비행 가능 유무는 이란으로서는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미국이 절대 마주칠 리가 없는 가공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헛돈을 쓰게 하는 게 이 스텔스 전투기의 진짜 목적일지도 모를 일이다.
손자병법에 '싸움은 속임수(兵者詭道)'라는 말이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어설픈 속임수는 쓰지 않느니만 못하다. 오히려 상대방의 비웃음을 살 뿐이다.
실체가 드러난 이란의 여러 가지 가짜 최첨단 병기는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우선 쉽게 속아 넘어가는 인간 오감과 지각의 불완전함이다.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과 그 이성의 도구인 과학을 사용해 면밀히 검증하면 많은 경우 참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음이 확인됐다는 사실이다.
몸에는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21세기의 첨단기기를 둘렀지만 여전히 뻔 한 거짓말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현대인들. 조금만 더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세상을 살아가며 거짓말에 휘둘리는 빈도를 대폭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실속 (stall, 失速) 항공기 주날개의 양력(揚力)이 급격히 떨어져 비행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