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섭스크립션 커머스가 뜬다

[NEW TREND] 전문 큐레이터가 최적 제품 선별·발송

넘쳐나는 브랜드 중 내게 꼭 맞는 제품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전문가의 큐레이션을 통해 선별된 제품을 미리 써 본 후에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소비자의 니즈에 맞춘 섭스크립션 커머스 subscription commerce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본다.
김의준 기자 eugene@hmgp.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국내에 판매되는 화장품 브랜드는 1,000개가 넘는다. 게다가 화장품은 보통 계절마다 쓰는 제품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화장품 업체는 소비자에게 더 효율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경로를, 소비자는 자기 취향에 딱 맞는 제품을 찾는 방법이 필요하다. “고가 제품의 샘플을 우선 써보고 좋으면 살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11년 국내 최초로 섭스크립션 커머스 업체를 설립한 최홍준 글로시박스 대표는 말한다.

섭스크립션 커머스란 말 그대로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필요로 하는 제품을 정기적으로 배송받는 서비스다. 제품은 매달 전문 MD들이 이달의 콘셉트와 고객들의 취향에 맞춰 가장 핫한 아이템들을 선별해서 보내준다. 전문가의 큐레이션과 개인별 맞춤이 결합된 셈이다. 섭스크립션 커머스는 2010년 미국에서 버치박스Birchbox라는 기업이 처음 주목을 끈 후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소셜 커머스를 이을 차세대 사업으로 급부상했다.

국내 시장은 글로시박스와 후발 업체인 미미박스가 양분하고 있다. 양사 모두 월 1만6,500원을 내면 매달 한 번 화장품 샘플이 든 상자를 배송해준다. 아직 200억 정도 규모의 시장에 불과하지만 성장률은 가파르다. 지난해 2월 설립 후 연 매출 13억을 기록한 미미박스의 경우 올해 100억 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박스에 제품을 큐레이션해서 배송하는 걸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업이 커지면서 저희가 하나의 광고 채널이 됐고,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업체에 공급하는 역할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미미샵이라는 유통 채널까지 운영하고 있죠. 5월부터는 미미박스 로고가 찍힌 제품이 나올 예정이고 백화점에도 입점합니다.”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는 말한다.

섭스크립션 커머스가 소비자(구독자)와 업체(공급자)에게 제공하는 가치는 명확하다. 소비자는 제품 정보 수집 등 물건 구입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사용해보고, 피드백을 하며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특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업체 입장에서는 더 많은 고객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게 된다. 지속적인 소비자 피드백을 통해 구체적인 소비자 반응 파악이 가능해지며 반복적인 구매로 이어져 매출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국내 섭스크립션 커머스는 아직 뷰티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지만, 서서히 반려동물 용품이나 베이비 용품 등 다른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새로운 광고 플랫폼으로서의 기능

섭스크립션 커머스는 기본적으로 샘플 제품을 공급하는 것에 기반한다. 뷰티 업계의 경우 폐기되는 샘플 제품들을 좀 더 실용적으로 활용할 방안이 필요했다. “업체 입장에서는 정확하게 샘플링할 곳이 없다는 것이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좋은 제품은 직접 체험해봤을 때 재구매로 이어질 확률이 높거든요.” 미미박스의 하 대표는 말한다.

섭스크립션 커머스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의 광고 플랫폼이 단순히 제품의 노출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주력했다면, 섭스크립션 커머스는 ‘제품 체험 후 구매’라는 새로운 마케팅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향상, 입소문을 통한 홍보, 제품 재구매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컨설팅 업체 매킨지가 발표한 ‘소비자 의사결정 여정(The Consumer Decision Journey)’이라는 리포트에서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표를 ‘소비자의 구매결정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순간을 공략하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최홍준 글로시박스 대표는 “어떻게 보면 TV광고보다 파급력은 약하지만 구매 전환율이나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 강합니다”라고 말했다.

구매 전환율(Conversion Rate)은 온라인 마케팅에서 핵심 지표로 활용된다. 일반적인 온라인 상점의 경우 1% 내외의 구매 전환율을 보인다. 반면 국내 뷰티 섭스크립션 업체의 경우 13%대의 높은 구매 전환율을 보인다. 미미박스는 이런 높은 구매 전환율 때문에 최근 그루폰 코리아 경영진 중 한 명을 영입했다. 미미박스에서 마음에 드는 샘플의 정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미미샵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섭스크립션 커머스의 틈새시장 공략 효과를 높이 산 해외 기업들은 아예 무료로 제품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개발했다. 영국에 위치한 ‘박스 오브 오섬 Box of Awesome’은 8세부터 14세 어린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게임, 음악, 책 등의 샘플 제품이 포함된 무료 박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3만 명 이상의 회원이 가입했고, 지난 달에는 여자 어린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박스 오브 OMG Box of OMG’로 확장했다.

하지만 이런 빠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규모의 한계성이나 사업 모델의 정체성에 대한 우려는 존재한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말한다.“소비자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라는 차원에서 분명 새로운 방식의 사업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꾸준히 수익을 내고 지속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구조인지, 또는 물량을 키워서 규모의 경제를 얻을 수 있는 구조인지에 대한 염려는 있습니다. 물량을 키울 때까지는 자금력이나 나름대로 차별성을 확보해야 성장이 이루어지겠죠. 그것을 바탕으로 좀 더 추가적인 사업을 연계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분명 섭스크립션 커머스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잠깐의 유행이 아니라 기업과 고객 사이의 중요한 중개자로서 확고히 자리 잡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미미박스의 하 대표는 말한다. “더 강한 마케팅 채널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고객과 브랜드 사이에 간격을 좁히는 데 저희가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
미미박스
하형석 대표

미미박스만의 차별성이 있다면?
우선 미미샵이라는 e커머스 스토어가 있다는 것, 매달 남자 박스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TV에서부터 모바일 앱, 백화점까지 다양한 노출 경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저희 마케팅 결과 보고서는 저희가 어디를 가도 항상 가장 자신 있게 자랑하는 부분입니다.

섭스크립션 커머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패션 쪽 일을 하다가 티켓몬스터에서 일하면서 커머스나 벤처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게 됐어요. 그 두 가지를 잘 섞으면 미미박스라는 형태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느낌상으로 우리가 안 하면 누군가 분명히 먼저 해서 잘될 것 같았습니다.

섭스크립션 커머스 분야가 매력적인 이유?
어떻게 보면 과거에는 제조업체들이 마케팅도 하고 유통도 하고 다 혼자 알아서 해야 했는데 이제는 저희가 온라인, 모바일 등의 기술을 통해 그런 니즈를 해소시켜준다는 거죠. 진짜 서로가 잘하는 분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너무 투자받는 것에 집중 안 했으면 좋겠어요. 투자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자기 사업에 집중을 못하더라고요. 처음에 창업 하시는 분들이 돈 받으면 모든 게 해결 될 줄 아는데, 우선 전략적으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부터 고민하는 게 중요해요. 어떤 일이든 우선순위를 정하면 사업은 잘 풀리게 됩니다.


인터뷰
글로시박스
최홍준 대표

글로시박스만의 차별성이 있다면?
저희 서비스랑 제품이 가장 고급스럽고 전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많이 진행한 회사들은 아모레 퍼시픽, 로레알, LVMH입니다. 반응이 좋아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브랜드가 있다면?
버버리 같은 경우 재작년에 한국에 뷰티 사업을 론칭하고 홍보 활동을 거의 안 했어요. 그러다 보니 90%이상의 고객들이 버버리를 패션브랜드로만 알았지, 뷰티 제품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저희가 버버리 제품만 다룬 스페셜 패키지를 2,000개 한정 판매했는데 5일만에 완판됐습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 나게 하는 데 최적의 플랫폼이었던 거죠.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취업 준비할 때 “왜 내가 남이 만든 회사에서 이렇게 인정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이런 노력이면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다음부터 스타트업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고, MBA에서도 온라인 광고나 창업 쪽 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스타트업이라는 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현실에서 중요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어떤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찾아서 포기하지 않고 2~3년 독하게 몰두하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 온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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