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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도시 마스다르시티

CITY OF LIGHT<br>중동의 한 산유국이 사막 한복판에 태양에너지로 움직이는 거대한 친환경 도시를 세우고 있다. 화석연료 시대의 지배자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이 나라가 여기에 180억 달러를 쏟아 붓는 이유는 뭘까.

아랍에미리트(UAE) 마스다르시티(Masdar city)의 첫인상은 신기루와도 같았다. 멀리서 바라본 이 도시는 지평선 위에 외로이 서 있는 형형색색의 섬처럼 보인다. 그런 오해를 불러온 이유 중 하나는 입지 때문이다.

아부다비 공항에 이웃한 마스다르시티에 가려면 페르시아만을 따라 뚫려 있는 고속도로를 타고 사람이 살기 힘든 사막 한복판을 관통해야 한다. 아부다비 중심가와 이곳 사이의 32㎞ 구간은 지금껏 필자가 본 도시개발 프로젝트 중 가장 공간의 낭비가 심하다. 아무런 특징 없는 평지에 허허벌판에 국회의사당 크기의 대저택이 서 있고, 차량 한 대 보이지 않는데 6차선 도로가 뚫려 있다. 게다가 총 180억 달러가 투입되는 마스다르시티는 불과 6㎢ 넓이의 면적에 단 4만명을 수용하기 위한 신도시다.




탄소중립을 넘어 탄소제로를 꿈꾸는 세상에서 가장 야심찬 친환경 도시인 마스다르시티에는 자동차를 몰고 들어갈 수 없다. 이 도시의 방문자들은 반드시 도시 북단의 대규모 주차장에 차량을 세워 놓아야 한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짙은 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그늘에서 걸어 나와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마스다르시티 프로젝트 매니저인 45세의 미국인 스티븐 세브란스였다.

세브란스는 주차된 차들을 지나쳐 짙은 색 유리문으로 안내했다. 문 너머에는 대리석으로 장식된 로비가 있었고, 또 하나의 유리벽을 지나자 마스다르시티의 대중교통수단인 근거리 이동용 '개인 궤도 자동차(Personal rapid transit, PRT)'가 보였다. PRT는 태양에너지로부터 얻은 전기를 동력으로 지정된 궤도를 주행하는 친환경 차량이다. 운전자 없이 승객이 도심 내 PRT 정류장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곳까지 논스톱으로 데려다준다.

세브란스와 필자가 탑승하자 PRT의 자동문이 닫혔고, 어느 새 거대한 지하실처럼 보이는 공간을 시속 24㎞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깔린 자석을 따라 주행하는데 근접 센서를 이용해 다른 PRT와의 충돌을 막는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자동차 같지 않나요? PRT는 정말 멋진 아이디어의 산물이라 생각해요. 태양에너지를 연료로 사용하고, 자율주행인데다 절대 서로 충돌하지도 않아요."

그러나 PRT의 궤도 중 현재 작동 가능한 것은 필자가 이동 중인 궤도가 유일하다. 그나마도 전체 길이는 주차장과 마스다르과학기술대학을 잇는 800m 구간이 전부다.

세브란스에 따르면 당초 PRT는 마스다르시티 시내 전역의 교통을 책임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건물들 아래로 PRT가 지나다닐 공간을 확보하려면 도시 전체에 6m 높이의 기둥과 외벽을 세운 뒤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해야 했다. 엄청난 경제적 출혈이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래서 도시 중심부 약 0.8㎢만 그런 방식으로 건설했고, 나머지 지역은 지상 교통수단을 사용키로 계획을 변경했다.

"때문에 아직 마스다르시티의 교통수단은 미정인 상태로 남아있어요. 전기 버스가 될 수도, 태양전지 자동차가 될 수도, 수소연료전지자동차가 될 수도 있죠. 탄소배출이 없는 모든 친환경 차량에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어느덧 PRT가 지하의 터미널에 도착했고, 차량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니 야외광장이 나왔다. 그곳에는 건설이 진행 중인 5~6개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저기 보이는 붉은색 건물에 마스다르과학기술대 학생 119명이 기거하고 있습니다. 그 학생들이 이 도시의 유일한 주민이에요. 기숙사 옆에 스틸 소재로 표면을 덮은 건물이 바로 마스다르과학기술대학입니다."

세브란스는 일본레스토랑, 커피숍, 슈퍼마켓, 여행사, 휴대폰 판매점 등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업종들이 모여 있는 작은 상업지구로 필자를 안내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곳이 도시라는 느낌이 들지 않음을 새삼 다시 느꼈다.

하지만 마스다르시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의 느낌을 주지 않도록 만든 도시다. 앞으로 12년간 6㎢ 면적에 친환경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설 것이며 스마트그리드와 개량된 발전·배전 인프라도 구축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조용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거리와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에 매료된 주민들을 끌어 모을 것이다. 대학 캠퍼스와 몇 개의 뒤죽박죽인 상가들뿐인 지금의 모습을 벗고 진정한 미래도시로 거듭나는 것이다.



거대한 현장 실험실

마스다르시티 건설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6년이었다. 그해 UAE에서도 가장 석유와 돈이 많다는 아부다비 정부는 총 220억 달러를 들여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선구자가 될 것임을 천명했다.

사실 아부다비는 석유국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곳이다. 면적은 서울과 경기도를 합친 면적의 6배 정도에 불과하지만 세계 6위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한다. 러시아보다 20%나 많은 매장량이다. 그로 인해 UAE는 미국 LA의 도심지역보다 인구수가 적지만 국민 1인당 생태발자국은 세계 3위다.

이랬던 UAE가 어느 날 이제껏 어떤 나라도 진지하게 시도하지 않았던 프로젝트, 즉 사막의 황무지에 신재생에너지로 도시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제공받는 탄소중립 도시이자 폐기물 제로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무인 전기자동차들이 주민들을 실어 나르고, 모든 건물에는 거대한 태양전지 지붕이 설치된다. 또한 지속가능에너지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마스다르과학기술대학이 MIT와 공조해 도시의 이상을 실현할 아이디어의 생산공장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 추진된 마스다르시티는 도시 전체가 친환경 기술의 실험장이자 인큐베이터로 떠올랐다.

그런데 석유경제의 기둥이었던 UAE가 신재생에너지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한 진위를 놓고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일각에서는 세상에 대한 참회라고 했고, 다른 일각에서는 사기의 냄새가 짙다고 폄하했다.

이런 의심의 골을 넘어 프로젝트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고효율 아파트와 사무빌딩, 상업용 건물들이 지어졌고, 무인 전기자동차들이 도입돼 도시를 내달렸다. 도시가 소비하는 전력은 태양전지를 통해 생산되는 전력보다 적었으며, 마스다르과학기술대는 76명의 박사들로 이뤄진 교수진을 갖추고 수업에 들어갔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 전 세계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마비되던 와중에도 마스다르는 멈추지 않았다.

특히 2009년에는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아부다비에 본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고, 2011년에는 마스다르과학기술대가 70명의 석사를 제1기 졸업생으로 배출했다. 그리고 급기야 2012년 독일 기업 지멘스가 마스다르시티에 중동지역본부를 설치한 것을 기점으로 이 도시는 단순한 제스처를 뛰어넘어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현실성을 갖춘 새로운 모델이 됐다.

물론 마스다르시티가 현실적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금융위기를 겪으며 도시기획자들은 당초 천명한 원대한 야망을 한수 접고, 40억 달러의 예산을 줄였다. 그에 따라 엔지니어들은 정밀하게 설계된 태양전지 지붕을 설계도에서 지워야 했다. 대신 도시 주변에 태양전지 발전단지를 건설키로 계획을 변경했다. PRT가 도시 외곽의 주차장과 시내를 연결하는 셔틀로 기능이 축소된 것도 이때였다.

게다가 마스다르시티는 원래 태양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이용해 지하수의 염분을 제거, 담수화하려 했다. 그러나 막상 지하수를 검사해보니 페르시아만 바닷물보다 염도가 3배나 높았다. 탈염 공정에 예상보다 많은 에너지가 투입돼야 했다.

"마스다르시티는 물 사용량을 아주 철저히 모니터링해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에너지 모델

아부다비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석유 덕분이다. 1960년 한 석유개발회사가 경제성 있는 유전을 처음 발견했을 때만 해도 아부다비의 거주지는 낙타를 끌고 다니는 유목민들의 텐트와 천으로 아랫도리만 겨우 가린 채 배에서 물건을 하역하는 사람들이 사는 항구가 전부였다.

석유는 이렇게 절대빈곤에 시달렸던 아부다비와 UAE를 불과 반세기도 안 되는 시간 동안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세계 6위 국가로 변모시켰다. 아부다비는 화려한 마천루와 사람들로 가득한 대도시가 됐고, 거리에는 슈퍼카들이 즐비하며, 쇼핑몰은 명품들로 가득 차 있다.

누가 봐도 남부러울 것 없지만 UAE는 2002년 석유 이후의 시대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셰이크 할리파 빈 자예드 알 나히얀 황세자가 국영투자기업 무바달라의 설립을 지시한 것. 석유와 가스 이외의 다른 자원으로 국가경제를 부양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이 회사의 임무였다.

2005년 무바달라의 에너지 국장을 맡고 있던 술탄 아메드 알 자베르는 7개월간 대한민국과 독일, 미국 실리콘 밸리 등을 돌며 현지의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살펴봤다. 여행을 끝낸 그가 도달한 결론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신재생에너지는 당시 투자회사들이 판단했던 것 이상으로 기술적으로 성숙돼 있으며, 실용적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판단에 의하면 신재생에너지의 문제는 여러 이해관계자들과의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과학자들이 신소재와 신기술을 개발해도 시장에 보급되기도 전에 상용화가 사장됐고, 기업들이 청정연료를 출시해도 화석 연료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정부 당국자들 또한 신재생에너지를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에 그는 마스다르시티 건설을 추진하며 각각의 이해관계 요소들을 통합하고자 했다. 전력 발전기술과 활용기술, 자본 투자, 이들에게 승인을 내주는 정치적 요소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묶는 것이다.

마스다르시티의 태양에너지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마스다르 클린에너지의 베데르 암 람키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아부다비를 포함한 다수의 지역에서 태양에너지 설비를 시공, 운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의 프로젝트에서는 저희가 해야 할 일 하나만 신경 쓰면 되지만 마스다르시티에서는 가치사슬 전체를 통합해야 합니다."

람키의 부서는 마스다르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4가지 요소의 하나다. 나머지 3개는 마스다르 과학기술대학, 투자자들을 모아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마스다르 캐피탈,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마스다르 시(市)다.



태양을 잡아라

기온이 50℃까지 올라가고, 물은 꼭 탈염 과정을 거쳐서 사용해야하는 곳. 발전을 위해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탓에 산유국이면서도 에너지 순수입국의 오명을 갖고 있는 곳. 그곳이 아부다비다. 때문에 마스다르시티를 통해 화석연료 없이 충분한 전력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렇게 해줄 유일한 도구는 태양에너지다. 마스다르시티가 자신의 진가를 입증하려면 최우선적으로 엄청난 양의 태양에너지를 확보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마스다르시티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도시에서 160㎞ 떨어진 곳에 건설된 태양열 발전소다.


아부다비를 찾은 두 번째 날 필자는 이 발전소를 보러 갔다. 모래도 뒤덮인 광활한 평원을 90분간 자동차로 달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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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햇빛을 모아 열을 만들어낸 것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아르키메데스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전(口傳)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 아르키메데스는 시라쿠사(현재의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지역을 공격해 온 로마군 함대를 반사경을 이용해 불태웠다고 한다.

마스다르의 태양열 발전소에는 기다란 반원형 반사경 192개가 줄지어 서 있었다. 반사경 하나의 길이는 축구경기장보다 조금 길어 보였고, 폭은 6m 정도 됐다. 엔지니어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각 반사경의 중심에는 열전도율이 뛰어난 유리 클래드(glass clad) 소재로 표면 처리된 쇠파이프가 지나고 있으며, 그 속에 오일이 흐르고 있다. 펌프가 5분당 1갤런(3.78ℓ) 정도의 오일을 순환시키는데 반사경을 지나는 동안 390℃까지 가열된다.

이 오일을 한 곳으로 모은 다음, 오일의 열에너지로 물을 고온증기로 만들어서 터빈을 돌리는 메커니즘이다. 이렇게 물에게 열에너지를 빼앗긴 오일은 다시 반사경으로 보내지며, 컴퓨터로 제어되는 유압피스톤이 태양의 이동궤적에 맞춰 반사경 위치와 각도를 바꿔준다.

작년 12월에만 해도 이곳은 태양열 발전소 중 세계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올해 미국 피닉스와 북부 네바다 인근에 초대형 태양열 발전소가 세워지면서 왕좌의 자리를 빼앗겼다. 미국 외의 여러 국가에서도 마스다르를 능가하는 발전소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그중에는 규모가 마스다르의 4배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처럼 태양열 발전은 태양전지, 즉 태양광 발전에 밀려 소규모로 이뤄졌던 암흑기에서 벗어나 빠르게 파이를 넓히고 있다. 올해 말이면 200만 가구가 사용 가능한 약 2GW의 전력이 태양열에 의해 전 세계에서 생산된다. 현재 건설 중인 태양열 발전소의 발전량을 합하면 전력생산량이 8GW에 이른다.

물론 이 정도는 다른 대체에너지와 비교할 때 약소한 수준이다. 2010년말 현재 전 세계 태양광 발전은 태양열 발전의 20배, 풍력은 100배의 전력을 생산했다.

그럼에도 태양열 발전이 최근 각광 받고 있는 것은 태양광이나 풍력에는 없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열에너지를 이용한다는 특성에 힘입어 발전에 더해 물을 증발시키는 방식의 탈염공정에도 활용할 수 있는 것.

또한 값비싼 배터리가 아닌 열의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 야간에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전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참고로 마스다르시티 프로젝트 참여기업 중 한 곳은 오일 대신 용융염을 매질로 쓰는 태양열 발전소를 스페인에 건설했는데 열에너지를 획득·저장하는 능력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로렌 롱게는 프랑스의 석유기업 토탈 출신으로 신재생에너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즐거운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석유업계 친구들은 보수적이에요. 도대체 왜 혁신이 필요하냐고 말하죠. 하지만 마스다르시티에서는 달라요. 여기 사람들은 왜 혁신을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마스다르대학 연구실

이곳저곳을 둘러볼수록 필자는 마스다르시티의 모든 것이 연구프로젝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도시에 적용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하는 마스다르과학기술대학은 연구실마다 서로 다른 기술을 연구한다.

일례로 바이오에너지·환경연구실은 가정에서 배출된 쓰레기를 원료로 전력을 생산하는 미생물 연료전지의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전기자동차 및 자동화시스템 지능형 기술 연구실에서는 운전자와 차량에 도로나 교통 상황 정보를 실시간 알려주는 통합네트워크를 설계 중이다. 이외에 인공지능, 나노급 에너지 저장, 태양전지 등에 특화된 연구실들이 있다.

필자는 마이크로시스템 연구실을 방문, 제럴드 유 교수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온 KAIST 출신의 공학자다. 전선과 공구가 어지럽게 널려진 작업대 앞에 앉은 유 교수는 은색 문양이 새겨진 검은 티셔츠를 들고 있었다. 그 문양이 인쇄 배선 회로라고 설명한 그는 언젠가 이런 회로가 그려진 셔츠가 착용자의 건강상태를 실시간 관찰하고, 휴대폰에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알려주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분명 의미 있는 기술이었지만 그것이 지속가능 에너지의 도시를 지향하는 마스다르시티의 미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놓고 물어보니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이 회로는 극도로 적은 에너지만으로 구동됩니다. 마스다르시티의 역할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의 생산과 함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마스다르대학에서 이뤄지고 있는 핵심 연구과제 중 하나는 도시 외곽에 설치된 신개념 태양열발전시스템 '빔 다운 솔라 타워(Beam Down Solar Tower)'다. 이를 이용하면 햇빛을 좁은 지점으로 집중시켜 기존 태양열 발전소보다 한층 강한 열을 만들 수 있으며, 과학실험이나 열에너지 생산을 위해 햇빛을 다양한 파장으로 분리할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노르웨이 출신의 마테오 키사 박사는 필자의 지식을 과대평가한 듯 일반인들에게는 외계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온갖 전문용어를 총동원해 홍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마스다르시티에 머문 지 올해로 5년째라는 그는 37번째로 마스다르과학기술대학의 교직원이 됐다. 그동안 동료들과 함께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치며 6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지만 이 도시에 일반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될 때까지 연구자로서의 책무를 이어가야 한다.



불가능의 도시

오후의 마스다르시티는 뜨거움 그 자체다. 필자는 도시 한복판의 벤치에 세브란스와 함께 앉아 잠시의 망중한을 즐겼다. 그러다가 문득 이곳이 놀랍도록 조용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경적 소리도, 트럭의 공회전 소리도, 사이렌 소리도 없었다. 그리고는 기온이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아부다비 중심가보다 확실히 시원했다.

"여기가 상대적으로 시원한 이유는 두 가지에요. 일단 저희는 그늘에 앉아 있어요. 도시설계자들이 건물들은 물론 건물 사이의 광장에도 최대한 그늘이 드리워지도록 세심하게 건물들을 배치한 결과죠. 건물의 냉방비 절감도 가능하답니다."

나머지 하나의 이유는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브란스는 벤치에서 일어나 광장을 가로질러서는 대형 굴뚝을 격자 철망으로 둘러싼 듯한 모습의 타워로 필자를 이끌었다. 폭이 6m 정도 되는 5층 건물 높이의 타워였다.

"도시 상공을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을 붙잡아 광장으로 내려 보내는 자연 선풍기에요. 덕분에 마스다르시티의 지면에는 산들바람이 끊이지 않고 불어옵니다."

현지인들이 바람 탑(wind tower)이라 부르는 이 타워는 현대기술의 산물이 아니다. 페르시아에서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부다비가 석유로 부유해지기 이전부터 사용돼 왔던 기술이다. 마스다르시티의 엔지니어들이 한 것이라고는 전통적 바람 탑에 컴퓨터로 제어되는 통풍 패널(louver)을 부착해 효율성을 높이고, 물 분사장치를 통해 바람의 온도를 더 낮춘 것 밖에 없다.

엄청난 부와 발전을 이뤘지만 첨단 미래 도시에 고대의 기술이 뿌리내리고 있는 곳. 아부다비는 이렇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었다.

비평가들은 마스다르시티의 목표가 너무 급진적이라고 말한다. 만일 금융 위기 때 목표가 축소되지 않았다면 비평가들은 이 프로젝트가 돈 많은 군주의 값비싼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스다르시티는 분명 현실 경제에 매여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에 교훈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마스다르시티에서 만나 사람 중 누구도 이 도시가 완전무결하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아직은 보행자 친화적이며, 태양에너지로 움직이고, 스마트그리드가 운용되는 도시를 건설할 준비조차 완료되지 않았다. 그런 관점에서 마스다르시티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의 롤모델이 될 수는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술혁신의 모델이며, 지속가능 에너지 기술의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훌륭한 장이다.



친환경 유토피아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에 건설된 친환경 도시들

라바사 (LAVASA)
인도 마하라슈트라
수용 인구 : 30만명 완공 예정 : 2021년
인도 서고츠 산맥의 건조 지대가 생체모방기술이 접목된 활력 넘치는 신도시로 환골탈태하고 있다. 빌딩의 토대가 나무처럼 수분을 빨아들여 저장토록 하고, 수확개미가 개미집을 지키기 위해 활용하는 통로를 모방한 다수의 통로로 홍수를 막아낼 계획이다.

후지사와 지속가능 스마트 타운 (Fujisawa SST)
일본 가나가와현
수용 인구 : 3,000명 완공 예정 : 2014년 봄
후지사와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백지 상태에서 스마트그리드를 사용해 도시를 설계하는 모범답안이 된다. 모든 가구에 전력망과 연결된 태양전지가 설치되며, 공용 전기자동차 및 전기자전거 스테이션도 운용될 예정이다.

데스티니 (Destiny)
미국 플로리다주 오세올라 카운티
수용 인구 : 25만명 완공 예정 : 미정
배가 오갈 수 있는 총연장 320㎞의 수로와 수상택시, 지속가능 기술을 연구하는 엑스포 센터가 들어서게 될 환경도시. 곤돌라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미래형 친환경 버전 쯤 되어 보인다. 베네치아가 물에 잠기고 있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동탄
중국 충밍섬
수용 인구 : 50만명 완공 예정 : 미정
세계 최초의 친환경 대도시 건설 프로젝트.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풍력과 태양에너지로 전력을 공급받고, 생물반응기로 볏짚 같은 바이오 연료를 난방에 활용한다. 자금 마련과 지역주민들과의 마찰 문제로 풍력발전소 하나를 건설한 뒤 잠정 중단된 상태다.

송도
대한민국 인천
수용 인구 : 25만명 완공 예정 : 2020년
현재까지 개발된 가장 성공적인 친환경도시. 2009년 제1단계 사업이 마무리됐으며 이미 6만5,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의 아파트들은 지하에 매설된 공압식 관을 통해 각 가정의 쓰레기를 집하장으로 보내는 설비와 전기자동차용 충전장치가 갖춰져 있다.



[how it works] 빔 다운 솔라 타워
마스다르시티의 '빔 다운 솔라타워'는 한 단계 진화된 태양열 발전시스템이다. 기존 태양열 발전시스템과 달리 빔 다운은 햇빛을 두 번 반사한다. 지면의 반사경이 타워 상단의 대형 반사경에 햇빛을 반사하면, 대형 반사경이 다시 타워 아래의 집광 플랫폼에 재반사하는 구조다. 이렇게 하면 매우 좁은 지점에 모든 햇빛을 모을 수 있어 엄청난 열 생성이 가능하다. 최근 593℃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직은 발전용량이 100㎾ 정도지만 손쉽게 용량증대를 할 수 있다.

집광
헬리오스탯에 부착된 33개의 반사경이 20m 높이의 빔 다운 타워 주변을 3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모터가 각 헬리오스탯의 높이와 각도를 조절, 태양의 이동궤적에 맞춰 반사경의 위치를 제어함으로써 타워 상단부로 햇빛을 모은다.

재반사
중앙 타워 아랫면에도 45개의 거울로 이뤄진 대형 반사경이 있다. 지면의 반사경에 대응하기 위해 타워의 반사경도 원형으로 3중 배치됐다. 지면 반사경이 반사한 햇빛이 도달하면 타워 반사경은 타워 아래의 집광기에 햇빛을 재반사한다.

발전
타워 아래의 집광 플랫폼에 모든 햇빛이 집중된다. 마스다르대학 연구팀은 여기에 수신기를 장착, 에너지의 양을 측정만 하고 있지만 상용화 모델은 집중된 햇빛으로 용융염 등의 매질이 채워진 탱크를 가열해 증기를 만들어서 터빈을 돌린다.



탄소 중립(carbon neutral)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2)의 양만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탄소 중립(carbon neutral) 제거, 실질적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
스마트 그리드 (Smart Grid) 전력망에 IT기술을 접목, 가정과 전력회사 사이에 실시간 정보 송수신이 가능한 지능형 전력망.
생태발자국 (ecological footprint)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생산·폐기하는 과정에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토지로 환산한 지수. 수치가 높을수록 생태계 훼손도가 높다는 뜻이다.
인쇄 배선 회로 (printed circuit) 사진 인쇄 기술로 배선을 인쇄한 회로.
헬리오스탯 (heliostat) 반사경이 항상 중앙타워에 정확히 햇빛을 반사할 수 있도록 태양의 위치에 맞춰 반사경의 각도를 제어하는 장치.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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