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코스트코 게 서거라”

[Market Research] 본격 경쟁 시작된 국내 창고형 할인점 시장

코스트코가 독주하던 창고형 할인점 시장에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아직은 코스트코가 저만치 앞서가고 있지만 상황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하 제헌 기자 azzuru@hk.co.kr

코스트코에서 물건을 사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일부 매장은 우선 주차전쟁부터 치러야 한다. 진입 차량들이 매장 건물을 빙 둘러싸고 대기하고 있어 성질 급한 이들은 운전자만 놔두고 매장으로 뛰어 들어가기도 한다. 물건을 고를 때도 사람에 치여 떠밀려 다니다가 계산을 하기 위해 또 다시 긴 줄에 서야 한다. 사람들의 엄청난 구매력을 확인하려면 코스트코를 가보면 된다.

1998년 한국에 상륙한 미국계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는 그동안 돈 세기에 바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이런 노다지 시장에 경쟁자들이 들어온 건 10년이 훌쩍 지나서다. 이마트는 2010년 용인에 창고형 할인매장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냈고, 롯데는 2012년 ‘빅마켓’을 선보였다.

이마트와 롯데는 코스트코를 벤치마킹했지만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같은 창고형 할인점이지만 롯데 빅마켓은 코스트코처럼 회원제로 운영하고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소비자 편의를 위해” 모든 고객에게 문을 열었다. 연회비를 받으면 경쟁력이 없을 것이란 판단 아래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회원제를 포기했다는 업계의 이야기도 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대형마트와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의 중간 쯤 되는 형태인 데 반해, 롯데 빅마켓은 전형적인 창고형 할인점을 지향한다. 대형마트 상품 수가 6만여 개, 이마트 트레이더스 상품 수가 6,000여 개쯤 되지만 빅마켓은 상품 수를 3,000여 개 정도로 대폭 축소했다. 이는 코스트코와 유사한 수준이다.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은 일정액의 연회비를 낸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매장이다. 회원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확실한 고정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회원등록비를 내고 가입한 회원들은 일단 본전 생각이 나서라도 매장에 들르게 된다. 할인점 입장에선 회비로 운영비를 낮추고 이를 통해 상품가격도 내릴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코스트코 관계자는 “회원 회비만으로 직원 임금과 매장운영비 등이 해결된다”고 밝혔다. 비용절감을 위해 회원들에게 발송하는 쿠폰 전단지 외에는 언론홍보나 광고 등도 일절 하지 않는다.

코스트코는 현재 전국에서 모두 9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는 2010년 구성점을 시작으로 현재 총 7곳의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운영 중이다. 이 중 신규 출점한 곳이 2군데(천안 아산, 경기 안산)이고 나머지 5곳(용인 구성, 인천 송림, 대전 월평, 부산 서면, 대구 비산)은 기존 이마트를 이마트 트레이더스로 전환한 것이다. 빅마켓은 지난해 개장한 서울 금천점과 수원 신영통점에 이어 올해 영등포점과 도봉점을 열어 모두 4곳으로 늘어났다. 4곳 모두 기존 롯데마트를 창고형 매장으로 전환한 것이다.

국내 유통회사들이 창고형 할인점에 도전장을 던진 건 대형마트 만으론 더 이상 해볼 만한 게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대형마트 시장은 예전의 급성장과 거리가 먼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7년 28조9,000억 원이었던 시장 규모가 2011년 36조9,000억 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인터넷 쇼핑몰 시장 규모는 15조 원에서 32조 원으로 두 배 넘게 급증했다. 황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지난해 대형유통매장의 성장율은 1.4%로 물가상승률 2.2%에도 못미쳤다”고 말했다. 매년 25개씩 꾸준히 늘었던 점포 수도 주춤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질적으로 전체 시장규모가 역신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황 연구원의 설명이다.

유통업계는 대형마트가 정체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했다. ‘상생’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업형 슈퍼마켓은 제대로 키우기도 전에 움츠러들었고 유통산업발전법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모범거래기준 등에 따라 대형마트의 신규 출점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창고형 할인점은 매출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카드였다. 하지만 코스트코는 대형마트 성장 정체와 상관없이 독야청청 호황기를 구가했다. 9개 매장을 운영하는 코스트코 매출액(8월 결산법인으로 2011년 9월부터 2012년 8월까지 매출액이다)은 2조2,899억 원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를 보면 이 액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147개 매장을 운영하는 이마트가 지난해 올린 매출액은 12조6,850억 원이다. 99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는 롯데마트는 지난해 8조 9,545억 원 매출을 올렸다. 이마트나 롯데마트 모두 매장당 매출액이 1,000억 원에 한참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대형마트가 회원제 할인점인 코스트코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창고형 할인점은 일반 대형마트보다 품목별로 10~20% 가격이 더 저렴하다. 그러나 창고형 할인점은 일반 상품보다 규격과 용량이 큰 대용량 상품들로 구성돼 있어 고객 1인당 평균 구매액이 더 높아 고객 부담이 늘어난다. 실제로 빅마켓의 객단가는 8만~9만 원대로 일반 대형마트의 2배 수준이다. 오픈 후 이듬해 3,650억 원을 기록했던 이마트 트레이더스 매출은 작년 6,25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올랐다.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롯데 빅마켓도 기존 마트보다 매출액이 두 배 정도는 나오고 있다고 말한다.

토종 업체들의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창고형 할인점 관계자는 “아직은 국내 업체들이 코스트코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전 세계에 622개 매장이 있는 코스트코에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고 상품력에서도 뒤처진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코스트코가 경쟁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호황기를 누릴 수는 없을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관계자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쉽게 매장을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빅마켓 관계자도 “새로운 업태 실험 과정이라 추가 출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어찌되었건 예전 같은 코스트코의 독주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이랜드리테일도 이르면 내년 창고형 할인점인 `홀렛`을 열며 경쟁에 뛰어들 예정이다.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진 건 확실히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관계자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쉽게 매장을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빅마켓 관계자도“새로운 업태 실험 과정이라 추가 출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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