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애플 : 돈에 파묻혀 숨이 막힌다는 것은?

[미국 500대 기업] What It's Like to Drown in Cash

드디어 애플이 그동안 쌓아두었던 현금을 풀 조치를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애플 주가를 회복시키기에 충분할까?
By Carol.J Loomis


2012 회사 프로파일
매 출: 1,570억 달러
이 익: 420억 달러
직 원: 7만 6,100명
2002~2012년 총 투자 수익률: 54%


이번 호에 발표하는 포춘 500대 기업 가운데 가장 유명한 기업 중 한 곳인 애플은 손에 꼽기도 힘들 만큼 많은 이유들 때문에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 된다. 순위만 놓고도 적수가 없을 만한 스타다. 1,565억 달러의 매출을 자랑하는 애플은 6위로 부상했다. 2012년 이익은 무려 420억 달러에 달한다(450억 달러를 기록한 엑손 Exxon에 이어 2위다). 시장 가치는 4,160억 달러를 기록하며 (3월 포춘의 측정일 기준) 모든 기업들을 앞질렀다. 10년 총 투자 수익률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86%에 달하는 연간 주당 수익 성장률과 54%를 기록한 총 수익률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3년 초 애플은 충격과 혼란이 혼재해 있는 듯하다. 두 편의 월가 영화에 주연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장르는 007시리즈 같은 서스펜스 영화인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확신은 없다. 한 영화는 흔들리는 애플의 주식을 공격하고 있다. 2012년 애플의 주가는 700달러까지 갔다가 몇 달 만에 450달러로 폭락했다. 그리고 4월 중순 다시 하락세를 타고 385달러까지 떨어졌다. (이 쇼를 보기 위해 값비싼 비용을 지불한 애플 주주가 아니라면)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영화다. 두 번째 영화 또한 전편과 비슷한 드라마틱한 요소를 갖고 있다. 우리는 이 두 번째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뤄 볼 것이다. 주제는 애플의 창업주이자 전직 CEO 스티브 잡스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현금(cash)’이다. 그동안 애플은 채권을 통해서는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했으며, 여유자금은 주주들의 손에 맡기는 게 낫다는 생각을 무시해 왔다. 하지만 2011년 10월 잡스가 암으로 사망하자, 애플은 이 같은 관념을 조금씩 받아들였다. 그 결과 배당금 지급을 시작하고, 소량의 주식환매 결정도 발표했다. 하지만 애플의 이익률은 너무나 높았기 때문에 현금은 계속해서 쌓여만 갔다. 현재 애플이 보유한 현금은 1,450억 달러로 어떤 비금융 기관도 이 만큼의 금액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사실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제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끝낼 때마다 했던 말처럼, 애플이 보유한 현금의 71%(무려 1,020억 달러에 달한다)는 모두 해외에 묶여 있다. 이 자금을 주주들에게 자유롭게 배당할 수 있는 미국으로 들여온다면 어마어마한 세금폭탄을 맞게 될 것이다. 애플뿐만 아니라 다른 다국적 기업들, 특히 지적 재산권이 풍부한 다른 기술 기업들도 똑같은 딜레마를 겪고 있다. 애플의 상황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보유한 현금이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이다.

애플이 현존 사업을 운영함에 있어 보유 현금 중 극히 일부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아마도 200억 달러 정도면 여유로운 기업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애플의 현 상황은 상당히 혼란스럽다. 돈을 쌓아둔 것이 ‘문제’로 인식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애플의 경우는 이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

몇 년간이나 이를 부정해온 애플은 최근 암묵적인 시인을 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문제’라고 언급하진 않았다. 지난 4월 23일, 그동안의 주가 하락이 실망스러웠음을 인정한 CEO 팀 쿡 Tim Cook이 앞으로 주주들에 대한 배당을 대폭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애플은 배당금을 15%가량 늘릴 것이고(연간 지급액이 약 110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2015년까지 책정된 기존 주식 환매비용 100억 달러에 500억 달러를 추가 편성할 것이다. 주식 환매를 위해 3년간 6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건 실로 막대한 액수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593억 달러를 쏟아 부은 마이크로소프트 가 이 부문에서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두 기업의 비슷한 수치들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더욱 중요한 문제는, 과연 이를 통해 ‘애플이 주가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까’이다(마이크로소프트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애플의 발표에서 주목할만한 사항이 또 한 가지 있다. 앞서 말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애플이 미국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차입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스티브 잡스가 세웠던 엄격한 ‘부채 제로(No debt)’ 원칙을 깨는 것이다. 하지만 배당금 및 주식환매 확대 등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국내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금 차입은 당연한 선택이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해외 자금은 이런 용도로 사용될 수 없다). 그럼에도 빚은 단 한 푼도 없고, 1,450억 달러라는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재계의 포트 녹스 Fort Knox’*역주: 켄터키 주의 연방 금괴 저장소 애플이 미국 시장에서 수십억 달러를 빌려 배당금과 주식환매에 사용하려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게다가 잡스는 주식환매를 싫어했다(이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이따 하겠다). 현재 애플이 예전 잡스의 방식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앞서 말한 4월 발표다. 하지만 지금 애플이 처해 있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모호한 상황은 모두 잡스가 초래한 것이다. 실적 보고 회의(earnings call)의 짧은 글귀만 봐도 애플의 문화에서 현금이 어떻게 계산돼야 하는지 알 것이다. 애널리스트 해리 블런트 Harry Blount는 예의를 갖췄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주주 입장에서 이런 규모의 현금을 수익률이 낮은 상태로 유지하는 건 현명하지 못해 보인다. 현재 이 현금을 사용할 다른 계획이 있나?”라고 따졌다. 애플의 최고재무책임자 피터 오펜하이머 Peter Oppenheimer는 “없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는 사업에 투자할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주식환매나 다른 방식으로 주주들에게 이익을 나눠 줄 방법에 대해 이사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고 덧붙였지만 말이다.

6년 전인 2007년 당시, 애플이 보유한 현금은 130억 달러였다. 이후 11배 이상 증가해 1,450억 달러가 됐다. 애플의 현금은 스티브 잡스라는 ‘광기 어린 천재 원예사(maniacal but genius gardener)’의 관리(혹은 비료)에 힘입어 스테로이드를 맞은 콩나물 줄기처럼 엄청난 속도로 커졌다. 콩나물 줄기에 영양분을 공급한 훌륭한 두 제품이 있었는데, 2007년 출시돼 엄청난 이익을 안겨준 아이폰과 2010년 선보인 아이패드다.

지난 몇 년간의 실적발표에서 수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애플의 현금 보유량을 지적했고, 주주배당에 관해서도 질문했다. 하지만 계속 다양한 버전의 ‘안 된다’라는 대답만 들어야 했다. 오펜하이머 또한 2011년 전까지 애플의 최고재무책임자였던 팀 쿡에게 ‘안 된다’라는 대답을 들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2011년 팀 쿡은 애플의 CEO에 올랐다). 2010년 실적 발표에 참석했던 스티브 잡스 자신도 다양한 형태로 애널리스트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는 ‘수차례의 전략적 기회’-잡스는 어리석은 인수합병은 여기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찾아 올 것인데, 이때 애플은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는 아리송한 설명을 했다. 아마도 잡스는 휴대폰 대역폭(spectrum)의 일부를 구입할 계획을 말했을 수도 있다(그러면 아이폰을 시장에 서비스하는 이동 통신사들보다 유리한 입장을 점할 수 있게 된다). 혹은 습관적으로 사실을 꾸며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직원들이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 부르는 영역으로의 진출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수도 있다.

잡스가 주주들의 안위를 고려했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그는 모든 열정과 관심을 제품에 쏟아부었다(완벽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 과정에서 주주들이 이익을 얻게 된다면 그도 기뻐했다. 하지만 그를 진정으로 기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제품이었다.

애플의 이사회 멤버들은 대부분 잡스가 직접 고른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주주를 대표하라는 법적 책임을 다 할 수 있을까? 월터 아이작슨 Walter Issacson이 2011년 발간한 베스트 셀러 전기 ‘스티브 잡스’의 내용을 보면 잡스는 이사회의 어떤 반대의견도 듣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애플 스토어 설립에 대해 몇몇 이사들이 반대했을 때(물론 그들이 틀렸다는 것으로 귀결됐다), 잡스는 이를 완전히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잡스 사망 후에야 배당금을 늘리고, 3년간 100억 달러의 주식환매를 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 사실은 잡스가 얼마만큼 이사회를 장악했는지를 시사한다. 2012년 초 배당금과 주식환매 관련 발표가 나왔을 때, 애플은 엄청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 조치들은 소규모 프로젝트에 투자를 조금 늘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애플 자체적으로도 3년간 450억 달러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애플은 적어도 그 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자금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애플 금고는 또 다시 현금으로 넘쳐날 것이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조치들은 막대한 현금을 쌓아온 애플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애플 이사회에는 주요 기업의 유능한 경영자들이 많이 포진돼 있다(인튜이트의 빌 캠벨 Bill Campbell, J.크루의 밀리어드 ‘미키’ 드렉슬러 Millard “Mickey” Drexler, 제네테크의 아서 레빈슨 Arthur Levinson 등이다). 적은 금액이라도 배당과 주식환매에 투자하자는 그들의 결정은 이른바 ‘스티브 효과’라 불리는 잡스의 영향에서 벗어났음을 시사한다. 한 발 더 나아가 팀 쿡은 지난해 애플이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현금을 보유해 왔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올해 2월 골드만삭스 기술 콘퍼런스에서 그는 “당면한 중대 문제는 현금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다. 어떻게, 얼마를 투자해야 할지가 그것이다”라고 밝혔다.

물론 그때까지 쿡은 맨해튼 그린라이트 캐피털 Greenlight Capital의 데이비드 아인혼 David Einhorn 같은 까다로운 거물 주주들로부터 쌓여 있는 현금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압력을 받아왔다. 2012년 말 자신의 펀드에 7억 달러 어치의 애플 주식을 보유하던 아인혼은 지난 2월 초 애플이 보유한 현금 일부를 주주들에게 되돌려 주기 위한 복잡한 전략을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애플이 일반 주주들에게 ‘영구우선주(a perpetual preference stock)’*역주: 의결권이 없는 대신 배당금이 높은 우선주 중에서 회사가 상환의무를 갖지 않는 주식-아인혼은 iPrefs라고 별칭을 붙였다-일부를 지급하라고 권했다. 연간 배당금은 2달러가 될 것이고 거래가는 시장에 의해 책정될 것이다. 따라서 우선주를 지급받은 주주들은 이 새로운 종이 조각(주식)을 팔아버릴지도 모른다(아인혼은 거래가를 약 50달러로 예상한다).

우선주를 지급한다고 해서 애플 금고에서 큰돈이 나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선주에 대한 배당금에는 상당액이 소요될 것이다. 우선 보통주 한 주를 보유하면, 우선주 한 주를 지급받을 자격을 갖게 된다. 그 결과 1년간 배당금 지급에 약 19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아인혼은 iPrefs 아이디어가 인기를 얻으면, 배당금액이 95억 달러에 달할 때까지 애플은 더 많은 일반 주주들에게 우선주를 지급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게 되면 보유현금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골드만삭스 콘퍼런스에서 이에 대한 질문을 받자, 쿡은 이 아이디어가 전혀 내키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쿡은 이 계획을 “창의적”이라고 평하면서도 애플이 ‘어떻게, 얼마나’ 투자할지에 대해 고심을 하는 동안 이 계획도 철저히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자금 사용이 배당금이나 주식환매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또 많은 기업들이 실패한) 자금 분배는 내부적으로 자금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현금을 과다 보유한 애플은 말 그대로 자본 지출을 크게 늘렸다. 2007년 10억 달러 미만에서 작년 100억 달러로 대폭 증가시켰다. 새로운 애플 스토어를 여는 것은 연간 지출에서 그다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갖가지 주요 프로젝트에 사용된다. 지난 몇 년간 애플은 공급망에 대한 지출도 늘려왔다. 부품 가격을 선불로 지급하고, (투자에 대한 보상이 확실한 경우에 한해) 공급업자들이 사용할 장비도 구입해주었다.

이런 재정조치들은 애플 특유의 구조와 부족함 없는 현금 보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포춘의 수석 편집장 애덤 래신스키 Adam Lashinsky는 2012년 출간한 저서 ‘인사이드 애플 Inside Apple’에서 애플을 제품 출시과정 모두를 통제하려는 수직적 통합 기업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 점이 애플을 자본 집약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물론 일반적인 수직적 통합 기업도 아니었다). 애플이 독재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생산공장들은 대부분 공급업체들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애플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애플은 중국이나 한국에 공장을 운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객으로서 폭스콘이나 삼성-이 한국 기업이 아이폰 판매량을 크게 갉아 먹긴 한다-같은 업체로부터 부품을 구매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심지어 애플에겐 보유 현금을 대형 기업 인수에 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애플의 막대한 현금은 포춘 500대 기업 중 482개 기업의 시가총액보다도 많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어리석은 인수합병’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애플의 실리콘밸리 본사 주위에는 실패한 인수합병 사례들이 가득하다(휼렛 패커드도 대실패 사례 중 하나다). 오랫동안 애플의 관심사는 특정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소기업 인수합병이었다. 2010년 음성인식 기술 기업 시리 Siri의 인수-가격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애플의 구미를 만족시킬 만한 거래였다.

적어도 일부 주주들은 애플이 더욱 더 야심 찬 인수합병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과도하게 보유한 자금을 상당부분 사용하고, 수익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기관투자 주주는 최근 포춘에 ‘애플이 자사의 DNA에 맞는 인터넷 기업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애플에 몇 가지 인수 건을 제안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트위터, 내비게이션 서비스 회사 웨이즈 Waze, 메시지 서비스 와츠앱 WhatsApp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 기업들의 현재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 기관 주주가 눈 여겨 본 것은 그들의 잠재력이었다.

다른 종류의 인수는-최선의 선택인 경우가 많다-는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회사를 인수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제안은 잡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애플에서 주식환매를 완전히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디즈니 (잡스는 디즈니의 최대 주주이자 이사회 멤버였다) 같은 다른 기업의 주식환매에도 반대입장을 보였다. 디즈니의 CEO (잡스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주식환매를 단행한) 로버트 아이거 Robert Iger는 “스티브는 대개 디즈니의 주식환매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기억한다. 잡스는 애플에서 진짜 어려운 시기-1990년대 말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렸다-를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거나 큰 기회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현금을 쌓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의 모든 것에 완벽을 추구했던 잡스는 주식환매가 그 속성상 완벽할 수 없는 사실을 싫어했다. 그가 싫어한 건 주식을 사고 난 뒤 주가가 환매 시점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잡스는 이를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여겼다(잡스 사망 직후 애플 이사가 된 아이거는 디즈니의 잡스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말했다. 하지만 애플에 관해선 일절 말을 아꼈다).

애플이 막대한 현금을 쌓아 갈 때, 결국 잡스는 최고의 투자수완가 워런 버핏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이 둘은 1980년 그리넬 대학 Grinnell College의 이사회에서 처음 만났다. 잡스는 버핏에게 전화를 걸어 애플의 여유자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물었다. 버핏은 주식환매에 대해 말하며,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에 대해 조언했다. “당신 회사의 주식이 저평가 됐다고 생각하는가?” 잡스는 당연히 그렇다고 말했다. 버핏은 “그렇다면 여유자금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은 주식환매다”라고 말했다.

버핏은 애플 주식이 200~250달러 사이에서 거래되던 2010년 초 이 대화를 나눴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잡스가 그의 조언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날짜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잡스는 버핏의 조언 대신 ‘현실 왜곡장’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래서 애플의 일부 직원들은 버핏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고 생각했다.

잡스 사망 후 애플의 주식은 400달러 선까지 올라갔다. 팀 쿡도 버핏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잡스가 처음 오마하에 있는 버핏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환매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가?’(쿡의 표현이다)라고 물었을 당시에도 자신은 주신환매를 찬성했다고 말했다. 버핏은 또 다시 “당신 회사의 주식이 저평가 됐다고 생각하면 (주식을) 사들여라”라고 조언했다. 이 조언이 쿡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든, 애플은 주가가 600달러까지 오른 2012년 3월 19일이 돼서야 비로소 주식환매를 단행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주가가 702달러까지 치솟은 9월이 되자 주식환매를 시작했다. 지하의 스티브 잡스가 통곡을 했을 일이다. 가격이 가장 높을 때 주식을 사들였고, 최고치를 경신한 직후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적 금융 기법은 애플의 고통을 덜어준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가속증권환매(accelerated share repurchase, 이하 ASR)’ 방식으로 19억5,000만 달러 어치의 환매 결정을 내렸다. 환매를 금융기관에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ASR은 6개월이라는 확장된 기간 동안 주식의 가중평균가 이상으로 기업을 사들이지 않는 것과 같은 효과를 환매기업에게 제공하게 된다. 그래서 애플의 평균 주당 구매가격은 낮아졌다. 이는 4월 23일 애플이 SEC 파일링(증권 거래 위원회에 제출하는 결산 보고서)에 언급한 내용이다. 그날은 애플 역사상 최초의 주식환매에 대한 결과를 발표한 날이기도 했다. 애플은 평균가 478달러에 자사주 400만주를 사들였다.

애플의 주식환매를 조심스레 지켜보는 이사회 멤버 중에는 전 미 부통령 앨 고어 Al Gore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이사회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자신의 회사를 위해 주식환매를 단행한 경험이 있는 다수의 전·현직 CEO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아이거, J. 크루의 드렉슬러, 인튜이트의 빌 캠벨과, 에이본의 전 CEO 안드레 정 Andre Jung, 노스롭 그루먼 Northrop Grumman의 은퇴한 CEO 론 슈거 Ron Sugar 등이다. 잡스가 주식환매를 거부했을 때 이들은 큰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아이거는 당시 이사진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에선 예외다). 하지만 이들 중 포춘에 그렇다고 증언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단지 추측에 불과하다.

이번 호가 발행되는 시점은 애플의 발표가 있었던 4월 23일에서 6일이 지난 때이다. 애플은 앞으로 있을 주식환매와 배당금 증가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지 못한 채로 주식에 대한 조치를 취하고 있을 것이다. 애플에 대한 대부분의 논평은 ‘10년 만의 분기 수익감소’보다는 신제품 부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잘 알려진 애플의 마법을 보여줄 수 있는 제품이 ‘지금 당장’ 없다는 것이다.

애플의 주가 변동을 보면서 회사 간부들과 이사진은 배당금과 대규모 주식환매가 마이크로소프트에 가져다 주지 못한 결과를 기억해 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03회계연도에 최초로 현금 배당을 실시했다. 동시에 주식환매 프로그램도 지속했다. 2002년 말부터 2012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는 적어도 1,850억 달러를 배당과 주식환매에 쏟아 부었다. 주식 수량은 22%나 줄었고, 주당 수익률은 189%나 급증했다. 그렇다면 주가는? 매년 상승했지만 10년간 12%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오래된 인기 제품군(윈도나 오피스)의 뒤를 이을만한 신제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점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망을 불안하게 했고, 주가는 크게 오르지 못했다.

수익 감소 분기를 겪으면서 지난 10년간 달성한 애플의 눈부신 성공은 이제 옛 이야기가 돼 버렸다. 앞으로의 전망도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때문에 애플이 ‘현금’이라는 신무기를 장착했음에도, 애플 주식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애플 주가가 회복을 위해 필요한 무기는 수익을 올려 줄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다. 그렇게 된다면 또 한 번 막대한 현금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당면한 중대 문제는 현금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다.
어떻게, 얼마를 투자할지를 정하는 것이다.” _2013년 2월 팀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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