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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박테리아

THE OBESITY BACTERIA

한 조사에 의하면 국내 20세 이상 인구 중 고도비만 환자가 140만명에 달한다. 어느 때보다도 풍부한 영양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그 숫자는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과연 이런 비만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저 많이 먹고, 게으르기 때문일까.

최근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는 비만 환자들의 푸념을 무턱대로 게으름뱅이의 핑계라고 일축할 수 없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비만은 이제 더 이상 특정 국가, 특정 인종의 문제가 아니다. 고열량, 고칼로리 음식들이 넘쳐나면서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비만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심장병, 뇌졸중, 2형 당뇨병, 그리고 암에 이르기까지 비만이 다양한 질병의 원인질환으로 작용하면서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의 지출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만은 여타 질병과 달리 그 원인이 너무나도 다양하고, 각 개인별 체질이나 생활환경과도 밀접한 탓에 뚜렷한 치료법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비만치료제를 개발한다면 노벨상 수상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농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과학계에서 비만의 원인과 관련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요인을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주범은 다름 아닌 장내 박테리아다.

대다수 장내 박테리아는 인간의 대장, 그중에서도 대장에서 제일 긴 부분인 결장에서 매우 복잡하고 큰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인간에게 유익하다. 이들은 비타민K 생산하고, 음식물을 분해해 대변의 양을 줄여주며, 유해한 박테리아와 싸운다. 또 면역체계를 증진시키거나 염증 억제, 콜레스테롤 대사 제어 역할도 한다.

이 같은 장내 박테리아가 인간의 체중, 즉 비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사실이라면 비만 치료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비만 환자의 장내 환경을 조절하고, 장내 박테리아의 종류를 바꾸는 방식으로 손쉽게(?) 비만을 치료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메탄 제조공장 ‘M.스미시’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LA 소재 세다스-시나이 메디컬센터의 내분비 전문의 루치 마더 박사팀이 내분비학회지 ‘임상내분비학-대사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논문에 따르면 연구팀은 피실험자 792명을 대상으로 날숨의 표본을 채취해 분석했다. 그 결과, 체질량지수(BMI) 및 체지방이 현격히 높은 사람일수록 메탄(CH4)과 수소(H2)의 농도가 높았다. 다른 피실험자들은 두 가스의 농도가 낮거나 둘 중 하나의 농도만 높았다.

이와 관련 인간의 장내에서 발생하는 메탄은 거의 ‘메타노브레비박터 스미시(M.스미시)’라는 박테리아의 작품의 작품이다. 이 박테리아는 다른 박테리아들이 만든 수소를 흡수하고, 이를 원료로 메탄을 생성한다.

아직 가설이기는 해도 마더 박사팀은 M.스미시가 수소를 흡수하면서 다른 박테리아들의 생존환경을 더 좋게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박테리아들이 더 많은 음식을 분해해 자기 자신은 물론 인간에게 더 많은 영양분을 공급하게 되고, 이 상황이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체중 증가를 촉발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가설의 검증을 위해 현재 장내에서 M.스미시만 제거하도록 표적화 시킨 항생물질을 피실험자들에게 투입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M.스미시가 장내 음식물 소화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만 메이커 ‘엔테로박터’

세다스-시나이 메디컬센터팀에 더해 중국 자오퉁대학 자오 리핑 박사팀도 얼마 전 또 다른 비만 박테리아 후보자를 찾아냈다. ‘엔테로박터(Enterobacter)’라는 녀석이다.

연구팀은 비만 환자의 장내 수소이온농도지수(pH)에 변화를 줘 장내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종류를 바꾸는 식이요법을 실시했다. 23주에 걸친 식이요법에 사용된 것은 오곡, 소화가 안 되는 탄수화물, 생균제, 한약 등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175㎏의 초고도 비만이었던 환자가 아무런 운동을 하지 않고도 51㎏의 놀라운 감량에 성공한 것.

원인을 찾던 연구팀은 식이요법 이전에는 환자의 장내에서 가장 흔했던 엔테로박터가 식이요법 이후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체중 감소가 엔테로박터의 소멸을 이끈 것인지, 엔테로박터가 사라지면서 체중이 감소한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후속실험에 돌입했다.
후속실험은 실험용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한 그룹에 환자의 장에서 추출한 엔테로박터를 투여한 뒤 고지방 식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자 엔테로박터를 투여받은 쥐들은 대조군에 비해 현격한 체중 증가가 나타났다. 엔테로박터가 체중 증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이뿐 만이 아니다. M.스미시와 엔테로박터 외에도 비만에 관여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박테리아는 더 있다. 미국 메릴랜드 의과대학 교수이자 게놈과학연구소 소장인 클레어 프레이저 박사팀은 비만, 염증, 대사증후군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이는 박테리아를 무려 26종이나 발견했다. 비만 및 대사증후군 환자들은 건강한 사람에 비해 이들 26종의 박테리아의 개체수가 많았다. 다만 이들이 실제로 비만을 유발하는 지를 명확히 확인하려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태다.


미국 워싱턴대학 제프리 고든 박사팀의 경우 쥐 실험을 거쳐 ‘피르미쿠트(firmicute)’ 계열 박테리아는 비만, ’박테로이데테스(Bacteroidetes) 계열 박테리아는 체중감소를 초래한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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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비만 치료제

그동안 사람들은 부적절한 음식 선택과 운동 부족을 비만의 원흉으로 꼽았다. 하지만 남들과 똑같이 운동하고, 똑같은 식이요법을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이는 비만의 원인이 생각 이상으로 복잡할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 단초가 됐고, 여러 연구자들이 인체의 근본적 변화가 비만에 영향을 주거나, 혹은 비만의 원인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장내 박테리아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 볼 때 이 가설은 일정 부분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비만의 원인을 찾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비만을 예방하고 치료할 새로운 방법이 생겼다는 것과 같다. 실제로 언젠가 우리는 비만 유발 박테리아를 사멸시키거나 개체수를 조절해 지긋지긋한 비만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를 위한 생균제 보조건강식품이나 비만 박테리아를 죽이는 항생제가 개발될 수도 있다.

비만 박테리아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 연구가 2010년 기준 약 10억명에 달하는 전 세계 비만 인구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 줄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메타노브레비박터 스미시 Methanobrevibacter smithii.



[OBESITY THEORY] 비만에 관한 독특한 이론들

수면 부족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04년부터 2006년 사이 성인 8만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하루 수면시간이 6시간 미만인 사람 중 33%가 비만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따르면 수면시간이 부족할 경우 식욕증진 호르몬인 그렐린(ghrelin)의 분비가 늘어나고, 포만감을 줘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leptin) 호르몬의 분비는 줄어든다. 미국 시카고대학 연구팀의 실험에서도 젊고 건강한 성인도 수면이 부족하면 달고, 짠 음식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인공감미료
2009년 미국 퍼듀대학 연구팀이 실험용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A그룹의 사료에는 무칼로리 또는 저칼로리 인공감미료가 들어간 요구르트를, B그룹의 사료에는 설탕이 들어간 요구르트를 첨가했다. 그 결과, A그룹이 B그룹보다 체중이 늘었고, 식욕 억제 능력도 낮아졌다.
연구팀에 의하면 자연계에서 단맛은 고칼로리를 뜻하는데 단맛이 나지만 칼로리가 없는 식품은 신체의 칼로리 측정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시스템이 새로 세팅되면서 A그룹과 유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전자레인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임상심리학과 제인 워들 교수는 2007년 전자레인지가 비만을 유발한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1980년대 중반 영국의 비만 증가율이 전자레인지 보급률과 일치한다는 게 이 주장의 근거다. 그는 TV를 시청하며 식사를 하는 습관, 음식을 쉽고 빠르게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원인의 하나로 지목했다.

귀의 염증
2008년 미국 심리학협회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다수의 연구에 따르면 어렸을 때 귀에 염증을 앓은 사람은 커서 비만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 한 연구에서는 중이염을 앓은 사람의 62%가 비만해진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연구자들은 귀의 염증 때문에 맛과 관련된 신경이 손상된 결과로 추정하고 있다.

냉난방 기기
냉난방 기기의 보급으로 36.5℃의 체온유지를 위해 예전만큼 많은 칼로리를 소비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비만이 유발된다는 이론이다. 검증 자료는 부족하지만 과거 축산업계에서 돼지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돼지우리의 온도를 조절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히 허튼소리라고는 할 수 없다.

인간관계
한 연구팀이 32세 이상의 성인 1만2,000명을 조사한 결과, 체중 증가와 인간관계 사이에 큰 연관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비만한 사람과 결혼한 사람은 날씬한 사람과 결혼한 사람에 비해 2~4년 내 비만해질 확률이 37%나 높았다는 것이다.



[OBESITY SCALE] 비만 vs 과체중

과체중과 비만은 다르다. 비만의 기준은 보통 체질량지수(BMI)를 통해 정해지는데, 이는 개인의 키와 체중을 기반으로 측정된다. 체중(㎏)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눠서 나오는 숫자가 바로 BMI다.

성인의 경우 BMI가 18.5 미만이면 저체중, 18.5~24.9 사이면 정상, 25.0~29.9 사이면 과체중, 30.0 이상이면 비만이라 판정된다.

다만 이러한 비만 척도는 개인의 체중을 범주화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개인의 특정한 상황을 고려치 않은 데서 오는 문제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의 경우 일반인보다 근육량이 매우 많다. 따라서 같은 신장의 일반인보다 체중도 무겁고, BMI도 높게 나타난다. 이와는 반대로 노인은 젊은 사람에 비해 근육량이 적다. 그래서 건강상 악영향이 있을 정도의 체지방이 있는 사람이라도 체중과 BMI가 적게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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