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박사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과학자로서, 또 여성과학계의 리더로서 젊은 후배들에게 바람직한 롤 모델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Q.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그간 여성 생명과학자로서 굳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그리고 여성 리더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격려와 지원을 해주셨어요. 가장 먼저 저희 가족과 KIST 식구들, 환경부 직원들, 특히 저희 실험실 동료들에게 공을 돌립니다.
불현듯 12년 전 열렸던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창립총회가 기억나네요. 여성 생명과학자의 권익 보호와 네트워크 강화를 통한 시너지 효과 거양, 그리고 여성 생명과학자들의 역량 결집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는데 오늘날 여성과학계의 리더라는 호칭을 감히 들을 수 있게 된 것도 포럼 활동이 큰 바탕이 됐습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Q. 생체 고분자 물질 분석은 어떤 연구분야인지요.
저는 제 스스로를 생화학 및 시스템생물학 연구자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오믹스 관련 연구데이터들을 통합하고, 재해석하는 연구를 중점 수행해왔습니다. 이 연구는 다양한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도움을 줍니다. 각 질환들의 바이오마커(표지 물질)들을 발굴하여 기능을 검증하는 형태로 활용되죠. 아토피, 천식 등 쉽게 진단이 어려운 환경성 질환에 특히 유용합니다.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의료비용지출은 감소시켜 삶의 질을 높여주는 연구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껏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80여편을 비롯해 국내외 학술대회에서 약 300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Q. 현재 중점 수행하고 있는 연구프로젝트는 무엇인지요.
최근까지 분석생화학 분야를 중심으로 모세관 전기영동법 및 질량분석법을 이용한 세포 내 신호전달기전 파악과 이에 근간한 시스템스 생물학 연구를 주로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연구개발한 분석법을 질환과 연계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심혈관 질환과 같이 고령화 사회에서 증가하는 질환들의 바이오마커를 발굴, 평가하는 연구프로젝트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입니다.
Q. 그간의 활동 중 가장 의미 있는 성과를 꼽아주신다면.
두 가지를 언급하고 싶네요. 첫 번째는 연구실적 측면입니다. 시스템스 생물학 분야에서 많은 우수 성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등 다수의 국제컨퍼런스에 초청 강연자로 초빙을 받았고, 유명 국제학술지들이 향후 글로벌 연구방향을 제시해달라는 리뷰 페이퍼(review paper) 의뢰를 해오기도 했습니다. 저의 성과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연구수준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과학계 발전 활동을 들고자 합니다. 2010년 박사 중심의 한국생화학분자생물학회와 석사 중심의 대한생화학분자생물학회가 힘겹게 통합, 생화학분자생물학회가 출범했는데 첫 운영위원장을 제가 맡았어요. 이후 통합의 상승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세 가지 의미 있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통합 당시 6,500여명이었던 회원을 1년 이내에 9,400여명으로 45%나 늘리면서 양적 성장을 이뤄냈고, 첫 학술회의에 네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했을 만큼 조직 역량도 강화시켰습니다. 참고로 한 학술회의에 네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참석한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에요.
덧붙여 어려웠던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학술회의에 마련한 150여개의 부스가 조기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덕분에 학회 1년 예산의 20~30%에 해당하는 기금을 남겨서 다음 운영진에게 넘겨줄 수 있었죠.
Q. 올 3월까지 환경부 장관직을 수행하셨는데 연구자로서의 경험이 도움이 됐는지요.
물론이에요. 연구자로서, 생화학분자생물학회 운영위원장으로서 경험했던 일들은 저에게 열정과 전문성을 배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장관 시절 당시의 경험은 리더십과 업무추진 역량을 발휘하며 성공적으로 성과를 창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침반이었습니다.
Q. 어떤 성과들이 기억나시는지요.
장관 취임 후 환경부를 전문가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선진 인사관리시스템을 도입·정착시키는 행정혁신을 강력히 추진했고, 각 부서가 업무를 추진할 때에도 업적은 물론 역량 계발에 대한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도록 했습니다.
환경 분야의 국제 협력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는 부분도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부분이에요.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는 한 나라가 개별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국제적 협력과제가 됐음에 주목하고 국제공조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죠.
일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환경장관회의의 의장을 맡아 지구의 미래를 위한 국제 대응책 마련에 합의를 이끌어냈고, 유엔(UN)이 주도하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 사전각료급 회의의 의장을 맡아 각국의 합의점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전 지구적 환경문제 개선에 일조했다고 자부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국가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습니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해 온실가스 감축의 근본적인 유인책을 마련했고, 산업계의 의식 전환을 위해 수많은 CEO들을 만나 설득했어요. 국민들의 녹색생활 실천을 유도하고자 기획한 ‘그린카드’의 경우 도입 1년 만에 400만장 이상 발급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Q. 후배 여성 과학자들이 본보기로 삼을만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20여년 전 일입니다. 제가 선임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승진하기 위해 심사를 받을 때에요. 발표는 순조롭게 마쳤죠. 그런데 발표 후 한 심사위원에게 “당신 여자인데, 홀로서기 할 수 있겠어?”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그 질문이 제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이 일을 겪고 나서 예전의 몇 배나 되는 노력을 밤낮없이 기울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여성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그 심사위원의 질문이 오늘날의 제가 될 수 있었던 큰 자극과 채찍,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Q. 생명과학분야에 유독 여성과학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부분은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해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그리고 실무적으로도 다른 분야보다는 생명과학이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생명과학 실험에서는 피펫(pipet)과 같은 정밀한 실험기구들을 취급해야 하죠. 이들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이 실험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Q. 국내 여성과학자들을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한 최우선 선결과제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먼저 과학자를 포함한 여성인력 활용 자체에 대해 얘기하고 싶네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여성이 더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주지의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에는 아직도 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특히 출산과 육아는 단순히 여성의 문제이기 이전에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확실한 해결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이는 과학계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나라에는 소수지만 매우 훌륭한 여성과학자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는 타 과학분야보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여성 인재가 몰려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육아시설, 출산휴가 등 여성과학자들이 마음껏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가 대단히 부족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런 사안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발전과 선진국 도약에 관한 문제로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 유영숙 박사 프로필
학력
진명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 화학과 학사
이화여자대학 대학원 석사
미국 오리건대학 대학원 생화학 박사
경력
1990~1997 KIST 도핑컨트롤센터 선임연구원
1997 KIST 생체분자기능연구센터 책임연구원
1998 고려대·연세대·서강대·한양대 객원교수
2000 과학기술부 뇌연구촉진심의회 심의위원
2001 한국기술벤처재단 전문위원
2006~2007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회장
2011~2013 환경부 장관
2013~현재 KIST 분자인식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오믹스 (omics) 생명체를 네트워크로 인식하고, 네트워크 구성물 간의 상호작용 등을 연구하는 학문. 유전체학(Genomics), 단백체학(Proteomics), 대사체학(metabolomics), 전사체학(Transcriptomics) 등이 포함된다.
전기영동법 (electrophoresis) 전하를 갖는 물질의 용액에 전기장을 가하면 물질이 어느 한쪽의 극으로 이동하는 전기영동현상을 이용해 단백질, 핵산, 아미노산, 뉴클레오티드 등을 분리·분석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