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Why I Paint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 캐피털 Sequoia Capital의 마이클 모리츠 Michael Moritz 회장이 말하는 중년에 발견한 고상한 취미 이야기.


작가 멜 브룩스 Mel Brooks는 단어로 빈 종이를 채우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이젤 위에 놓인 빈 캔버스와 마주하기 전임이 분명하다. 나도 거의 마흔이 다 돼서 그림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수업은 머리 나쁜 애들을 위한 시간으로 여겨졌다.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곳이라 해봐야 고작 선반과 벽, 창틀 같은 곳들이었다. 그리고 바닥에 추상표현주의 미술 작가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같은 그림을 그린 것이 전부였다. 12년 전 나는 윈스턴 처칠 Winton Churchill이 1920년대에 쓴 ‘취미로서의 그림 그리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접한 후 화방에 갔다. 처칠은 훈련과정도 없이 특별히 미술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어떻게 41세에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밝혔다. 그는 한 점의 작품만을 남긴 제2차 세계대전 때를 제외하곤 미술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그래서 말년까지 그림을 그렸다. 처칠의 기사-이후 책으로 출간됐다-는 중년의 나이에 잠들어 있던 나의 열망을 일깨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활동처럼 우리 모두는 그림을 그릴 줄 안다. 그림은 다른 취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악기 연주, 소프트웨어 개발, 연기, 번역, 물리학 실험 등과 비슷하다. 우리는 단지 전문가처럼 잘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천부적 재능은 마이클 펠프스 Michael Phelps와 이른 아침 수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과의 차이를 만들고, 고야 Goya, 벨라스케스 Vel*squez, 피카소 Picasso와 취미로 매일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의 차이를 만든다. 다른 것들이 그러하듯 그림을 그리는 것도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자기가 그린 그림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좌절감과 실망감만 느낄 뿐이다. 그 이상은 아니다. 캔버스가 눈을 향해 펀치를 날리는 것도 아니고, 자존심 외의 다른 곳에 상처를 입히는 것도 아니다.

여느 초보자들처럼 나도 처음엔 실수투성이였다. 화방에서 거의 모든 색의 유화 물감을 샀다. 그중 반만 있어도 거의 모든 색깔과 강도를 다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디엄-색을 묽게 하는 데 필요한 용액을 가리키는 미술 용어-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은 예술정신을 쏟아내는 데 필요한 불가사의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미술용어에 매료되긴 쉽다. 특히 카드뮴 옐로 미디엄 cadmium yellow medium, 프러시안 블루 prussian blue, 알리자린 alizarin, 비리디언 viridian, 페이니스 그레이 payne’s gray 같은 색 이름은 더욱 그렇다. 그리고 좋아하는 붓이 생긴다. 나는 수채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유화가 실수를 만회할 여지를 더 많이 준다는 것을 알고 유화로 바꿨다. 내가 처음 시도한 작품은 엄청나게 큰 캔버스에 팝 아티스트 로널드 브룩스 키타이 R.B. Kitaj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최근 이 그림을 다시 본 후, 조야한 그때의 실력이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별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티 에드워즈 Betty Edwards의 ‘우뇌로 그림 그리기(Drawing on the right side of the brain)’ 라는 책을 본 후 내 그림에 큰 발전이 나타났다. 40년 전에 쓰인 이 책은 드로잉에 관해 내게 많은 위안을 줬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붓으로 드로잉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나는 책에 나오는 대로 연습을 했고 큰 도움을 받았다. 드로잉은 모든 예술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강의는 (10강 정도밖에 듣지 못했지만) 나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 나는 강의를 통해 색을 섞고 색깔과 강도를 조절하는 등 기술적 기본기를 다졌다. 하지만 그보다도 겹겹이 색을 칠하는 방법과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색을 두껍게 칠하는 법을 알게 됐다.

가장 좋은 교육은 안내, 연습, 경험 그리고 관찰에서 비롯된다. 직접 그린 그림-맘에 들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지만-은 항상 교훈을 준다. 그림을 그리면서 쌓은 우정 역시 뜻밖의 선물이다. 지난 여름 스코틀랜드 서부지역에서 30명의 학생과 비교적 쌀쌀한 날씨의 일주일을 보냈다. 이들은 현재 영국 미술학교 중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프린스 드로잉 스쿨 Princes Drawing School 학생들로, 그 중 단 3분의1 정도만이 내 또래였다. 그 일주일 동안 매일 비가 왔고 주변은 온통 회색과 초록색 두 가지 색뿐이었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그림을 그렸다. 같은 사물을 각자의 해석대로 표현한 작품을 감상했다. 저녁에 가진 ‘비판의 시간’도 큰 도움이 됐다.

그림을 그리면 시각이 예민해진다. 모든 풍경과 사람은 관찰대상이 된다. 그림을 그리면 사물을 더 집중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또 사진과 엽서, 그리고 인스타그램의 스냅사진보다 더 많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는 장점이 있다.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면 그 당시 시간, 장소, 날씨, 함께 있었던 사람, 기분 등이 떠오를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림은 또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면 시간의 변화는 그림자의 길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아침식사 훨씬 전에 일어나 이젤을 들고 나가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드물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정신 없이 관광지를 돌아다닐 때 호텔 방에 머물며 조용히 풍경을 그리는 일도 즐겁다. 그림을 잘 그렸을 때 느끼는 성취감에 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성취감은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고, 이젤이 바람에 부러지거나 그림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느끼는 좌절감을 모두 압도해버린다.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위안을 얻은 여행객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여러 잡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밥 딜런 Bob Dylan과 론 우드 Ron Wood 역시 열렬한 예술가였다. 고발 프로그램 ‘60분’ (60 Minutes)의 몰리 세이퍼 Morley Safer 역시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고, 가수 토니 베넷 Tony Bennett도 그랬다. 더 놀라운 것은 매우 이성적인 몇몇 정치인들도 그림 그리기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Ronald Reagan 행정부의 재무부 장관이자 장기간 메릴 린치 Merrill Lynch의 CEO를 역임한 돈 리건 Don Regan은 은퇴 후에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는 만약 이 즐거움을 미리 알았다면 골프도 덜 치고, 위스키도 덜 마셨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최근 나는 이젤 옆에 자랑스럽게 서 있는 또 다른 은퇴자의 사진을 보았다. 그는 바로 조지 부시 George W. Bush 전 대통령이었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면 얼굴이 두꺼워진다. 악천후 때문이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이다. 나는 주말 아침 일찍 북 캘리포니아의 작은 연안도시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나의 이젤은 폐를 맑게 하려고 산책 나온 흡연자들, 개를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들 그리고 두세 명의 어부들-기분 좋게도 나에게 신선한 전복이나 연어를 선물로 주신다-의 관심을 끈다. 모든 사람들이 내 그림에 대해 한마디씩 건넨다. 대부분 내 캔버스를 보고 “뭘 그리세요?”라고 묻는다. 어떤 여자분은 나에게 “우리 고모가 직접 쓰시던 팔레트를 내게 주셨는데, 지금 쓰시는 것과 비슷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끔 거리를 거닐던 한두 아이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매우 즐겁다.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새로운 의견을 듣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호텔 지배인이 내 캔버스와 물감이 튄 옷을 보더니 “바지가 매력적인 작품 같네요. 팔아도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2년 전 나는 프랑스 라로셸 La Rochelle의 북쪽 편에 위치한 목가적인 섬 일 드 레 le de R 에 있는 항구 마을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때 내 그림을 구경하고 저마다 감상평-캘리포니아 사람들보다는 덜 너그러운 평이었다-을 말하려는 프랑스인 관광객 때문에 내가 이젤에서 떠밀려 나간 적도 있었다. 지난 여름 나는 처음으로 그림 주문을 받았다. 그는 독일인으로 그리스의 작은 섬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점심과 함께 그리스산 포도주인 레치나 retsina를 반드시 한두 병씩 먹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집에 걸어둘 그림을 부탁했다. 종교 상상화-런던에서 약 25마일 떨어진 쿡햄 Cookham에서 그렸다-로 유명한 영국 화가 스탠리 스펜서 Stanley Spencer는 그림을 그리는 데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표지판을 걸어두곤 했다.

그림 그리기에 늑장을 부리면 대가가 따를 수도 있다. 지난 가을 나는 콘크리트로 지은, 금방 무너질듯한 공장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공장은 캘리포니아의 마린 카운티 Marin County라는 농촌 지역 길가에 수십 년 동안 서 있었다. 이른 아침 5~6번 정도 나가 그림을 그린 후, 나는 거의 완성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2개월 동안 그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2주 전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가 그 공장을 찾았다. 하지만 끔찍하게도 공장이 모두 무너져내려 있었다. 이제 이 미완성의 그림은 벽에 비스듬히 서 있다. 아들은 나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말을 해주었다. “이러다가 아빠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화가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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