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공정무역 초콜릿이 재능기부를 만나다

인터브랜드 코리아가 디자인한 ‘이퀄 초콜릿’ 레드닷 어워드 수상

브랜드 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 코리아가 공정무역 제품인 ‘이퀄 초콜릿’ 패키지 디자인을 통해 재능기부 성공의 또 다른 선례를 남기고 있다. 놀랍게도 이 초콜릿 제품 패키지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날, 문지훈 인터브랜드 코리아 대표와 김진환 ‘아름다운 커피’ 공정무역사업처장을 만나 재능기부와 공정무역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k.co.kr
사진 윤관식 newface1003@naver.com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 커피’가 만든 초콜릿 제품 ‘이퀄 초콜릿’의 패키지 디자인이 레드닷 어워드에서 본상을 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상을 받은 패키지 디자인이 재능기부를 통해 완성됐다는 점이다. 재능기부를 한 곳은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인터브랜드 코리아다. 자신이 가진 역량을 사회적 기업을 돕는 데 쓴 것이다. 인터브랜드 코리아는 어떤 이유에서 재능기부를 한 걸까.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 커피’에서 만난 문지훈 인터브랜드 코리아 대표는 말한다. “글로벌 인터브랜드는 사회 공헌 활동을 장려하고 있어요. 세계 각국에 있는 법인에서도 사회 공헌 활동들을 하고 있죠. 이런 정책에 따라 저희 한국법인 역시 브랜드 컨설팅 회사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재능 기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아름다운 커피’ 쪽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희는 비영리단체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고민할 것 없이 협약식을 맺은 후 공동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커피’는 국내 최초로 공정무역 사업을 시작한 곳이다. ‘아름다운 가게’의 공정무역사무처로 시작해 2006년 공정무역 원두커피 제품을 출시했다. 공정무역은 저개발국 생산자와의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거래를 통해 지구촌의 빈곤과 무역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범세계적인 운동이다. 현재 세계 70여 개 국가에서 400여 개가 넘는 공정무역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750만 명이 넘는 생산자들이 직접적인 혜택을 받고 있다.

인터브랜드 코리아는 지난 2012년부터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 커피’에 디자인 재능기부를 해왔다. ‘이퀄 초콜릿’은 ‘이퀄 아메리카’에 이어 이 재능기부로 탄생한 두 번째 제품이다. 김진환 ‘아름다운 커피’ 공정무역사업처장은 말한다. “인터브랜드 코리아 직원들이 재능기부로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걸 봤어요. 공정무역과 ‘아름다운 커피’에 대한 깊은 애정도 느꼈습니다. 제품 디자인 재능기부는 인터브랜드 코리아가 가진 ‘브랜드는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다’라는 슬로건에 어울리는 협업이라 생각해요. 공정무역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아름다운 커피’에게 공정무역 생산자가 생산한 원재료로 만든 제품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커피’는 세계공정무역기구(WFTO)의 인증을 받은 공정무역단체다. 2006년부터 저개발국 생산자협동조합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이퀄 초콜릿’ 역시 공정무역으로 구매한 원료를 사용해 만든 제품이다. 페루 최초 ‘유기농 코코아’ 인증을 받은 나랑히요 협동조합에서 카카오 원두를 가져 온다. 카카오 함량 55%(스위트다크)~75%(리얼다크)인 프리미엄 다크 초콜릿으로, 유기농 카카오와 사탕수수 설탕을 주 원료로 합성첨가물과 식물성 유지를 넣지 않기 때문에 ‘건강한 초콜릿’이라 할 수 있다.

‘이퀄 초콜릿’의 소비자가격에는 생산자 단체 공동체를 위한 발전기금이 포함되어 있다. 김진환 처장은 사회적 기업가의 선구자인 빌 드레이튼의 말을 인용했다. ‘사회적 기업가는 고기를 주는 것은 물론,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기잡이 산업을 혁명적으로 바꿀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페루의 협동조합은 가공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농민들 스스로 카카오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60년대부터 이 지역 농민들이 협동조합 내부 유보금을 축적하고, 선진국의 공정무역단체나 국제개발단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터브랜드 코리아의 재능기부는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효과를 불러왔다. 기존 공정무역 제품들의 경우 일반 제품에 비해 디자인의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퀄 초콜릿’은 출시하자마자 120개의 ‘아름다운 가게’ 매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공정무역 제품 중 매출 1위를 기록하는 등 매우 좋은 반응을 보였다. 패키지 리뉴얼을 통해 세련되고 친근한 느낌을 공정무역 제품에 심으면서 디자인이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내외부 평가를 받았다. 김진환 ‘아름다운 커피’ 공정무역사업처장은 말한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제품임에도 ‘아름다운 커피’의 브랜드 파워가 약한 탓인지 제품이 좀 비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인터브랜드 코리아의 브랜드 컨설팅과 디자인 재능기부로 제품을 출시한 이후 많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퀄’ 브랜드는 고급 유기농 제품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은 다른 공정무역 제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어 재능기부의 효과가 극대화 된 사례라 할 수 있죠.”

이전까지의 제품 패키지가 공정무역과 윤리적인 소비를 강조했다면, 새로운 브랜드인 ‘이퀄’ 제품은 좀더 시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품으로 먼저 다가간 후에 공정무역을 알리자’라는 목표가 디자인에 반영됐다. ‘공정무역’이라는 딱딱한 메시지를 세련된 패키지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 메시지를 친숙하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패키지를 열면 나무가 자라는 듯한 모양으로 보이는 등 작은 재미 요소를 가미해 시장성과 실험성을 아우르고자 한 것이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브랜드 코리아는 재능기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재능기부는 어떻게 보면 업무의 연장이기도 했다. 문지훈 대표는 말한다. “기존 업무량이 많기 때문에 예전에 재능기부 제의가 들어왔을 때 거절한 경우도 있었어요. 팀원들에게 여유가 없어서였죠. ‘아름다운 커피’와 일을 하는 과정에선 회사 내부 지원자를 받아 프로젝트에 참여할 인원들을 선정했습니다. 업무량이 많은 컨설턴트, 디자이너들이 본업을 하면서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되지 않으면 좋은 결과물을 얻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많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참여자들의 만족도도 늘어났다. 이후 프로젝트 지원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재능기부를 한 직원들에 대한 어떤 보상도 없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는 데다, 제품이 빠르게 출시되기 때문에 다들 무척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업무 후 밤 늦게까지 일을 하는데도 즐거워 보이더라고요.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아름다운 커피’는 ‘이퀄 초콜릿’을 통해 매출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백화점 명품관으로부터 입점을 원한다는 문의전화도 걸려왔다. 고객을 비롯한 유통 채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 얻고 있어 ‘아름다운 커피’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름다운 커피’는 공정무역에 대한 교육도 진행 중이다. 공정무역 활동을 알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시민대사 제도를 운영 중이다. 시민대사는 일종의 자원봉사자로, ‘아름다운 커피’가 진행하는 소정의 공정무역 교육 과정을 거쳐 활동하게 된다. 공정무역 시민대사는 학교나 동아리, 각종 모임에서 강연을 하고, 정기적 모임을 통해 공정무역 운동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하며, ‘아름다운 커피’ 간사들과 함께 직접 공정무역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한다. 2013년 현재 전국에서 약 50명이 시민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진환 처장은 인터브랜드 코리아와의 공동작업이 ‘아름다운 커피’가 전문적인 공정무역단체로 도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가 이런 협업을 통해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각 났다. 김 처장은 국내 기업들이 공정무역 활동에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공정무역을 통한 제품 생산이나 판매에 나서는 국내 기업은 현재 거의 전무한 상태다. 김 처장의 답변은 이랬다. “기업들이 공정무역에 많이 참여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죠. 물론 소비자들은 공정무역이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될 소지가 있지 않을까 의심을 합니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이 공정무역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칭찬해줘야 해요. 다만 기업들이 실제 공정무역에 참가하는 기여도에 비해 과장되게 마케팅에 이용한다는 느낌을 줄 경우, 이는 오히려 기업에게 역효과가 될 수 있습니다.”

인터브랜드 코리아가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는 10가지 평가 기준 중에는 기업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하는지, 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평가하는 항목들이 있다. 문지훈 대표는 설명한다. “공정무역과 같은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들의 브랜드가치는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단순한 사회공헌활동을 넘어 기업의 주요 전략과 핵심 비즈니스 영역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확대하는 기업들이 생기고 있죠. GE나 IBM이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국내 기업은 이런 수준에 한참 못 미치고 있어요.”

인터브랜드 코리아와 ‘아름다운 커피’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연을 유지할 듯하다.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꽤 오랫동안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문지훈 대표의 말에서 이 같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이퀄 페루 코코아(핫초코)’ 제품 디자인도 진행 중입니다. 더불어 기존 제품들에 대한 전반적인 리뉴얼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공정무역 생산자들이 생산하는 물품의 종류가 다양해서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을 경험할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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