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전통과 현대를 디자인에 녹인 다운사이징 플래그십 세단

[JOY RIDE] 재규어 XJ 2.0 롱휠베이스

재규어가 2리터 엔진을 단 플래그십 세단을 과감히 내놓았다. 배기량은 낮지만 성능은 야무지다. 게다가 우아하고 독특한 인테리어는 독일차에서 맛보기 힘든 색다른 분위기를 지녔다. 재규어 XJ 2.0 롱휠베이스 모델을 시승해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k.co.kr


재규어는 독특한 전략을 택했다. 4기통 2리터 가솔린 터보엔진을 플래그십 모델인 XJ에 얹어 다운사이징을 시도한 것이다. 그동안 4기통 2리터 엔진을 얹은 플래그십 모델은 상상할 수 없었다. 넉넉한 힘과 정숙성을 위해 최소 6기통 이상은 돼야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환경이 빠르게 변했다. 강화된 각국의 환경 규제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에게 고민을 안겼다. 고민의 결과 도로에서 마주치는 하이브리드나 전기차가 낯설지 않게 됐다. 아직 주류를 이루는 가솔린 엔진 차량들은 차체 무게를 줄이는 노력에서 한발 더 나가 엔진 배기량을 낮추는 다운사이징을 택했다. 그럼에도 대부분 메이커들은 플래그십 모델에 다운사이징 엔진을 얹는 것은 주저하고 있다.

재규어는 과감히 손을 댔다. 플래그십 모델인 XJ에 4기통 2리터 엔진을 단 건 그래서 파격적이다. 엔진을 4기통 1,999cc로 줄이고 몸무게도 1,855kg으로 100kg 이상 뺐다. 경쟁차종과 대비해 많게는 300kg이나 가벼운 차체다. 최근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환영받는 배기량 2리터급으로 체급을 줄이면서 차값은 1억 원대 초반(1억2,190만 원)으로 낮췄다. 재규어가 체면과 실속을 모두 챙긴 스마트한 녀석이 된 것이다.

전통과 현대가 만난 디자인

디자이너 이언 칼럼은 재규어의 기함인 XJ를 새로 빚으면서 과거의 유산을 현대 기술 안에 녹여 놓았다. 그는 클래식한 재규어 라인을 버리지 않았다. 후드 위에서 포효하던 재규어는 사라졌지만 XJ엔 여전히 클래식한 요소가 가득하다. 이언 칼럼에게 박수를 보낸다.

XJ는 재규어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역동성 넘치는 외관을 계승했다. 플래그십 세단이지만 스포츠쿠페의 형상을 고집했다. 더 길어진 휠베이스와 흐르는 듯 매끄러운 보디라인에서 차가 정지해 있어도 달려나가는 듯한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완만한 루프라인은 부드러움을 강조하지만, 메쉬형 대형그릴과 근육질 후드는 재규어의 야성 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길게 늘어뜨린 물방울 모양 사이드 윈도우도 스포츠 쿠페와 같은 실루엣을 완성하는 데 한 몫을 했다.

XJ는 럭셔리 자동차가 지녀야 할 아늑하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디테일을 인테리어에서 유감없이 보여준다. 독일차가 가질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살아 있다. 실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앞 유리 밑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프레임이다. 1950년대 목재 쾌속보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최상급 무늬목이 운전석과 조수석 도어 양쪽에서 시작해 앞 유리 밑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데, 양쪽 나뭇결이 정확하게 일치하도록 수작업으로 제작했다.

XJ는 질감과 색감을 통일하기 위해 각 차량마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나오는 목재를 사용했다. 시트, 인스트루먼트 패널, 도어톱, 센터 콘솔, 암레스트 등 주요 내장재에는 역대 XJ중 가장 많은 양의 가죽으로 마감했다. 센터페시아와 송풍구, 아날로그 시계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날로그 감성에 이은 첨단사양 역시 어떤 경쟁모델에도 뒤지지 않는다. 과감히 아날로그 계기반을 배제하고 12.3인치 고해상도 가상계기반을 사용했다. 여러 가지 첨단기능들을 가상계기반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롱휠베이스인 만큼 2열 공간도 넓고 안락하다. 뒷좌석은 키가 180cm 넘는 성인이 다리를 꼬고 앉아도 넉넉한 무릎 공간을 갖췄다. 825와트 출력을 내는 메리디안 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크림색 가죽 시트에 파묻혀 들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스포티한 드라이빙, 안락한 승차감

운전석에 앉아 붉은 색으로 깜빡이는 시동버튼을 눌렀다. XJ는 플래그십 세단답게 운전자를 반긴다. 재규어 XF에서 최초로 선보였던 원통 모양 ‘드라이브 셀렉터(기어 변속기)’가 우아하게 솟아 오른다. 12.3인치 가상계기반은 뛰어 오르는 재규어 모양 그래픽에서 3D 다이얼 세 개(연료·온도계, 속도계, 타코미터)로 변한다. 출발 준비가 완료됐다는 신호다. 비로소 다이얼 형식인 드라이브 셀렉터를 돌려 드라이브 모드에 놓는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XJ 2.0을 처음 대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5미터(5,252㎜로 에쿠스보다 9cm 길다)가 넘는 거대한 차체를 2리터 엔진이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결론적으로 2리터 가솔린 터보엔진과 ZF사가 만든 자동 8단 변속기 조합은 기대 이상이었다.

가속페달을 밟자 차체가 스르륵 미끄러져 나간다. 운전대는 부드럽게 돌아간다. 터보차저가 작동하기 전까진 나긋나긋하다. 오른발에 조금 더 힘을 주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XJ는 아주 잠깐 숨을 고른 후 순식간에 힘을 터트린다. XJ 2리터 가솔린 터보엔진은 최대출력 240마력에 최대토크 34.7kg·m를 발휘한다. 최대토크가 2,000~4,000rpm에서 터져 나오는 만큼 일상 주행에서도 수시로 폭발력을 느낄 수 있다. 추월 가속에서 답답함을 느낄 수 없다. 고속도로에 진입해 속도를 올리면 2리터 터보엔진이 주는 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배기량이 크지 않아도 운동 성능은 충분하다. 국내 도로 환경에서 2리터 터보엔진이면 부족함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D(드라이브 모드)에 고정되어 있는 드라이브 셀렉터를 살짝 누른 뒤 S(스포츠모드)로 돌린 후 다이내믹 모드 버튼을 길게 눌렀다. 가상계기반이 붉은 색으로 변한다. 거칠게 다뤄달라는 XJ의 신호다. 가속페달을 밟자 XJ는 온 힘을 쏟아붓는다. 서스펜션은 단단해지고 운전대는 묵직해진다. 가속페달과 변속기는 예민해진다. 데이터상 출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은 7.5초다. 고성능 차가 흔해진 지금 제로백 7.5초가 우습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 가속력과 달리기 실력이면 고속도로에서 ‘날아다닌다’고 봐도 무방하다.

XJ는 질주본능을 발휘하면서도 플래그십 세단에 걸맞은 실내 정숙성을 보여준다. 엔진 회전수를 높여도 거슬리는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가속 시 들려오는 엔진음이 실내로 유입되는 것을 최소화 하기 위해 고밀도 흡차음재를 차량 곳곳에 꼼꼼하게 배치했다. 밸런스 샤프트 두 개는 엔진 진동을 막아주는 동시에 소음도 감소시킨다. XJ는 주행 성격에 따라 승차감을 달리한다. 재규어 엔지니어들은 XJ를 얌전한 플래그십 세단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재규어의 모토인 ‘뷰티풀 패스트카’를 잊지 않았다. 스포츠 드라이빙에서는 XJ를 머신으로 만들어 운전 재미를 충분히 제공해주고 있다. 일반 주행에서는 매우 부드럽다. XJ는 후륜에 에어서스펜션을 기본 장착했다. 도로 상황에 따른 차체 움직임을 초당 100번 분석하는 어댑티브 다이내믹스는 좌우 흔들림과 위아래 흔들림 조정장치와 연동해 말랑말랑하면서도 탄력 있는 주행감을 선사한다.

독일차를 대신할 새로운 대안

후드 위에서 두 발을 앞으로 뻗은 채 포효하는 재규어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재규어는 반듯하고 똑 떨어지는 독일 세단과 달랐고 섹시한 이탈리아 스포츠카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멋이 있었다. 동그란 헤드램프 두 쌍을 굴곡 그대로 감싸면서 미끈하게 뻗어 올라간 후드는 크롬으로 감싼 창틀과 기막히게 어울렸다. 납작한 차체는 트렁크 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면서 심플한 리어램프로 마무리 했다. 납작한 차체에 비해 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타이어는 빗살무늬 휠과 결합했다. 꼬리처럼 튀어나온 듀얼 머플러는 또 얼마나 멋있었는지 모른다.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재규어는 클래식이라는 이름표를 달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찰스 황태자는 재규어 사에 왕실 조달 허가증을 부여해 자동차납품 업체의 지위를 갖게 했다. 우아한 시절이었다. 재규어가 효율성 혹은 경제성이라는 괴물에 무릎을 꿇고 1999년 포드에 납치됐을 때 모두가 우려했다. 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드러났다. 포드는 재규어를 살려 내기는커녕 회복불능의 식물로 만들어 놨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결국 포드가 토해낸 재규어를 인도 타타그룹이 2008년 인수했다. 5년이 흐른 지금 재규어는 옛 영광을 회복 중이다. 재규어코리아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총 1,022대를 팔아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한 판매량을 올렸다. 한국은 전 세계 재규어 판매량 5위 국가로 올라섰다.

재규어는 벤츠, BMW, 폭스바겐, 아우디처럼 판매량이 많은 브랜드는 아니다. 하지만 재규어만의 아이덴티티를 내세워 고객층을 형성하고 있다. 재규어 XJ는 독일차에서 더 이상 프리미엄을 맛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선택할 대안이 될 수 있다.

재규어 XJ는 독일차에서 더 이상 희소성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선택할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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