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llan sloan
예상치 못한 파장 효과를 일으키며,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던 리먼 브라더스 파산사태가 일어난 후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이하 연준)를 비롯한 다른 중앙 은행들과 미국 정부가 금융시장을 구하기 위해 수조 달러를 투입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제2차 세계 대공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40년 넘는 금융전문기자 경력을 바탕으로 리먼의 파산신청(2008년 9월 15일)과 그 이후의 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해보려 한다(부디 교훈이 되길 바란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과는 다를 것이다. 필자의 특기는 ‘실패 사례’를 파고드는 것이다. 사무실 천장에는 1980년대 중반 아버지의 날 선물로 받은 장난감 독수리(vulture) *역주: 미국에서는 남의 불행을 이용해 먹는 사람을 독 수리에 비유한다가 걸려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리먼 사태에서 필자가 느낀 점은 당시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찬사를 보냈던 (리먼을 구제하지 않기로 한) 단순한 결정이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초래했고, 그 결과 금융시장이 며칠 만에 대혼란에 빠졌다는 것이다. 표면상 단순해 보이는 문제들이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 있다는 객관적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리먼은 연준과 재무부가 베어스턴스를 긴급 구제한 지 여섯 달 만에 파산했다(정확히 말해, 베어 스턴스의 채권자들과 그들의 거래 상대들을 구제한 것이다. 주주들은 거의 투자한 돈을 날렸다). 당시에는 시장원리대로 베어스턴스가 파산하게 놔둬야 한다는 정부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다. 베어스턴스 채권자들에게 고통을 짊어지도록해 시장을 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리먼이 파산하자 예상치 못한 두가지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하나는 리먼의 채권을 다량 보유하고 있던 대형 단기금융투자신탁(Money Market Fund·이하 MMF) 운용회사 리저브 펀드 Reserve Fund가 큰 손실을 입은 점이었다. 리저브 펀드의 주당 순자산 가치가 1달러 이하로 하락하자 MMF 인출사태가 일어났고, 결국 정부는 사태 진정을 위해 모든 계좌의 지급을 보장하게 된다.
둘째는 리먼의 런던 지사를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 *역주: 헤지펀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지원해 주는 금융기관 로 삼았던 헤지펀드들의 자산이 동결된 것이다. 이후 헤지펀드들은 경쟁적으로 미국에서 자금을 빼나갔다. 시중은행들과 달리 각종 정부 대출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 계좌에서 자금을 회수해간 것이다. 이 두 기업은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하려 할 때 부족한 자금을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은행지주회사’로 기업구조 변경을 신청했다. 연준이 이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는 모두 파산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또 전 세계적인 부도 사태를 촉발하며 금융 시스템에 엄청난 재앙을 안겼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렇게 예금인출 사태는 일단락 됐다. 많은 사람들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리먼 부도사태의 두 부작용은 금융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져 나올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가용한 모든 재원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대마불사의 대형 금융 기관이 자기자본비율을 늘리도록 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이는 연준의 강력한 안정화 도구를 빼앗아가며 연준의 힘을 크게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 점은 연방정부가 많은 부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슬픈 사실과 어우러져 제2의 금융위기 발생 시 엄청난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언제나 위기 뒤에는 제2의 위기가 잇따라 발생했다. 정부는 예금 보장을 획득하고, 어려움에 처할 (정확히 말하면, 납세자들을 곤경에 빠트릴) 가능성을 낮춘 대형 금융기관들을 해체하고 단순화 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그 대신 정부가 한 일은 3년 전 도드-프랭크 Dodd-Frank 법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 법안의 규칙 제정 과정은 진행 속도가 너무 더뎌 오바마 대통령조차도 실망스럽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보다 더한 것은 볼커 룰 Volcker Rule이다. 이 안에 따르면 은행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금융거래 행위를 할 수 없다.다만 거래를 원하는 고객을 위한 시장 조성을 위해서는 금융거래에 참여 할 수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두 행위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복잡해-개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볼커 룰의 내용은 수백 페이지에 달한다. 결국, 실질적으로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느껴진다. 전 캔자스시티 연방은행 총재(현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 부총재) 톰 호니그 Tom Hoenig 가 제안한 소위 ‘호니그 룰 Hoenig rule’을 도입할 수도 있었다. 그의 안에 따르면 정부 보증을 받는 금융 기관은 일절 금융거래에 참여할 수 없다. 수반되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실행할 만했다. 하지만 호니그란 이름이 워싱턴에서 먹혔을 리 만무했다.
SIFIs(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s)라 불리는 골드만 삭스, AIG, JP 모건을 비롯한 복수의 주요 금융기관들은 자신들만의 생전 언장(living will)이라 불리는 비상자구책을 갖고 있다. SIFIs는 ‘시피즈(SIF-eeze)’라고 발음돼 일종의 금융 전염병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SIFIs의 비상자구책은 수백 페이지(어떤 경우는 수천 페이지)에 달한다. 이를 검토하는 규제당국에게 행운을 빈다. SIFIs가 또 다시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면 역시 행운을 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금융 시스템 전반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다시 말해 어려움에 처한 SIFIs를 구제할 자금을 확보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질 것이다. 최근 공감대를 얻는 안은 경제 대공황 시절 글라스-스티걸 Glass-Steagall 법을 재도입해 금융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 안은 다소 따분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상업은행과 훨씬 더 역동적인 투자은행의 업무를 완전히 분리시키자는 것이다. 필자는 이 안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공감한다.
사실 뉴스 위크 Newsweek에서 월가 에디터로 근무하던 1995년 3월, 필자의 첫 번째 칼럼은 글라스-스티걸 법 폐지를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 글은 뉴스 위크에서 정식으로 일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쓴 것이다. 필자가 생각한 글라스-스티걸 법 폐지의 문제는 시중 은행과 투자은행의 신성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이미 경계가 상당히 모호했다. 다만 충분히 복잡한 대형 금융 회사들을 더 크고, 복잡하게 (반면 통제하기는 훨씬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1998년 글라스-스티걸 법이 폐지되자 시티그룹은 대형 보험사 트래블러스 Travelers와 합병한다. 투 기업의 통합이 실패로 증명되자 시티그룹은 트래블러스를 재매각한다. 결국 글라스-스티걸 법안의 폐지는 아무런 이점이 없는 결정이었다.
금융기관은 경험 많은 경영진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크고 복잡해질 수 있다. JP모건의 ‘런던 고래’ 사건 *역주: J P모건 런던지사의 투자담당 직원이 파생상품 거래를 잘못해 62억 달러의 손실을 낸 사건에서는 자사를 리스크로부터 보호하려는 전략이 오히려 10자릿수 손실을 기록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다행인 점은 JP모건의 건전한 재정 덕분에 60억 달러가량의 손실이 주주들로 한정됐다는 점이다. 나쁜 소식은 JP모건 CEO 제이미 다이먼 Jamie Dimon 같이 유능하고 열정적인 경영자마저도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사태파악을 했다는 점이다. 이런 ‘대마불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글라스-스티걸 법을 재도입하는 것은 규제 폭탄을 가하는 것과 다름없다. 2008년 세계 경제가 붕괴할 때, 미국 정부는 JP모건에 베어스턴스 인수를 요청했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는 임박했던 메릴린치 인수를 더 서두를 것을 촉구했다.
또 웰스 파고에는 대형은행 와코비아 인수를 요청했다. 당국의 요청으로 이뤄진 이 모든 협정이 이제 번복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앞으로 정부를 도와 파산 위기에 처한 은행을 매입하려는 금융기관이 있겠는가?
여기에 더해 극단적 당파주의가 새로운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연준과 정부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신속히 벤 버냉키 Ben Bernanke 연준 의장의 후임자를 발표하지 않으며 연준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충격적이다(이 논란은 다방면으로 연준을 괴롭히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이 또 다시 채무한도를 두고 소모적 논쟁을 시작하려 한다는 것도 믿기 힘들지만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금융기관들의 증가한 자본비율과 비상자구책, 규제 당국의 엄격한 관리·감독 덕분에 2008년 리먼 사태와 같은 금융 재앙이 발생할 가능성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믿지 마라. “이번은 다르다”는 말은 금융계에서 가장 위험한 말이다. 1960년대 말 이후 매번 대형 금융위기가 벌어졌을 때마다 이 이야기를 들어왔다. 하지만 몇 년도 안돼 곧 새로운 위기가 닥쳐왔다. 이 말이 사실이었던 적은 없었고, 이번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행크 폴슨
전 재무부 장관
행크 폴슨은 자신의 저서 ‘온 더 브링크(On the Brink)’를 소개하며 금융위기 5주년을 기념했다. 포춘과의 심층 인터뷰에서 폴슨은 모기지 업체 패니 매와 프레디맥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는 “리먼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을 안정화 할 수 있었고, 반드시 그랬어야 했다”고 말한다. 패니와 프레디는 리먼보다 규모가 9배 더 큰 기업이다. 앞으로 미국은 정부 보조금이 시장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건전한 민간 모기지 시장을 구축해야 한다. 즉, 패니와 프레디가 주택을 저당잡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보증 가능한 모기지도 제한해야 한다. 폴슨은 패니와 프레디를 개혁하지 않으면 신용 문제로 제 2의 주택버블이 발생할 것이며, 이는 곧 또다른 금융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터뷰 전문과 금융위기 5주년 관련 추가 기사는 포춘 홈페이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교착상태에 빠진 책임 논쟁
금융위기 시작과 끝은 정부 소송으로 장식됐다. 첫째, 연준은 전 베어스턴스 경영자 랄프 시오피(사진)와 매슈 태닌을 상대로 형사 소송을 제기했다(베어스턴스는 2007년 파산했다). 둘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13년 파브리스 투르-당시 CDO 판매를 담당하던 골드만 삭스의 중간계급 직원-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시오피와 태닌은 무죄로 석방됐다. 전문가들은 검찰의 패배 원인을 형사사건에 요구되는 증거제시의 부담과 너무 이른 타이밍이라 지적했다. (재판이 열렸던) 2009년은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가 일어나기 2년 전이었으며, 티 파티(Tea Party) 출신 후보들이 구제금융을 반대하며 선거운동을 벌이기도 전이었다. 시오피와 태닌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묘사한 작전은 먹히지 않았다. 심지어 한 배심원은 그들의 펀드에 돈을 맡기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SEC는 투르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에서 승리했다. 투르의 변호사는 SEC의 주장은 너무 빈약해서 재판에 세울 증인을 한 명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투르가 희생양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혹자는 뉴욕 타임스에 이런 말을 했다 “그를 보면 월가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소름이 끼친다.”
위기 유발자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 S&P, 피치는 모기지 재조합 증권에 AAA라는 최고 등급을 부여했다. 이 신용평가기관들은 돈을 들여 신용평가를 의뢰한 은행들이 제공한 정보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고, 그저 주택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다가 확실한 투자상품이 하루아침에 종이 조각이 돼버리고, 신용평가기관들의 무능함이 드러났다. 국민들의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의회는 (세 신용평가사의) CEO들에게 질문세례를 퍼부었고, 규제당국은 과실유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 후 법무부가 S&P를 민사사기죄로 고발한 건을 포함해 소송이 잇따랐다. 다른 업계였더라면 이런 이야기는 책임이 있는 기업들이 파산하며 끝났을 테지만, 이곳은 다름 아닌 월가다. 해당 기업들은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다. S&P의 모회사 맥그로힐 파이낸셜과 무디스의 주가는 2009년 최저점을 찍은 이후 각각 240%, 299%씩 폭등했다. 일부 소송 건도 해결됐다. 라자드 캐피털 마켓의 애널리스트 윌리엄 버드의 말에 따르면, 채권의 90%는 여전히 무디스, S&P, 피치에 의해 평가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세 신용평가기관은 너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이해관계 때문에 절대 파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규모가 작은 다른 신용평가사들이 다양한 규제와 시장관행을 적용해 수십억 달러 어치의 채권을 평가하기란 역부족이다. 금융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신용평가기관이 가장 큰 비난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들의 평가와 무관하게) 완전히 안전한 금융상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트랑셰 토크]
CDS
신용부도스와프. 트레이더들을 위한 보험상품으로 디폴트 리스크를 헤징하기 위해 이용된다.
커다란 흡혈박쥐문어가 인류의 얼굴을 감싸고 있다
롤링 스톤스 지 매트 타이비 기자가 2010년 골드만 삭스를 묘사한 말이다.
Maiden Lane
뉴욕연방준비은행이 베어스턴스와 AIG를 구조조정하기 위해 설립한 3개의 특수목적법인.
205 금융위기 이후 금융 개혁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던 청문회 횟수.
15 도드 프랭크법에 포함된 법률 숫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