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초일류 기업이 사라지는 이유

WORLD ECONOMY

GM, 모 토롤라, 소니, 코닥, 노키아는 5년 전만 해도 초일류기업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지금 이들 기업은 파산, 매각, 실적악화라는 수렁으로 빠져버렸다. 이유가 뭘까?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적응력 부족이다.

천리마가 축지법 1.0, 헨리 포드의 자동차가 축지법 2.0이었다면,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은 축지법 3.0이다. 거리와 시간의 간격을 없앤 천재들 덕분에 혁명이 일어나고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공업혁명과 교통혁명이 어우러져 산업화와 생산경제시대를 만들었지만 스마트혁명은 더 나아가 정보화를 만들었고 창조경제시대를 열었다. 21세기는 생각이 돈인 시대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개미가 코끼리를 밀어 절벽에 떨어뜨리고 고양이가 호랑이를 이기는 시대다. 변화에 둔감하면 몸집 큰 고기와 공룡이 먼저 사라진다. 100년 장수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순식간에 몰락하는 것이 정보화시대의 특징이다.

미국이 세계 금융패권을 잡은 이래 세계는 미국의 무한정 달러 찍기에 휘둘려 970~1980년대에는 10년에 한 번, 1990년대 이후에는 10년에 두 번 이상 경제위기가 반복되어 왔다. 그럴 때마다 전 세계 기업들의 순위가 바뀌었다.

금융의 변화와 기술 변화의 주기가 바뀌면서 기업환경은 더 복잡해지고,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규모가 크건 작건 관계없이 기후 환경변화에 적응 못해 멸종된 공룡 신세가 되고 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같은 21세기 최고부자들을 잘보면 부(富)의 코드와 생존의 코드가 보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본가(資本家)가 아니라 지본가(智本家)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디어로 돈을 번 사람들이다. 생각이 돈이고 ‘근력(筋力)이 아니라 염력(念力)’이 경쟁력이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제로 코스트와 변화적응력이 빠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제로 코스트의 사업모델이다. 모든 PC에 장착되는 윈도우와 문서작성기인 오피스 패키지는 인터넷에서 인증코드만 넣어 다운받으면 자동으로 장착된다. 운송비도 점포비도 없다. 대금은 비자카드가 알아서 받아준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를 단한 대도 만들지 않는다. 모두 중국의 팍스콘 사가 만들어 준다. 손에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연구개발과 아이디어로만 돈을 번다. 살아 있는 주식투자의 신 워런 버핏은 종이와 연필 그리고 자신의 생각만가지고 전 세계 블루칩에 투자를 해서 부를 쌓았다.

지금 세계 최고부자들은 지본가(智本家)이지 제조업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아담스미스의 분업이론과 포드식 규모의 경제 모델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생각이 돈이라고 생각하고 남들과 다른 생각, 남들보다 앞선 생각으로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다.

결국 근력(筋力)이 아니라 염력(念力)이 경쟁력이고, 부를 창출하는 무기인 시대가 왔다. 지금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부자이고, 스티브 잡스는 비록 사후에 누린 영광이지만 애플을 세계 최대의 시가총액을 가진 기업으로 만들었다. 워런 버핏은 세계 4번째 부자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은 철강, 조선, 화학, 기계, 반도체, 휴대폰에서 일본 기업을넘어섰고 이젠 미국 기업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서고 있다. 하지만 금융화와 정보기술 혁명으로 미국과 유럽의 100년 기업도 한방에 가는 새로운 초경쟁의 기업환경 속에서 지금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제조업의 성공은 두렵기만 하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면 적응력이 최고의 능력으로 떠오른다. 과거의 영광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다. 과녁이 빗나갈 경우 고수는자신을 돌아보고 하수는 과녁을 처다 본다고 한다. 목표물을 맞히지 못한 것은 과녁 탓이 아니라 궁수 자신의 탓이다. 과녁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지나가는 어여쁜 여인의 옷자락에자신의 마음과 시선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고수는 자신을 돌아보고자기 안에서 문제를 찾는다. 때문에 화살을 과녁에 제대로 맞히고싶으면 실력을 쌓아야 한다.

도대체 어떤 실력을 쌓아야 할까? 더 좋은 것을 원한다면 가진것을 버리라는 말이 있다. 새롭게 얻고 싶은 게 있으면 지나간 성공의 경험을 버려야 한다. 승자의 독배를 들고 오래 있으면 망하는 법이기 때문에 성공과 승리는 또 다른 패배의 시작이다. 말을 타고 스피드로 세계를 정복한, 거대 제국 원나라는 칭기스칸의 후예들이성을 짓고 우물을 파면서 역사상 가장 빨리 쓰러진 제국이 되었다.

지금 기업 경영환경은 3차원 공간에서 펼쳐지는 상상력의 싸움터로 변했다. 공상소설이 현실이 되고 상상력의 천재가 현실의 천재로 둔갑하는 시대다. 미국의 경쟁력은 혁신이었다. 그리고 궁핍에서 혁신이 나왔다. 젊은이의 헝그리 정신이 답이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모두 허름한 차고에서 창업한 헝그리 정신의 천재들이었다. 부유한 오렌지족들의 머리에서 혁신을 찾기는 어렵다. 오렌지족은 위기를 만나면 포기하고 절망한다. 미국은 그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의 헝그리 정신을 제대로 발휘할 제도와 금융시스템으로 혁신을 이뤘지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늙어버린 유럽은 혁신이 없다. 노인 증가와 1자녀 출산의 시간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다. 그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보장한 복지가 청년들의 혁신의지를 꺾어 버렸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의 경영학 교과서가 더 이상 맞지 않는 시대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좋아야 하고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가 아니라 콘텐츠의 질이 좋아야 하는 시대다. 너무 복잡한 사회가 되어 버린 21세기는 대가 한 사람의 이론이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려운 시대다. 21세기의 혁신은 융합에서 나오고, 융합은 이론이나 교과서가 아닌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다.

삼성전자가 최첨단 반도체공장을 중국 시안에 짓는다. 포스코는 철강업계 최첨단기술인 파이넥스 공법을 사용하는 공장을 중국 충칭에 짓는다. 이렇게 되면 1명이 벌어 4명이 먹고 살던 제조업 모델은 이젠 한국에선 안 된다. 1명이 벌어 100명을 먹여 살리는 혁신 기업모델이 있어야 한다. 대량생산과 하드웨어의 생산 효율성에 목매던 한국 기업이 제조업의 성공신화를 버리고 새로운 혁신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 1명이 벌어 10명이 먹고 사는 모델도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아서, 주력산업의 핵심기술 공장을 줄줄이 중국으로 이전하는 한국제조업의 미래가 두렵다.


전병서 소장은…
대우증권 리서치본부장과 IB본부장을 역임했다. 한화증권 리서치본부장을 거쳐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원 중국경영학과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 칭화대 경제관리학원(석사), 푸단대 관리학원(석사·박사)에서 공부한 그는 현재 중국 자본시장 개방과 위안화 국제화, 중국 성장산업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저서로는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 ‘5년 후 중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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