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미술시장의 아름다운 컬렉터들

서진수의 ‘미술과 경영’

창조 경제의 기반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인문과 미술, 음악 같은 예술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포춘코리아는 창조적인 경영과 삶을 지향하는 기업인을 위해 미술 속 경제 이야기를 연재한다. 경제학자이자 열혈 미술 애호가인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 겸 미술시장연구소 소장이 신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 겸 미술시장연구소 소장


서울 신세계 백화점 본관 옥상 가든에 가면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작가들의 조각품이 전시돼 있다. 모바일 조각으로 유명한 조각가 칼더(Alexander Calder)의 검고 선이 아름다운 조각, 인체의 아름다움과 청동의 부드러움을 조화시키는 무어(Henry Moore)의 육중하고 따뜻한 조각,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작가 미로(Johan Miro)의 드물지만 친근한 동물 조각, 거미 조각으로 유명한 부르조아(Louis Bourgeois)의 사람 눈 모양을 형상화한 벤치 조각이 쇼핑객들에게 행복감을 더해준다. 특히 쿤스(Jeff Koons)의 보랏빛 대형 하트가 유명한데, 신세계가 이 작품을 설치한 뒤 백화점 매출이 30%나 상승했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아트 백화점을 지향하는 신세계가 충청점을 열 때에도 미술적인 가치를 고려했다. 사업 파트너로 손잡은 이가 다름아닌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이다. 김 회장은 세계 200대 컬렉터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컬렉터이자 기업인이다. 신세계는 제휴를 통해 컬렉터 김창일과 아라리오 갤러리가 가진 프리미엄을 함께 누리게 됐다.

국내외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김 회장이 구입하는 신소장품에 언제나 촉수를 세우고 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작품에 필이 꽂혔을까, 미술 동네 사람들은 그의 행보에 관심이 많다.

10여 년 전만 해도 김 회장이 구입한 작품을 대하면 천안 시민뿐 아니라 미술계 사람들까지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크 퀸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피를 뽑아 자기 두상 모양으로 얼린 작품을 냉동고에 넣어 전시했는데, 김 회장이 이를 구입했다. 누가 이 컬렉터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았겠는가. 그러나 스위스 바젤의 바이엘 미술관에서 세계에 흩어져 있는 마크 퀸의 얼음 두상 조각 4개를 한 자리에 전시했을 때, ‘한국 아라리오 김창일’이 재조명을 받았다.

컬렉터는 구입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나 누구의 어떤 작품을 살 것인가는 컬렉터들의 영원한 숙제이자 주사위 게임이다. 김 회장이 데미안 허스트의 조각 ‘채리티’와 ‘찬가’를 구입했을 때, 보는 사람들은 드디어 이 컬렉터가 돌출행동의 종결을 보였다고 생각했었다. ‘채리티’는 아픈 다리와 깡통을 들고 동냥을 하는 여자아이를 소재로 한 20억 원짜리 대형 조각 작품이고, ‘찬가’는 사람의 흉부를 해부학 표본처럼 파헤친 상태를 본떠 만든 고가의 작품이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굳이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간다.

35년간 3,700점을 구입하고 세계 200대 컬렉터에 다섯 차례나 오른 김회장의 컬렉션은 현대미술의 보고다. 그가 모은 작품은 전시회를 100회 이상 개최할 수 있는 분량이다. 전시장을 100번 이상 가야 다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의 꿈과 꿈을 향한 노력으로 우리는 두고두고 안복을 누릴 수 있고,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국가의 부까지 증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천안 아라리오와 신세계백화점 충청점 앞에 설치되어 있는 많은 조각과 아르망(Fernandez Arman)의 100단으로 쌓아올린 조각은 10년 사이에 가격이 수배 이상 올랐다. 미술은 그 자체로 문화임과 동시에 경제임이 증명된다.

김 회장의 장점은 구입한 미술품을 공개해서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함께 즐긴다는 점이다. 갤러리 직원이나 회사 관리자가 사고나 훼손에 대해 걱정했을 때도 그는 호방했다. 훼손되면 수리하면 되고, 많은 사람이 작품을 봤으면 그것으로 지불한 가격 이상을 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꿈에 굶주린다며 제주도에 야심 찬 미술관을 짓고 있다. 그의 꿈과 비전을 향한 행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울 부암동에 서울미술관을 연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도 자신의 컬렉션을 공개한 열린 컬렉터다. 젊은 시절 이중섭의 소 그림 인쇄본을 샀던 인연으로 30년 후에는 36억 원짜리 진짜 소 그림을 구입했다. 45억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빨래터’와 함께 2대 고가 작품에 올라 있는 이중섭의 ‘소’는 서울미술관의 상설 전시작이며,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근현대 회화 100선’을 위해 잠시 외출 중이다. 이중섭의 소가 갖는 가치는 100선 전시의 도록 표지를 장식한 데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조용히 30년 동안 작품을 수집해온 그는 사람과 돈에 잠식당하는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미술 감상을 취미로 삼았다. 그는 감상과 컬렉션이 자신에게 무한한 행복을 준다고 말한다. 사업하고 그림 감상하고, 그림 감상하고 사업하다 보니 한국 근현대 작가의 대표작 100여 점을 모았다. 그리고 혼자 보기 아까워 미술관을 지었다고 한다. 기업가가 제품개발과 서비스로 생활의 편익을 주는 사람이라면, 안 회장은 정신적 편익까지 더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미술에 취한 사람은 계산법도 특이하다. 안 회장은 컬렉터가 돈을 주고 사는 것은 미술품이 아니라 미술가라고 말한다. 때문에 미술품을 사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가치 있는 투자라는 것이다. 얻은 것을 나누고, 나누며 얻는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기부자이다.

안 회장은 운보 김기창이 한국화로 그린 ‘예수의 생애 연작’을 부르는 값을 고스란히 주고 구입하였다. 김기창의 혼이 담겨 있고 한복 입은 예수를 주인공으로 한 한국적인 성화 30점이 흩어지지 않고 반드시 한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이 연작을 구입하면서부터 미술관을 마련할 생각을 했다.

이중섭 위작 사건이 발생했을 때엔 자신의 부인이 가장 아끼는 이중섭의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을 경매에 내놓고, 똑 같은 판화작품을 만들어 전시했다. 진품 가운데 으뜸을 내놓아 이중섭의 진가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미술시장의 진정한 구원투수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창일 회장과 안병광 회장은 미술과 함께 건축에 대한 많은 애정을 보이고 있다. 김 회장은 최근 공간 사옥을 구입해 보존하려 하고 있고, 안 회장은 흥선대원군 소유의 석파정을 구입해 보존하고 있다. 그들은 뼈 속까지 컬렉터이고 진정한 아트 러버다. 세상은 남모르게 행동하는 사람들 덕에 아름답고 따뜻하다.



관련기사



FORTUNE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