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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코라 불리는 사나이

RADIO TECNICO<br>마약조직 ‘제타스 카르텔’이 워키토키로 멕시코를 지배하는 비법

2008년 9월 16일. 미 연방 마약단속국(DEA) 특수작전부 칼 파이크 차장이 워싱턴 DC 외곽의 지휘본부에서 보내온 실시간 영상을 확인하며 미 전역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마약 카르텔 공격 작전을 감독하고 있었다.

이날 댈러스에서는 경찰 특수기동대(SWAT)와 동일한 장비를 갖춘 DEA 요원들이 교외지역의 한 가정집에 섬광 수류탄을 던져 넣고 뛰어들어 난로 뒤에 숨겨져 있던 2.7㎏의 코카인과 총기들을 압수했다. 또 인디애나주 카멜 지역에선 한 중고차 딜러의 집을 급습해 차고에 주차돼 있던 차량 속 비밀공간에서 다수의 코카인 덩어리를 찾아냈다.


이후 수주일 동안 수사를 확대한 DEA는 멕시코로 향하던 농산물 트럭에 은닉된 마약 거래 자금, 다량의 소총, 뇌물을 받고 마약 유통을 눈감아준 보안관 등을 적발해냈다. 멕시코시티에서도 마이너리그 축구팀 ‘라쿤스(Raccoons)’와 아보카도 농장을 통해 마약 자금을 돈세탁하던 금융업자가 체포됐다.

이번 작전은 DEA가 멕시코의 거대 마약조직인 ‘걸프(Gulf) 카르텔’을 붕괴시키기 위해 18개월간 64개 도시에서 200여개 정부기관과 함께 펼쳐온 ‘프로젝트 레커닝(Project Reckoning)’의 마지막 단계였다. 당시 압수된 수천㎏의 마약 더미를 촬영한 사진이 ‘테이블 위의 마약(dope on the table)’이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공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20년간 걸프 카르텔은 멕시코와 미국을 아우르는 마약 제국을 건설했다. 그동안 미국 내에 반입한 마약은 수십억 달러어치가 넘는다. 이들의 조직망은 사회 전반에 뻗어 있었고, 조직원들은 잔학무도했으며, 너무나 당당하게 행동했다.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멕시코 정치인을 암살하기도 했고, 뇌물을 뿌려서 사실상 멕시코 경찰 조직 전체를 부패하게 만들었다. 걸프 카르텔의 한 간부 조직원은 멕시코를 여행 중이던 DEA와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에게 45구경 금장 권총을 난사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특히 걸프 카르텔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경쟁자들을 척결하기 위한 준군사조직까지 자체 운용하고 있다. 멕시코 경찰과 군 특수부대 출신 요원들로 구성된 ‘제타스(Zetas)’가 그것이다. 이 준군사조직은 추후 ‘회사’라는 뜻의 에스파냐어 ‘라 콤파니아(La Compania)’ 또는 ‘더 컴퍼니(The Company)’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날렸다.

미 정부는 프로젝트 리코닝을 통해 제타스의 활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DEA의 파이크 차장은 이를 월마트에서 미국 내 매장 64개를 폐쇄시킨 것과 유사한 효과라고 비유했다. 실제로도 작전의 성과는 어마어마했다. 현금 9,000만 달러, 마약 61톤, 반란을 일으키기에도 충분한 양의 무기가 압수됐고 900명이 체포됐다.

수사망에 걸려든 사람 중에는 텍사스주 멕알렌에 거주하는 37세의 호세 루이스 델 토로 에스트라다도 있었다. 처음 DEA는 그를 중요 인물로 보지 않았다. 상어 옆에서 헤엄치다가 재수 없게 그물에 걸려든 피라미 정도로 여겼다. 흰 벽돌로 지어진 그의 집은 잘 정돈돼 있었고, 마약이나 불법총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전과기록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멕 알렌 변두리의 작은 가게에서 자동차 경보기를 장착해주거나 무전기를 팔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몇 주에 걸친 수사 끝에 전혀 다른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에스트라다는 마약 조직의 보스나 살인자는 아니었지만 제타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연방 검사들에 따르면 정보통신(IT) 전문가였던 그는 제타스의 조직원이자 IT 부서의 책임자였으며, 조직 내에서 ‘기술자’라는 뜻의 ‘테크니코(tecnico)’라는 이름으로 통했다. 지금껏 자신의 재능을 동원해 제타스의 오늘을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구체적으로 에스트라다는 멕시코 당국을 감시하고, 마약이 은닉된 가옥을 지키기 위해 비밀 감시 카메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멕시코 전역을 커버하는 제타스의 비밀 통신망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런 그의 감시·통신망 덕분에 제타스는 마약 유통은 물론 멕시코 경찰과 군대, 미국 국경순찰대에 대한 모든 것을 손바닥 보듯이 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미국으로 톤 단위의 마약을 반입하고, 수십억 달러의 마약 판매 자금을 다시 멕시코로 들여올 수 있었던 근간이 됐다.

마약 카르텔이 통신 전문가들을 조직원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대부분의 법집행기관 요원들도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게다가 한 국가 전체를 포괄하는 시스템을 비밀리에 실시한 것은 범죄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걸프 카르텔의 대부인 후안 구에라는 원래 마약사범이 아니라 밀수업자였다. 그의 첫 사업은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에 미국 텍사스로 밀주 위스키를 반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의 국경지대를 흐르는 리오그란데 강을 따라 매춘과 도박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규모는 작지만 수익성 높은 범죄단체를 일궈냈다. 이후 그는 조카이자 후계자였던 후안 가르시아 아브레고에게 사업을 넘겼고, 1980년대 중반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DEA가 콜롬비아에서 플로리다주를 잇는 코카인 공급망을 괴멸시키고 있었던 것.

곤경에 처한 콜롬비아 마약 조직에게 아브레고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대개 마약 운반책은 마약의 금전적 가치 중 극히 일부만을 대가로 받았는데 마약 판매금의 50%를 운반비로 지불한다면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마약을 대신 수송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제안 하나로 걸프 카르텔은 멕시코 최대의 마약조직으로 거듭났으며, 1995년 아브레고는 FBI의 10대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마약사범이 FBI의 10대 지명수배자가 된 첫 사례였다.

1996년 아브레고가 멕시코 몬테레이 외곽에서 경찰에 체포되면서 걸프 카르텔의 두목은 자동차 정비사 출신의 오시엘 카르테나스 길옌에게 넘어갔다. 출세에 눈이 멀어 ‘친구 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인물이었다.

1990년대 카르데나스는 자신의 신변을 철저히 보호해줄 강력한 용병 부대를 운용하기 위해 멕시코 군경 출신자들을 주축으로 준군사조직 ‘제타스’를 창설했다. ‘사형집행인’이라 불리며 악명을 떨쳤던 제타스의 최고사령관 에르베르토 라즈카노는 미군이 훈련시킨 멕시코 공수특전대 출신이었다.

고도의 훈련시스템과 극도의 효율성을 갖춘 제타스의 창설은 마약카르텔 성장의 신기원을 여는 것과 같았다. 제타스는 오지에 캠프를 만들어 신입 조직원들에게 군 전술과 총기, 통신 등을 교육했고 과테말라 특수부대인 카이빌(kaibil) 전역자들도 받아들였다. 그 힘을 모아 새로운 마약 루트를 개척하고 경쟁자들을 제압했다. 심지어 경리업무 전담부서를 두고 자체 회계시스템까지 운용했다. 이렇게 힘을 키운 제타스의 잔인성과 폭력성은 가히 전설에 가까웠다는 게 미 육군대학원 로버트 벙커 초빙교수의 설명이다.

“제타스 이전의 마약 조직들은 기본적으로 자질이 떨어지는 총잡이와 운반책들이 주류를 이뤘죠. 하지만 제타스가 다른 조직들은 생각지도 못한 고도의 군대식 작전 능력을 보유하면서 마약 산업 생태계 전반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타스가 왜 무선망을 구축하려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군대와 법집행기관 출신 조직원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제타스의 총책임자인 ‘Z1’을 위시한 간부들이 광범위한 통신망을 구축하면 다른 마약 카르텔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을 깨달은 듯 보인다. 제타스는 이 통신망에 쓰일 최적의 장비로 워키토키를 선택했다. 휴대폰은 비싼데다 위치추적과 도청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워키토키는 저렴하고, 사용이 쉬우며, 보안성도 더 좋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구축에 필요한 워키토키와 무선안테나, 신호 중계기 등도 무전기 상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혹여 법집행기관의 도청이 의심될 경우 운반책과 무장 대원들은 주파수를 바꾸거나 특정 소프트웨어를 통해 음성신호를 왜곡시키는 것으로 위험을 벗어날 수 있다.

에스트라다가 어쩌다 제타스에 가입해 무선통신망 발전에 기여하게 됐는지 역시 아직은 수수께끼다. 다만 그의 무선망이 확대되면서 모든 마약 운반책과 제타스의 조직원 간 통신이 가능해졌고, 제타스의 수뇌부는 완벽한 수준의 지휘 통제 능력을 확보했다.

영어로 매(hawks)를 지칭하는 감시원 ‘알코네스(Halcones)’가 도시의 모든 골목마다 워키토키를 들고 서서 경찰의 검문소가 설치되면 즉시 상부에 알려 수뇌부가 검거되는 것을 막았다. 또한 멕시코 동북부의 누에보 라레도에 근거지를 둔 중간보스는 수톤의 코카인을 실은 트럭들이 국경을 넘어 텍사스주로 이동하는 상황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었다.

벙커 교수는 다양한 무선 감시·통신망의 효용성 중 백미는 제타스의 무장 조직원들이 다른 조직의 마약 유통 경로를 공격해 빼앗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무선망이 갖춰져 있으면 조직의 자원 활용 효율이 극대화됩니다. 제타스가 다른 조직의 영역에 들어갈 때조차 무기와 차량, 병력 등을 지원받을 수 있죠. 각 운반책과 호위부대원의 능력이 몇 배나 커지는 겁니다. 지휘통제자 입장에서 실로 경이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에스트라다의 무선망에 힘입어 제타스는 급성장하며, 경쟁 조직을 압도해나갔다. 그러나 범죄 조직의 세계에 영원한 동지는 없었다. 걸프 카르텔과 제타스는 수년간의 내분 끝에 지난 2010년 독립된 조직으로 분리됐다. 걸프 카르텔이 제타스의 재정책임자를 포섭하려다 실패하자 납치 살해한 적이 있는데 많은 분석가들은 이 사건이 내분의 단초가 됐
다고 얘기한다.

어쨌든 제타스와의 내분은 멕시코 최강을 자부했던 걸프 카르텔의 힘을 급속히 약화시켰다. 그와 동시에 제타스의 힘은 빠르게 커졌다. 마약을 넘어 납치, 밀입국 브로커, DVD 불법복제, 그리고 암시장에 나온 석유 판매로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멕시코의 일부 지역에서는 제타스의 힘이 정부를 압도해 무슨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이처럼 모기업 격인 걸프 카르텔이 쇠퇴하고 제타스가 득세할 수 있었던 건 전문적 훈련과 잔인성에 기반한 준군사조직이라는 점 외에 무선 감시·통신망의 통제권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프로젝트 리코닝 이후 에스트라다는 유령이 됐다. DEA도, 미 법무부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체포되기 전 10년 이상 영주권자로 살아가며 주변에 드러낸 것 정도다. 그는 V&V 커뮤니케이션즈라는 간판을 걸고 워키토키와 무선장비들을 판매했고, 자신과 아내의 명의로 멕알렌 인근에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했다. 개중에는 마구간과 수영장, 멋진 숲이 딸린 작은 목장도 있다. 지금도 그 목장의 입구에는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반면 제타스 조직원으로의 정보는 확실한 것이 별로 없다. 멕알렌 거주 중에 제타스에 가입했는지, 가입 후 멕알렌으로 배치됐는지 알 수 없으며 정규 IT 교육을 받았는지, 독학으로 무선통신기술을 깨우쳤는지도 불분명하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정보컨설팅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전직 연방 마약수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전형적인 마약 조직원의 길을 걷어오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해요. 그는 살인자가 아니라 기술자입니다.”

진실 여부를 떠나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근처에 거주하는 솜씨 좋은 무선통신 엔지니어는 제타스에게 매력적인 존재였음에 틀림없다. 제타스는 2004년경 리오그란데 강을 사이에 두고 텍사스주 브라운스빌과 마주보고 있는 멕시코의 소도시 마타모로스에 처음으로 무선망을 건설했는데 아마도 에스트라다가 이 프로젝트의 감독을 맡았을 개연성이 크다.

제타스는 초기에만 해도 소규모의 워키토키와 안테나만으로 경찰이나 라이벌 조직을 충분히 감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가 군 병력을 동원해 항공로와 해로의 경계를 강화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항구를 통해 콜럼비아로부터 마약을 들여올 수 없게 된 것. 이후 제타스는 과테말라로 눈을 돌렸다.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국경은 길이가 1,000㎞에 달하고 오지인 탓에 경비가 허술해 마약 운반에 이상적 장소였다.

그렇게 마약 운반책들은 과테말라 북부의 정글에 간이 활주로를 만든 뒤 항공기로 다량의 코카인을 들여왔다. 이 마약을 트럭에 옮겨 싣고 멕시코 국경을 넘은 다음, 다시 텍사스주와의 접경지대를 통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알려진 바로는 멕시코-과테말라 국경에는 검문 없이 통과할 수 있는 루트가 최소 125개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루트는 기존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고, 번잡스럽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제타스는 관리의 효율화를 위해 2006년경 텍사스주 접경지대에서 멕시코만, 과테말라, 멕시코 내륙지역을 아우를 수 있도록 무선망 확장을 개시했다.

이때 에스트라다는 무선망을 구축할 도시로 날아가 현지의 무선 주파수대를 파악, 도식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누가 어떤 주파수를 사용하고 있고, 어떤 주파수의 트래픽이 가장 적은지 알아야 통신보안에 가장 적합한 주파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택배회사와 주파수를 공유하기라도 하면 택배기사들의 잦은 통신 때문에 제타스의 군사적 협동작전이 방해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음 단계는 이동통신 및 무선통신업체의 무선 중계기를 하이재킹해 제타스가 사용키로 결정한 주파수를 증폭시키도록 재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멕시코 경찰서의 지붕에 설치된 중계기가 이용된 적도 있다. 제타스의 막강 파워와 멕시코 경찰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도시가 아닌 베라크루스주의 정글지대 등 오지에선 무선망 구축이 한층 어렵다. 주변을 둘러싼 산과 자연적 장애물들이 전파를 막기 때문에 산꼭대기에 중계기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에스트라다에게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상에 중계기 타워를 세웠고, 짙은 녹색 페인트를 칠해 주변 나무들과 식별이 어렵도록 만들었다. 중계기 운용에 필요한 전력은 자동차의 배터리나 태양전지를 부착해 해결했다.

파이크에 의하면 베라크루즈주에는 다수의 중계탑이 줄지어 설치돼 있으며, 무려 160㎞에 달하는 무선통달거리를 제공한다. 이 정도면 적어도 10개 마을과 도시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감시·추적할 수 있다. 라이벌 조직의 무장대원이든, 멕시코 군경이든 감시망을 벗어날 길이 없다.

“감시자에서 수뇌부까지 정보가 끊이지 않고 전달되는 겁니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을 보면 미군기지에서 헬리콥터가 출격할 때마다 기지 주변의 산등성이에 있던 어린아이가 휴대폰으로 소말리아 민병대에 그 사실을 알려주죠. 그와 비슷한 방식이에요.”




각 지역과 도시에 로컬 통신망이 가동된 뒤 에스트라다는 이들을 연결할 통합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제타스의 여러 산하조직과 조직원들을 하나로 묶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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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그는 상용 소프트웨어만으로 알코네스의 워키토키 수천 대를 동시에 원격 관리했다. 특정 지역의 트래픽이 과도하게 높아지면 다른 주파수로 분산시켰고, 마타모로스 지역의 보스가 몬테레이 지역의 보스와 협력이 필요할 경우 두 사람을 연결시켜줬다. 만일 조직원이 체포되면 정부 당국의 도청 시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그들의 워키토키를
무력화시키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필요하다면 디지털 음성변조 소프트웨어를 사용, 영화 스타워즈의 R2D2 로봇이 내는 듯한 이상한 소리로 무전 음성을 변조시킬 수도 있었다.

제타스는 중앙 통신 본부 산하에 각 권역별 통신 본부를 설치, 통신망의 효율적 관리에도 힘썼다. 멕시코 북부 코아윌라주에서 멕시코군이 제타스 소유의 주택을 급습한 적이 있는데 네트워크에 연결된 노트북과 디지털 워키토키 63대, 무선중계기 원격조종용 중앙처리장치, 항공기와의 통화까지 가능한 디지털 무전기 등을 찾아냈다.

2008년에 이르러 제타스의 통신 인프라는 멕시코의 대다수 주와 미국 국경을 커버할 만큼 확대됐고, 에스트라다는 통신전문가들로 구성된 ‘긱 스쿼드(Geek Squad)’라는 독자 조직도 보유했다. 신기술 연구와 신속한 장비 프로그래밍을 위한 조치였다.

어찌나 정교하게 구축했던지 제타스의 무선망은 회복력도 매우 강하다. 멕시코 군경에 의해 무선 중계기 하나가 무력화돼도 즉시 다른 중계기로 트래픽을 이동시켜 원활한 통신 환경을 유지했다. 또한 이 무선망은 제타스의 입장에서 투자 대비 효용성이 탁월했다. 전체 무선망 구축에 수천만 달러가 투입됐지만 이 정도는 대량의 코카인을 미국에 단한번만 밀반입시켜도 회수할 수 있는 푼돈이었다.

대규모의 무선 통신망을 혼자 관리할 수는 없기에 에스트라다에게 운용기지는 필수적일 터였다. 이 점에서 무전기 상점 V&V 커뮤니케이션즈는 더 없이 이상적인 장소임에 틀림없다. 국경과 인접해 있는데다 별달리 눈에 띄지 않았으며, 일반인들이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무전기를 팔았기에 법망의 감시도 피할 수 있었다.

1층 건물인 V&V 커뮤니케이션즈는 여전히 멕알렌 외곽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여러 대의 감시 카메라가 현관문과 상점 내부를 향해 있고, 지붕 위에는 높이 9m의 안테나 탑이 서 있는 모습이었다. 현관문의 초인종을 누른 뒤 여직원이 문을 열어주길 기다려 내부로 들어가 보니 무전기는 단 1대도 보이지 않았다. 중계기나 전선, 충전기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 놓여 있는 것은 빛바랜 팸플릿뿐이었다.

스페인어 밖에 모르는 여직원은 아무리 봐도 손님을 맞을 준비가 안돼 있었고, 손님을 보고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녀가 내민 명함에 적힌 이메일과 홈페이지 주소 역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 정부는 제타스의 무선망에 대해 아직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다. 그러나 제타스 무선망과 멕시코의 내정 상태는 분명 정반대의 인과 관계를 갖고 있다. 제타스 무선망이 확대될수록 멕시코의 내정은 불안해진다는 게 그것이다. 마약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갈수록 멕시코로 돈이 유입되고, 제타스는 이 돈으로 경찰과 정치인, 공무원을 매수하는 것은 물론 조직원을 늘리고 대량의 무기를 구입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에만 해도 멕시코 군대가 제타스의 은신처를 공격해 권총과 소총 500정, 탄약 50만 발, 수류탄 150발, 50구경 저격소총 7정, RPG 로켓탄 1발, 다이너마이트 14발 등 엄청난 무기를 찾아냈다.

제타스와 걸프 카르텔의 패권 다툼이 심해지며 최근 수년간 멕시코 동북부 타마울리파스주에서의 대낮 총격전 빈도 또한 늘고 있다. 2010년에는 제타스의 조직원들이 중미에서 이주한 72명을 납치해 살해하기도 했다. 그들 중 걸프 카르텔의 암살자가 숨어있다는 첩보가 불러온 참혹한 사건이었다.

같은해 7월 누에보 라레도에서도 제타스 무장대원들이 훔친 트럭과 버스로 교차로를 막아놓고 라이벌 조직의 마약 수송차량을 매복 공격하는 일이 있었다. 몇 시간에 걸친 총격전 끝에 현지 당국은 시신과 소총들 사이에서 다수의 워키토키를 발견했다.

폭력의 중심에 제타스가 있음이 확실해면서 멕시코 군대는 수개 대대 병력을 투입, 제타스의 가장 값비싼 자산인 무선망 공격을 결정했다. 아마도 이 결정은 DEA가 에스트라다를 통해 얻어낸 정보가 근간이 됐을 것이다. 그는 체포 이후 DEA에 협력하며 무선망의 인프라 구조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무선망 무력화 작전은 멕시코의 4개주에서 펼쳐졌고, 무수한 압수품들이 쏟아졌다. 안테나 167대, 무선중계기 155대, 컴퓨터 71대, 태양전지와 배터리 166개, 그리고 약 3,000대에 달하는 워키토키와 푸시투토크(push to talk, PTT) 전화기였다. 멕시코 해병대가 고속도로 인근에 설치돼 있던 90m 높이의 안테나 타워를 발견해 철거하기도 했다.

멕시코의 군 대변인은 이런 성과를 발표하며 제타스의 지휘·전술통제시스템이 붕괴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타스는 군대가 휩쓸고 지나간 뒤 곧바로 중계탑과 안테나를 복구하기 시작했다. 에스트라다가 체포된 후에도 무선망 복구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모집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설령 그 인력들이 자발적으로 동원되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실제로 2009년부터 멕시코 전역에서 통신 전문가와 공학자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가 잇따랐다. 첫 보고는 2009년 6월 20일 저녁 누에보 라레도의 한 호텔에서 무선통신기업 넥스텔의 기술자 9명이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당한 것이었다. 이들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 뒤를 이어 IBM, 플루오르-다니엘, 멕시코 국영 석유기업 페멕스 등에 소속된 최소 27명의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이 사라졌다. 비록 제타스가 무선통신을 책임졌던 수장을 잃었지만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자산을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2011년까지 에스트라다는 미국 휴스턴 중심부의 연방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5월 11일 그는 최종 양형 심리를 위해 연방 판사 앞에 나타났고, 2012년 6월 석방돼 자유의 몸이 됐다. 역사상 가장 정밀한 범죄 인프라를 구축했음에도 4년이 못 되는 형기를 살고 풀려난 것.

어떻게 된 걸까. 유죄 판결을 받고 구류 중인 그에게 어느 날 검사들이 찾아와 무선망 및 제타스의 수뇌부에 대한 정보 공개를 대가로 형량삭감을 제의했다. 그리고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에스트라다는 제타스의 표적이 됐다. 때문에 그는 현재증인보호프로그램에 의해 신분을 감춘 채 모처에 숨어 있을 개연성이 높다. 어쩌면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멕시코에 숨었거나 멕알렌의 자택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제타스는 라이벌 조직과 멕시코 정부라는 두 적으로부터 점점 더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2011년 7월 멕시코 정부 당국은 제타스의 최고위층 간부인 엘 마미토를 체포했고, 얼마 안 있어 엘 탈레반이라 불렸던 간부도 붙잡았다.

또 1년 후에는 멕시코군이 코아윌라주의 한 마을에서 한가롭게 야구를 즐기고 있던 제타스의 최고사령관 에르베르토 라즈카노를 급습해 총격전 끝에 경호원 2명과 함께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전 세계 마약왕 중 가장 유명했던 인물이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라즈카노에 이어 조직을 장악한 미구엘 안겔 트레비뇨 모랄레스도 2013년 7월 타마울리파스주에서 체포됐다.

이 성과들은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다.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에서 정부 당국이 승리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깊은 문제가 감춰져 있다. 에스트라다의 무선망은 제타스가 추진했던 정보 전쟁의 1단계에 불과했던 것. 세력이 한창 불어났던 시절의 제타스는 동독의 비밀경찰 조직인 슈타지(Stasi)와 유사한 대규모 첩보원 부대를 육성, 조직의 작전에 첨단기술과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했다. 당시 멕시코 법무장관이 “남미와 북미를 통틀어 필적할 상대가 없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제타스의 정보망은 강력했다. 구체적으로 제타스는 트위터 피드, 블로그, 페이스북 계정 등을 모니터링했으며 해커팀을 고용해 매핑 소프트웨어로 정부 당국을 감시하기도 했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20명의 통신 전문가를 동원, 전화도 도청했다. 게다가 거리에는 택시 운전사, 타코 판매원, 구두닦이, 심지어는 경찰 등의 직업을 가진 제타스의 첩보원들이 널려 있다.



제타스의 중간 간부와 연루된 한 여성은 제타스가 누에보 라레도 같은 분주한 도시를 여러 구역으로 나눠 감시하기에 충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한 구역은 보통 10여개 거리로 구성되며, 약 20명의 알코네스가 배치된다. 도시 하나에 수백 명의 정보원이 배치돼 모든 상황을 철두철미하게 감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알코네스에게는 2대의 휴대폰과 1대의 워키토키가 지급돼요. 임금은 대개 1만 페소(약 81만원) 수준이죠. 보통은 경찰관, 군인, 라이벌 카르텔의 조직원들을 대상으로 누가 거리를 걷고 있는지, 그 사람 곁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해서 보고합니다. 알코네스는 골목마다 배치돼 있기도 하고, 고속도로 인근 변두리에도 서 있어요. 도시 어디든 그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답니다.”

이런 규모의 조직망이면 매일 수천 개는 아니어도 수백 개의 문자메시지와 음성전화, 무전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과연 범죄 조직이 이토록 엄청난 데이터의 홍수를 분석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할 수 있을까. 혹은 어딘가에 전문 분석가들이 모여 앉아 이 정보들을 취합해서 명령계통을 통해 수뇌부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할까. 에스트라다의 사례를 지켜본 어느 전직 공무원은 두 가지 모두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제타스는 누에보 라레도 경찰국의 C4 부서에 침투, 경찰 정보망을 제어할 능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최고지도자를 잃은 제타스는 걸프 카르텔이 그러했듯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어느 사업이든 큰 성공의 아우라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도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내는 사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에스트라다의 무선망을 무기로 제타스가 누렸던 극도의 효율성은 마약 카르텔의 조직 관리·운용 특성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첨단 기술과 군대를 연상케 하는 작전 전술, 잔인한 심리전, 정밀한 정보 수집·통신시스템 등이 다른 범죄조직들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된 셈이다.

이미 전 세계 다수의 마약 카르텔들이 경쟁력 유지를 위해 독자적인 준군사조직을 창설했고, 제타스의 쇠퇴 이후 멕시코 최대 마약 카르텔로 부상한 ‘시날로아(Sinaloa)’는 독자 무선망을 보유 중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를 보면 마약 카르텔이 무인항공기나 정밀한 데이터마이닝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법집행기관의 행동양상을 추적하고, 이상적 밀수 루트와 일정을 결정할 날도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그리고 이 악몽 같은 미래는 워키토키를 들고 거리를 감시하는 구두닦이처럼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제타스 카르텔의 무선네트워크
명령체계 해부도


알코네스 (Halcones)
특정 주파수로 프로그래밍된 단거리 워키토키를 장비한 제타스의 정보원. 도로와 국경에 배치돼 멕시코 군경이나 라이벌 조직의 움직임을 상부에 실시간 보고한다.

안테나
제타스는 건물 지붕, 나무 등에 무선통신용 안테나를 은닉시켜 놓는다. 때로는 적법한 기업의 안테나를 빼앗기도 한다. 이 안테나로 알코네스의 워키토키 신호를 수신한다.

무선신호 중계기
안테나의 신호를 증폭해 먼거리 또는 산 같은 장애물 너머로 전송한다. 덕분에 제타스 조직원들은 수십 ㎞ 밖에서도 통화를 할 수 있다. 수신·발신 신호를 분리해주는 이중 중계기를 이용할 경우 알코네스, 마약 운반책, 무장 대원의 동시 통화도 가능하다.

지역 통신 본부
독립적 판단이 가능한 지역 통신 본부들이 각 지역의 통신 트래픽을 조정한다. 노트북, 중앙처리장치, 디지털수신기 등을 장비한 채 교외의 주택가 등지에 은닉해 있다.

중앙 통신 본부
중앙 통신 본부에서 무선통신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네트워크에 연결된 수천 대의 워키토키를 관리한다. 여러 도시에 분산돼 있는 조직원들의 통화를 연결해주고,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또한 조직원이 숨지거나 체포되면 그의 워키토키를 무력화시키고, 무선망이 확대되면 새 워키토키를 네트워킹한다. 법집행기관의 도청을 차단하는 것도 이곳의 업무다.

무장 대원
라이벌 마약조직의 움직임이 파악되면 제타스는 소총과 휴대형 대전차 로켓발사기(RPG), 워키토키 등을 장비한 무장대원들을 보낸다. 이들은 워키토키를 활용해 인근지역에 떨어져 있던 무장 부대들과 협동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교도소를 습격해 동료를 탈옥시키거나 정부군을 공격한 적도 있다.

수뇌부
두목을 포함한 조직의 수뇌부로 전달되는 통신은 일반 조직원들이 사용하는 주파수가 아닌 별도의 지휘통제부 전용 주파수를 쓴다.

마약 밀수 통제
제타스의 수뇌부는 과테말라를 출발해 멕시코를 거쳐 미국 텍사스주의 국경을 넘어가는 마약 수송 트럭의 전 이동상황을 실시간 추적한다. 국경지대의 외진 곳에서는 관측수를 배치해 워키토키로 미 국경순찰대의 움직임을 보고받는다. 이렇게 국경을 통과한 마약은 도시의 비밀 은신처에서 재포장된 뒤 유통업자들에 의해 미 전역으로 유통된다.

전력공급
도시에서는 거리의 전력선이나 건물의 전력망에서 훔친 전기로 안테나와 중계기의 전력을 조달한다. 전력망이 구축되지 않은 오지의 경우 자동차 배터리나 태양전지를 활용한다.

C4 부서 우리나라의 119 안전신고센터, 미국의 911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
데이터마이닝 (data mining) 방대한 데이터 속 상관관계를 분석, 유용한 정보를 추출해내는 과정.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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