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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처럼 부풀리는 우주정거장

INFLATABLE SPACE STATION

우주선, 우주정거장, 달기지, 화성기지. 아마도 딱딱하고 차가운 금속으로 이뤄진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전혀 새로운 개념의 우주 거주지를 개발하고 있다. 특수 고강도 섬유와 불활성 기체를 이용해 풍선처럼 부풀려서 전개되는 팽창식 우주 모듈이 그것. 기존 우주선 대비 중량과 강도, 공간효율성 등에서 우위를 점하는 팽창식 모듈로 민간 우주정거장과 외계행성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 이 기업의 궁극적 목표다.



우주항공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의 우주탐사 능력은 일취월장했다. 달을 넘어 화성 유인탐사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으며, 민간 우주기업들에 우주여행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와 있다. 이를 보면 공상과학 영화 속에 나오는 달 기지와 화성 식민지가 건설될 가능성도 하루하루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인류의 우주탐사에 큰 걸림돌이 하나 있다면 다름 아닌 엄청난 발사비용이다. 1파운드(454g)의 물건을 우주로 보내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1만 달러나 된다. 600g 정도 되는 농구공 하나를 보낼 때 약 12만 달러가 필요한 것. 우주선이 크고 무거워질수록 로켓 연료탑재량과 발사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국제우주정거장(ISS) 같은 거대한 우주기지를 건설한다거나 화성 등지에 식민지를 건설해야 한다면 발사비용만 가히 천문학적 수준이 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한 각국 우주기구들이 경량성과 내구성을 겸비한 신소재를 활용해 우주선의 경량화에 지속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 바로 팽창식 모듈 시스템이다. 명칭에서 느껴지듯 이는 실제 부피의 수분의 1 크기로 접은 상태에서 발사한 뒤 우주에서 불활성 기체를 주입, 팽창시켜 원래 크기로 전개하는 모듈을 의미한다. 이 모듈을 우주 탐사선으로 활용할 수도, 다수의 모듈을 결합해 우주정거장이나 외계행성 식민지를 건설할 수도 있다. 기존 대비중량과 부피의 획기적 저감이 가능한 만큼 발사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트랜스해브와 제네시스

팽창식 모듈 시스템의 개발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곳은 NASA다. 1990년대부터 ISS에 도킹시켜 우주인들의 거주구역으로 활용하기 위한 팽창식 모듈 ‘트랜스해브(TransHab)’의 개발에 돌입했다.

중량 13.2톤의 이 모듈은 발사 시에는 직경 4.3m, 길이 11m에 불과하지만 우주에서 질소가스를 충전해 직경 8.2m, 용적 340㎥의 3층짜리 6인용 거주공간으로 변신시키는 콘셉트를 표방했다. 고강도 케블라 섬유와 열 차폐재, 방호재, 절연재 등을 수십겹 덧대 약 30㎝ 두께의 외피를 제작함으로써 120℃에서 -200℃를 오가는 우주의 극한 환경을 견딜 수 있으며 우주쓰레기가 직격해도 안전하다는 게 NASA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트랜스해브는 ISS의 건설 일정 지연과 초과 비용에 따른 부담이 가중되면서 개발 필요성에 대한 논란에 휩싸였다. 급기야 1999년 미국항공우주학회(AIAA)가 트랜스해브 개발 중단을 권고하는 정책 제안을 내놓았고, 1년 뒤에는 하원의회가 백악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해브의 후속 연구를 중단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다만 결의안에서는 NASA가 민간 기업의 팽창식 거주 모듈을 임대해 사용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이렇게 사장될 뻔했던 팽창식 우주 거주모듈 연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재 민간우주기업 비글로우 에어로스페이스에 의해 부활하게 된다. NASA로부터 특허권을 구입한 이 회사는 민간 우주정거장 건설을 목표로 지금까지 관련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상당한 진전도 있었다. 이미 시험용 팽창식 무인 우주선 ‘제네시스(Genesis) 1호’와 ‘제네시스 2호’를 개발, 성공적인 발사를 마쳤다. 2006년 7월 발사된 제네시스 1호는 지구 560㎞ 상공에서 길이 4.4m, 직경 2.54m, 내용적 11.5㎥로 팽창한 뒤 팽창식 모듈의 시스템과 소재, 기술 등을 시험하고 장기 운용성을 검증하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했다. 비글로우는 이때 확보된 데이터에 기반해 제네시스 1호와 동일한 사양의 제네시스 2호를 2007년 6월 추가 발사, 관련기술을 고도화했다. 7~8년이 지난 지금도 지구를 공전하고 있는 두 모델은 인류가 우주로 쏘아올린 최초이자 마지막 팽창식 우주 모듈이다.







유인 거주 모듈 ‘BA 330’

주지하다시피 제네시스 1호와 2호는 일종의 테스트 버전이다. 현재 비글로우는 2017년 발사를 목표로 양산형 팽창식 유인 거주 모듈을 개발하고 있다. ‘BA 330’으로 명명된 이 모듈은 중량 20~23톤, 길이 13.7m, 직경 6.7m, 내용적 330㎥의 독립형 우주정거장을 지향한다. 최대 6명의 우주인이 그 안에서 다양한 과학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BA 330은 다른 BA 330과의 우주 도킹이 가능하다. 필요할 경우 2기 혹은 4기의 BA 330을 도킹시켜 연구공간의 확장을 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글로우의 궁극적 목표 역시 이런 방식으로 ISS에 버금가는 상업용 민간 우주정거장이나 우주관광객용 우주호텔의 건설이다. 우주 공간에서 3기의 BA 330과 도킹 모듈, 추진 모듈을 결합해 대형 거주공간을 만들겠다는 것. 현재 비글로우는 이런 방식으로 내용적 690㎥의 12인승 ‘스페이스 콤플렉스 알파’와 내용적 1,320㎥의 24인승 ‘스페이스 콤플렉스 브라보’라는 두 우주정거장 모델을 구상 중이다.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비글로우는 최소 2기의 BA 330을 제작할 자금이 확보된 상태며, 고객들이 발사 비용의 50%를 부담한다는 전제 하에 2016년 하반기에 건조가 완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올해 2월에는 BA 330의 가격과 임대조건 등이 공개됐다. BA 330의 한 개층(110㎥)을 60일간 임대하는 비용이 2,500만 달러(254억6,000만원), 스페이스 X의 유인 우주선 ‘드래곤 V2’를 타고 우주로 나가서 BA 330과 도킹해 지구저궤도를 여행하는 비용은 2,650만 달러(270억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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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우주왕복선 퇴역 이후 러시아는 소유즈 로켓을 이용해 미국 우주인들을 ISS로 수송할 때마다 7,600만 달러(775억원) 정도를 받고 있다. 과거 러시아가 민간인 대상의 ISS 여행을 시행했을 때 받았던 요금도 1인당 400억원이 넘는다. 비글로우가 책정한 가격은 매우 저렴한 것이다.

이 회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BA 330의 활용도를 계속 넓혀나갈 방침이다. 그 일환으로 얼마 전에는 지구와 달 사이의 라그랑주점이나 달 궤도까지 갈 수 있는 ‘BA 330-DS’, 달 표면 등 태양계의 행성에 착륙 가능한 ‘BA330-MDS’ 등 후속모델의 콘셉트와 기본 설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직경 13㎜급 우주쓰레기에도 거뜬

그런데 사람이 거주하는 우주 모듈을 유연한 소재로 만들어도 안전에는 정말 문제가 없는걸까. 비글로우 측은 우주방사선, 우주쓰레기, 단열, 방화 등 우주공간에서 겪을 수 있는 위험상황들에 대해 ISS 이상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BA 330의 외피는 NASA 트랜스해브에 적용된 기술을 업그레이드하여 24~36겹의 소재를 겹쳐서 제작된다. 두께만 46㎝에 달하는데 팽창시킨 후의 강도가 콘크리트 수준이며, ISS와 동급의 우주방사선 방호력을 발휘한다.

또 자동차의 단열재로 쓰이는 넥스텔 소재를 여러 겹 겹쳐서 우주쓰레기 방호력도 확보했다. 넥스텔 층 사이에는 두께 18㎝의 발포재를 삽입, 우주쓰레기의 공격을 받았을 때 충격에너지를 흡수토록 했다. 덕분에 BA 330은 직경 13㎜의 우주쓰레기 및 미소 유성체의 공격을 견뎌낼 수 있다. ISS의 지름 5㎜ 대비 2.6배에 해당하는 우주쓰레기 방호력이다. 비글로우는 이미 초고속 충돌 실험을 통해 그 성능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은 태양전지와 배터리로 공급되며, 환경제어 및 생명유지 시스템이 6명의 생존을 보장한다. 자외선 방호 처리가 된 관측창도 4개 구비돼 있어 이를 통해 지구 또는 우주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추진장치의 경우 선체의 전방과 후방에 추력기가 하나씩 위치한다. 하나는 하이드라진(hydrazine, N2H4), 다른 하나는 수소와 산소를 연소시켜 추력을 얻는다. 연료가 떨어졌을 때 재보급도 가능하다.

앞서 언급했듯 BA 330의 내용적은 330㎥로 ISS의 ‘데스티니(Destiny)’ 연구 모듈의 106㎥와 비교해 210%나 더 넓다. 하지만 팽창식 설계에 힘입어 질량은 데스티니보다 단 33%밖에 크지 않다. 내부에는 무중력 화장실과 개인용 침실, 운동기구, 식품저장고, 조리실, 개인위생대 등이 구비돼 있다. 물을 구하기 어려운 우주의 특성상 BA 330 또한 ISS에서와 마찬가지로 탑승자들이 배출한 오수, 즉 대소변을 음용해도 무방할 만큼 깨끗하게 정제해 재활용한다. 심리적 거부감 때문에 식수로는 사용되지 않지만 말이다.

한편 비글로우는 BA 330끼리는 물론 NASA나 러시아연방우주청(RSA) 등이 운용하는 우주선과도 도킹할 수 있도록 만들 방침이다. 일단은 러시아의 ‘소유즈 TMA’ 우주선이 대상이지만 드래곤 V2 등으로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이 경우 우주선들이 BA 330과 도킹해 한층 넓은 공간에서 연구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상업 우주정거장의 꿈

비글로우는 ISS 도킹용 팽창식 거주모듈 ‘빔(BEAM)’도 개발 중이다. 이를 위해 NASA는 지난 2012년 12월 AES(첨단 탐사시스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비글로우와 1,78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개발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고 있으며, 내년 중 스페이스 X의 드래곤 로켓에 실려 발사돼서 ISS의 ‘트랜퀼리티 모듈’ 전방에 도킹할 예정이다. 이후 2년간 빔의 구조 통합도와 누설율, 방사선량, 온도 변화 등의 데이터가 수집된다. 아직 ISS의 우주비행사들이 어떻게 빔을 활용할지는 결정되지 않았으며, 임무기간이 지나면 ISS와 분리돼 지구 대기권에 재돌입해 폐기된다.

비글로우는 2년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또 다른 빔을 제작, 앞으로 건설될 자사의 상업 우주정거장에 에어록으로 이용할 생각이다. ISS의 에어록은 2명까지 수용할 수 있지만 빔은 3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이 회사는 BA 330을 이을 차기주자들에 대한 마스터플랜도 세워 놓았다. 행성 여행용 우주선 역할을 겸할 수 있는 16인승 팽창식 모듈 ‘BA 2100’이 바로 그것. ‘올림푸스(Olympus)’라는 애칭이 붙은 이 모듈은 중량이 최소 65톤, 최대 100톤이 될 전망이며 직경 7.6m의 접힌 상태에서 발사돼 직경 12.6m, 길이 17.8m, 내용적 2,250㎥의 매머드급 크기로 팽창하는 콘셉트다. 2014년 6월 현재 ISS의 내용적이 916㎥, 정원이 6명임을 감안할 때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비글로우의 제이 잉햄 부사장에 의하면 BA 330은 설계 및 기술개발을 완료하고 발사시에 직면하게 될 고온, 고압, 고진동 환경에서의 내구성을 테스트하고 있다. 향후 비글로우의 팽창식 거주 모듈이 인류 우주개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지는 BA 330과 BEAM의 활약에 달려 있다.

라그랑주 점 (Lagrangian point) 서로 공전하는 두 천체 사이의 인력이 제로(0)가 되어 역학적으로 안정된 지점. 지구와 달 사이에 L1에서 L5까지 총 5개가 존재한다.
BEAM Bigelow Expandable Activity Module.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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