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4조 3,000억 달러의 파워

THE $4.3 TRILLION FORCE

래리 핑크 Larry Fink는 26년에 걸쳐 블랙록 BlackRock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로 키워냈다. 현재 그는 이 막대한 규모와 힘이 ‘양날의 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by CAROL J. LOOMIS


래리 핑크(61)는 키가 크고 외향적이며 사업에 아주 열정적인 인물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공동 설립자이자 회장 겸 CEO다. 일과 회사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하고, 큐브 퍼즐만큼이나 복잡한 자신의 삶도 사랑한다. 핑크의 일상을 함께하며 그의 삶을 들여다 보자. 핑크는 아침 5시 15분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 Upper East Side 아파트에서 눈을 뜬다. 5시 45분이면 차를 타고 미드타운 Midtown의 본사로 출근을 한다. 전날 온라인에서 읽은 세 가지 신문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파이낸셜 타임스를 손에 들고 있다.

6시가 되면 한 시간 동안 스스로 ‘죽은 시간’이라 부르는 명상의 시간을 가진다. 혹은 (전화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이사들과 영상통화를 한다. 7시 30분부터 퇴근하는 오후 6시 30분까지 끊임없이 스케줄이 잡혀 있다(아침에 부인 로리 Lori에게 잠시 전화를 걸 때는 예외다). 아침식사는 집무실에서 블루베리와 바나나가 든 시리얼로 해결하고, 점심은 금융업계 인사와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다. 저녁은 주 3일 정도-4일은 아니길 바란다-는 비즈니스 디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뉴스를 보고 10시 30분에 잠을 청한다. 5시15분 일상이 다시 시작되기 전 최대한 숙면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피곤할 것 같냐고? 그런데 부지런한 핑크의 일상에는 짧지만 강렬한 블랙록의 역사와 완벽히 일치하는 무언가가 있다. 포춘이 2013년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50대 기업’ 가운데 다섯 곳은 역사가 25년 미만이었다. 그중 넷은 누구나 예상할만한 기술기업 아마존, 이베이, 페이스북, 구글이었다.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나머지 한 기업이 바로 1988년 핑크와 7명의 파트너가 설립한 블랙록이었다.

설립자들은 퍼스트 보스턴 First Boston, 리먼 Lehman 등 월가 출신 채권 매도부문(sell-side) *역주: 소매브로커, 기관브로커, 딜러 등 증권산업에서 주문이 이뤄지는 부문 전문가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모기지 등 당시 새롭게 등장한 복잡한 자산담보 유동화 증권의 개발업자 겸 트레이더들이었다. 핑크는 당시 매수부문(buy-side) 트레이더들 *역주: 순매수포지션을 취하게 되는 기관투자가들로 주로 연기금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을 의미한다도 신 금융상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도움이 필요하다는 혁신적인 생각을 해냈다. 그 결과 핑크와 파트너들은 직접 자산관리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회사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채권(당시 시장은 이후 30년 동안 이어질 상승장의 초기 단계였다), 이후에는 덜 친숙한 주식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주식 시장에서는 별도 계정(separate accounts) *역주: 보험사가 자사 자산과 별도로 운용하는 계정으로 보험가입자에게 수입과 손실이 모두 귀속된다과 뮤추얼펀드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블랙록은 2005년 스테이트 스트리트 리서치 앤드 매니지먼트 State Street Research & Management, 2006년 메릴린치 인베스트먼트 Merrill Lynch Investment를 인수했다. 그 후에는 금융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당시 최대 자산운용사 바클레이즈 글로벌 인베스터스 Barclays Global Investors(이하 BGI)마저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셰어즈 iShares라는 대형 상장지수펀드(ETF)도 손에 넣었다.

핑크는 2009년 현금 및 주식 150억 달러 이상을 들여 BGI를 인수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인수에 소요되는 경비 때문에 블랙록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평균 이하로 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티 로우 프라이스 T. Rowe Price처럼 건실한 자산운용사는 ROE가 20%이상이었다. 블랙록의 지난해 ROE는 11%로 포춘 500대 기업 평균 13.7%보다 낮았다.

핑크는 실제로 BGI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BGI는 규모가 상당하고 샌프란시스코라는 먼 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3년이 지나도 통합작업을 완료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지체된 이유는 인수합병 시 기술 플랫폼은 반드시 블랙록의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확신을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그 후 플랫폼 교체는 핑크가 좌절감을 느낄 정도로 더디게 진행됐다. 결국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직원들을 심하게 몰아붙이는 핑크의 고약한 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에게 이미지 관리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핑크도 스스로 “모두를 괴롭히고 있다”고 시인했다.

핑크의 야망과 용기 덕분에 블랙록은 유례없이 자산관리 전 부문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었다. 피델리티 Fidelity,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 State Street Global Advisors, 뱅가드 Vanguard 같은 대형업체를 포함한 그 누구도 채권·주식시장에서 블랙록의 위치에 도전할 수 없다. 블랙록이 새롭게 진출하려는 부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블랙록은 2004년 후발주자 위치에서 2009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로 성장했다. ETF는 (‘패시브’ 투자 추세에 따라)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었고, 주식시장 호황세도 계속됐다. 2013년 말 블랙록의 운용자산은 무려 4조 3,000억 달러에 달했다. 그동안 운용 수수료(0.22%) 수익도 90억 달러 정도로 크게 늘었다. 또 그 밖의 다른 부문에서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기업 전체로는 매출 100억 달러, 이익 29억 달러를 기록했다. 8명이 모여 시작한 기업이 이젠 전 세계에 1만 1,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블랙록은 차별화된 특징을 보였다. 우선, 2조 9,000억 달러를 인덱스펀드나 ETF 등 패시브 투자전략에 근거해 운용하고 있다. 그 결과 블랙록은 미국 기업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자산운용사가 되었다. 블랙록은 보통 지수에 편입된 기업 주식을 4~6% 정도 보유한다. 하지만 액티브펀드 중 하나가 적극적으로 주식에 투자할 경우 보유 비율을 훨씬 더 늘리기도 한다.

다른 특징을 보자. 블랙록의 주가는 초 고공행진을 기록해왔다. 1999년 기업공개(IPO) 당시 주당 14달러였던 주가는 22배나 올라 최근 320달러를 기록했다. 현재 블랙록의 시가총액은 530억 달러로 평가된다. 핑크가 이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는 특히 (동기간 전혀 오르지 않은) S&P500 지수와 (동기간 3배 상승에 그친) 버크셔 해서웨이 Bershire Hathaway처럼 잘 알려진 기업들의 주가 성장률을 압도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블랙록의 가파른 성장세는 숨을 멎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4조 3,000억 달러의 운용자산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성공의 결과물인 막대한 규모와 강력한 영향력 때문에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했다.

기업 경영 차원에서의 문제는 의결권 대리행사와 관련이 있다(매년 수천 건의 의결 대리행사가 이뤄진다). 이 문제에서 래리 핑크는 블랙록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있으면서도 이를 교묘히 이용하려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블랙록은 거대한 존재감 때문에 정부의 요주의 대상이 되었다. 정부는 자금운용 규모가 클수록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핑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단지 자산운용사일 뿐, 구조적 위협이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운영적 측면에서 4조 3,000억 달러는 신속하고 유연한 운용을 하기엔 지나치게 큰 액수다. 그래서 새롭게 개편된 담당부서가 이제 한물간 미국 주식형 뮤추얼펀드를 전담하고 있다. 핑크가 한결같이 “문제가 있으면 극복하라. 그러면 성장할 것이다”라고 강조하는 업무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블랙록은 막대한 보유주식 덕분에 그만큼 강력한 주주의결권을 갖고 있다. 의결권을 통해 얼마나 큰 영향력을 어떻게 발휘하는지는 매우 복잡한 문제다. 블랙록의 액티브 주식형펀드(3,150억 달러 규모) 매니저들은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갖고 있다. 이들은 표결할 사안이 없을 때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일례로 블랙록 매니저들은 최근 영국 제약기업 아스트라제네카 AstraZeneca에게 화이자 Pfizer의 인수제안을 거절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드문 경우지만 공개적으로 한 목소리를 낼 때도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대주주인 블랙록의 펀드 매니저들은 단체로 전면에 등장, 회사가 지속적으로 협상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최소한 현재까지는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았다).

패시브 주식형 펀드의 경우 블랙록 거버넌스 팀이 의결권을 행사한다(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이야기하겠다). 하지만 이 또한 특수한 문제를 야기한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ETF 및 인덱스 펀드 매니저들에겐 성적이 나쁜(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종목을 팔 권한이 없다. 때문에 패시브 펀드 소유주들-예컨대 블랙록-이 펀드 성적을 개선하려 할 때 가용한 유일한 무기는 말이나 투표 뿐이다.

지난 3월 핑크는 말을 무기로 사용한 적이 있다. 그는 S&P500 기업의 CEO들에게 개인서신을 보내 “단기적 요구 대신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수익에 역점을 두자”고 말했다. 대단히 급진적인 발언은 아니었지만 언론의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핑크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수많은 이들로부터 답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핑크는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두 명의 행동주의 투자자-칼 아이칸 Carl Icahn과 누군지 모르는 다른 한 명-로부터 ‘화난’ 답장도 받았다고 한다. 아이칸은 “기업들이 역량 있는 자신들의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당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하지만 그런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더욱 위험하고 걱정스러운 건 제대로 투자를 추진할만한 역량을 갖춘 CEO를 보유하지 못한 기업이 너무나 많은 점”이라고 강조했다.

포춘이 S&P500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설문에서도 이와 유사한 의견이 나왔다. 블랙록의 S&P500 담당 애널리스트들도 분기별 성적이라는 단기 성과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한 S&P500 기업의 CEO는 “우리 담당 애널리스트는 광적이다”라고 표현했다. 결국 핑크의 서신에 대한 반응은 블랙록 내에서도 분분했다. 핑크는 분기별 성과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자사 애널리스트들에 대해 “나도 사정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회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단기적 성과를 좇는 매니저가 있다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는 팀별 독립성을 존중한다. 각자의 스타일도 전체 프로세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핑크 자신도 블랙록의 영향력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발언권’을 가졌다는 사실에 흡족해하며 정부를 상대할 때 이를 현명하게 활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핑크는 지난 6월 도이치 뱅크 회의에서 연설을 한 바 있다. 주제는 업계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일부 ETF의 레버리지 능력에 대한 것이었다(핑크는 블랙록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는 곧바로 ETF 운용사이자 레버리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프로셰어스 ProShares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누구의 의견이 더 설득력 있나? 당연히 핑크다.

언제나 솔직한 핑크이지만, 블랙록이 보유한 막대한 주식과 의결권이 그를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는 언론의 평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핑크는 이를 부인하며 블랙록은 월가에 속한 기업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골드만 삭스, 모건 스탠리와는 달리, 거래나 자본조달을 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핑크는 “뱅가드 같은 자산운용사가 월가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핑크는 금융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까? 이 타이틀 또한 타당성이 부족해 보인다. 핑크는 어떤 경우든 자사 영향력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든 의결권을 기업 거버넌스 팀에 양도했다.

실제로 블랙록 캘리포니아 지점의 미셸 에드킨스 Michelle Edkins(45)가 이끄는 20명 규모의 글로벌 팀은 주식의결권 사용 원칙 및 구체적 적용방법을 마련했다. 에드킨스의 2012년 기록을 보면, 블랙록은 경영진 및 주주들이 발의한 안건 12만 9,814건을 심사하고, 그중 경영진 발의 안건의 10%를 거부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블랙록은 월마트 이사 내정자 4명(이사회 회장 롭 월튼 Rob Walton, 그의 형제 짐 Jim, 전 월마트 CEO 마이크 듀크 Mike Duke, 리 스콧 Lee Scott)에 대해 반대 투표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블랙록은 투표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갖고 있다. 하지만 추측은 가능하다. 2012년 초 월마트 멕시코 지점들은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었다. 뇌물공여는 해외부패 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s Act)에 의해 분명히 금지된 행위다(월마트는 공개적으로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대변인을 통해 진행 중인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따라서 월마트의 최고 이사진을 비판하기 위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블랙록이 던졌던 표들이 마침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선, 올해 월마트 이사 스콧은 재선에 나서지 않았다(월마트는 스콧의 불출마가 멕시코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또 기업들에 주주의결권 관련 조언을 제공하는 인스티투셔널 셰어홀더 서비스 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ISS)도 2013년에 이어 올해에도 롭 월튼과 마이크 듀크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권고했다. 무엇보다 월마트가 멕시코 사건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여부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로는 이미 잘 알려진 급여 문제가 있다.

블랙록은 핑크의 서한에 가장 반발했던 행동주의 투자자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의결권행사 자문회사 D.F. 킹이 2009년 중반부터 2013년 중반까지이사회 갈등사례를 분석한 결과, 블랙록은 경영진에 반대하는 이사 후보 중 34%를 지지했다. 11%를 기록한 경쟁업체 뱅가드와 비교했을 땐 상당히 중도적으로 보이지만 피델리티(44%), 티 로우 프라이스(52%)와 비교했을 땐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핑크는 (현재 혹은 잠재) 고객들을 분노하게도 만드는 의사결정권 행사에 전혀 개입하지 않을까? 예컨대 연금관리를 블랙록에 위탁하려는 CEO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블랙록이 자신을 퇴출시키는 결정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됐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 핑크가 개입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외부인들은 ‘블랙록, 그리고 핑크 자신의 원칙이 그런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핑크는 의결권 행사에 전혀 간섭할 수 없으며, 핑크도 이를 약속했다. 그럼에도 특정한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달라는 부탁 전화를 매년 수십 차례씩 받는다. 그중에는 친구도 있다. 핑크는 “부당한 일을 부탁받을 땐 정말 짜증이 난다”라고 말했다. 핑크는 이런 전화를 받으면 에드킨스나 경영 팀의 리치 쿠셸 Rich Kushel에게 넘긴다고 했다. 결백을 입증할 또 다른 증거로, 핑크는 필자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진 블랙록이 월마트 이사회에서 어디에 투표했는지도 몰랐다고 강조했다.

핑크와 정부와의 갈등에는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다. 그는 강경한 민주당 지지파로 오바마 대통령과도 가까운 사이다. 때로는 핑크가 재무부 장관 같은 행정부 요직에 등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렇다, 문제는 재무부다. 재무부 휘하의 금융안정감독위원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는 블랙록을 비롯한 대형 자산운용사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 피델리티 등을 비은행 SIFI(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로 지정해야 할지에 대해 고심 중이다. 사실 SIFI는 대마불사(too-big-to-fail)의 다른 이름이다. 어떤 기업도 SIFI로 지정되길 원치 않는다. GE 캐피털,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 푸르덴셜 파이낸셜 등 이미 SIFI로 지정된 세 개의 비은행 기관들은 연준의 엄격한 규제를 적용 받고 연준에 보고도 해야 한다. 블랙록이 SIFI로 지정되면, 연준은 블랙록의 자기자본 비율을 높일지도 모른다. 혹은 증권대출 같은 주요 사업을 규제할지도 모른다.

SIFI 지정 문제는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블랙록이 대형 인수합병으로 성장할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핑크는 더 이상 인수합병을 원치 않는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미 큰 덩치 때문에 정부의 눈 밖에 난 블랙록이 규모를 더 키워 이목을 끌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블랙록의 한 관계자는 “원대한 꿈을 가진 핑크에게 지속적인 성장은 본질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때문에 핑크는 목표를 재조정했다. 바로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이다. 블랙록은 이를 운용 중인 장기 자산을 이용하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이라 정의한다. 자산관리나 자문 등은 여기서 제외된다. 또 주식이나 채권시장 변동을 이용한 자산거래도 ‘순수한 신사업’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2013년 6월 투자자의 날, 블랙록은 유기적 성장 계획을 발표했다. 또 운용자산을 연 5%씩 늘리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블랙록이 성장할 수 있는 잠재시장은 광범위했기 때문에 목표치는 합리적으로 보였다. 최근 블랙록의 전략 책임자가 된 매킨지 Mckinsey의 선임 파트너 출신 살림 람지 Salim Ramji(43)는 전 세계 운용자산 규모를 150조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블랙록이 전 세계 운용자산의 3% 미만만 담당하기 때문에 향후 성장의 여지가 매우 크다는 의미다.

그러나 5% 성장을 언급했던 첫 해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투자자의 날 바로 다음 날 신흥시장 불안으로 시장이 크게 요동쳤고, 아이셰어즈에서 상당한 자금이 빠져나갔다. 2013년 하반기에 어느 정도 회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충분하진 않았다. 2013년 블랙록은 신규 사업에서 1,170억 달러를 유치했고, 그에 따라 블랙록의 전체 자산규모는 3.4% 증가했다. 하지만 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1,740억 달러에는 3분의 2 밖에 미치지 못했다.

사실 이미 운용자산이 4조 달러가 넘은 상황에서 유기적 성장을 달성하기란 매우 힘들다. 5% 성장을 위해선 2014년 신규사업에서 2,000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자본을 유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핑크는 굴하지 않는다. 그는 5%가 직원들에게 목표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이해하기 쉬운 목표라고 설명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게리 셰들린 Gary Shedlin은 “누구도 3%에 만족하지 않는다. 5%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력해야 할 때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셰들린과 핑크는 성장 여력에 대해 낙관적이다. 핑크는 현재 블랙록이 여느 때보다 많은 기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장애물이 많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일부 기관들이 자산운용사의 운용자금 규모를 제한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시각 때문에 블랙록은 2009년 BGI 합병 후 큰 손실을 입었다. 포춘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BGI 합병 후 고객들이 투자금을 줄이는 바람에 블랙록은 1,600억 달러의 자산 손실을 입었다.

자산운용사업은 매우 경쟁적이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블랙록의 채권펀드는 수익성이 뛰어나다. 하지만 2008년 주식시장 폭락의 여파로 채권수입도 큰 타격을 받았고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2009년 BGI를 인수해 ‘과학적이고 액티브한 주식형 뮤추얼 펀드’-통계적인 알고리즘을 활용한다는 의미다-를 도입했는데 결과는 재앙에 가까웠다. 오늘날 전 세계 채권펀드 매니저들은 모두 핌코 Pimco로부터 다시 주도권을 되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공공연하게 얘기하진 않지만 블랙록도 마찬가지다. 최근 핌코는 운용상의 문제와 부진한 수익성 때문에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반면 뱅가드는 설립자 존 보글 John Bogle이 ETF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그는 ETF가 말도 안 되는 투기적인 거래를 부추긴다고 생각한다)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ETF를 판매했다. 블랙록의 ETF 책임자 마크 위드먼 Mark Wiedman(43)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빙긋 웃으며 “저런!”이라고 탄성을 질렀다. 그는 “뱅가드가 ‘강력한 경쟁자’이긴 하지만 미국 내에서만 그렇다”고 덧붙였다.

블랙록은 혁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법적·규제적 장벽에 부딪혔는데 이 과정에서 회사의 막강한 영향력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지난해 블랙록의 한 투자부서는 정기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채권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가까운 미래전망에 대해 물은 것이었다. 예컨대 예상실적을 달성하는 데 방해요소는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떤 인수합병이 일어날지 등에 대한 것이었다. 블랙록처럼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기업에 ‘싫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가 설문에 응했다. 그러나 뉴욕주 검찰총장(New York Attorney General) 에릭 슈나이더만 Eric Schneiderman은 지난 1월 이 설문조사가 과도하게 비공개 정보를 요구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블랙록이 이번 사건의 조사비용 40만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도 내렸다. 결국 블랙록은 설문조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블랙록은 소규모 자본시장 팀도 운영한다. 작년 9월 블랙록과 핌코는 함께 버라이즌의 대규모 채권발행을 도왔다. 매력적인 조건으로 무려 490억 달러의 채권이 발행됐다. 이에 앞서 핌코와 블랙록은 각각 80억 달러와 50억 달러 어치를 매입하기로 했다. 채권발행 첫날 이 소식이 시장에 퍼졌고, 수많은 고객이 몰려 채권 값이 치솟았다. 핌코와 블랙록의 고객들은 원하는 상품과 장부상 이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블랙록의 공동사장 롭 카피토 Rob Kapito는 지난 3월 버라이즌 채권발행과 관련해 포춘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블랙록의 큰 규모가 유리하게 작용한 사례가 바로 채권발행이라고 설명했다(일각에서는 블랙록의 운용자산이 너무 비대해져 적절한 투자상품을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당시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채권발행 때 소규모 투자자들과 펀드 매니저들의 피해를 우려해 관련 조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 SEC는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유기적 성장을 달성하는 데 있어 블랙록의 강점은 훌륭한 성과로 신망받는 경영진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진과 블랙록의 인연은 깊다. 여덟 명의 공동설립자 중 다섯 명은 여전히 블랙록과 함께하고 있다. 덕분에 ‘모두가 한 배를 탔다’로 설명되는 블랙록의 기업문화를 오랫동안 지켜올 수 있었다.

핑크 이외에 남아있는 공동설립자들은 공동사장 카피토(57), 블랙록의 기술 향상에 혁혁한 공을 세운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 벤 골럽 Ben Golub(57), SIFI건과 같은 대정부 업무를 책임지는 부회장 바버라 노빅 Barbara Novick(53), 운용업무를 맡다 2012년 이사회에 합류한 전 부회장 수전 웨그너 Susan Wagner(53)이다.

블랙록을 키워 온 베테랑들 중에는 1998년 한 발 늦게 합류한 특별한 인물도 있다. 바로 최근 카피토와 공동 사장을 맡게 된 찰리 할락 Charlie Hallack(49)이다. 현재 그는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다. 할락은 2012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뒤 이 문제에 대해 사 측과 거리낌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핑크는 “할락이 블랙록을 위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사선 치료 및 화학요법을 받으면서도 아침 7시면 집무실에 와 있다. 때때로 그의 아내 세라 Sarah가 오후 5시까지 퇴근하지 않는 남편을 데리러 오기도 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블랙록 성공의 과실 대부분이 공동 설립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그럼에도 수백만 달러를 벌었으니 동정할 필요는 없다). 대신 초창기 설립자들의 운영을 지원했던 후원기업으로 돌아갔다. 이 업체는 단연코 블랙록의 첫 번째 소유주였던 사모펀드회사 블랙스톤 Blackstone(블랙록이 회사명을 여기서 따오긴 했지만 혼란스러운 기업명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은 아니다. 1994년 핑크와 블랙스톤의 스티브 슈워츠먼 Steve Schwarzman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결국 핑크는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 나섰다. 마지막 순간에 피츠버그 은행 PNC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PNC는 1995년 블랙록 인수에 2억 4,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적절한 타이밍에 보유지분 18%를 블랙록 직원 39명에게 이전했다.

훗날 슈워츠먼은 블랙록을 매각한 것은 생애 최악의 비즈니스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블랙록 매입결정을 내린 PNC의 CEO 토머스 오브라이언 Thomas O’Brien-현재는 은퇴했다-은 인수거래가 체결됐을 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핑크와 그의 파트너들의 인상은 강렬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야망이 크고 영리한’ 인재들이었다. 그는 2억 4,000만 달러를 지불한 뒤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이후 PNC는 블랙록으로부터 세전 매출과 자본이익 형태로 120억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였다. 여전히 블랙록의 지분 21%를 소유한 PNC의 시가총액은 11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PNC 자산을 현금화 해보면 인수 후 세전 수익이 약 100배나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핑크의 주식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그는 2009년 말까지 블랙록 지분의 거의 4%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가족들에 나눠주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해 현재는 1%(시장가치 5억 달러)만 보유하고 있다. 지분이 줄었다고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이 줄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핑크의 경영진 중 한 명인 퀸틴 프라이스 Quintin Price(53)는 “내가 블랙록에 대해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 중 하나는, 핑크는 무슨 일을 하든 세계 최고가 되려 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모두는 아니겠지만-은 ‘세계 최고’가 블랙록의 기관투자 부문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단어라 생각할 것이다. 기관투자 부문은 1988년부터 지금까지 블랙록의 핵심사업이다. 2013년 말 기준 블랙록의 운용자산은 4조 3,000억 달러이며, 그중 2조 9,000억 달러는 기관고객의 자산이다. 개인고객 자산은 5,300억 달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아이셰어즈가 차지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아이셰어즈의 운용자산은 9,140억 달러로 ETF부문 세계 1위이다.

2조 9,000억 달러 규모의 기관투자자 자산은 여러 영역으로 나뉘는 데 66%가량은 연금이다. 확정급여형(defined-benefit plan)이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 *역주: 직원들이 직접 상품과 운용사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운용결과에 따라 퇴직금이 달라진다보다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한다(확정기여형 연금은 블랙록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분야인데 선두기업 피델리티처럼 직원들의 계좌를 기록·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 영역은 기업 및 은행(14%), 보험사(9%), 중앙 은행 및 국부펀드 같은 정부기관(8%) 등으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 나머지는 재단 같은 비과세 기관들이다. 블랙록 내부에서 기관투자자들은 ‘머니-오너(money-owner)’로 불린다. 연금펀드, 보험사, 은행, 국부펀드 등의 특성을 반영한 별칭이다. 이들은 모두 블랙록 솔류션스 BlackRock Solutions(BRS)라는 포트폴리오 운영리스크 관리 시스템의 잠재 고객이다. 작년 BRS는 6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그중 상당부분은 BRS의 전자 시스템 알라딘 Aladdin(Asset, Liability, and Debt and Derivative Investment)에서 올린 것이다. 다수의 머니-오너들이 알라딘을 사용하기 위해 다년 계약을 하고 있다.

알라딘은 첨단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복잡한 금융 운영을 합리적으로 처리한다. 알라딘은 증권 거래의 세부사항을 포착하고, (유동 및 고정자산) 포트폴리오 가치를 평가해 위험을 예측한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미 정부는 금융위기 당시 AIG, 베어스턴스 같은 위기에 처한 금융기관의 포트폴리오를 평가하기 위해 BRS와 알라딘을 활용했다. 공동사장 할락은 언젠가 알라딘을 개인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평가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사용료 청구방식은 아직 미정이지만, 분명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록은 2조 9,000억 달러 가치의 기관투자자들을 관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핑크는 매달 2주에 걸쳐 고객을 방문하는데, 대부분은 해외고객들이다. 블랙록의 기관투자부문 책임자도 비슷한 일정을 소화한다. 최근에는 블랙록 아시아사업부 책임자 출신으로 영국인인 마크 매콤비 Mark McCombe(48)가 그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그의 전임자는 훨씬 젊은 롭 골드스타인 Rob Goldstein(40)이었다. 현재 골드스타인은 최고운영책임자로 BRS부문을 이끌고 있다. 그는 20년 전인 1994년 빙엄턴 Binghamton에 위치한 뉴욕 주립대(State University of New York)를 졸업한 직후부터 BRS부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골드스타인과 핑크는 고객접대와 관련해 전혀 다른 경험을 해온 것처럼 보인다. 골드스타인은 고객들을 항상 만족시킬 수 있는 마켓 포지션은 없다고 가정하고,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입니까?”라고 자주 묻는다. 답을 듣고 나선 언제나 블랙록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반면 핑크는 고객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대화를 주도한다. 그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내 의견을 듣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쾌활하고 말이 많은 핑크가 고객 질문에 다소 장황하게 답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PNC는 블랙록을 통해 지난 몇 년간 얼마나 많은 수익을 얻었는지에 대해 함구해 왔다. SEC 파일링 *역주: 상장된 기업이 미증권거래위원회에 공식적으로 회사의 재정 및 기타정보를 보고하는 서류에도 그와 관련된 많은 정보가 없었다. PNC가 블랙록 인수로 12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은 핑크의 포춘 인터뷰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당시 포춘은 PNC와 블랙록의 오랜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을 했고, 핑크는 장황하게 답을 하다 얼떨결에 PNC의 수익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했다.

핑크는 고객들이 유명 채권 트레이더 출신인 자신이 여전히 시장과 끈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듣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출장 중 얻은 중요 정보-예컨대 IT기업들이 생산시설 대부분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는 것-를 정리해 다음 목적지에서 풀어놓는다. 마치 중세의 음유시인처럼 말이다. 또 그는 강박적으로 정치·경제계의 최신 뉴스를 확인한다. 그는 블랙록의 모든 직원들이 자신처럼 ‘끊임없이 시장을 공부하기’를 바라고 있다.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블랙록의 ‘주춧돌’이라면 미국 주식형 뮤추얼펀드 판매와 같은 소매금융은 어설프게 지어진 ‘다락방’ 정도이다. 그 이유로 우선, 블랙록은 (피델리티와 달리) 증권 중개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 고객들을 직접 상대할 수단이 없다. 둘째, 자사의 미국 펀드 수익률이 신통치 않아 주식 부문에선 크게 내세울 거리가 없다.

이 문제는 블랙록이 90억 달러에 메릴린치 인베스트먼트를 인수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인수는 기존의 뮤추얼펀드 외에도 메릴린치가 운용하던 소매금융 플랫폼에서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항상 TV에 출연해 어처구니없는 전망을 쏟아내던 메릴린치의 최고투자책임자 로버트 돌 Robert Doll이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는 데는 의문에 여지가 없다. 돌은 2008년 1월 ‘대기업들과 경제는 다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S&P500지수가 37%나 급락하는 등 그의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금융위기의 그림자가 걷히기 시작할 때도, 돌이 개인적으로 운용하던 미국 뮤추얼 펀드의 실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0년 2월에는 주식부문 최고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나 최고주식전략가라는 직책으로 강등됐다. 그리고 2년 후 돌은 블랙록을 완전히 떠났다.

돌이 최고 책임자 시절 만들어 냈던 가장 큰 수치는 다름 아닌 자신의 연봉이었다. 그의 2년치 연봉은 블랙록의 위임장 권유신고서(proxy statement) *역주: 주주들에게 의결권대리행사를 권유할 때 주주들에게 제공해야 할 정보를 기술한 문서에 공개되어 있다. 2007년 돌의 첫해 연봉은 2,900만 달러로 핑크의 2,830만 달러보다 많았다. 업계상황이 어려웠던 2008년, 이사회는 핑크의 연봉을 2,100만 달러로 삭감했지만 돌의 보수는 상대적으로 높은 2,620만 달러를 유지했다(이후 구조조정이 있었고, 전보다 적은 인원으로 새 경영진을 꾸렸다. 위임장 권유신고서에는 이들의 보너스만 공개됐다. 돌은 신규 경영진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 그의 연봉은 공개되지 않았다). 돌은 현재 누빈 인베스트먼츠 Nuveen Investments에서 여전히 연간 경기전망을 내놓고 있다. 돌은 누빈의 대변인을 통해 이에 관한 언급을 거부했다.

2010년 2월 돌이 주식부문에서 떠나자, 래리 핑크는 블랙록 주식형 펀드의 운명을 (앞서 언급한) 퀸틴 프라이스의 손에 맡겼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영국인 프라이스는 블랙록 인터내셔널 펀드 운용경험을 바탕으로 펀더멘털 주식운용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시장 평균 이상의 투자수익, 즉 ‘알파 성적’을 거둬왔다. 덕분에 우두머리를 뜻하는 블랙록의 ‘알파 메일(Alpha male)’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핑크는 프라이스의 예산을 대폭 늘려주며 미국 최고의 주식형 펀드팀을 꾸릴 것을 주문했다. 이런 점을 봤을 때 알파 메일이라는 별명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프라이스는 ‘일류’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을 찾기 위한 과정이 대단히 까다로웠다고 말한다. 수개월에 걸쳐 무려 31개의 성장전략 팀을 인터뷰했다. 그는 진짜 왕자를 찾기 위해 “수많은 개구리들과 키스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5대 미국 주식형 뮤추얼 펀드를 운용할 4개 팀을 구성했다. 이 중 둘은 피터 스트루나라스 Peter Stournaras가 운용한다. 그는 노던 트러스트 Northern Trust 출신으로 돌과 함께 2개의 블랙록 펀드를 운용했는데, 프라이스 취임 후 단독 매니저로 승진했다. 다른 운용팀의 리더로는 헤지펀드 리치캐피털 매니지먼트 ReachCapital Management 출신 니겔 하트 Nigel Hart, 풋남 인베스트먼트 Putnam Investments 출신 바트 기어 Bart Geer, UBS 출신 로런스 켐프 Lawrence Kemp 등이 있다.

이러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펀드평가사 모닝스타 Morningstar의 3년, 5년 단위 펀드 수익률(5월 31일 기준) 평가자료를 보면 블랙록의 미국 액티브 펀드는 인덱스 펀드들보다 저조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알파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요 데이터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 다만 아직 확정적이지 못할 뿐이다. 블랙록은 지난 1월 이사회에 제출한 유사한 버전의 성적표를 포춘에 제공했다. 이 성적표에 따르면, 블랙록의 5대 미국 뮤추얼 펀드의 성적은 개선됐다. 모두 프라이스가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새로운 매니저들을 투입한 펀드들이다. 하지만 매니저들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여부는 3년 단위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아직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신규 매니저의 운용하에 성적이 상당히 향상됐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아직까지 성공여부를 판별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분명 블랙록의 영업직원들은 중개인들과 재정자문가들에게 위의 성적을 적극 홍보할 것이다. 물론, 채권펀드와 아이셰어즈도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칠 것이다. 무엇보다 블랙록이 큰 기대를 갖고 있는 코리 CoRi(Cost of Retirement Income) *역주: 은퇴연령인 65세에 얼마만큼의 연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지 예측해주는 일종의 벤치마크에 대해서도 입이 닳도록 홍보할 것이다.

코리는 은퇴를 앞둔 55세에서 64세 연령대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며, 크게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수많은 금융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은퇴계산기다. 몇몇 정보(나이, 저축액, 희망하는 은퇴수입 등)를 입력하면 현재 저축액을 기준으로 원하는 목표에 얼마나 근접할 수 있는지 계산을 통해 보여준다. 또 저축액을 어떻게 투자해야 빠르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지 조언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고객들은 포트폴리오 성향을 안정형, 중립형, 코리 인덱스에 기반한 중립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코리의 두 번째 요소는 바로 블랙록이 설계한 장기 채권 인덱스 펀드다. 하지만 이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재정자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웹사이트에서 블랙록이 끊임없이 보내는 메시지는 ‘당신의 재정자문가와 코리 정보를 공유하세요’이다.

재정자문가들은 블랙록이 금융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중개업자와 다름없다. 블랙록은 외부 시장 조사기관에 의뢰해 수백 명의 재정자문가들에게 코리를 소개하고 이를 고객 상담에 활용할 의향이 있는지 질문한 바 있다. 3분의 1은 그렇다고 답했다. 나머지는 코리가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답했다. 블랙록의 코리 담당자 찰스 칩 카스틸리 Charles Chip Castille(49)는 “3분의 1이라는 지지율은 새로운 서비스치고는 굉장히 긍정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인덱스펀드가 소개됐을 때 투자자들의 반응을 생각해보라”고 반문했다.

현재 블랙록의 소매금융 마케팅은 영국인 롭 페어바이언 Rob Fairbairn(49)이 이끌고 있다. 소매금융을 키우겠다는 핑크의 의지가 워낙 강해 페어바이언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그는 늘어난 예산으로 재정자문가들에게 전화를 거는 영업직원 수를 늘렸다.

기업 브랜딩 홍보를 (그리고 블랙록이 블랙스톤과 별개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대규모 TV 및 인쇄 광고가 페어바이언의 마케팅 사업을 지원 사격했다. 브랜딩 작업을 이끄는 인물은 유명 PR전문가 린다 로빈슨 Linda Robinson이었다. 그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공동 설립한 PR회사 로빈슨 리허 앤드 몽고메리 Robinson Lehrer & Montgomery를 운영했다. 또 블랙록 이사회 멤버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2011년 핑크의 요청으로 이사회에서 나와 경영진으로 합류하는 보기 드문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처에서 (오길비 앤드 매더 Ogilvy & Mather가 제작한) 블랙록 광고를 볼 수 있게 됐다. 한동안 블랙록은 월스트리트 저널의 최대 금융 광고주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블랙록의 광고지출비는 분기별로 변동폭이 큰 상황이다. 더 이상 업계 1위도 아니다.

예산 확충, 광고, 그리고 과거에는 블랙록의 뮤추얼 펀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인정한다는 점은 모두 소매금융부문을 키우려는 핑크의 야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페어바이언은 아침 6시 30분부터 세계 전역의 직원들과 화상통화를 시작하는 핑크를 보며 그가 얼마나 전략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인지 깨달았다고 말한다. 페어바이언과 소매금융에 대해 말할 차례가 되면 핑크는 보통 서너 가지를 이야기한다. 페어바이언은 “두 개 정도는 나도 예상한 내용이지만 꼭 하나씩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무척 화가 나기도 한다. 핑크는 끊임없이 사람들과 대화하고, 정보와 아이디어를 나누고 소통한다. 매우 독특한 리더십 스타일이다”라고 말한다.

건강만 잘 유지한다면 핑크의 리더십은 오랫동안 블랙록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혹여라도 은퇴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빡빡한 스케줄만 봐도 그의 열정적인 에너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블랙록을 ‘노이로제에 걸린 금융 기업’이라고 표현하길 좋아한다. 자만에 빠지지 않는, 큰 야망을 가진 경쟁력 있는 기업이라는 의미다(핑크 자신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다).

핑크는 15년 만에 주식 가치가 22배나 오른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10년 후를 상상해 보라. 그때도 그는 새벽 5시 15분에 일어나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고객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때쯤이면 SIFI 문제는 해결돼 있을 것이고, 인수합병 기회도 다시 열릴 것이다. 어쩌면 대형 인수합병을 계획하고 있을 수도 있다. 피델리티 인수에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핑크에게 필요한 것은 피델리티 같은 중개업체와의 네트워크다. 반대로, 블랙록은 피델리티가 활용할 수 있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 거래가 성사된다면 핑크도 잠시 쉴 것이다. 물론, 더 큰 인수 건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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