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멕시코‘ 검은 황금’을 둘러싼 드라마

석유산업이 국유화 된 지 76년 흐른 후, 멕시코가 석유 채굴을 위해 다시 해외 기업들을 유치하려 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막강한 페멕스 Pemex에, 그리고 멕시코 국가 이미지에 어떤 의미를 던져줄까?
BY JEFFREY BALL


멕시코의 국영 석유기업은 오랫동안 대지의 여신의 축복을 받아 멕시코산 검은 황금을 양껏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여신의 성미가 고약해졌는지, 페트로레오스 메히카노스 Petroleos Mexicanos(약칭 페멕스)는 양은 풍부하지만 다루기 힘든 유전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올 봄에는 여신이 특히 심한 심술을 부렸다. 멕시코에 진도 6.4의 강진이 일어나 50층짜리 페멕스 본사 건물이 노쇠한 권투선수가 쓰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듯 크게 흔들렸다. 상징적이지만 낡은 이 빌딩-멕시코 시티에서 두 번째로 높다-안에선 이 지진 때문에 문들이 삐걱거리고 금속 블라인드가 창문을 때렸다. 겁에 질린 직원들은 문틀을 잡은 채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위협이 얼른 지나가기를 빌 뿐이었다.

그로부터 겨우 몇 시간 후, 페멕스의 CEO 에밀리오 로조야 Emilio Lozoya(39)는 구름 높이에 있는 사무실의 커다란 회의 탁자 상석에 앉아 있었다. 페멕스 타워는 흔들림이 멈췄지만 회사는 근본적인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멕시코 정부가 최근 입장을 바꾸면서 글로벌 석유업계에 충격과 기대가 동시에 몰아쳤다.

정부는 76년 만에 처음으로, 멕시코의 풍부한 원유 채굴에 외국 석유 회사들을 유치하기로 했다. 이런 결정은 많은 멕시코 국민의 분노를 샀다. 지금까지 멕시코 석유업계를 독점해 온 페멕스에겐 근본적인 위협이었다. 석유 거물기업들이 멕시코로 달려들 채비를 갖추는 상황에서, 새내기인 로조야-하버드에서 수학한 투자 중역 출신이다-가 이 비대한 거대기업의 군살을 빼고 경쟁력을 높이는 과업을 떠맡았다.

“명실상부하게, 페멕스가 지난 76년 역사 동안 겪어야 했던 여느 변화보다 더 중요한 변신이다.” 동안의 젊은 CEO는 동사를 비롯한 모든 단어를 신중하게 골라가며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고, 등받이가 높은 의자 앞에 놓인 작은 흰색 노트패드에 요점을 적어가며 이야기했다. 그의 오른편에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Enrique Pena Nieto 멕시코 대통령 집무실로 통하는 빨간색 직통전화가 놓여 있었다. 대통령은 멕시코의 석유 개혁을 설계한 주인공으로, 로조야의 친구이자 상사이다. 멕시코 에너지 시장 개방의 모든 세부사항들은 조심스럽게 계획되고 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난투가 벌어지는 멕시코 에너지 업계에선 매우 정교한 계획도 곧잘 엉망이 되곤 한다.

멕시코가 급진적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기름이 쏟아지는 유전들을 해외 기업들로부터 몰수한 1938년 이래, 외국 생산업체들은 멕시코 유전에 접근할 수 없었다. 멕시코 석유는 페멕스의 독점적 영역이었다. 지리적으로나 법적으로 혜택을 받은 덕분에, 페멕스는 채굴이 쉬운 광대한 지층-업계에서는 소위 ‘코끼리’라고 부른다-몇 군데로부터 원유 대부분을 얻는 호사를 누려왔다. 실제로 페멕스는 전형적인 ‘멕시코 코끼리’-멕시코만 근처 천해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에서 대량생산 방식을 취하면서, 석유업계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페멕스는 비효율로 악명을 떨치게 됐다. 페멕스는 지난해 매출 1,260억 달러를 기록해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에서 36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동시에 130억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페멕스는 뿌리 깊은 관료주의에 시달리고 있고, 불필요한 인력도 넘쳐나고 있다. 임원들 스스로 부패가 만연해 있다고 시인할 정도다. 그 결과 놀라우면서도 당연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산유량의 9위 혹은 10위를 차지하고 있고, 일부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북극해보다도 규모가 큰 미개발 유전을 보유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에선 페멕스 경영체제 하에 산유량 급감이 나타나고 있다.

멕시코의 석유 생산은 지난 10년 동안 25% 줄어들어 현재 하루 250만 배럴에 그치고 있다. 그에 따라 국가의 채무상환 능력이 위협받고 있다. 페멕스의 석유 매출은 멕시코 재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수입원으로, 국가 예산의 약 3분의 1을 제공하고 있다. 이웃나라 미국에서 오일 붐이 부는 상황에서 이 자부심 강한 나라에 닥친 이 같은 문제는 더욱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멕시코는 한때 내쫓았던 외국 석유회사들을 이제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만약 유치에 성공한다면, 초거대 기업부터 무모한 채굴업체까지 외국 기업들이 멕시코로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기술적으로 생산이 까다로워지는 멕시코 유전에서 페멕스가 채굴에 실패한 원유와 천연가스를 뽑아낼 것이다. 페멕스는 큰 기대를 모으는 멕시코 정부의 라운드 제로 Round Zero 결정-이 기사의 인쇄 시점에 발표될 예정이다-에서 초기 유전을 차지하는 ‘우선 특권(favored-sonstatus)’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페멕스가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동안 개발하는 데 익숙해진, 비교적 채굴이 쉬운 유전들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반면 외국 기업들은 멕시코만 심해에서 미국 국경 근방의 셰일지대까지, 더 채굴이 어려운 탄화수소 자원을 독점할 것이다. 정부는 이런 경쟁을 통해 멕시코산 석유와 가스 공급량을 늘리고, 배럴당 일정액의 수익을 얻어 수입을 증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멕시코산 석유와 가스 생산을 크게 늘려 전기료 인하, 산업 유치, 국민들에 대한 자금 공급 서비스 등 나라 전체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기대하는 것도 멕시코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하는 주요 동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멕시코가 에너지 업계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페멕스 개혁 약속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페멕스는 수세대에 걸쳐 멕시코 석유업계의 모든 부분에 개입해 온 거대한 관료조직이다. 정부의 개혁 시도는 시작된 지 몇 달 만에 벌써 장애물에 부딪히고 있다. 페멕스가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대표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페멕스가 아무리 무능하다고 해도, 멕시코 국민들이 이 회사를 국가 유산의 수호자로 보고 있는 것도 이유가 되고 있다. 석유는 어디서든 큰 사업이 된다. 멕시코에서는 석유가 문화적 핵심이기도 하다. 어느 날 오후, 수도 멕시코시티의 고급 지구인 폴란코 Polanco의 한 카페에서 아이패드로 업무를 보던 치과의사 하이디 피게로아 Haydee Figueroa는 이 같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멕시코에서 석유는 식량인 옥수수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1938년 3월 18일, 멕시코 혁명정부는 백인들로부터 유전을 되찾았다. 이날은 현재 멕시코 국경일이다. 교과서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건으로, 멕시코의 저항적 전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페멕스는 멕시코 어디서나 가장 찾기 쉬운 브랜드다. 멕시코를 상징하는 초록, 하양, 빨강으로 칠해진 페멕스 주유소들은 멕시코에서 기름을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주유소이다. 기름값은 정부 보조를 받기 때문에 주유소마다 똑같다. 페멕스 제국은 현재까지 멕시코에서 가장 큰 고용주로, 15만 명이 넘는 직원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또 병원, 휴양시설,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고, 적지 않은 수의 멕시코 유력인사들을 갑부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에이드리언 라후스 Adrian Lajous는 1990년대 후반 페멕스 CEO를 지냈으며 지금도 멕시코의 에너지 논쟁에 깊이 관여하는 인물이다. 그는 최근 어느 날 오후, 모더니즘 양식으로 지은 멕시코 시티 자택의 책으로 가득 찬 거실에서 트위드 재킷과 청바지 차림으로 필자를 만나 멕시코 석유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미국을 따라했다. 그러나 그때 여기는 아주 아주 거친 서부시대였다.”

멕시코에선 1800년대 후반 석유가 발견돼 1900~1910년 사이에 생산이 급증했다. 라후스는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유전들이 기름을 쏟아냈다”고 설명했다. 곧 석유회사들, 특히 미국과 영국기업들이 멕시코에 진출했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지만 석유생산은 계속 늘어났다. 라후스는 “석유기업들은 내전에서 싸우던 세력 모두에게 뇌물을 바치고,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1920년 혁명이 끝난 후, 멕시코에선 노조 운동이 동력을 얻어갔다. 1937년에는 석유 노동자들이 임금에 항의해 유전에서 파업을 벌였다. 그리고 1938년 3월, 멕시코 최고 법원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라사로 카르데나스 Lazaro Cardenas 대통령은 멕시코의 석유가 국가의 소유이며 국영사업 분야라고 선언했다. 이후 멕시코에서 ‘라 엑스프로피아시온(la expropiacion, 몰수)’이라고 간단히 불리던 카르데나스 선언으로 페멕스가 탄생했다. 에밀리오 로조야가 앉아 있는 곳에서 44층 아래, 페멕스 타워 로비에는 회사 설립을 주도한 포퓰리스트 정치가 카르테나스의 실물 크기보다 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멕시코인들에게 석유가 얼마나 강렬한 감정의 대상인지 이해하기 위해선 국립 인류학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독특한 건 축양식이 돋보이는 박물관의 각 전시실에는 각기 다른 중앙아메리카 문화의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대다수 전시가 하나의 공통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탐욕스러운 외국인들이 자원이 풍부한 멕시코를 침략해 착취했고, 이어 영웅들이 이에 맞서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때론 외국인들을 강제로 몰아내기도 했고, 때론 투사들이 순국하기도 했다. 아즈텍실에 있는 한 전시물은 1519년 멕시코에 도착한 스페인 탐험가 에르난 코르테스 Hernan Cortes가 아즈텍의 황제 목테수마 2세 Moctezuma II를 살해했고, 이것이 결국 쿠아우테목 Cuauhtemoc의 즉위로 이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비 오는 어느 토요일 아침, 아즈텍실에서 한 무리의 유럽인 관광객들에게 설명을 해주던 가이드 훌리에타 로페스 Julieta Lopez가 이 이야기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요점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스페인 침략자들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속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지식을 이용해 사람들을 속였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개혁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녀는 비슷한 비판을 내놓았다. “나는 개혁안에 절대 반대한다. 외국인들을 몰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제 다시 문을 열고 그들을 받아들이려 한다.”

이는 멕시코 좌파의 공통된 시각이기도 하다. 멕시코시티에 거주하는 시인 겸 문학잡지 편집장 우르수스 사르토리스 Ursus Sartoris는 자칭 좌파 운동가다. 그는 헝클어진 갈색 머리에 두꺼운 검은 테 안경을 쓰고, 넉넉한 뱃살을 드러내는 멜빵을 하고 다닌다. 어느 저녁, 멕시코시티의 한 프랑스식 카페에서 레드 와인을 곁들여 콘비프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그는 비유를 섞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페멕스를 코끼리가 아닌 다른 네발 짐승에 비유했다.

이 시인은 “암소를 한 마리 갖고 있다고 치자”고 가정했다. “이 소가 오랫동안 우유를 많이 생산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소 마음에 든다. 내가 갖고 싶다. 나한테 팔아라’고 말한다. 소 주인이 ‘안 된다. 우린 작은 농장에서 온 가족이 이 소 한 마리로 먹고 산다’고 대답한다. 사겠다는 사람은 ‘아니, 제발 나에게 소를 팔라’고 나온다. 그 소가 바로 페멕스다.”

전성기가 지났을진 몰라도, 농부 가족에겐 매우 귀중한 소다. 그날 저녁, 친구 사르토리스를 식사에 초대한 에너지 경제학자 플루비오 루이스 Fluvio Ruiz는 “페멕스와 멕시코인들은 매우 복잡한 관계”라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페멕스가 지저분하고 부패한 회사라고 욕한다. 하지만 지저분하고 부패했어도 ‘우리’ 회사라는 게 중요하다.”

루이스 자신과 페멕스의 관계 자체가 이런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이 ‘니뇨 페멕스(nino Pemex, 페멕스의 아이)’라고 말했다. 그는 페멕스 석유화학산업이 지배하는 도시인 코아트사코알코스 Coatzacoalcos에서 자랐다. 변호사와 교사였던 부모는 둘 다 페멕스에서 일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멕시코의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과거 페멕스 개혁 시도의 결과로 이사회 자리 4개가 멕시코의 주요 정당들이 선택한 인물들에게 사실상 할당되었다. 그 결과 이 더벅머리 운동가는 페멕스의 상근 이사라는, 불가능해 보이던 직업을 갖게 됐다. 페멕스 타워 14층에 자리 잡은 널찍한 개인 사무실 벽면에는 체 게바라, 레닌, 마르크스의 포스터가 도배돼 있다. 팔목에 색색의 팔찌를 찬 지식인 루이스는 이제 페멕스가 제공한 기사 딸린 회색 닛산 패스파인더 SUV를 타고 멕시코 시티를 돌아다닌다. 그는 페멕스를 구하려면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사를 무너뜨리는 방향이 아닌, 더 강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개혁이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긴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근본은 페멕스가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페멕스는 공공의 유기체다.”

세르지오 구아소 Sergio Guaso의 일상은 페멕스가 경직된 정부 기관이라는 데 사람들이 얼마나 좌절감을 느끼는지 보여주고 있다. 현실적인 성격의 구아소는 홍조를 띤 얼굴에 무늬 있는 흰 셔츠를 입고, 랩톱만 갖춘 책상에서 일한다. 그는 비즈니스 개발 혹은 페멕스의 탐사 및 생산 부문 부사장을 맡고 있는데, 출장을 많이 다녀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출장 후 3개월이 지나도록 경비를 정산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유는? 그는 황량해 보이는 사무실에 앉아 “관료주의가 유일한 이유”라고 말했다. “똑같은 문서가 수많은 책상과 수많은 사람을 거쳐야 한다.”

멕시코 법은 페멕스가 언제, 어떻게, 얼마나 많은 돈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해 갖가지 제한을 두고 있다. 페멕스도 연방 재정에서 자기 몫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정부 기관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게 그 제한의 논리다. 그러나 페멕스는 단순히 정부 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상당한 돈을 대주고 있다. 페멕스 최고경영진에서 한목소리로 나오는 불평은 정부 회계 공무원들의 단기적 전망 탓에 회사의 장기적 석유 생산이 방해받을 게 자명하다는 것이다.

구아소는 이런 비효율성의 사례를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예컨대 멕시코 법률은 페멕스가 질 수 있는 부채액에 상한선을 두고 있다. 그러나 페멕스가 1년 내로 상환할 수 있다고 보장하는 부채에 대해서는 상한액을 완화하고 있다. 그래서 페멕스는 새로운 유전에 덜 즉각적이지만 꼭 필요한 투자를 하기보단 이미 진출한 유전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데 집중한다. 다시 말해 코끼리가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혹사시키는 것이다.

페멕스는 연방 정부의 예산 제한 탓만 할 수는 없다. 회사 스스로 패착을 증명하는 사례로, 멕시코의 가장 풍부한 원유지대에서 벌어진 사건을 들 수 있다. 치콘테펙 Chicontepec이라는 이름의 이 코끼리에선 현재 멕시코가 소유한 모든 인증된 석유 및 가스 저장량, 혹은 지하에 묻힌 탄화수소 자원의 3분의 1이 잠자고 있다. 치콘테펙은 거의 100년 전에 발견됐지만 대부분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다. 기본적으로 이곳 기름의 대부분이 중유이고, 수많은 작은 주머니 모양의 공간에 숨어 있어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페멕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치콘테펙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멕시코에서 가장 생산량이 많은 유전인 칸타렐 Cantarell이라는 전설적인 코끼리가 쇠퇴기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2005년까지 페멕스는 수백 개의 유정을 시추했다. 고무적인 결과에 힘입어, 페멕스는 그 후 몇 년간 점점 더 낙관적인 개발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곧 난관에 부딪혔다. 멕시코의 석유 규제기관인 ‘국가 탄화수소 자원위원회(National Hydrocarbons Commission)’가 제동을 건 것이195었다. 그곳은 2008년 페멕스의 석유산출 저하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페멕스의 생산을 회복시키는 것이 임무였다.

이 신생 위원회는 페멕스가 주장한 치콘테펙 석유 매장량 수치에 이의를 제기했다. 매장량은 시장이 한 석유회사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핵심적인 척도로, 엄격한 국제 기준을 적용해 측정한다. 이 중 한 가지 기준이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전을 개발하려는 회사가 그 작업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한 금전적 수익이 날 것이라는 걸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위원회 위원 에드가 랑헬 Edgar Rangel은 치콘테펙의 경우 “경제성에 의구심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원회 직원을 비롯해 빠르게 움직이는 멕시코 석유업계를 좌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자신의 나라가 기로에 서 있다고 확신하는 고학력 젊은이다. 그래서 자신만만하다. 랑헬은 멕시코시티의 한 카페에서 레몬에이드를 마시며 위원회가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로, 페멕스가 제 3의 증명업체에 자신들이 주장하는 매장량의 증명을 의뢰했음에도 “증명업체의 보고서를 서랍에 넣고 잠가 버렸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위원회가 보고서를 확보해 보니 증명업체가 준 수치와 페멕스가 주장한 수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페멕스는 자신들의 수치를 고집했다. ‘우리가 정확하다’는 주장만 펼쳤다.”

위원회는 2010년 발간한 공개 보고서에서 페멕스의 매장량 수치 옆에 별표를 붙였다. 보고서는 치콘테펙의 원유지대 중 일부만이 경제성이 있다고 평가하면서, 나머지는 기술적으론 채굴이 가능하나 경제성이 반드시 있는 건 아니라고 분류했다. 페멕스에서 근무한 바 있는 랑헬은 “상상할 수 있듯이 회사는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논쟁 때문에 “친구를 8~10명 정도 잃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매장량은 석유기업의 전망에 대한 이론적 추정일 뿐이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건 석유 생산량이다. 2013년 초, 페멕스는 치콘테펙에서 연말까지 하루 9만 4,000배럴을 생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현재 그보다 훨씬 적은 양을 생산하고 있다.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페멕스가 의지했던 지질학자들 탓에 발생했다. 이들은 이 지역 전반의 상황이 처음에 시추한 유정들과 비슷할 것이라는 추정을 하면서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페멕스는 이후 이 지대가 곳곳마다 차이가 매우 크고, 그래서 값비싼 첨단 기술을 써야만 기름을 뽑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페멕스의 탐사 및 개발 부문 책임자 구스타보 에르난데스 Gustavo Hernandez는 “당시 우리가 갖고 있던 제한된 정보에 의지해 생산량이 더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털어놓았다.

치콘테펙과 관련해 실수를 저지른 것은 페멕스 소속 과학자들만이 아니었다. 회사 관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몇 년에 걸쳐 페멕스는 외부 업체를 고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치콘테펙에 매장된 기름에 접근하려고 시도해 왔다. 이런 시도에 35억 달러를 썼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거의 없었다. 에르난데스는 그 근본 원인을 페멕스의 치콘테펙 관리자들이 사규를 무시한 데서 찾았다. 외부업체가 시추를 통해 석유를 발굴했을 때 돈을 지불한 것이 아니라, 시추만 하면 돈을 준 것이었다. 그는 “이 회사들은 제대로 시추도 하지 않았다”며 “추가 생산이 아닌 유정 완공만을 장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치콘테펙의 실패 때문에 페멕스에서 목이 날아가는 사람들도 나왔다. CEO 로 조야는 이 재정 참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몇 명은 해고하고, 몇 명은 다른 자리로 옮겼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과거만 생각할 수는 없다. 미래를 봐야 한다.”

멕시코로선 기술 전문성을 갖춘 해외 석유회사들을 유치하는 데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석유 생산업체들을 포함해 이런 회사 경영진 몇몇은 포춘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멕시코 정부의 심기를 건드려 석유 채굴권과 판매권을 얻는 데 지장이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멕시코 석유는 군침이 돌 만한 횡재라 할 수 있다.

인터뷰를 승낙한 외부 석유업계 인사 중 한 명이 해리 보크뮬런 Harry Bockmeulen이었다. 그가 멕시코 지역 책임자로 있던 페트로팩 Petrofac은 런던에 소재한 기업으로 몇 년 동안 페멕스의 하청업체로 일해왔다. 이 업체는 노후해 가는 유전에서 기름을 더 뽑는 데 도움을 주는 조건으로 페멕스로부터 수수료를 받았다. 페트로팩과 세계 최대 석유회사들은 멕시코의 개혁을 통해 좀 더 수익을 낼 만한 사업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멕시코 유전 개발에 입찰해 생산한 기름의 판매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보크뮬런은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전에도 겪은 적이 있다. 그는 석유가 풍부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경력 대부분을 보내면서, 언제든지 기회가 생기면 회사가 잡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해왔다. 그는 유럽 출장에서 멕시코 시티로 돌아온 어느 일요일 오전 이뤄진 인터뷰에서 “대형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모두 멕시코의 새로운 체제에서 한 몫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면도도 하지 못한 얼굴로 “이곳에는 자원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자원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젊은 CEO 로조야의 지휘 아래 페멕스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 로조야는 회사의 네 개 주요 부문을 두 개로 줄였다. 각 부문의 책임자가 “자신들의 실적이 괜찮으면” 다른 부문에서 손실이 나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벌인 구조조정이었다. 다음으로는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있는 페멕스의 정유사업 경영을 합리화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더 장기적으론 멕시코 전역과 그 너머 지역까지 송유관과 가스관을 새로 건설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중앙아메리카 전역을 현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회의 탁자에서 일어나 아직 비공개인 송유관 계획 지도를 자기 책상에서 가져왔다.

그는 한 가지 우선순위는 멕시코에서 가장 좁은 지역인 멕시코만에서 태평양 지역까지 남북으로 관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양의 멕시코산 석유를 중국 서쪽, 아시아 여러 지역,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보내는 계획이다. 또 한 가지는 과테말라를 비롯한 남쪽 국가들로 석유와 가스를 운송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방안이다.

그는 “그렇게 됐을 때 이민에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지 상상해 보라”며 “이 지역의 경쟁력을 훨씬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로조야가 ‘페멕스 2.0’을 달성하기 위해선 우선 훨씬 더 많은 양의 기름을 확보해야 한다. 때문에 페멕스와 그 소유주인 멕시코 정부 간에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정부는 멕시코의 석유와 가스 생산을 늘려 국가 수입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다. 페멕스는 회사 몫을 늘리는 것이 목표다. 최대한 많은 멕시코 유전에서 채굴권을 노린다는 의미다. 페멕스가 가장 효율적인 생산업체가 될 수 있느냐가 이 싸움의 쟁점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어느 유전을 페멕스에 주고, 어느 유전을 향후 몇년에 걸쳐 외국 기업들에 입찰을 줄 것인지 지난 8월 발표할 예정이었다. 양측 모두, 페멕스가 오랫동안 중심 사업으로 삼아 온 멕시코 근해 천수 유전과 재래식 육상 유전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에는 이미 동의했다. 그러나 페멕스는 이에 더해 자신들이 시추를 시작한 멕시코만 심해유전과 멕시코의 광대한 미개발 셰일지대의 상당 부분도 요구하고 있다. 멕시코 에너지부의 탄화수소 자원담당 차관 마리아 데로우르데스 멜가르 팔라시오스 Maria de Lourdes Melgar Palacios는 “페멕스가 기술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분야에서까지 너무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페멕스의 날개를 꺾는 건 1938년 라 엑스프로피아시온을 추진한 인물의 아들에겐 경멸할 만한 일이다. 아즈텍 황제의 이름을 이어받은 고(故) 라사로 카르데나스 대통령의 아들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 Cuauhtemoc Cardenas(80)는 나름의 혁명을 추진하려 한다. 국부를 경매에 부치는 행위라고 여기고 이번 개혁의 철회를 국민 투표에 부치는 것이다.

카르데나스는 어느 저녁, 한때 부모님 자택이었던 건물 사무실의 흰 소파에 앉아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책장에는 시몬 볼리바르 Simon Bolivar 를 비롯한 여러 라틴아메리카 투사들에 대한 책이 꽂혀 있었고, 벽에는 아버지의 거대한 유화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차양이 쳐진 현관에는 아버지의 1966년형 갈색 올즈모빌 Oldsmobile이 주차돼 있었다. 아들 카르데나스는 지금의 개혁이 “커다란 실수이자 범법행위”라고 비난했다.

카르데나스는 내년으로 예정된 차기 선거에서 석유 개혁을 무효화할 주민 투표를 실시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봄까지 170만 명의 서명을 받았고 150만 명을 더 받을 계획이다. 시간에 쫓기는 일이다. 카르데나스와 좌파가 지난 8월 의회에서 승인된 개혁의 철회를 위해 싸울 동안, 페냐 니에토 정부는 개혁을 서둘러 밀어붙이고 있다. 대통령 편에서 개혁 시행에 앞장서고 있는 멕시코 의회 의원 하비에르 트레비노 Javier Trevino는 “우리는 시간이 없다. 개혁이 지체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멕시코시티의 포시즌스 호텔 Four Seasons hotel 바에서 만난 트레비노는 좌파의 반대를 순진하고 시대에 뒤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블랙베리를 만지작거리며 “그들은 아직도 멕시코를 석유 민족주의의 비전으로 삼고 싶어한다. 그건 매우 편협한 사고”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석유기업들이 원유를 찾아나설 만한 곳이 전 세계에 걸쳐 여러 군데 있다는 사실을 멕시코의 좌파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의 선택지에 멕시코만이 있는 건 아니다.”

멕시코의 석유와 가스 산업을 개혁하려는 움직임 저변에는 국경 북쪽에서 이미 일고 있는 에너지 붐에 대한 두려움이 먹구름처럼 깔려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멕시코산 석유제품의 최대 시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민간 석유업계가 미국 셰일지대에서 엄청난 양의 기름을 짜내는 데 성공하면서 멕시코산 석유의 대미 수출이 급감했다. 또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키스톤 XL 송유관 사업을 미국이 승인하면, 미국의 멕시코만 연안 정유시설들에 캐나다산 원유가 운송되면서-지금은 멕시코산 기름을 대량으로 처리한다-멕시코로부터의 수입이 더욱 감소할 것이다.

혁명 직후 떠오르던 멕시코가 해외 석유업체들을 쫓아내는 배짱을 부릴 수 있던 때로부터 거의 8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좁아졌고 잡기 쉬운 코끼리들의 사냥도 이미 다 끝나가고 있다. 많은 멕시코인들이 인정하기 싫겠지만, 지금은 멕시코의 풍부한 탄화수소 자원을 현금으로 바꿔줄 첨단기술이 필요한 시기다. 중요한 질문은 멕시코에게 외국 채굴업체들이 생산한 석유와 가스를 이용해 장기적으로 멕시코를 부유하게 만드는 개혁 추진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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