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MOST POWERFUL WOMEN] 경제학자 vs. 인플레이션 좀비

THE ECONOMIST VS. THE INFLATION ZOMBIES

지난 15년간 미국은 닷컴 버블과 부동산 거품,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금융 위기를 겪었다. 그런데 왜 재닛 옐런 Janet Yellen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미국이 수십 년간 겪어보지 못한 위기에 대해 줄곧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By John Cassidy


재닛 옐런은 기업가 스타일이 아니다. 어른이 된 후 거의 모든 인생을 학계와 공직생활에 바쳤다. 그러나 벤 버냉키 Ben Bernanke의 후임으로 첫 임기를 마무리하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올해 68세의 옐런은 앞으로 1년간 미 재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인물임에 틀림없다(‘포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스트’는 영리 기업인만 선정하기 때문에 옐런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녀가 금리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월가의 주가 급등세-2009년 3월 이후 세 배나 상승했다-와 마침내 탄력을 받기 시작한 경제 회복의 방향이 판가름 날 전망이다.

처음에는 금리 상승 시점에 대해 약간 삐걱거리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옐런은 언제나 옳은 결정-양적 완화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금리를 추후에 인상하기로 했다-을 내렸다. 아직도 여파가 남아있는 대침체(Great Depression)를 감안하면 더욱 옳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연준 의장으로서 보여준 그녀의 행보는 너무 구식이라는 느낌을 준다. 가끔은 닷컴 버블, 부동산 거품, 금융 위기 등 지난 15년간 가장 극적인 사건들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옐런은 21세기 경제-금융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경제 주기를 좌우하고 근로자 대부분에겐 임금인상을 요구할만한 힘이 없다-에 맞게 통화 정책을 재설계하기보단 인플레이션 같은 케케묵은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 CPI)에 따르면, 연간 물가 상승률은 1.8%에 머물렀다. 1년 전보다 약간 더 떨어졌다. 그럼에도 옐런의 동료들과 연준 전문가들은 연준이 인플레이션 테러를 막기 위해 지금 또는 곧바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옐런이 지난 8월 와이오밍 잭슨 홀 Jackson Hole에서 열린 연례 연준 회의에서 연설했을 때 이런 일도 벌어졌다. 애널리스트들과 기자들은 그녀의 연설을 철저히 분석해 옐런도 인플레이션 상승을 우려하는지, 그래서 월가의 예상보다 일찍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내려 했다.

일부는 옐런이 매파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녀가 연설 중간에 임금 상승을 암시하는 연구 결과를 인용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애널리스트들은 옐런이 연준 연구원들이 만든 새 고용종합지수를 언급한 점을 들어 그녀의 비둘기파적인 발언을 부각시켰다. 이 지수는 최근의 실업률 저하를 통해 노동 시장 개선이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매파의 주장이든 비둘기파의 주장이든 과거와 변한 건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통화 정책의 혁신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버냉키와 그의 동료들-옐런도 그중 한 명이었다-은 방어적인 입장을 취했고, 곧 그들의 명성에 금이 갔다. 그들은 10년 동안 두 번이나 자산가격에 거품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거품이 터지면서 경기 침체에 빠졌다. 필자는 중앙은행의 고위 임원에게 “이제 무언가 확실히 바뀌겠죠”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연준과 여타 중앙은행이 수십 년 동안 이어온 인플레이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거품 방지와 생활 수준 개선 등 좀더 시급한 문제에 집중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필Yellen자의 의견을 반박하며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 시도가 실패하면 그때 큰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예측은 딱 맞았다. 금융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 ‘거시건전성 규제(macro-prudential regulation)’를 내세운 것을 제외하고, 연준은 금리 정책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틀을 더 강화해 내부 가이드라인에 불과했던 2% 인플레이션 목표를 공식 목표로 전환했다. 이것이 버냉키의 마지막 작품이었고 옐런도 이를 지지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옐런은 인플레이션 수호자로서의 역할과 그녀가 세운 바람직한 목표-일자리 창출과 가계소득증가-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게 됐다.


최신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8월 창출된 일자리는 단 14만 5,000개에 불과해 연준 의장에겐 약간의 운신의 폭이 생겼다. 그러나 예상대로 9월과 10월 고용률이 높아지면, 다시 한번 인플레이션 우려가 시작될 것이다.

경제 지표조차 경제 회복 속도에 관해 상반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옐런이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녀는 침체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 자신의 주요 목표라고 줄곧 밝혀왔고, 최근에는 이 목표에 상반되는 발언을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잭슨 홀에서도 “노동 시장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히며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옐런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FOMC) 동료들 중 최소한 한 명 이상이 이미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물가안정을 위한 연준의 투쟁을 계속 이어가야 할 필요성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때문에 옐런은 자신들의 예상보다 노동 시장이 더 빨리 개선되거나 물가가 생각보다 높아질 경우, 금리를 조기에 빠른 속도로 인상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 위협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걸까? 무어의 법칙(Moore’s law) *역주: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과 중국 등 여러 지역에서 쏟아지는 값싼 수입품, 그리고 노동조합의 쇠락으로 인플레이션 위협은 거의 사라졌다. 1970년대 말 이후에는 미국 경제가 임금과 가격 급등으로 타격을 입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렇게 벌써 두 세대나 지나갔다. 연준이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지표인 PCE 디플레이터에 따르면, 물가는 2010년 이후 연간 단 1.7% 상승했고, 지난해에는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우려한 애널리스트들이 나타나기도 했다(유럽과 일본은 여전히 디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

중산층 소득이 수십 년간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임금 인상은 사실상 필요하다. 최근 고용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임금은 생산성에 비해 더디게 올라가고 있다. 단위노동비용(unit labor cost) *역주: 상품 한 단위를 만드는 데 드는 노동비용은 낮아지고, 기업 이윤은 높아지고 있다. 즉, 기업이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고도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할 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가가 조금 높아질 순 있지만 시도할만한 가치는 있다는 말이다. 3%의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제 이론은 아무데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옐런은 명망 높은 경제학자로서 이 모든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연설을 통해 임금 정체와 이것이 경제에 미치는 위협, 그리고 불평등 심화에 대해 수차례 이야기 한 바 있다. 옐런이 지난 2월 연준 의장으로서 미 의회에서 첫 증언했을 때, 그녀는 자본가들의 소득 비율이 더 커지고 있다며 근로자들에 대해선 “점점 더 생산성이 제고되고 있지만 생활 수준은 그만큼 높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5월에는 의원들에게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이를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책결정자들은 이러한 현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절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옐런이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 프레임워크-1970년대와 80년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됐다-를 철회하거나, 큰 변화를 줄 생각은 분명히 없어 보인다. 이 역시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녀가 학계에 있었을 당시, 거시 경제 이론의 주된 관심사는 인플레이션과 기대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였기 때문이다.

앨런 그린스펀 Alan Greenspan을 포함한 여러 세대의 학자들은 옐런이 이 연구를 얼마나 능숙하게 설명하는지, 그리고 이 연구에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그 이후 두 번의 경제 순환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간 물가상승의 조짐은 없었다. 이제 세 번째 경제 순환이 진행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도 잘 통제되고 있다. 실업률이 얼마나 떨어져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사라질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소위 말하는 물가안정실업률(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 NAIRU) *역주: 물가상승률이 더 높아지거나 낮아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수준의 실업률의 수치는 매우 다양하다. 실제로 NAIRU의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 지표는 제한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 망령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옐런의 공식 발표를 보면 다행히 인플레이션 망령과 맞서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녀는 물가상승이 가능성을 넘어 현실이 될 때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녀가 연준과 의회, 그리고 월가의 인플레이션 매파들로부터 압력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쉬운 길을 택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끝까지 관철해나가야 한다. 한물간 전략을 구사하다 패배한 (fighting the last war) 장군으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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