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DARPA를 따라 가는 구글

GOOGLE DOES DARPA

혁신으로 유명한 검색엔진 거물 기업이 급진적 아이디어의 메카인 미 국방부 기관을 벤치마킹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잘나가는 비밀실험실 속으로 들어가 보자.
By Miguel Helft
Photographs by Cody Pickens

레지나 두건 Regina Dugan은 한 직장을 얻게 된 배경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테러방지 전문가인 그녀는 약 2년 전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국장 임기 3년을 거의 채워가고 있었다(DARPA는 미 국방부 산하의 거대 연구기관으로, GPS 시스템과 스텔스 전투기, 인터넷 등을 탄생시킨 곳이다). 두건은 임기 동안 더욱 정교하게 사이버안보, 새로운 형태의 제조방식, 가시적 성과 도출 등에 초점을 맞췄다. 2011년 의회에선 “DARPA는 실천하는 조직”이라 말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런 태도 때문에 수많은 기술 엘리트들이 그녀를 높게 평가한다. 베테랑 벤처 투자자 존 도어 John Doerr도 “그녀는 정말 인상적인 리더십을 갖췄다”는 짧은 말로 두건을 치켜세운 바 있다.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도 두건의 열성 팬 중 한 명이다. 그는 두건에게 이틀간 캘리포니아 마운틴 뷰에 위치한 구글플렉스 Googleplex에 방문하기를 권했다. 이 거대한 검색·광고 기업은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몇몇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중 두 건에게 적합한 것이 있는지 확인해보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여러 팀을 만나본 후, 당시 구글 모토로라 부문 CEO였던 데니스 우드사이드 Dennis Woodside와 마주 앉았다. 모토로라는 한때 휴대폰 혁신의 상징이었으나 스마트폰 시대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우드사이드의 역할은 이 브랜드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그는 모토로라가 혁신에 다시 한 번 집중하면 애플, 삼성 등 라이벌을 앞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모바일 업계의 베테랑을 영입해 첨단 기술팀을 이끌게 하고, 그 팀에서 개발한 기술로 모토로라가 개척자의 지위를 되찾게 할 계획이었다.

우드사이드는 두건-DARPA에서 수십 년이 필요한 혁신을 이끌었다-의 생각을 물었다. 그녀는 “지지 않으려 하는 건 훌륭한 전략이고 이기려 하는 건 형편없는 전략”이라고 답했다. 1주일 후, 두건은 모토로라의 혁신을 이끌게 되었다.

현재 두건은 이른바 첨단 기술 및 프로젝트 그룹(Advanced Technology and Projects group, 이하 ATAP)-원대한 아이디어 실현을 수행하는 태스크포스다-의 총책임자를 맡고 있다. ATAP는 모기업 구글을 위해 더욱 거대한 목표를 준비하는 팀으로, 올 하반기 모토로라를 레노버에 매각한 후에도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우드사이드는 드롭박스의 COO에 발탁되며 구글을 떠났다). 한 세대가 아닌 단지 몇 년의 기간만으로 다양한 모바일 혁신을 현실화 하는 것이 ATAP의 목표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깜짝 놀랄만한 몇몇 기술은 이미 실현을 위한 본궤도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성공한다면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모든 곳에서 두건(51)의 명성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DARPA 국장을 역임한 첫 번째 여성으로 그녀는 남성 위주의 기술연구분야에서도 편안하게 리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두건은 뉴욕시 태생으로 공학부문 학사 및 석사 학위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박사 학위는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받았다. 당당하고 스타일이 좋은 그녀는 짧게 자른 굵고 짙은 머리카락과 또렷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또 청바지와 가죽 재킷, 스카프를 즐겨 착용한다.

‘멋진 컴퓨터괴짜’라는 두건의 평판을 한층 더 높여주는 것은 그녀가 기술 관련 내용을 전달하는 데 능숙하다는 점이다.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구글 I/O(개발자 회의)가 이를 잘 보여준다. 두건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모토로라 프로젝트에 대해 쇼맨십과 허세가 섞인 한 줄짜리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발표를 이어갔다. 쉽지만 간혹은 진부한 부분도 있었다. 그녀는 “우리는 작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며 “대신 새로운 것을,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창조한다”고 말했다.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의 팀이 “기술과 아름다움, 영혼을 해치지 않으면서 혁신을 추구한다”고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발표는 원하던 반응을 이끌어냈다. 청중 속의 공학자 수백 명은 그녀의 말에 매료된 채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스티브 잡스의 기조발표를 방불케 했다.

모든 정황을 살펴봤을 때, 그녀는 말만 번지르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모토로라 프로젝트에 합류한 이후 그녀는 구글에 매우 색다른 방식의 혁신을 몰고 왔다. ATAP는 구글의 ‘문 샷 moon shot’ *역주: 달탐사선을 처음 개발하듯 목표를 높게 잡는 창조적 사고를 의미한다 부서로 알려진 구글 엑스 Google X-무인자동차, 포도당 감지 콘택트렌즈 등의 여러 놀라운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의 라이벌로 떠올랐다. ATAP의 프로젝트는 대부분 모바일 분야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조직 역시 공상과학 영화 대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만하다. 사람의 팔에 있는 디지털 문신을 통해 스마트폰의 잠금 장치를 해제할 수 있는 기술도 있다. 프로젝트 아라 Ara는 스마트폰을 새롭게 개발해 고객이 원하는 대로 즉시 조립할 수 있게 하려 하고 있다. 사용자가 자신의 니즈에 맞게 하드웨어 구성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카메라, 센서, 배터리, 혹은 맥박 및 혈중 산소 농도 측정용 옥시미터 oximeter 등을 마치 스마트폰 앱처럼 고를 수 있다. 또 현재 시제품 단계까지 온 태블릿 탱고 Tango는 주변을 3D로 인식한다. 사용자의 방 안쪽 구조를 그릴 수도 있고, 시각장애인이 주변을 인지하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가장 기발하고 어쩌면 가장 구글답다고 할 수 있는 ATAP의 프로젝트는 스포트라이트 스토리 Spotlight Stories다. 스마트폰을 통해 기존 애니메이션과 스토리텔링의 한계를 뛰어넘을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디즈니의 ‘알라딘’ Aladdin과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를 제작한 애니메이션 제작자와 픽사 Pixar의 ‘라따뚜이’ Ratatouille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감독 등 영화업계의 베테랑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 스토리는 스마트폰 성능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사용자가 조작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생생한 비디오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두건은 ATAP의 예산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현재로서는 다른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진행 중인 총 11개의 프로젝트는 최근 ‘auth’, ‘imaging’, ‘MB’ 같은 이름으로 발표 슬라이드에 등장했을 뿐이다. 이름을 통해 그 목표를 아주 조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에 머물고 있다(ATAP의 아이디어 회의실 한 곳을 사진에 담으려 하자, 직원들이 벽을 빈 포스트잇으로 가려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두건은 분명 공공을 위한 것이면서도 비밀스러운 여러 프로젝트를 자신 있게 주도하고 있다. 그녀는 구글 I/O에서 ATAP에 대해 “무언가 전설적인 것을 시도하는 작은 해적무리”라고 정리했다. 이어 잠시 말을 끊고는 “정말 빠른 배를 타고 항해하는 작은 해적무리”라고 덧붙였다.

과한 열기를 제외하더라도, 여러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목표나 혁신에 대한 접근법 때문에 구글의 모바일 혁신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두건이 버지니아 주 알링턴 Arlington에 위치한 DARPA로부터 구글에 도입한 접근법은 민간분야에서 대규모로 시도한 적 없는 것으로, IT분야 첨단기술 연구실에 만연한 문제를 피하려는 의도가 깔린 방식이다. 어떤 연구실에서는 순수 과학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학문적인 흥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응용에는 실패를 하곤 한다. 또 어떤 연구실은 놀라운 연구성과를 제품 혁신과 혼합하려고 시도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얻기도 한다. 상당히 많은 경우 제품개발팀은 리스크가 큰 연구를 기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제품 요건이나 마감기한의 압박이 불편한 과학자도 있다. 두건은 우선순위가 분명하지 않으면 타협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젝트가 “전설적인 것(epic shit)”에서 “전설적인 길에 놓인 오물(shitty in an epic way)”이 되어 버린다고 말한다(비속어를 여기저기 사용하는 것이 두건식 해적 유머의 한 부분인 것 같다). 이처럼 비밀실험실과 차별화된 곳이 DARPA다. 이곳은 유용한 제품을 만들면서도 항상 새로운 과학적 가능성을 개척했다. ATAP는 바로 이런 점을 구글에서 시도하고 있다.

두건은 “중요한 건 끊임없이 혁신을 달성하는 집단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ATAP의 계획은 어떻게 이뤄질까? 일단 과학적 이해나 공학적 현실성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어야만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를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그리고 최대한 빨리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그 같은 프로젝트를 찾아내면, 두건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전문가 팀을 구글 내에서 모집한다. 그 후에는 훨씬 더 광범위한 학계 및 산업계에서 외부 파트너를 대거 선발한다. 이런 방식 때문에 상시 근무 직원이 75명에 불과한 ATAP가 일반적인 연구실보다 훨씬 더 작고 단편적인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ATAP는 파트너들과 함께 두건이 ‘특수부대 연구팀’이라 부르는 집단을 구성한다. 탱고 프로젝트의 경우 렌즈와 카메라, 제조 분야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컴퓨터 영상인식 및 로봇공학 전문가도 연구실의 일원이 되었다. ATAP 소속 핵심 과학자 및 공학자는 12명에 불과했고, 미국 및 유럽 대학을 비롯해 나사의 제트 추진 연구소 등 외부 파트너 40여 곳이 참가했다.

ATAP는 총 22개국 326개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있다. 대학, 신생기업, 대규모 시스템 통합기관, 정부 및 비영리단체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두건은 전례 없는 대학 다자간 연구약정을 통해 20개가 넘는 명문 대학과 협약을 체결했다. 덕분에 ATAP는 스탠퍼드, MIT, 캘리포니아 공대, 미시간대 등의 연구진과 신속하게 계약할 수 있다). 가장 유명하고 혁신적인 산업 연구 단체 중 하나인 제록스 팰로 앨토 리서치센터(Xerox Palo Alto Research Center)를 이끌었던 존 실리 브라운 John Sealy Brown은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너무 빨라 기술과 시각의 다양성이 중요하다”며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신속하게 모집해야 할 때가 많다”고 강조했다.

ATAP 프로젝트의 요건은 완성된 제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목표 때문에 연구자는 독창성을 더 잘 발휘하고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MIT 비트·원자 센터(Center for Bits and Atoms)의 센터장이자 ATAP의 모듈형 휴대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닐 거센펠드 Neil Gershenfeld 교수는 “제품 완성에 초점을 맞추면 연구에 현실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두건은 “연구자가 시제품 완성에 그치지 않고 대규모 생산이 가능한 제품을 만들려고 하면 다양한 기술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탱고 프로젝트에선 곧 개발자에게 기기들을 전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 스토리는 이미 2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완성한 후 3번째 작품을 제작 중이다).

마지막으로 ATAP 프로젝트 방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시급함(impatience)이다. 프로젝트에는 2년이라는 마감기한이 있어 연구가 결론 없이 끝날 수 없다. 가시적인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 프로젝트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보류한다. DARPA에서는 직원의 명찰에 마감기한을 인쇄해 이러한 사실을 강조한다.

ATAP에서는 주기적으로 기술자들에게 일주일이 지날 때마다 마감기한이 1%씩 가까워진다고 주지시키고 있다. 두건은 “분명 긴박감이 존재한다”며 “경력을 쌓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를 수행해 전설적인 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온 것이고, 끝나면 떠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IT 업계에서 연구조직은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몇 년간 여러 대기업들이 과학자를 다수 고용해 연구시설을 세웠고, 그 연구결과는 저명한 학문기관과 어깨를 견줄 정도였다. 예컨대 AT&T의 벨 연구소(Bell Labs)는 트랜지스터와 레이저를 발명해 명성을 얻었고, 연구소에서 진행한 실험 7개가 노벨상을 받으며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 IBM은 인공지능 시스템 왓슨 Watson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모든 공학 전문가가 전통적 혁신의 모델이 몰락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DARPA의 베테랑으로서 두건의 임기 동안 국방부 소속으로 DARPA를 관리했고, 현재 IBM 리서치(연구원 규모가 ATAP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3,000명에 이른다) 최고임원을 맡고 있는 재커리 램니오스 Zachary Lemnios는 “IBM은 연구의 상아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 및 단기 프로젝트로 구성된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많은 IT대기업에선 자사 연구소가 이룬 혁신을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구결과를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모기업이 연구결과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제록스 팰로 앨토 연구소(PARC)는 컴퓨터 마우스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발해 유명세를 탔지만, 이를 상용화한 쪽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였다).

구글은 눈에 띄게 이러한 방식을 기피하려 했다. 회사는 오랫동안 전문 연구진을 제품팀에 소속시켜 관리하면서 검색(구글 나우 Google Now), 음성인식(딕테이션 dictation), 기계 번역(구글 트랜스레이트 Google Translate)과 같은 부문에서 혁신을 일궈냈다. 구글이 공식적으로 연구를 위한 팀을 구성한 것은 구글 엑스였지만, 역시 기초 과학 연구가 중심은 아니다. 대신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기술 도약이 필수적인 특정한 경우(무인 자동차 같은)에만 집중하고 있다. CEO 래리 페이지 Larry Page의 유산인 구글 엑스는 거대하고 야심 찬 아이디어를 추구할 것이며, 그 성과를 거둘 때까는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다. 모바일 컴퓨팅-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던 2007년 태동한 신생업계-에서의 혁신을 생각한다면, ATAP의 짧은 일정은 좀 더 적절해 보인다. 두건은 “모바일 분야에서 10년을 생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연구조직이 그렇지만, ATAP 프로젝트나 구글 엑스는 사업적 동인이 불분명하다. 하지만 구글은 다음과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개념적 진보가 어떻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지만, 결국 좋은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와 개발이 연관된 그 과정 덕분에 세계 최고의 인재를 불러모으고 유지할 수 있다. 구글과 과감한 혁신을 이어주는 소란스러움은 어느 쪽에도 해가 되지 않는다.

두건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정치학자 도널드 스토크스 Donald Stokes가 명명한 ‘파스퇴르형(Pasteur’s quadrant)’으로 만들고자 한다. 스토크스는 본질적으로 자연을 이해하려는 목적인 경우(물리학자 닐스 보어 Niels Bohr의 이름을 따 ‘보어형’이라고 한다)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인 경우(토머스 에디슨 Thomas Edison의 이름을 따 ‘에디슨형’으로 부른다) 등 총 4개의 형태로 과학연구를 분류했다. 그는 파스퇴르형을 두 가지 형태의 중간지점에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즉, 기초 과학의 확장을 목표로 하는 연구지만 현실적 응용을 목적으로도 진행하는 경우다(스토크스는 4번째 형태를 비워두었는데, 새로운 과학도 아니면서 현실적인 활용도 추구하지 않는 연구를 가리킨다). 이러한 정의에 일치하는 프로젝트를 찾기 위해 두건의 팀원들은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따르고 있다. 기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관찰해 그 속도를 배가할 수 있는 응용방식을 찾거나, 새로운 형태의 기술적 해결책이 요구되는 응용방식을 찾는 것이다.

프로젝트 아라는 ‘파스퇴르형’ 분류에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아이디어는 모토로라가 모토 엑스 Moto X를 출시했을 때 시작된 것인데, 당시 모토 엑스는 시장 최초의 고객 맞춤형 스마트폰이었다. 사용자가 뒷면이나 버튼 및 베젤의 색상을 선택할 수 있었다. 모토로라는 매출 데이터와 자체 연구를 통해 소비자가 이러한 맞춤형 제품에 프리미엄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기의 외형적 측면뿐만 아니라 기능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기기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다는 면에서 특별한 친밀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ATAP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분명해졌다. 모바일 분야에서 고객 맞춤형이라는 특성을 어디까지 확장해야 할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두건은 DARPA 시절 동료였던 폴 에레멘코 Paul Eremenko를 찾아냈다. 에레멘코는 휴대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모듈형 인공위성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었다.

에레멘코는 ATAP가 완전한 모듈형 휴대폰을 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용자가 부품을 취향에 따라 더하고 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IT 관련 언론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모듈형 휴대폰은 애플이나 삼성이 만든 완제품에 비해 당연히 열등할 것이라는 것이 주된 비판이었다. 더 크고, 더 느리고, 배터리도 빨리 닳고, 디자인도 뒤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뒤따랐다. 에레멘코 자신은 이러한 비판을 전혀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모듈형 휴대폰이 직면한 문제는 단지 ‘간접비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만약 이를 신속하게 낮출 수 있다면(스스로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듈형 휴대폰에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실제로 ATAP의 프로젝트 모델이 빛나는 것은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다. 아라팀은 다양한 분야의 공학적 도약을 추구하고 있다. 부품 조립에 활용할 초소형 전자 영구자석(electro-permanent magnets) 개발이나 이동 및 변형이 가능한 안테나 설계를 추진하고 있다.

ATAP 팀원이 5명만 참여한 상황에서 아라팀은 파트너의 도움으로 목표를 향한 큰 진전을 이루려고 한다.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에서 돌아가는 모듈형 기기를 만드는 것이다. 시제품은 케이블이 밖으로 보이는 등 마치 취미로 만든 제품처럼 보였지만, 아라팀이 예상하는 완제품은 멋지고 매끈한 것이다. 3D 프린터로 핵심부를 만들고,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으로 된 다채로운 색상의 모듈 모서리를 곡선으로 처리해 쉽게 조립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모바일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할 것이다. 예컨대 수억 명이 여전히 피처폰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휴대폰 제조사가 기본적인 기능만을 갖춘 스마트폰을 제조해 개발도상국에 공급할 수 있다. 그 후에 사용자가 하나씩 업그레이드를 하면 된다. 모듈형 휴대폰의 등장으로 소수의 거대 제조업체가 주도하는 휴대폰 업계의 진입 장벽이 낮아질 수도 있다.

고급오디오 기기업체 보스 Bose나 카메라 제조업체 라이카 Leica도 고급 음향 모듈 또는 카메라 모듈을 제작,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다. 핏비트 Fitbit 등 활동 측정 기기 제조업체는 단독 웨어러블 기기를 만들 필요 없이 휴대폰용 모듈을 제작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맞춤형이라는 성질은 모듈 내부에까지 확장될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MIT 과학자 거센필드는 “아라프로젝트는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만큼이나 변형 가능하도록 만드는 첫 걸음”이라고 주장했다.

구글 사무실 칸막이 안쪽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글렌 킨 Glen Keane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킨은 어렸을 때부터 공룡을 시작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스스로 창작한 세계와 캐릭터 안에서 사는 자신을 상상할 수 있었다. 디즈니에서 40년 넘게 근무한 킨은 자신이 생명을 불어 넣은 알라딘, 인어공주의 아리엘, 미녀와 야수(the Beauty and the Beast) 안에서 사는 경험을 수백만의 영화광들과 공유했다. 이제 그는 구글플렉스에 위치한 평범한 ATAP의 임시 사무실에서 작업을 한다. 깎아놓은 연필 박스와 이젤 앞에 앉아 하얀 종이 위에 한 프레임씩 그림을 그려 나간다(킨의 팀은 서니베일 Sunnyvale에 있던 모토로라 사무실을 떠났고, 영구적으로 머무를 사무실이 준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킨은 여느 때 없이 자신의 그림 ‘안에’ 존재함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예술가로서 나는 캐릭터의 외형 안에서 살아야 했다”며 “그건 상상 속 경험을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덧붙였다.

킨의 구글 프로젝트 이름은 듀엣 Duet으로, 기발하면서도 시각적으로 놀라운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미아 Mia라는 소녀와 토시 Tosh라는 소년이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서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스포트라이트 스토리에서 제작한 다른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듀엣-아직 출시되지 않았다-또한 모바일 기기를 통해 감상하도록 만들었다. 화면이 일종의 이동 가능한 창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관객을 둘러싸고 있는 3차원 세계가 펼치는 이야기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화면을 한쪽 방향에 두고 있으면 이야기의 한 부분을 볼 수 있으며, 다른 부분을 보고 싶으면 화면을 위나 아래 또는 주변으로 향하게 하면 된다. 듀엣에선 관객의 선택에 따라 미아의 부분을 감상하다가 토시를 선택해 그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고, 다시 미아 쪽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두 캐릭터가 만나는 시점마다 이를 고를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 스토리의 기술부문을 책임지는 라시드 엘 게랍 Rachid El Guerrab은 “만나는 시점마다 한쪽을 선택해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듀엣을 다시 볼 때마다 매번 다른 것을 선택해 감상할 수 있다. 기존 영상이 고정된 프레임에 들어가 있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라면, 듀엣과 같은 종류의 작품은 대성당 내부를 탐험하는 것과 다름없다.

스포트라이트 스토리는 두 개의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여가활동용으로 사용하지만 기존형태의 영상이나 단순한 게임 같은 전형적인 경험이 기기의 기능과 성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임분야 베테랑인 엘 게랍과 몇몇 팀원이 모토 엑스의 그래픽 성능을 3D 캔버스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 핀카바Jan Pinkava-2007년 라따뚜이 공동제작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그보다 10년 앞서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던 인물이다-를 필두로 한 픽사의 베테랑 몇몇을 영입하기로 했다. 이 팀은 ATAP에서 윈디 데이 Windy Day와 버기 나이트 Buggy Night라는 두 편의 컴퓨터 단편을 제작했다. 이들은 모두 모토 엑스 스마트폰에서 감상할 수 있다. 듀엣은 이 팀에서 손으로 그린 첫 번째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스포트라이트 스토리는 ATAP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술과 상관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거 연구실에서 시도해 온 비현실적 탐구와 가장 비슷하다. 이 점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스포트라이트 스토리팀이 3차원 캔버스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예술 형태를 만들어 냈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래의 예술가가 현재 시점에서 알 수 없는 방법을 통해 이를 활용할 것이란 점 또한 확실하다. 컷, 클로즈업, 와이드샷, 컷어웨이 등으로 이야기의 시점을 조절하는 데 익숙한 킨에게는 완전히 색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스스로를 마술사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시점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구슬리고 매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 압축이나 모바일 기기 화면에 맞게 영상을 렌더링하는 방법에는 기술적 요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킨은 1초에 24프레임이 아니라 60프레임을 그리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결과는 만족 그 이상이었다. 거대한 영화관 스크린이 아니라 작은 모바일 기기에 맞게 제작하면서 예술가와 관객 사이를 좀 더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킨은 “큰 영화관에 앉아 있으면 뭔가 차가운 느낌이 든다”며 “누군가 예술작품을 손에 쥐고 있다면, 그 친밀감은 대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킨이 믿는 것처럼 이 새로운 형태의 예술은 할리우드를 넘어 더 멀리까지 퍼져나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두건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 그녀는 듀엣과 다른 단편에 대해 “선물”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움에 영혼이 더해진 선물 말이다.

1프로젝트 탱고
기술 책임자 조니 리 Johnny Lee가 센서와 카메라를 추가 탑재해 변화를 준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들고 있다. 이 기기를 이용하면 주변을 인지해 지도화할 수 있다.

2 프로젝트 아라
구글의 완전 맞춤형 휴대폰을 구성하는 각 부품은 매끄러우면서 조립 구조물이 없는 플라스틱 타일로 되어 있다. 때문에 3D 프린터로 만든 프레임에 장착할 수 있다.

3 프로젝트 스포트라이트 스토리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이 모바일 시대의 미래형 디지털 스토리텔링과 만났다. 위 사진은 3D 세상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단편 애니메이션 ‘듀엣’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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